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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가는 길 (2012.3. 18 요한복음 14:1-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지난 15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장녀 이민아 목사가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습니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쿨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주 LA 지역 검사를 지냈던 분입니다. 2009 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시작했는데 암투병 중 신앙 간증집 '땅끝의 아이들'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김한길과 결혼했지만 5년 만에 파경을 맞고 갑작스럽게 아들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내는 등의 역경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간증을 통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아버지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씨를 회심시켜 노년에 하나님 품에 돌아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어령씨 한국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무릎꿇고 하용조 목사님께 세례받는 장면이 뉴스가 되었고 ‘지성에서 영성이란’책을 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신문을 보면서 문상객을 맞는 이어령씨의 몇 마디가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 아인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아인 정말 땅에서 하늘처럼 살았습니다. 딸은 평소에 하늘 아버지를 만나야 된다고 말했어요. 하늘 아버지를 만나야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서요...” 학문적으로 물질적으로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죽음 앞에서 장관, 변호사, 돈, 재물 , 명예... 무슨 소용입니까? 세상에서의 삶이란 너무 짧습니다. 향년 53세입니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이형태 기자에게 삶과 죽음이 이렇게도 가까이 있는가 생각해보았다고 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시편 90:10절에서 저자는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똑같습니다. 죽음을 넘어서지 못하면 다 허무한 것입니다. 인생이란 길고 짧은 것을 떠나 행복해야 되고, 가치 있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이고 잘 살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아 목사님은 땅에서 하늘을 소망하며 살다가 한국 최고의 지성인 아버지까지 구원시키고 천국 갔으니 잘 살은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길이가 아닙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살 산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짧은 인생을 어떻게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는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존재하는 짐승들은 삶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는가?’ 이는 사람들의 끝없는 의문이며 삶의 화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 별 것 있습니까? 되는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다...” 여러분 그런가요? 되는대로 살다가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인생은 그렇게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으면 다 끝이야” 여러분, 그럴까요? 어디에 죽으면 끝이라고 기록되어 있나요? 오히려 성경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죄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합니다(마 25:46) 우리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근거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길을 잘 들어서야 합니다. 물론 세상에도 나름대로 삶의 도(길)을 가르쳐준 아주 훌륭한 성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석가가 있습니다. 왕궁에서 태어났지만 길을 찾기 위해 가출하여 10년간을 방황하다 보리수 아래서 해탈의 길을 깨달았습니다. 희랍의 유명한 철학가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모르는 것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인(인)을 가르친 중국의 성자 공자도 있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분들의 가르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 역시 모두가 태어나서 죽고 생각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세상 삶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이야기 하였지만 죽음 후의 일은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나를 믿어 구원에 이르라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공자 소크라테스 사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였습니다.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는 곳에 대해서 말할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4: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라고 하십니까? 어떻게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예수님은 근본이 다릅니다. 예수는 사람모양을 하셨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은 이 예수님에 대해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역시 빌립보에서 그 본체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고 잠언 8장 22 절부터 보면 예수님의 근본에 대해서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예수님의 근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일하하시기 전 나를 가지셨다.’ 나는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님을 말합니다. 땅이 생기기 전 바다가 생기기 전이 나신 분이 누구입니까?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 누가 거기 있었다고 합니까? 예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바로 그 곁에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기쁨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복음에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본래 하나님과 동등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계셔서 하나님 곁에서 창조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만이 땅에서 유일하게 하늘가는 길을 말씀하시시고 그 길을 가르쳐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아멘! 그러므로 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잠언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가끔을 길을 가다가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체험을 하셨습니까? 잘 가르쳐줘서 길을 바로 찾을 때도 있지만 반대로 가르쳐줘서 고생한 경험이 한 두번은 있을 것입니다. 길을 누가 정확하게 가르쳐줄 수 있습니까?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먼저 거기서 산 사람입니다. 먼저 그 길을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정확합니다. 그렇지 않고 긴가민가 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번은 전쟁 중에 헌병이 길을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는 차는 있는데 오는 차가 한 대도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길이 끊겨 있었습니다. 차들은 계속 추락하고 하였습니다. 헌병에게 가서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반대차선에 차가 오지 않길래 이상하였다는 것입니다. 길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바르게 가르쳐주면 살기도 하지만 잘 못 가르쳐주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는 길도 물어가고 돌다리도 두둘겨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일하던 스티븐슨 선교사의 수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티븐스는 콩고의 정글 한복판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날 뜻밖에도 백인 청년 두 사람이 이 선교사의 오두막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들이 선교사의 오두막집 문을 두드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진스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강으로 가는 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유감스럽게도,이 정글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이때 스티븐슨 선교사는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했습니다."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당신들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교사는 청년 두 사람을 데리고 가면서 나무와 각종 식물로 뒤엉킨 정글에서 인생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의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합니다. 공포와 불안이 우리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길이 없는 정글에서 그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안내자를 만나면 살게 됩니다. 그 안내자가 생명의 길입니다.
하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하늘 가는 길을 누구에게 물어야겠습니까? 하늘에서 오신 분 외에 이야기 해줄 사람이 또 있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 3:12-13). 예수님은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 말씀 듣고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바로 아버지께로 가는 길, 하늘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방황을 그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행해서 나아가는 아름다운 순례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죄가 없는 나라입니다. 사망이 없는 나라입니다. 의인들만이 들어가는 곳인데 이 나라에게 들어가기를 바라시나요? 어떻게 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사도 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옥중에서 간수들에게 복음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 때 바울이 말했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하늘 가는 길은 믿음으로 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역사를 믿고 예수님이 죽음을 통해서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십자가의 길을 마음에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이 길을 여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시고 죄값을 치루시고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돈 없어도 됩니다. 힘 없어도 됩니다.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러분, 믿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며 길이시며 구원이심을 믿습니까? 사실은 쉬운 것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믿음도 우리 생각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한테 물어보세요. 믿음이 쉬운 것인가!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주님 앞에 나와 있고 마음에 믿음을 갖고 있다면 이미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 넘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며 행복한 삶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그 여행을 끝마치는 것입니다. 조정민 목사는 말하기를 여행은 목적이 있는 길이고, 방랑은 목적이 없는 길이라고 합니다. 여행자는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고 방랑자는 갈 곳이 없어서 떠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돌아갈 곳이 있는 인생은 여행이고, 돌아갈 곳이 없는 인생은 방황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짧은 인생 의미와 목적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늘로 돌가갈 곳이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는 날이 아름다운 여행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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