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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을 하다 상념에 들다 강성희
소설, 대설이 지나도록 큰 추위가 없어 올해는 따뜻한 겨울이 되려나 생각하던 어느 날, 무심히 여느 날과 같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을 나갔다가 그날따라 급강하한 기온과 매서운 바람에 혼쭐이 났다. 아파트 실내에서는 바깥의 기온을 잘 알 수 없어 외출하기 전에 창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바깥 기온의 체감을 어림해보곤 했었는데 맑은 하늘과 밝은 햇살만 믿고 집 밖을 나갔더니 웬걸, 손은 시리고,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몸이 저절로 움츠려 든다. 무엇보다 머리가 시리다는 느낌에 나는 더럭 겁이 났다 . 그렇지 않아도 아침 기상 방송에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겨울철 건강관리에서 찬 공기에 머리의 노출을 조심해야 한다는 방송을 들었던 터였다. '모자라도 쓰고 나올걸' 하고 후회하며 코트 깃을 세워 올렸다.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모양이다. '아, 어제만 해도 봄이더니, 갑자기 한 겨울이네, 하루 사이에 너무 추워졌어. 머리가 띵한게, 모자를 쓰고 다녀야겠어' 하며 모자를 찾느라 이방 저방 서랍을 뒤지고 실내에서라도 모자를 쓰고 있을 것 처럼 요란을 떤다.. "당신 겨울 외출 모자가 어디 있긴 했어요? 산에 갈 때 쓰는 모자야 있지만" 남편은 좀해서는 모자를 쓰지 않았다. "나는 모자가 왜 이렇게 안 어울릴까?“ 남편은 모자를 쓰면 사람이 좀 부족해보이는 것 같다며 모자를 쓸 때마다 불평을 하곤 했다. "기다려요, 내가 당신한테 어울리는 예쁜 털모자를 하나 뜨개질해서 줄게."
그렇게 해서 수십 년을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뜨개질의 DNA는 다시 발현이 되었다.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가끔 평화로운 노후의 풍경을 상상할 때 ,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이고 낭만적인 장면이 있었다. 은발의 곱게 늙은 할머니가 안락의자에 무릎 담요를 덮고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풍경이다. 뒷 배경에는 벽난로가 자작자작 장작 타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어도 좋고, 옆에는 시베리안 허스키같은 잘생긴 개 한마리가 있어도 좋다. 벽난로나 잘 생긴 개는 어디까지나 조연이며 주연은 할머니와 뜨개질이다. 더구나 할아버지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갓 내린 커피를 할머니께 가져다 드린다면 그것이야말로 평화와 행복이 어우러진 완벽한 풍경이 되지 않을까? 그런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노후의 삶일까?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오랜 세월 동안 뜨개바늘을 잡아 보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 만난 갑작스런 추위와 나이듦의 서글픔을 몸소 체험한 남편의 호들갑스러움이 까맣게 잊고 있던 뜨개질에 대한 환상을 잠깨웠다.
나는 당장 뜨개질이 하고 싶어졌다. 뜨개질을 하면 평화롭고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기라도 할 것처럼 뜨개질이라는 어휘의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뜨개질, 내가 한동안 그렇게 좋아했고, 심취했던 일이기도 했었는데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할 무렵이니까 서른 중반 쯤 되었을까? 바쁜 틈틈이 예쁜 색의 틀실을 사다 아이들의 옷을 짰었다. 물론 사서 입히는 옷보다 더 예쁘지도 않았고, 더 실용적이지도 못했지만 내가 좋아서 그렇게 사서 부지런을 떨며 뜨개질을 했었다. 학교에서도 오후 시간이 되면 여선생님들이 휴게실에 빙 둘러 앉아 모두 뜨개실을 하곤 했었다. 이런 소일거리도 세월 따라 흐름이 있고 추세가 있는 것 같았다.
삼십년 쯤 서랍 구석에서 잠자던 뜨개바늘을 찾아내고, 뜨개질에 조예가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조언을 얻고 다음날 당장 서문시장 털실가게에서 털실을 샀다.
그렇게 삼십년만의 뜨개질이 시작되었다. 뜨개바늘을 잡은 손에 생소한, 그러나 기분좋은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예쁘게 될까?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예전에 했던 가락이 있는데’ 하고 조금은 자신하며 시작한 뜨개질은 그렇게 순조롭게 잘 되어주지는 않았다. 앞뜨기와 뒤뜨기가 서로 바뀌어 규칙적인 배열이 어긋나기도 하고 한 참이나 짠 후에 머리에 둘러보면 생각보다 너무 크게 나와 다시 풀고 짜기를 거듭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올 겨울에 써 보기는 하겠나."하고 면박인지 기다림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관심을 보인다. "도와주지 못할 거면 그냥 얌전히 기다리고 계시오 .이제 막 쌀을 씻었는데 밥솥에 쌀을 앉혀 익히고, 뜸이 들어 김도 빼고 해야 밥상을 차리지요?" 목을 길게 빼고 종종 뜨개질 하는 내 손을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도 기대감에 조금은 설레는 듯하다. ‘내가 도와 줄 일은 없나?’ 하는 표정이다. 지금은 시장에서 파는 털실도 풀어쓰기 좋게 감겨져 나와 남편이 도와 줄 일은 없다.
내가 학교도 들기 전 그 옛날에도 여자들은 뜨개질을 많이 했었다. 겨울이면 늘 뜨개바늘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짜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새 실은 타래로 묶어져 나와 실을 감을 때는 아버지께서 늘 도와 주셨다. 엄마께서 팔에 실타래를 두르고 팔을 좌우로 흔들어 주시면 아버지께서는 종이를 접어 만든 실패에 실을 감으셨다. 감은 실의 부피가 커지면 실은 동그랗고 커다란 공이 되어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들은 그 공을 굴려 보고 싶어 했다. 새 실을 사서 뜨개질을 하시는 것 보다는 팔꿈치가 헤어진 스웨터나 크기가 작아진 스웨터를 풀어서 다시 짜거나 우리들의 양말이나 장갑을 짜주실 때가 더 많았다. 헌 스웨터를 풀 때도 엄마 혼자서는 하실 수 없어 아버지께서 엄마를 도와 실타래를 만들어 주셨다. 헌 옷에서 풀어낸 실은 라면처럼 꼬불꼬불했다. 엄마께서 풀어낸 그 꼬불꼬불한 실은 아버지의 손을 거치고 곤로 위의 주전자가 내 뿜는 하얀 김을 스쳐 구불구불한 실타래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재생된 털실로 엄마께서는 새 옷을 짜 주셨다. 또 여러 종류의 짜투리 실을 모아 색동 양말이나 손가락마다 빛깔이 다른 패션 장갑을 짜 주시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나 6학년 쯤 되었을 때 엄마께서 날랜 손놀림으로 뜨개질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몹시도 행복해 보이고 그 손놀림이 부러워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엄마가 없을 때 내가 바늘을 잡고 몇 코를 짜 놓으면 엄마는 내가 짜놓은 그 코 수를 정확히 찾아내시고 "이렇게 짜임이 느슨하고 들쭉날쭉하면 옷이 맵시가 없지." 하시며 풀어 다시 짜곤 하셨다. 그리고 " 자, 그렇게 해 보고 싶으면 이 실로 연습해보아라" 하시며 던져 주신 내 작은 주먹만한 실꾸리를 보물처럼 간직하며 틈이 날 때 마다 몇 날 몇 일을 풀었다 짰다 풀었다 짰다 한 끝에 첫 작품을 완성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쓸모도 볼품도 없는 맨숭한 긴 사각형 머리띠였다. 그렇지만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은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의 경우에는 뜨개질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도 물론 크지만 뜨개질 하고 있을 때 마음에서 느껴지던 평온함이라든지, 안정감이라든지 행복감으로 인해 더 뜨개질에 마음이 끌렸다. 따뜻한 햇볕 쬐는 창가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을 때의 내 마음은 스트레스 지수 0, 불안, 불쾌지수 0, 마치 수영장에서 내 체중을 모두 수면에 맡기고 누워 있을 때 처럼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가 된다. 知足이면 可樂이라 貧賤도 榮樂이요... 하는 어릴 때 읽은 명심보감 구절이 나도 몰래 흥얼거려진다.
길이 잘 들어 매끈매끈한 긴 대바늘에 씨실을 걸고 또 다른 한 바늘을 날실에 걸어, 날실을 씨실 사이로 돌려 빼어 내면 한 땀이 생겨난다. 그렇게 씨실과 날실이 서로를 의지 삼아 엮고 엮이며 한 땀, 한 땀 불어나 틀실의 띠가 생기고 틀실의 면이 생긴다. 그 면은 또 여러 가지 기법에 의해 무늬가 만들어 지거나 내가 만들고 싶은 입체적인 형상으로 변해 간다. 그러나 어떤 형상으로 어떤 무늬가 들어가든 씨실과 날실은 서로를 놓지 않는다. 그들은 한 작품이 완성되어 끝 매듭을 만들 때 까지 운명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엮어져 가야 한다.
이런 상념에 젖어 뜨개질을 하다가 문득 인연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부부의 인연, 부모자식과의 인연,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누군가와의 관계, 인연.
혼자 일방적일 수 없으며 마주쳐야 소리 나는 손뼉처럼 두 주체가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도움을 주며 도움을 받으며, 영향을 주며 영향을 받으며 사연을 만들어 가는 관계가 인연이 아닐까? 사람들은 인생의 고비 고비에서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만들며 얼마나 많은 씨실과 날실을 엮으며 아롱이 다롱이 사연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일까?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인연의 연속이다. 그 인연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연속이 우리 삶의 흔적들이다. 우리가 짜낸 삶의 뜨개질, 흐뭇하게 한 땀 한 땀이 곱게 엮어져 두고 두고 보고 싶은 인연, 씨실과 날실의 부조화로 다시 풀어 버리고 싶은 미운 인연, 이미 끝맺음을 한 인연,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 인연, 새로이 만나 이어질 인연. 내 숨이 붙어 있는 한은 이어질 인연, 삶의 뜨개질이다. 내 삶이 마침표를 찍는 날까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어디에선가 나의 씨실이 되고 날실이 되어주며 내 삶의 뜨개질에 한 땀, 한 땀을 만들어 줄 이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 인연들이 있어 나의 삶이 다채롭고 온전하게 이어지는 것이리라.
남은 나의 인연들이 고운 인연이길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뜨개질을 한다.
무한한 공간을 가로 질러 내 창가에 다다른 햇살, 그 화사한 햇살 한 올을 씨실에 걸고, 평화롭고 따뜻한 마음 한 올은 날실에 걸며 뜨개질을 한다. 내가 뜨개질한 털모자를 쓰고 엄지 척! 하며 흡족해 하는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는 내 얼굴에서 만족한 미소가 피어난다. - 끝 - 2018.12.22
첫댓글 오랫만에 좋은 글이 올라와 단숨에 읽었습니다. 뜨개질을 하시며 인간관계를 씨실과 날실의 조화로 승화시킨 재미있고 멋진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생의 뜨게질,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씨줄과 날줄의 엮임인 것 같습니다.
그 엮임에서 행복과 슬픔을 엮어나가는 것, 그게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뜨게질 글을 읽으면서 옛날에 양말. 장갑. 목도리. 겨울내의. 심지어 겨울모자까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뜨게질을 해서 만들때의 일들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시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대바늘 뜨게질을 하던때가 언제 였던가 한참 기억해봅니다. 장농에 한참 굴러다니던 털실 뭉텅이와 뜨게바늘이 언젠가 사라지고 없네요. 씨실과 날실로 엮어 작품이 완성될때에 흐뭇했던 때 그것도 동료에게 물어물어 완성한 작품이 쉐타 였습니다.시간이 늘려있는 긴 겨울 나도 시작해 볼까? 마음만 바빠집니다.
작품 하나, 씨실, 날실에 햇살과 따뜻한 사랑을 담아 완성 될 털모자.. 쓰게 되면 무척 행복해 하실 듯 합니다. 뜨개질을 하면서 떠올린 추억의 상념들이 몇 편의 글을 쓰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화사한 햇살 한 올을 씨실에 걸고, 평화롭고 따뜻한 마음 한 올은 날실에 걸며 뜨개질을 한다.> 멋진 표현에 감탄하며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뜨개의 여왕'이란 닉네임을 붙여 드리고 싶습니다. 부부로 상징되는 날실과 씨실 한올 한올에 사랑을 담아 털모자를 완성한다면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사랑모자는 없을 듯 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글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뜨게질. 씨실과 날실. 인연 그리고 사랑이 가득담긴 털모에 엄지 척!으로 흘러가는 글, 도도한 강물이 넓은 가슴으로 세상을 품고 흘러가는 듯한 글의 흐름과 아름다운 노을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뜨게질 하며 펴는 상상의 세계.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도 생각하는 동안 만이라도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뜨게질 과 함께 좋은 생각 좋은 꿈 많이 꾸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