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란, 희망을 품은 슬픔. 기형도를 만나다. <기형도문학관>
[ⓒ김묘정]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기적적이었다/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중략)
나를/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중략)
-기형도 ‘오래된 서적’ 중에서-
기형도의 시는 우울하다. 그의 시어에는 우울, 어둠, 죽음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적추적 내린 비 같은 기형도의 시는 청춘을 쓴다. 그의 시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은 나약하다. 그러나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나약한 인간은 희망을 노래하며 어둠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기형도를 ‘영원한 청춘’이라 칭한다.
1960년 3월 13일 경기도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에서 태어난 기형도 시인은 196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지금의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해 1989년 타계할 때까지 살았다. 기형도기념사업회에서는 광명문화원의 추모시낭송회, 하얀문화의집의 콘서트와 시극공연, 운산고등학교의 ‘기형도 시인 연구프로젝트’, 광명시의 기형도시비 건립과 기형도 문화공원 조성 등 기형도 시인을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과 행사를 펼쳤다. 그리고 지난 11월 10일 기형도문학관이 개관했다.
[▲ 기형도문학관 전경 ⓒ김묘정]
기형도문학관은 총 3층으로 구성돼있으며 문학관 뒷길을 따라가면 기형도문화공원으로 이어진다.
[▲ 상설전시실 입구 ⓒ김묘정]
1층의 상설전시실에서는 시인이 살아생전 사용하던 물품, 육필원고, 상패 등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 기형도 소개 ⓒ김묘정]
정갈한 그의 글씨체로 쓰인 필기나 원고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상실감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 그가 쓰던 휴대용 라디오 ⓒ김묘정]
[▲ 그가 쓰던 만년필 ⓒ김묘정]
문학관은 단순히 글과 물품을 전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기형도를 느낄 수 있도록 전시관을 조성했다. 차분한 색깔로 꾸며진 전시장의 중간에 다다르면, 시의 내용을 이미지화 한 스크린 화면이 눈앞에 펼쳐지며 바닥에서는 시어가 올라온다.
[▲ 전시실 모습 ⓒ김묘정]
[▲ 스크린과 바닥의 시어 ⓒ김묘정]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학생 시절의 기형도다. 수업 필기 노트, 도서대출증 속 대학생 기형도의 모습, 군대에서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청춘 기형도의 생각과 느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 기형도의 연세대학교 도서대출증 ⓒ김묘정]
[▲ 대학노트 ⓒ김묘정]
[▲ 기형도가 입던 양복 ⓒ김묘정]
전시실의 끝에 다다르면 기형도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영상과 그들의 말을 감상할 수 있다. 그와 함께 학교생활을 했던 친구들, 어울렸던 동료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라보며 시인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
[▲ 그의 글이 실린 잡지들 ⓒ김묘정]
[▲ 지인들의 영상 ⓒ김묘정]
[▲ 기형도를 표현하는 말 ⓒ김묘정]
그 옆엔 기형도의 시를 읽고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있다. 그의 시를 직접 써보며 천천히 시어를 음미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다른 시인들이 기형도의 시를 낭송하는 영상을 헤드셋으로 직접 들어보며 또 다른 느낌으로 기형도를 만나볼 수 있다.
[▲ 필사공간 ⓒ김묘정]
[▲ 낭송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공간 ⓒ김묘정]
상설전시실 옆 기획전시실에서는 다양한 기형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전시가 진행 중이다. 그의 어렸을 적 모습부터 기자 시절 해외여행 갔던 모습까지 색다른 사진들이 준비돼 있다.
[▲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김묘정]
2층에는 기형도를 추억할 수 있는 북카페와 기형도 관련 책을 포함해 다양한 문학책들이 비치된 도서공간이 마련돼있다. 1층에서 기형도를 만나고 2층으로 올라와 잠시 쉬어가도 좋다.
[▲ 북카페 ⓒ김묘정]
[▲ 도서공간 ⓒ김묘정]
[▲ 관람객의 흔적 ⓒ김묘정]
문학관 뒷문으로 나오면 기형도 시비들이 늘어선 기형도문화공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문학관에서 기형도를 만나본 뒤 조용한 공원을 거닐며 시를 다시 되새길 수 있다.
[▲ 기형도문화공원으로 가는 길 ⓒ김묘정]
결국 기형도는 어둠 속에서 싹트는 희망을 노래했다. 기형도문학관의 외벽에는 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정거장에서의 충고’의 한 구절이 붙어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중략)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중략)
-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문학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268
전화번호 : 02-2621-8860
홈페이지 : kihyungdo.co.kr
관람료 : 무료
관람시간 : 9:00-18:00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