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상무경기를 연달아 보게 되었습니다.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조만간 소속팀으로 다시 복귀해야 한다는 어정쩡한 입장, 전력극대화를 위한 별다른 방안이 있을 수 없음에도 그 경기력에 대해 늘 이러쿵 저러쿵 입도마에 올라야 하는 처지.. 똑같은 머리모양에 등번호까지 낯선 걸 달다보면 예전에 알아보던 팬들조차 그저 “상무선수”로만 기억해줄까 말까한 분위기… 참 프로선수로선 열악하다고 하겠지만 그나마 선택받은 선수들이라니 이를 어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2002 월드컵, 곧이은 부산아시안게임, 그리고 지난여름 아테네올림픽을 거치며 축구선수들의 병역의무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었죠..
현재 상무선수들중에 가장 눈에 띠는 이동국선수의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국대에서의 스트라이커로서 이동국선수가 잘하니 못하니 많은 의견들에 불구하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동국선수가 병역혜택을 못받으면 누가 받아야 하나..”
1.병역의무는 양적개념(quantity)이다.
모든 것이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화되고 능력에 따른 차별이 인정되는 것이 우리사회의 시스템이지만 병역만큼은 그저 신체/건강 조건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기간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게 됩니다. 병역혜택을 아예 없앤다면 몰라도 국가대표로서의 공적을 병역혜택과 연관시킨다면 “많이” 봉사한 선수를 제일 먼저 배려해야 합니다. 2002년 월드컵 4강신화가 국민에게 준 기쁨을 생각하면 병역혜택 아니라 그이상의 어떤 상도 아깝지 않지만, 청소년때부터 크고작은 무수한 국제대회에 거의 개근하다시피 하였으나 유독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의 대회와는 지지리도 인연이 없었던 선수나, 이미 군대를 갔다온 고참선수들과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완벽한 제도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아, 저도 월드컵을 통해 우리 젊은 선수들이 병역의 부담을 벗고 빠르게 성장한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절대 이미 혜택받은 선수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으니 오해없으시길..그러나, 그건 제가 축구팬이기 때문이고..별 관심없는 종목 선수들이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병역이 걸린 대회에 그것도 본선 몇경기에만 며칠간 반짝 출전하고 병역혜택을 받아가는 모습은 글쎄요..비인기종목이고 국제대회성적이 신통찮아도 국가의 부름을 받고 사시사철 태릉선수촌에 묶여있었다면 그쪽이 더 자격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병역혜택은 “많이” 봉사한 선수위주로 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청소년대표부터 시작하여 연령대별 대표팀에 빠짐없이 차출되었던 선수는 대회성적과는 무관하게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논리는 선수 개인의 희생뿐 아니라 그 선수를 국대로 내보내며 늘 희생을 감수해 온 소속팀에 대한 보상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2. 과연 병역혜택은 경기력(또는 성적)을 극대화하고 있는가?
전 아니라고 봅니다. 농담삼아 올림픽대표팀은 전원 미필자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ㄱ. 대표선수 선발과정 : 미필자를 배려해주게 되어 결국 베스트를 포기하는 결과가 됩니다. 저 자신도 올림픽대표, 특히 와일드카드선발시에 되도록 미필자를 올렸으면 했습니다만 생각해 보면 선수개인에 대한 애정이 팀성적에 우선한 면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못미치거나 부상이 있는 선수를 “정신력”으로 극복해 주길 바라며 선발한다면 그걸 베스트멤버라고 할 수 없겠죠.
ㄴ. 선수기용 : 기억하시죠? 부산아시안게임때 전원기용을 위해 박항서감독께서 얼마나 노심초사 무리한 교체쇼를 감행했는지.. 그걸 보는 축구팬들조차 어느선수 아직 못들어갔는데..하며 경기결과보다 교체선수이름에 더 신경썼던 일.. 결국 이란전에 패해 우승이고 병역이고 다 물건너갔던 결과와 이런 무리한 선수기용이 전혀전혀 무관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훈련단계에서부터 승리만을 위해 최선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몰디브와 비기고 베트남에 지는 것이 축구입니다. 아테네에서 만약 4강에 들었다면 눈앞의 메달을 두고 또 어떤 교체쇼를 벌이다 다된밥에 코빠뜨렸을 지..아니면 교체없이 메달을 따고나서 또 얼마나 인간적인 섭섭함을 감독께서 뒤집어써야만 했을지.. 이기기 위한 작전만을 생각하기에도 머리가 터져나갈 감독님이 말씀입니다.
ㄷ. 경기력 자체: 월드컵때의 그 놀라운 투혼이 병역면제를 위한 것 아니었죠? 16강진출하면 면제해 준다는 말이 사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16강진출이후는 대통령의 한마디로 이미 면제가 기정사실화된 후였죠. 전 이번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의 긴장도가 너무 높아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면이 있고 그 탓이 왠만큼은 병역카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토너먼트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잃을 것은 없는” 부담없는 경기가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라고 보면 병역카드는 최악은 피할 수 있으되 최선을 내기에는 오히려 부담감만 높이는 면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결국 제 말씀의 요지는 축구협회, 감독 그리고 팬들까지도 “최고의 성적”이라는 목표의식이 “너무 예쁜” 우리선수들의 병역문제에 의해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고, 병역혜택은 이미 나온 결과에 대한 사후적인 보상의 의미는 물론 있겠으나 바로 그 대회의 성적을 극대화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글쎄올씨다..입니다.
3. 그럼 어떻게..? : 국가대표=공익근무
“국가대표소집”과 “공익근무”를 연결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일단 (어느종목이든) 국가대표에 뽑혀 나라를 대표하는 경기에 몇차례 이상 출전한 선수들은 일단 공익요원근무를 명하고 대학원졸업에 해당하는 연령때까지는 입대를 미룰 수 있는 장치는 마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다음은요?
그 다음은, U-19 이상, 모든 연령별 국가대표에 소집되었던 기간(훈련기간+대회기간+이동시간)을 모두 근무기간으로 인정해주면 어떨까요? 월드컵이든, 친선경기든 모두..국가를 위해 국대유니폼을 입었던 기간을 공익근무기간으로 인정한다면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겠지요.
어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매번 연령별 대표팀에 차출되는 선수, 상대적으로 비중있는 대회에 차출되어 준비기간과 대회기간이 길었던 경우가 더 큰 혜택을 보게 되겠지요. 대표차출에 대한 소속팀의 거부감도 많이 줄어들 것이고 축협입장에서도 유럽투어나 초청대회참가 같은 일정에 부담을 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선수들이 좋아하니까..
그렇게 하면 왠만큼 기간을 다 채우는 선수도 있을 것이고, 정해진 시간까지 채우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을 텐데, 모자란 기간은 한시즌쯤 K-리거로 상무에서 뛴다한들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릴때부터 해외구단에서 뛸 정도의 실력이라면 금방 다 채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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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선수개인의 국가대표 차출빈도에 비례해서 혜택이 돌아가게 되고 한번의 성적에 운명을 올인하다 대회결과까지 망치는 우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4. 상무팀은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위와 같이 국대선수들을 공익근무차원에서 관리하다 보면 국대급 선수들의 상무복무기간이 대개 1시즌정도로 줄어들게 될텐데요..저는 상무의 경기력에 결코 마이너스가 되진 않으리라 낙관합니다. 곧 소속팀으로 돌아갈 선수들은 자기 몸값유지를 위해서 더 열심히 뛸 수 있구요(제대하려면 2년 남은 선수의 성취동기와 비교해 보시면..), 보다 많은 선수들에게 상무의 문호와 출전기회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상무는 장기복무하는 고참 프로선수들로만 구성되는 대신 매시즌 고졸이든 대학선수든 각자의 근무기간에 불구하고 그시즌의 베스트멤버를 구성하도록 해야죠. 국대급 선수들은 다음시즌의 연봉책정이 걸려있을테고, K-리거가 되기위한 지름길과 병역의 조기해결을 위해 상무를 선택한(물론 상무에 의해 선택받고) 어린 선수들, 그리고 국대급은 아니지만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K-리그급 선수들 모두 포함해서요..
그렇지 않겠지만 상무가 맡아놓고 꼴찌를 한다하더라도, 그것이 상하리그간 퇴출-진입 시스템에 약간의 장애가 되더라도, 국민개병제 국가인 현실상 기쁜 마음으로 상무경기를 보아야 하겠지요. 광주 같은 큰도시에 어정쩡한 연고를 갖는 것 보다는 협회주관하에 적절히 순회 홈경기를 하거나(연고구단이 없는 지역의 축구팬들을 위한 경기배정) 또는 상무경기는 모두 어웨이경기로 처리하거나(사실 연고구단을 갖고 있는 지역에서도 축구팬 입장에서는 경기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 두가지를 적절히 병행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국내 단기 컵대회에는 빠지고 킹스컵이나 메르데카컵(옛 추억이..) 또는 친선경기 등을 가지는 것도 타국과의 우호도 증진하고.. 좋은 절충안이겠네요..
첫댓글 내년에 전역한다던데요...복귀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2월달인가? 3월달인가?..
국가대표=공익근무라는 명제는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수 개인의 영광이나 이득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ㅎㅎ 제 설명이 좀 애매했나 봅니다. 제 말씀은 국대선수들을 군인신분으로 만들자는 뜻이 아니라..예를들어 최성국선수가 몇년에 걸쳐 청대로 100일, 올대로 100일, 국대로 100일을 차출된 후(물론 소속팀 변경없이, 머리도 기르고) 그후엔 국대에 선발되지 않았다 해도,
대충 공익기간이 600일쯤이라면 600-300=300일만 공익신분으로 상무에서 뛰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한시즌이면 되겠지요..다 채우면 물론 상무에 안가도 되구요..그러니까 민간인 신분으로 국대봉사한 기간을 사후에 소급적으로 근무기간 인정..
다 동의하는데요 마지막에 상무에서 1시즌만 뛰게 될 경우 감독님이 너무 힘들꺼 같애요 애들이 하도 바뀌어서...ㅋ 하지만 괜찮은 생각인거 같은데요...
국대 소집기간을 병역기간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선수들도 자기가 돈 벌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면서 소집에 응하는 게 되니까 말이죠.. 미필 선수들은 국대에 뽑히려고 더 열심히 뛸 것이고, 이와 더불어 경기력도 향상되고.. 너무 멀리 보는건가요 ^^
흠..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실현가능성이 문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