폭포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엊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아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어휘풀이]
-나타 : 나태(懶怠), 게으름
[작품해설]
김수영이 모더니스트에서 참여 시인으로의 본격적인 활동을 보인 것은 1960년대이지만, 자유당 정권하에서부터 이미 그는 현실 참여 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시적 변모 과정을 보일 때의 창작으로, 폭포를 통해 현실에 대응하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주지적 경향의 작품이다. 이 시는 거센 힘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모습을 시각과 청각적 심상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폭포는 깨어 있는 자, 의식 자로서의 참된 삶을 표상한다. 이렇게 이 시는 물리적 힘에 의해 인간다운 삶이 거세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참된 양심의 소리를 세차게 토해내는 깨어 있느 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먼저 이 시는 ‘떨어진다’와 ‘곧은’이라는 단순하면서도 힘찬 시어로써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는 시인의 자세를 보여 준다.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 쉴 사이 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어떠한 불의, 부정과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양심의 자세이며, 조금의 굴종과 무기력도 용납랄 수 없다는 투철한 정신의 표상이다. ‘떨어진다’는 것은 자시 자신을 부수는 것으로 고통과 희생이 수반도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폭포가 지닌 ‘행동성⸱하강성⸱불굴성’의 이미지를 작품 속에 투영함으로써 조금의 두러움도 없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강렬한 영혼을 추구하고자 한다. 또한 ‘곧은’은 ‘직(直)’과 ‘정(正)’의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는 것으로, ‘곧은 소리는 곧은 / 소리를 부른다’는 구절에는 바로 폭포가 스스로도 곧다는 것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하여 모든 ‘올곧은 소리’를 요구하겠다는 시인 자신의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폭포를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삶의 자세에 대한 준열(峻烈)한 의지의 전형(典型)이자, 모든 사람들의 안이하고 타협적인 삶을 각성시키는 실천적 행동체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서정적 세계가 처음부터 제거되어 있고 사물을 지적(知的)으로 인식하여 객관적으로 그리려는 생각하는 시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 시는 ‘밤’과 ‘곧은 소리’의 대립적⸱상징적 심상을 통해 부정적 현실을 거부하고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바른 소리(直言)를 강조하는 현실 참여 의식을 아울러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폭포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채 권력에 야합하여 자신의 영화만을 추구하는 이익 집단이나 무사안일로 일관하는 소시민의 삶 모두를 비판한다. 폭포는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예언자’요, ‘선각자’의 모습으로 부각된다. 또한 폭포의 세찬 물줄기와 웅장한 소리는 깨어 있는 자의 위대한 정신과 힘을 형상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결국 이 작품은 이승만 독재 정권으로 인해 얼룩진 현실 상황을 깊이 인식한 시인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정의의 목소리를 갈구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소개]
김수영(金洙暎)
1921년 서울 출생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 토쿄(東京)상대 전문부에 입학했다가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
1947년 『예술부락』에서 시 「묘정(廟廷)의 노래」를 발표하여 등단
1958년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시집 『달나라의 장난』 발간
1968년 사망
1981년 김수영문학상 제정
시집 : 『새로운 도시의 시민들의 합창』(공저, 1949), 『달나라의 장난』(1959), 『거대한 뿌리』(1974),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9), 『김수영전집』(1981),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1984),『사람의 변주곡』(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