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서부지방 중에서도 뻬리고(Perigord)와 제흐스(Gers)가
푸아그라 산지로 유명하다.
흔히들 프랑스의 3대 요리로 푸아그라, 트뤼프(송로버섯), 그리고 캐비어를 꼽는데
희귀성과 난이성 때문에 프랑스인이라고 자주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결코 아니다.
금싸라기값을 호가하는지라 나 자신도 프랑스 체류 4년간
초대되어 얼떨결에 맛을 봤는지는 몰라도 단 한번 트뤼프나 캐비어를 사본 적이 없고
그나마 푸아그라는 나도 선물용으로 두어번 사봤는데
제대로 된 제품(foie gras de canard, entier)은
100g짜리 깡통 하나가 15-20유로(2-3만원)를 호가한다.
참고로 푸아그라는 깡통에 든 것만 외국반출이 허용되고
유리병에 들어있는 제품은 프랑스 내에서만 소비가 가능하다.
상당히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남부프랑스에서 최대명절에 해당하는 성탄전야나
12월 31일 Reveillon 만찬 상차림에 푸아그라가 결코 빠질 수 없다.
남부지방에서는 상당수 가정이 친척집에서 성탄절을 위해 미리 재래식으로
직접 요리한 푸아그라를 감사히 얻어다가 한 조각씩 앙트레로 백포도주를 곁들여 즐긴다.
예를 들어 소반교수는 제자의 부모로부터, 까뜨린은 어머니로부터, 미셸은 이모로부터..
푸아그라가 오리나 거위에게 억지로 사료 먹여 간을 붓게 만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식탁에 오르기 직전까지 어떻게 조리하는건지 항상 궁금했다.
나의 꾸준한 호기심에 하늘이 응하셨는지 얼마전 친구의 부모님댁에 초대받아
하루 머무르면서 그 댁에서 매년 한번씩 거행된다는 푸아그라 만드는
희귀한 과정을 우연히 목격했다.
온 가족이 총 동원된 그 집안의 연례행사였다.
EU에서조차 동물학대라고 질타받는 푸아그라 만드는 과정.
그러나 수세기에 걸쳐 프랑스인들의 삶과 문화로서 깊숙이 자리매김한 전통음식이기에
호락호락하게 사라질 가능성은 희박한 듯 하다.
나 또한 일년에 한두번 초대받아 몇조각 맛보게 되는 푸아그라를
손사래 쳐가며 사양할 만큼 무례한 강심장이 아니다.
내가 보고 들은 푸아그라 만드는 과정을 여기에 소개하고자한다.
혹시 푸아그라를 덮어놓고 혐오하는 분이 계실까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최대한의 달걀과 고기를 얻기 위해 평생 뜀박질 한번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지구상의 수천억마리 닭공장 닭들보다 제작과정이 더 잔인하지 않다.
최소한 프랑스 남부지방의 푸아그라는 대부분 공장에서가 아닌
영세농가 또는 각 가정에서 자기 자신과 이웃의 소비를 위해 제작된다.
하여간에 좀더 맛있는 것과 좀더 많이 먹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혓바닥이 문제다.
아시다시피 우월한 문화는 없다. 서로가 존중하고 인정해야 할 차이점일 뿐이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오리간 외에도 송아지간, 양의 간 등이 건강에도 좋다고 소비된다.
다 자란 오리나 거위(기호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다)에게
일정 기간동안 적당량의 옥수수 사료를 억지로 먹이는 gavage(가바지) 과정 후 도살한다.
아무 오리나 쓰는게 아니고 canard mulard와 canard barbarie 두 종을 쓴다고 한다.
가금류에 대한 강제 사료 투입(gavage) 행위는
이집트와 중국을 기원으로 하여 역사가 깊은 편이다.
푸아그라 만드는 과정을 내게 친절하게 보여주고
가르쳐주신 트리스트랑씨 부부의 50년 전 사진.
물론 지금은 많이 연로하셔서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들딸들과 나눠먹을 푸아그라를 해마다 직접 만든다.
이 집의 큰아들 에르브이 단골 오리농가에 미리 주문해서
받아온 오늘의 주인공 오리 열두마리.
마리당 28유로를 줬다고 하니 시장이나 전문점에서 파는
푸아그라가 얼마나 비싸게 치는지 알 수 있다.
각 오리들의 아랫배가 불룩하고 발목에는 주문자의 이름인 에르브의 꼬리표가 붙어있다.
본격적으로 무슈 트리스트랑이 오리간이 손상되지 않도록
아랫배를 아주 조심스럽게 가르면 무지막지한 간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간이 쉽게 빠지지 않아서 두 연로하신 노인네가 양쪽에서 잡고 용을 쓴다.
간을 부서지지 않게 온전히 빼내는 이 과정이 가장 힘든 부분인듯.
그렇게 분리한 간은 차가운 물양동이에 담그기 전에
올해 주문한 오리간이 얼마나 실한지 궁금한 무슈 트리스트랑이
철두철미하게 저울로 무게를 잰다. 평균 700g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양동이에 오리간을 넣고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한 후
사진에 진열된 '보코'라고 불리는 밀봉유리병에 나눠 담고 꽉 잠근다.
그대로 놔두면 유리병내 공기때문에 산화, 부폐하기 때문에
반드시 살균과정을 거쳐야한다.
구식 우유 운반통처럼 생긴 쇠로 된 살균기 속에
오리간 보코를 넣고 20분 쯤 끊인 후
이튿날까지 천천히 식게 놔두면 푸아그라 만드는 과정이 모두 끝난다.
보코의 종류에 따라 밀봉상태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잘 밀봉 살균된 푸아그라를 2-3년 쯤 저장했다가 먹으면 이상적이라는군.
간을 빼고 남은 오리고기를 그냥 버릴리 만무하다.
아들, 딸, 며느리가 부위별로 손질하여 저장할 수 있는 것은 저장하고
그날의 만찬거리를 준비한다.
특히 오리의 기름은 몸에 좋다고 해서 식용유 대신 즐겨쓴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남부프랑스인들이 북부프랑스인보다 심장병이 적다고 한다.
Bon Appétit!
뚤루즈에서
박혜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