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고고학은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를 거부하려고 한다.
이것은 고고학계에서의 최근 추세이다. 그리고 세속적 세상은 이들 성경 속 인물들의 역사적 실제성을 거부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호주의 ‘화이낸셜 리뷰(The Financial Review)’ 지는[1] 강령과 다르게, ‘틀린 성경(False Testament)’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고고학이 어떻게 성경의 역사성을 해체시켰는지를 설명한 다니엘 라자르(Daniel Lazare)의 글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싣고 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통상적으로 확립된 고고학적 연대를 받아들인다면, 논쟁은 매우 강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비판은 두 개의 중요한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다윗(David)과 솔로몬(Solomon)의 이야기를 지지할만한 고고학적 기록이 없다는 것이며, 둘째 고고학적 지층들이 명백히 성서의 기록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첫번째 주장이 비록 정당하다 하더라도, 이것은 단순히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고고학에서 자주 말하는 것처럼, “증거의 결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성경적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꾸며낸 이야기로 폄하시켰는데, 증거들이 나중에 발견되고 나서 망신들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다윗 왕의 실존을 지지하는 비문의 증거가 있다. (아래 박스글을 보라).
그러나 두 번째 주장은 더 설득력이 있다. 고고학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설명해 보자.
성서적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구릉지(hills)에서 살기를 선호했다. 예수님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5:14). 주거지의 잔해들이 쌓여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이 구릉지의 높이는 올라만 갔다. 폭풍, 지진, 침략 등은 이들 도시들을 파괴했고, 뒤이은 점유자들은 단순히 그 지역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건축물들을 쌓았다.
고고학자들은 이제 30 m 아래로 또는 구릉지(hill, 소위 ‘tel’이라고 불려지는)의 원래 높이 보다 약간 위까지 주거지 잔해(debris)들을 파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이 잔해들을 잘라 들어가면서, 연속적인 주거층들에 포함되어 있는 도기(pottery)들의 형태를 확인함으로서 지층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이들 층들은 초기 청동기(Early Bronze),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후기 청동기(Late Bronze), 철기 시대(Iron Age)라고 불려져 내려왔다. 비록 어느 누구도 이 구분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지만, 이 연속된 지층들에 부여되어진 연대들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성서적 정보를 무시하면서, 이 유식한 고고학자들은 19페이지 표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대략적인 연대기를 결정해왔다. 이 연대기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은 제2기 철기시대(Iron Age II)의 초기에 생존했어야 한다. 그러나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것은 문제가 있다.
성경에 반대되는 사실들?
솔로몬의 건축사역에 관해서 열왕기상 9:17-19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있다.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또한 성경은 솔로몬의 재력을 다음과 같이 부러울만한 것으로 묘사한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 (역대하 1:15). 그러나 제1기 철기시대와 제2기 철기시대 초기에서 발견되는 건축물 잔해를 살펴보면, 이 시기는 극도의 가난, 적은 인구, 빈약한 건축 활동으로 점철된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비평가 라자르(Lazare)가 “그러한 왕국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가리키는 하나의 술잔(goblet), 하나의 벽돌(brick)도 남아있지 않다”라고 말하며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2].
그래서 만일 일반적인 고고학적 연대기가 정확하다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들에 대한 신뢰감을 버려야만 한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우연히도 이 모든 연대들은 대략 6천년 전의 이 세계의 창조와 노아 대홍수의 연대와 관련되어져 있다 [3]. 대홍수의 성경적 연대는 BC 2300년 경이지만, 초기 청동기(Early Bronze Period)는 대게 BC 3100년 경에서 시작한다.
또 다른 면을 보라.
약간의 근본적인 사고가 요구되지만, 다행히도 이 어둠을 통과할 수 있는 빛이 있다. 실제로 고고학적 연대기가 옳게 맞추어질 때, 성경이 증거하는 역사는 깜짝 놀랄만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적인 고고학적 연대기를 600년을 깎아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는 확고한 고고학적 증거가 제시되어야만 하는 4개의 뚜렷한 시대로 나눠진다.
첫번째로, 출애굽(Exodus)와 가나안(팔레스타인) 땅의 군사적 점령은 사사(Judges) 시대에 앞서서 일어났다. 따라서 반드시 (가나안 문명의) 파괴와 화재의 증거가 있어야만 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도기(pottery)형태, 상이한 장례의식과 제조기술을 가진 새로운 민족(이스라엘 사람들)의 등장이 있어야한다 (출애굽기 35:30-35).
이것은 바로 우리가 정확히 초기 청동기시대(Early Bronze Age) 말과 제1기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I Period) 시대 초기에서 발견한 것이다. 여리고를 발굴했던 캐서린 캐년(Kathleen Kenyon)은 그녀의 책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초기 청동기 문명의 마지막 끝은 완전한 격변적 사건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기 청동기시대 말에 건축된 여리고 성벽(walls of Jericho)의 마무리 공사는 낡고 부서진 벽돌로 서둘러서 급하게 진행되었으며, 화재로 파괴될 당시에도 아마도 완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 안쪽의 도시는 뒤이은 삭박(denudation)에 의해 거의 모두 사라졌는데, 이는 모든 출토물들이 연대기 상에서 완전히 소실되었고, 새로운 민족이 초기 거주민의 자리를 차지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팔레스타인의 도시들은 동일한 연대적 소실을 보여준다. 새로운 거주자들은 도시생활에 흥미가 없는 유목민들이었고, 이들은 이미 유약해지고 쇠퇴한 그전의 거주자들을 완전히 내쫓았거나 흡수해서, 초기 청동기 문명의 모든 흔적은 사라져 버렸다” [4].
“완전한 소실... 새로운 민족... 가나안의 모든 도시들... 새 사람들은 유목민이었다... 그 이전 사람들을 완전히 내쫓았거나 흡수했다...” [4]. 도시생활에 애당초 흥미가 없었던 사막의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침입을 보여주는 이러한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리고의 초기 청동기 시대(Early Bronze period) 말기 지층에서 나온 검은 재의 두꺼운 층.
텔 도단(Tel Dothan). 구약성경 도시들의 폐허들을 포함하고 있는 전형적인 구릉지.
아직도 더 많은 관련성
그 다음(두 번째)에는 이스라엘 왕들의 치하에 의한 풍요와 권력의 시대가 있었다. 제2-B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II B) 시기와 관련해서 저명한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인 마자르(Amihai Mazar)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중기 청동기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다. 이 시기의 대규모 요새화와 함께 이것은 바로 번영하는, 그리고 부유한 도시 문화를 입증하고 있다. 궁전과 사원의 규모는 이 시기의 전제정치(autocracy)와 신권정치(theocracy)에 의한 부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5]
뒤이어(세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앗시리아(Assyria)와 바벨론(Babylon)에 포로로 끌려갔던 국외추방이 있었다. 앗시리아의 이스라엘 정복이 있은 직후,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이사야 1:7). 따라서 우리는 그 다음 지층인 후기 청동기(Late Bronze Age) 지층에서 인구감소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고, 결국 찾게 된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인 핑클스타인(Finklestein)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제 2-B 중기 청동기 시기에 전 국가는 번창하였고... 요새화된 도시들, 마을들, 개인 농가들이 전 지역에 건설되었다... 제2 중기 청동기의 엄청난 번영과는 대조적으로, 후기 청동기 시대는 정착하는데 심한 위기가 있었음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거주가 지속되었던 장소들의 크기가 자주 줄어들었다.” [6]
네번째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추방지로부터 그들의 원 거주지로 이동하는 귀환의 시대가 있었다. “온 회중(돌아온 자)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에스라 2:64). 핑클스타인은 “제 1기 철기시대(Iron I period)는 다시 한번 구릉에 자리한 국가의 극적인 인구변화를 목격케 하는데, 이번에는 정반대 방향으로의 변화이다.” 라고 말한다 [7]. 그리고는 고고학자들의 틀린 연대기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딜레마를 강조하고 있다. “... 제2기 중기 청동기, 후기 청동기, 제1기 철기시대... 에는 만족할만한 답변을 요구하는 두 개의 심각한 질문이 제기되어진다. 왜, 그리고 어느 곳으로 제2기 중기 청동기 시대의 인구들, 즉 사실상 구릉 지대의 모든 주민들이 ‘사라졌는가’? 제1기 철기시대에는 수백 개의 장소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나타나게’ 된 것인가?”[7] 만일 핑클스타인이 그의 연대기를 바꾸었다면, 곧 그 답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위험과 고난의 시기였다. 건축 활동은 느렸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느헤미아 4:17). 그런데 이 시기는 라자르가 가난의 시기라고 주장하던, 그래서 솔로몬의 왕국과는 적합하지 않다고 그토록 크게 나팔을 불어대던 초기 철기시대였다. 라자르씨, 어떤 면에서 당신의 말은 맞는다. 그것은 솔로몬의 통치 시기와 일치하지 않지만, 만약 당신의 연대기를 정확히 조정한다면,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한 시기와 정확히 맞게 되는 것이다.
바르게 이해하기
물론 하나님의 절대 실수가 없으신 말씀에 맞추어 인간들의 부정확한 견해를 변경해야 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기의 개정(revision)은 이와는 독립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고, 어떤 임의적인 ‘속임수’ 같은 도전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다음의 세 가지 관점을 고려해 보라.
1. 개정된 연대기는 분산된 많은 지역들에서의 성경적 기록과 현저하게 일관성을 보여주는데, 이로써 개정의 타당성을 더 한층 확인해 준다. ‘해결하는 방법’이란 이름의 아래 박스 글을 보라.
2. 고고학적 지층들에 관한 ‘표준’ 연대기는 지층들 자체로부터의 정보가 아니라, 단순히 이집트 왕조(dynasties of Egypt)와의 대비를 통해 결정되어졌다.
3. 일부 학자들은 이제 이 연대기에 도전하고 있다.
피터 제임스(Peter James)가 쓴 책 ‘어둠의 세기(Centuries of Darkness)’라는 책의 서언에서, 저명한 케임브리지 교수인 콜린 렌푸르(Colin Renfrew)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인류 역사상 중요한 국면에 대한 기존의 연대기들은 수 세기동안 오류투성이 였다. 따라서 역사는 다시 재기술 되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혁명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나는 그것에 대한 결정적인 분석이 옳으며, 현재 연대기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중임을 느끼고 있다.”[8]
그렇다면 고고학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의 기록을 지지하는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은 실제 존재하였고, 팔레스타인과 주변 지역을 지배했던 한 위대한 국가의 성공한 건축자들이었다.
*데이비드 다운(David Down)은 이스라엘 고대유물 당국과 함께 이스라엘에서 정기적으로 발굴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고고학자이다. 그는 9개의 다른 지역을 발굴했고, 현재 ‘발굴(Diggings)’이란 학술지와 ‘고고학적 발굴(Archaeological Diggings)’이란 잡지의 편집인이자 발행인이다.
References
1. Lazare, D., The Financial Review, 28 March–1 April 2002, pp. 1–2, 8.
2. Ref. 1, p. 8.
3. Pierce, L., The forgotten Archbishop, Creation 20(2):42–43, 1998; In the days of Peleg, Creation 22(1):46–49, 1999.
4. Kenyon, K., Archaeology in the Holy Land, Ernest Benn Limited, London, p. 134, 1965.
5.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 Day, New York, p. 213, 1990.
6. Finklestein, I., The Archaeology of the Israelite Settlement, Israel Exploration Society, Jerusalem, pp. 339–341, 1988.
7. Ref. 6, p. 341.
8. James, P., Centuries of Darkness, Pimlico, London, pp. XIV, XVI,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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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왕에 대한 유물
아브라함 비란(Avraham Biran)은 27년 동안 북 이스라엘의 고대 댄(Dan) 지역에서 발굴을 했던, 경험이 풍부하고 인정된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이다. 그는 1994년에 쓴 그의 책 ‘성서의 댄(Biblical Dan)’에서, 아람어로 쓰여진 부서진 석비(stela, 비문 따위가 있는 돌기둥)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 석비의 연대는 BC 8세기의 3/4이 지난 시점으로 추정되며, 벽의 충전물로 단순히 사용되었는데, 필적 형태로 보아 원래 글씨는 BC 9세기에 새겨진 것으로 제안되었다.
이 비문에는 ‘다윗의 집(House of David)’으로 해석될 수 있는 ‘BTH DWD’ 란 표현이 있었다. [1] 이것은 다윗과 그의 집(가족)이 BC 9세기에 존재했다는 상세한 성서적 역사기록을 명백하게 확증하는 것이었다. 비평가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그것이 벧세메스(Bethshemesh, House of the Sun) 또는 베들레헴(Bethlehem, House of Bread)과 같은 단순히 장소의 명칭이라고 말했었다. 이 제안에서 유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벧세메스와 베들레헴은 알려진 장소이지만, 벧스데이비드(Bethdavid) 라고 불리는 도시는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사적으로 성경을 불신하기 위해서, 일부 비평가들은 비란이 석비를 위조했다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Reference
1. Biran, A., Biblical Dan, Israel Exploration Society, Jerusalem, pp. 275–278,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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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하는 방법
성경은 상세한 연대기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 문서(historical document)이다. 그러한 하나의 문서가 다른 출처의 (예를 들어 4개의 분리된 지역(사건)에서의) 연대기 정보와 ‘시기가 동일하지 않을(out of synch)’ 때, 한 부분(사건)의 연대를 다른 연대기에 맞추어 조정한다면 이들 네 부분이 모두 동시에 잘 조화되고 들어맞는다면, 이것은 조정의 타당성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건 1(Event 1)을 상황 1(Circumstance 1)에 맞추기 위해서는, 연대기 2(Chronology 2)를 ‘x’ 년 만큼 앞당길 필요가 있다 (아래 그림 참조).
3개의 추가적인 사건들의 맞추기가 이루어지고 더 이상의 불일치가 없으므로, 이것은 개정의 필요성을 확증하는 강력한 독립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참조 :
Did I Find King David’s Palace? (Mazar, Eilat. Biblical Archaeology Review, Jan/Feb 2006)
http://www.bib-arch.org/bswb_BAR/print.asp?PubID=BSBA&Volume=32&Issue=1&ArticleID=4&UserID=0&
Egyptian history and the biblical record: a perfect mat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857
The Queen of Sheba: was Solomon visited by an Egyptian pharao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927
첫댓글 성경은 늘 살아 있는 역사 라는 것을 믿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