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찾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삼성전자가 용인시 이동읍·남사읍 일대에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에 인근 단지 주민들은 벌써부터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사업 예정지는 경기도 평택과 광주를 연결하는 국도 45호선 양옆에 자리잡고 있는 농경지와 임야, 자연부락으로 면적은 710만㎡에 이른다. 용인시에 따르면 전체 개발면적의 73%(521만7000㎡)가 이동읍에 있고, 남사읍(188만6000㎡)은 완장리와 창3리 등 임야지역 일부가 포함됐다.
송전마을세광엔리치타워 정문 바로 옆에 위치한 A공인중개사사무소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는 국가산업단지 조성 예정지 구역이 표시된 용인시 지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A공인 대표는 개발 호재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는 동안에도 실시간 걸려 오는 문의 전화로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분주했다. 그는 "국가산단 발표 전에는 한 달에 한 건 거래될까 말까였는데 발표 후 토요일까지 하루에 전화만 20건 넘게 오고, 서울, 수지 등에서도 5~6팀이 이곳을 찾아왔다"며 "발표 전만 해도 전용 84㎡ 시세가 2억6000만~7000만원 선이었고, 매물도 십여개 있었는데 4~5개가 거래되고 나머지 매물은 모두 집주인들이 거둬들인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송전마을세광엔리치타워 외에도 이동읍 행정복지센터 인근 부지에 25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위한 토지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동읍이 용인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로운 주거단지로 탈바꿈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송전마을세광엔리치타워(782세대)는 이동읍에서 국가산업단지 예정지와 가장 근접해 있는 주거단지다. 15일 정부 국가산업단지 예정지 발표 때만 해도 이동읍과 붙어 있는 남사읍이 언급됐지만, 예정지 전체 개발면적의 70% 이상이 이동읍인 만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수혜지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이 단지 주민 최모씨(56)는 "단지가 용인에 있기는 하지만 도심과의 거리, 주변 교육 여건, 문화 시설 등 인프라가 부족해 근 10년간은 시세가 분양가보다 낮을 정도로 저평가됐었다"며 "특히 인근 도로가 2차로가 대부분이고 주변에 산업단지와 물류센터가 많아 화물차량 등으로 출퇴근 시간 도심으로 이동할 때 막혔었는데 반도체 클러스터가 형성되면 주변 인프라가 발달하고 교통도 좀 더 편리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숲시티 1억5000만원 올라…토지거래허가서 빠진 매물 관심 높아
이동읍과 차로 12분 정도 떨어진 용인시 남사읍 e편한세상용인한숲시티 단지도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었다. 실제 이 단지 내에는 ‘남사·이동읍 215만평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선정’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남사읍은 그동안 도농복합지역으로 개발이 낙후됐지만, 한숲시티는 남사읍에 자리한 67개동 규모의 유일한 아파트 대단지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이동읍 인근 이동면사무소삼거리 곳곳에는 창3리 화곡마을 주민비상대책위원회의 이름으로 ‘강제수용 죽음으로 반대한다’, ‘하나로 똘똘뭉쳐 산단지정 박살내자’라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인근에 있는 시미리 마을회관도 평소 같았으면 마을 주민들의 대화 소리에 화기애애했겠지만, 이날 굳게 닫혀있는 마을회관 앞 정문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마을회관 안에서 만난 원주민들은 대부분 사업예정지에 속한 집과 농사지을 땅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들어설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이주 및 보상 문제를 우려하고 있었다. 과거 옆 동네 덕성산업단지 조성사업 때 땅이 강제수용되는 과정에서 보상 문제로 한바탕 시끄러웠던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이동읍 시미리에 위치한 주택에서 아들과 함께 35년을 살았다는 원주민 유모씨(63)는 "덕성산업단지가 들어설 때 원주민들이 토지 보상받은 걸로 인근 땅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집 한 채 못 지어 비닐하우스에 사는 모습을 봤었다"며 "우리는 평생 이곳에서 농사짓고 살았고, 처가댁은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데 고향을 떠나면 아파트를 갈 것도 아니고 앞으로 어디서 뭘 먹고 살아야 하나"고 토로했다.
용인시가 지난 17일 이 일대를 개발행위허가제한지역으로 정하면서 해당 지역이 3년간 건축물 신축이나 개축, 토지 형질 변경 등이 제한된 것도 원주민들이 반도체 클러스터를 반기지 않은 이유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원주민들은 토지가 강제 수용되면 본인의 생활기반을 잃게 되고, 개발행위허가제한지역으로 지정돼 건물이 노후화될 때 수리를 못 하는 등 한동안 어려움이 예상돼 반도체 클러스터를 반기지 않을 수 있다"며 "땅을 수용하더라도 기업과 원주민이 상생할 수 있도록 이주대책 등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용인=곽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