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이맘때가 되면, 그러니까 12월 중순경이 되면, 시베리아동장군이 북풍에 한파를 잔뜩 싣고서 겨우살이 준비가 채 끝나지도 않은 우리 동네를 기습 공격하곤 했다.
그렇게 시작한 엄동설한은 2월이 다 갈 때까지 마치 냉동고와 같은 동토의 땅으로 뒤바뀌었다. 얇은 옷 속으로 뼛속 깊숙이 어름이 파고들어 동상이 다반사로 걸려도 생활이 변변치 못했던 그때는 병원은 엄두도 못 냈었고, 그런 겨울은 사계절 중에 가장 지루하고 길었다. 며칠을 두고 영하 15도 안팎의 꺾이지 않은 동장군의 위세에 눌려 자라목을 속으로 쏘옥 넣고 밖을 나서기라도 하면, 전봇대위에선 전선을 비켜가는 칼바람의 쇳소리가 귓전에 잔인할 정도였다.
그렇게 무시무시하던 동장군이 근년에 와서는 무슨 환경 때문이라나, 오염에 중독 되어 열병이라도 걸린 듯 비실비실 맥을 못 추는 것을 보면, 어린시절 기세당당했던 그 장군이 언제 있기나 했던가? 할 정도로 겨울은 더 이상의 ‘혹독한 계절’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요즘 아무리 춥다한들 그때 그 겨울은 분명 아니다.
이렇게 포근한 날에 외출할 수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싶으면서도, 이른 새벽에 잠을 설치며 예정에 없는 나들이를 나서는 경우는 나에겐 분명 평생처음 있는 일이어서 느낌이 새롭기도 하고 설기도하다. 기왕 나들이할 바엔 좋은 날씨만큼이나 몸과 마음이 따뜻하고 즐거운 나들이가 되어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그래서 지친 심신에 생기를 불어넣는 모처럼의 일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뇌수에 부딪치듯 스치며 지나간다.
새벽에 찾은 겨울터미널의 대합실은 쓸쓸하리만큼 여행객은 보이지 않고 남보다 일찍 하루를 준비하는 주변의 사람들 움직임만이 분주하다. 그들 입과 코에선 잔뜩 머금은 담배연기 토하듯 하이얀 김을 쉼 없이 쏟고, 매일 반복되는 일 탓인지 무표정하고 움직이는 몸은 거의 기계적이다. 여기저기서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들만이 여행을 위한 기운을 축적이라도 하듯 시동의‘구릉구릉’요란스런 합창이, 새벽 공기의 파장이, 낯 설은 곳으로 나들이 하는 나의 귓전에 스며들어 잔잔한 설렘을 안겨주며 이곳을 더욱 터미널답게 한다. 한 두 시간 후면 날이 밝아질 것이고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주어진 삶에 이끌리어 어디론지 여행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물밀 듯 밀려들겠지만, 그 인파의 숨결로 이곳 대기의 밀도는 더욱 높아지고 그들로 인해 생명의 활기가 넘치겠지만, 도시는 잠들어있고 아직은 아니다.
대합실은 비어있었는데도 어느 틈에서 나왔는지 출발시간이 되자 좌석은 새 주인을 맞아 거의 자리가 채워지고, 즐거운 여행을 바라는 차내 방송과 함께 터미널을 뒤로하고 버스는 유유히 고속도로를 향해 도심사이를 유유히 헤집는다. 차창너머 가로등과 혼란스런 광고들이 창의성에로 인하여 내 마음만큼이나 희미하고 흐려 마치 안개 속에서 물체를 보는 듯하다. 뒤 자석의 떨림과 엔진의 소음 그리고 다소 시린 냉기가 차창을 통하여 오른쪽 어깨에 닿는 느낌이 별로 좋지 않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달리는 버스는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했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편다. 그리고 책장을 넘긴다. 글이 보이지 않는다. 턱없이 흐린 천정의 조명도 한몫을 한다. 억지로 책을 붙들고 있는 도리 외엔 할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터미널을 출발한지 3시간쯤 지났을까, 두꺼운 어둠을 힘차게 걷어내고 솟아오른 태양의 신선한 빛이 창으로 스며들고 갖가지 사연을 실은 버스는 어느덧 대구를 지나고 있다.
“어느 예식장 이라구예? 예, 예 알았심더”
“응, 응 그래. 미장원에 들리려고 일찍 출발 안했나, 이따 보자. 그래그래”
내 옆 자석의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인은 결혼 예식장에 가는 중이었다. 아름다운 용모에 키도 적당히 커보였는데 곱게 화장하고 차려입은 한복이 잔치 집 분위기에 잘 어울릴 것처럼 보였다. 탑승 후 간간이 몸을 뒤척이며 지루한 듯했던 그녀가 갑자기 무료함을 털어버릴 묘안이라도 떠오른 듯, 아니면 도착이 가까워서인지 여기저기 부지런히 통화를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지금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결혼 예식장에 가기위해, 나는, 지난 밤 생을 마감하고 영원한 곳으로 가버린 한 인생의 장례식장에 가기위해서 같은 도시를 향해 나란히 앉아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녀는 축하 인파 속에서 반가운 사람들과 하얀 이를 보이며 따뜻한 포옹과 화사한 축하의 미소를 나누겠지만, 나는 한 인생이 파란만장한 인생여정을 마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린 큰집 형님과의 이별을 위해, 차디찬 그의 시신 앞에서 적다할 수 없는 아쉬움과 인생의 공허함을 곱씹어야만 하는 나와는 분위기가 상이 할 수밖에 없다.
“증조할머니가 물을 긷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머리위로 툭 떨어졌어. 그 일로 할아버지를 임신했던 증조할머니는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단다.”
집안 내력에 대해 고인이 내게 해준 이 소설 같은 이야기는 우리 둘 사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조산 태아가 엄마 젖 한번 빨아보지 못한 체 주위의 간절한 보살핌으로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의 생전의 모습이 기억으로 되새김되어 내 앞에 선명하다. 할아버지의 기적은 우리의 기적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던 형님은 정이 많아서 인지 친형제가 없어서인지 항상 나를 보면 친 동생 대하듯 사랑으로 그렇게 했었다. 어린 그 시절 형님은 나의 우상이며 미래의 표상이었다.
그는 1남 3녀의 독자답게 애지중지 호의호식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해변이 가까운 오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비교적 윤택한 살림으로 인해 큰 도시로 유학을 갔다. 키도 훤칠했으며 미남이었다. 집안 안팎에서는 인물이 났다며 그에게 기대가 컸다. 그러나 손이 귀해 오냐오냐 떠받드는 응석받이로 자란 독자아들이 더러 그랬던 것처럼 그 형님도 자만과 이기심만이 똘똘 뭉쳐 안하무인인 것처럼 행동했고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은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학업을 마치자마자 철부지의 때도 벗지 못했던 아직은 어린 나이에 도시에 나가 무슨 장사를 하겠다며,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릎 쓰고 기어이 일을 저지르더니 두 번 세 번 실패하고, 결국은 조상대대로 지켜온 전답과 시원스레 넓은 마당이 딸린 집터만 너무도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남 몰래 도망가듯 낯 선 도시로 가버렸다. 누가 보더라도 있어서는 안돼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귀신 이 씌우지 않았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젊은 날 모두의 기대와 희망을 뜬구름 날려버리더니, 노경에 이르기까지 힘에 겨운 노가다의 날품으로 이리저리 전전하면서 어린 날 호강의 대가를 백배나 치르고 씁쓸히 인생을 마친 것이다.
차창너머로 아파트단지가 드문드문 지나가고 큰 건물들이 차츰 늘어나는 것을 보면, 종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듯싶다. 내 속에 깊숙이 침잠하여 알 수 없었던 것이 갑자기 표면위로 나타나며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형님에게 죄를 지었구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 그것이다. 고인에게 부끄럽다 못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받은 사랑에 비해 도리를 다하지 못했던 지난 수많은 날들을 무어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며칠 전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커녕 전화 한 통화 해주지 못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뿐인가, 무슨 신선놀음인 양, 여행을 위하여 책 따위를 챙기고, 쓸데없는 상념만 늘어지게 펼치다가 이제 목적지에 다 와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고인을 마주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 못난 내 행위가 미웠다. 이런 일들이 왜 이제야 떠오르는 것일까? 혼이 내 앞에 있듯 형님이 잔뜩 찌 뿌린 얼굴을 하고서 원망의 눈으로 나를 보는듯하여 더욱 괴로웠다. 형수님을 어떻게 보고 무슨 변명을 해야 하나, 상주인 조카들은 또 무슨 낯으로 볼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어깨의 힘은 빠지면서 두 다리는 무거워지고 눈언저리는 굳어진다. 죄스러움, 부끄러움, 아쉬움 안타까움으로 뒤엉킨 무거운 짐만 한 보따리 안은 체 간신히 택시에 오른다.
“기사님, 대학병원 장의 예식장으로 갑시다.”(Fina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장례식 모습을 그려 놓은 글이 한 편 있는데 이 글을 읽다보니 그 글이 생각나는군요. 인생을 허비해 버린 사람의 장례식을 찾아 가는 길은 늘 사람을 이기적이게 하곤 합니다. 저 역시도 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마지막 연이 좀 무리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첫댓글 인생이란 참 소설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장례식 모습을 그려 놓은 글이 한 편 있는데 이 글을 읽다보니 그 글이 생각나는군요. 인생을 허비해 버린 사람의 장례식을 찾아 가는 길은 늘 사람을 이기적이게 하곤 합니다. 저 역시도 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마지막 연이 좀 무리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형님과의 에피소드라도 하나 버스 안의 회상 장면으로 곁들여 넣으시면 마지막 연이 조금은 덜 인위적이지 않아 보일 듯 싶습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일화로 처리 하시면 무리는 없지 싶어 보입니다만, 그저 저의 의견일 뿐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 님. 정말 오랫만이군요. 그리고 반갑습니다. 평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이지요. 계속 그렇게 관심으로 보아 주시면 더욱 발전하겠지요.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