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3:19-33 고난에도 뜻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해 갈 때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말씀을 전하다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고 그 처참함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가 겪은 엄청난 민족적 고난 앞에 통곡하며 기록한 말씀이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 애가 바로 슬픔의 노래입니다. 통곡의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길가에 버려져 굶어 죽어가고 시체를 묻어줄 사람이 없어 썩어갑니다. 성벽은 무너지고 집들은 불타고 청년들이 칼에 엎드러집니다.
예레미야도 예외는 아닙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뼈를 꺾으셨고 어둠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와 같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돌돌이 길을 막아 길을 굽어지게 하고 화살이 온몸이 박혔고 조약돌로 이를 꺾으시고 재로 자신을 덮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남 왕국 유다의 피눈물 나는 고난 속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의 고난을 두고 보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평안하고 문제없이 완전한 삶을 꿈꾸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눈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 많은 시련을 만납니다.
그것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가정적이기도 하고 국가적이기도 하고 시대적이기도 합니다.
우리 중의 누군가는 오늘 고난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함께 겪는 것이 아닐 때 나만 겪는 것이 거나 내 가정만 겪는 것일 때 그 고통은 배가 되어 나를 삼키려할 것입니다.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삶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고난의 원인을 바로 알고 고난 중에 소망이 무엇이며 고난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 과정을 넘어 갈 수 있습니다.
인생이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쌀보다 빵보다 고난의 원인과 고난 중의 소망과 고난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먼저 고난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첫째는, 고난은 죄로부터,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무너뜨리는 마귀,악한 영으로부터 옵니다.
그것은 죄를 회개함으로 육신을 분별함으로 마귀를 대적함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병들고 실패하고 사고를 겪고 이런 배후에 욥의 이야기처럼 영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 왕국의 고난의 역사는 완전히 죄의 역사요 욕망의 역사요 악령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지 말라는 눈물의 호소에도 결국은 멸망으로 끝이 난 민족의 운명 앞에서 예레미야에게 다가온 충격은 너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라고 목이 쉬어라 외쳤지만 거절당했고 그것이 몰고 온 엄청난 재앙을 보는 예레미야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죄와 욕망과 악한영의 역사를 따라 엄청난 재앙들이 들이닥칩니다.
그럴 때 죄를 처절하게 회개하고 욕망을 완전히 내려놓고 악한 영을 대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이 다가오면 부르짖고 금식하고 작정하여 기도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풀리지 않는 고난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고난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고난이 온다?? 선 뜻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고난은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라 그렇다고요? 나는 사정이 다르다고요? 아닙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벧전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벧전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이 세상이 우리를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딤후3:12절]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에게 경건하게 살기 위한 순종 속에 고난이 없다면 그것은 세상에 항복한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이 없이는 영광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기름은 짓이겨져야 흐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피 흘리면 기도하셨던 겟세마네 동산의 겟세마네의 뜻도 기름을 짜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이 신앙의 협박으로 경제적인 것으로 질병으로 환경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고난은 회개해도 소원해도 헌신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감당해야 합니다. 십자가와 같은 것입니다.
[행4:29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협박받고 돌아왔을 때 “위협함을 하감하시고 라고 기도합니다.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와 욕망과 악령의 역사로 또는 하나님의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역사로 어떤 이유로든 고난당할 때 우리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가 무궁하십니다. 용서하십니다. 함께 하십니다. 결국 열매 맺게 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이유로든 겪고 있는 고난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기 까지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고난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로 겸손케 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난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고난에 들어 있는 뜻은 주님의 마음에 공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폭넓게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람들의 짐을 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의 우리에게 유익함을 말해줍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긍휼은 무궁하십니다. 여러분의 참혹함을 은혜의 간증으로 바꾸실 것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