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디어】 김현준 기자 = 롤스로이스 고스트는 가장 작은 롤스로이스다. ‘베이비 롤스’, ’베이비 팬텀’이라는 ‘귀여운’ 애칭도 갖고 있다. 롤스로이스 측에서도 “장중한 팬텀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고스트를 만들었다”며, 고스트의 합리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고스트의 가격은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수준이다. 가장 저렴한 것이 4억에서 딱 백만 원 빠지는 3억9천9백만원이다. 또한 ‘베이비 롤스’라는 애칭도 약간 민망하다. 가장 짧은 게 무려 5.4미터로, 에쿠스 리무진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진에 있는 익스텐디드 휠베이스(뒷좌석 공간을 늘린) 모델은 17cm를 늘려서, 전장 5,569mm에 가격은 4억7천만원이다.
겉모습 롤스로이스는 롤스로이스다. 비슷하게 생긴 차가 없다. 독보적인 생김새는 뭉클한 존재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롤스로이스는 요즈음 나온 차들과 전혀 다른 비례를 갖고 있다. 보통 차들은 (공기역학과 효율을 위해) 앞이 낮고 뒤가 높지만, 롤스로이스는 앞이 두툼하고 뒤는 날렵하게 빠진다. 엔진이 거대했던 예전 디자인을 여전히 존중하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 고스트 역시 앞이 높고 길며, 뒤가 낮다. 파르테논 신전을 형상화한 라디에이터 그릴을 전면에 내세웠고, 그 위에 ‘환희의 여신’을 올렸다. 이 여신은 시동을 끄면 보닛 안으로 숨는다. 또한, 사고가 났을 때도 보닛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이래저래 수줍음 많은 여인이지만, 설정에 따라 항상 세워둘 수도 있다. 롤스로이스의 상징 중 하나인 '고정된 휠캡'도 여전하다. 정중히 달리는 고스트의 옆모습을 보면, 휠캡만 두둥실 떠다니는 듯하다. 달리는 중에도 바퀴 중앙 휠캡에 있는 롤스로이스의 'RR' 엠블럼을 명확히 볼 있다. 가속하거나 감속할 땐 좌우로 조금씩 흔들거리는 '인간적인' 모습도 엿보인다.
속모습
실내는 보이는 그대로다. 가죽처럼 보이면 가죽이고, 나무처럼 보이면 나무다. 가죽 느낌을 살린 우레탄이나 우드그레인 같은 건 없다. 실내에 사용된 가죽은 아주 보들보들하다. 특수한 염색 과정을 통해 부드러운 촉감을 잘 살렸는데, 너무 부드러워서 팔걸이에 팔꿈치를 잠시만 대고 있어도 자국이 남는다. 덕분에 시트에 앉기도 부담스럽고 기댈 때도 주눅이 든다. 나무장식도 아주 고풍스럽다. 켜켜이 가른 진짜 나무 11장을 붙여 가공한 것으로, 광택도 훌륭하지만 무늬가 끝내준다. 나무가 해충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무늬다. 고스트에 들어가는 나무장식이 모두 같은 건 아니며 주문할 때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바닥엔 양털로 만든 고급 매트가 깔려 있다. 털이 풍부하게 오른 카펫엔 ‘신발을 벗고 들어오시오’라고 쓰여 있는 것 같다.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공도기 온도 조절장치는 앞뒤 좌석 모두 상하독립 기능이 들어 있다. 위 송풍구와 발 옆 송풍구로 나오는 바람의 온도를 다르게 조절할 수 있다. 팬텀에 들어가는 고급 기능을 고스트에 넣었다. 반응이 아주 빨라서 온도를 조절하면 바람 온도도 바로 바뀐다. 실내엔 악기도 몇 개 숨어있다. 윈도우 버튼엔 플루트 같은 금관악기의 키를, 송풍구 개폐 노브에는 트럼펫의 밸브를 옮겨놨다. 금속 특유의 차가움이 느껴지며, 진짜 악기를 다루는 듯한 조작감이 일품이다. 특히 송풍구 개폐 노브를 조작할 땐, 약병에 든 페니실린을 주사기로 뽑는 느낌이다. 부드럽게 무거워서 조작하는 사람의 동작을 저절로 우아하게 만든다.
달리는 느낌
고스트에는 급격한 게 하나도 없다. 점잖게 달릴 때나 힘차게 달릴 때나 한결같이 진중하다. 속도를 높여가면 차창 밖 풍경이 지나가는 속도만 점차 빨라질 뿐, 안에서는 속도변화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뭉근한 힘이 솟아나와 등을 지그시 밀어준다. 출력에 걸맞는 강력한 힘이지만, 속이 울렁거리거나 무서움 같은 게 느껴지진 않는다. 적수를 꼽기 어려운 안정감이 안락함과 잘 버무려졌다. 마치 대형 크루즈 선박에 비행기용 제트엔진을 4개쯤 달고 파도를 헤쳐 나가는 느낌이다. 묵직하면서 힘차고 여유롭게 아스팔트를 가른다.
롤스로이스 시승에는 담당자가 동행한다. 운전도 담당자가 해준다. 직접 운전해 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전세계 롤스로이스에 적용되는 시승 원칙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뒷자리를 즐기는 게 더 중요한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싼 가격도 한몫 한다. 뒷자리에서 느껴본 고스트는 '궁극의 승차감'을 지녔다. 몸으로 전달되는 충격이 하나도 없다. 도로 위의 요철이나 굴곡, 구덩이등을 1/10수준으로 압축시켜 버린다. 깊은 포트홀을 밟고 지나가도 1cm짜리 턱을 슬쩍 오르내리는 것 같고, 웬만한 턱은 그냥 알려주고만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바퀴가 도로에 맞닿아 있는 느낌이 확실해서, 도로 위를 표류하는 듯한 이질감 같은 건 느낄 수 없다. 정숙성도 최고다. 마치 수족관 안에서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이 정도로 바깥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느낌을 주는 차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놓치면 안 되는 특징
고스트는 '코치 도어(Coach Door)' 방식을 사용한다. 차를 옆에서 바라봤을 때, 귀족집 대문처럼 문이 양쪽으로 열린다. 뒷문 앞쪽이 벌어지며 열리는 코치도어는 뒷좌석에서 내리기가 아주 편하다. 그저 앞을 보며 계단 한 칸 내려가듯 살포시 내리면 된다. 대신 손잡이가 멀어 실내에서 뒷문 닫기가 조금 힘든데, 이땐 버튼만 꾹 눌러주면 된다. C필러 안쪽에 문닫는 버튼이 있다. 만약 기사가 바빠 문을 못 닫아줘도 버튼을 눌러 품위 있게 문을 닫을 수 있다.
고스트의 핸들은 두께가 아주 얇다. 뒷좌석 승차감을 위해 얇게 만든 거다. 지름이 큰 핸들일수록 미세 조작이 가능해 정교하게 운전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엔 무턱대고 큰 핸들을 사용할 수 없다. 실내공간도 고려해야 하고, 너무 커지면 조작성도 오히려 떨어진다. 때문에 두께를 줄여 직경을 키우는 효과를 내는 거다. 오디오도 아주 정교하다. 가늘고 굵은 소리 한 올 한 올이 살아있다. '렉시콘'의 최상급 오디오가 들려주는 소리다. 현대 에쿠스에도 렉시콘이 사용되긴 하는데 '급'이 조금 다르다. 다른 회사들은 이름표를 붙여 자랑하는 오디오인데, 고스트에선 '렉시콘'이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렉시콘도 롤스로이스에게는 ‘평범한 오디오 납품업체’인가 보다.
기억해야 할 숫자
고스트에는 12기통 6.6리터 엔진이 들어있다. 최고출력 563마력, 최대토크는 79.6kg.m를 내며, 2.4톤짜리 차를 정시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시키는데 5초면 충분하다. 강력한 힘을 품고 있지만 가속페달을 꾹꾹 밟을 때마다 팍팍 튀어나가는 모습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언제나 묵직하고 일정하게 속도를 올린다. 고스트에는 RPM게이지가 없다. 파워리저브라고 적힌 게이지가 RPM을 대신한다. 엔진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게이지로, 정차시에는 100%를 가르키고 힘을 다 사용할 땐 0%를 가리키게 된다. 엔진 힘이 어찌나 넉넉한지 시승 내내 바늘이 0%를 가리키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고 올라도 늘 20% 정도는 남아있다. 일반 도로에서는 80% 이하로 떨어지는 것 조차 보기 어렵다.
이번에 시승한 롤스로이스 고스트 익스텐디드 휠베이스(Extended WheelBase)의 길이는 5,569mm이다. 일반 모델(스탠다드 휠베이스)에서 휠베이스만 17cm 길어진 건데, 이게 모두 뒷공간에 쓰였다. 뒷좌석 레그룸과 문짝이 17cm씩 늘어난 거다. 공간이 아주 넉넉해서 키 큰 남성도 수월하게 다리를 꼬을 수 있다. 덩치 큰 팬텀이 부담스러운 회장님은 고스트 익스텐디드 휠베이스로도 충분하다. 실제로 작년 한 해동안 팔린 롤스로이스는 29대인데, 이 중 17대는 고스트 익스텐디드 휠베이스 모델이다. 팬텀은 단 2대였다. 이쯤되면 고스트 뒷문짝에도 우산 하나쯤은 들어있어야 할 것 같다. 롤스로이스 고스트 스탠다드 휠베이스 모델은 3억 9천 9백만원, 익스텐디드 휠베이스 모델은 4억 7천만원이며, 주문하면 4개월 정도 뒤에 받을 수 있다.
>>>롤스로이스 고스트의 주요 기능 영상 URL: http://youtu.be/OqrwkE_AF54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상세하게 볼 수 있는 65장의 세부 사진과 설명 URL: http://www.carmedia.co.kr/photo/autophoto.php?id=89
글ㅣ김현준 기자 hj@carmedia.co.kr 사진·영상ㅣ정홍교 기자 hg@carmedia.co.kr Copyrightⓒ 자동차전문언론 《카미디어》 www.car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