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싼 놈이 뿔낸다 -한기정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내려오며 오른 쪽에 위치한 낙성대동은 주택가라서 골목이 좁아 일방통행로가 대부분이다. 한 번 길을 지나치면 뱅글뱅글 돌아야한다. 빤히 보이는데도 ㅁ자로 돌아가야 한다.
출근시간 대에 신림동에서 서울대학교 정문을 거쳐 큰 길을 따라 강남으로 가려면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 차가 ‘공회전 마냥, 운행 찔끔’을 반복한다. 관악구청 맞은 편 골목길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일방통행을 거슬러 주택가로 스며든다. 지름길이 있다.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우리 집은 내리막길만 허용되어있다. 집이 워낙 산에 딱 붙어있어 차량 두 대가 스쳐지날 수 없다.
마음 급한 출근자들이 이 길을 거슬러 가곤 하는데, 스스로도 위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 켕겨하면서 서둘러 지나친다. 게다가 길이 언덕지고 굽어있어 상대가 바짝 다가서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맞은 편에서 차라도 오면 꼼짝할 수 없고, 오르던 위법차량들이 질금질금 뒤로 물러나 길을 터주어야 한다. 더디다. 줄줄이 서있을 때는 더욱 난감하다. 순방향 진행차량은 의기양양하게, 조금은 거들먹거리면서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눈까지 부라린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출근시간 단축전략에 차질이 생긴다. 역주행 운전자들은 돌발상황이 벌어질 절대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두른다.
여러 이유로 그들은 그 길을 갈 때 마음이 편치 않다.
아침, 재활용품들을 내다놓기 위해 아파트를 나섰다. 마침 출근시간이라 예의 거꾸로 운전자들의 차량이 줄을 이었다.
언짢은 표정으로 올라오는 차들을 보자 지나던 젊은이가 차창을 내리며 ‘아줌마가 뭔데 꼬나봐요?’하고 시비를 건다.
‘여기 일방통행로에요.’
‘그래서요? 아줌마가 뭐냐구요?’
‘나, 주민이요.’
켕기고 있던 중 웬 몸뻬바지 입은 아줌마가 떫은 눈빛을 하니 기선을 잡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애꿎은 분풀이다.
내가 만만해 보이지 않았는지, 출근시간을 더 잡아먹을 수는 없었는지, 뒷차에 피해를 준다고 여겼는지 째려보며 슬그머니 차를 움직인다. 움직이며 구시렁댄다.
내가 꿀릴 것이 없으니 붙잡아 아줌마의 심통을 보여주고 약을 올릴까, 출근길 기분을 싹! 잡쳐줄까도 잠시 생각했다.
내 행색도 그렇고, 시시비비하다가 출근하는 앞 집 아저씨와 마주칠까봐 두려워 돌아섰다.
일방통행로를 거꾸로 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뭔가 구리기 때문에 차를 급하게 몬다. 빨리 그 길을 벗어나 ‘없던 일’인 듯 입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불편하기에 물리적으로도 위험하다.
아침의 청년처럼 불편한 마음을 공격으로 정당화하려 하기도 한다. 공격이 최대의 방어라는 생각에 그런다. 겸연쩍으니 궁지를 벗어나고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되레 날뛴다. ‘무죄’를 강변하기 위한 행위로서.
‘똥 싼 놈이 뿔낸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똥 싸지 않은 놈이 뿔 낼 이유가 어디 있나.
의연하게 하던 일 계속하면 되는데.
林谷 한기정
thoth52@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과 졸업
교육학박사
이화여자대학교 연구원
미국 워싱턴주 한인생활상담소 상담원
중앙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 겸임교수
강북장애인복지관 자문위원
서울미술제 초대작가, 심사위원
이화여자대학교 이화문학회 수필부장
송파문인협회 한성백제 백일장 금상 수상
현대수필 등단
서초수필문학회 회원
현대수필문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펜클럽 회원
전공서적 특수유아교육, 아동미술과 특수아동미술 외 다수
논문 유아의 창의성 교육을 위한 철학적 심리학적 기초 외 다수
수필집 「어찌 지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