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한 남자>
1. 보통의 사람들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기호에 의해 정의된다. 나라, 지역, 가족, 학력, 직업 등과 같이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조건이나 기준보다는 특정하고 개별적인 조건에 의해 규정되고 수용되게 된다. 그러한 기준들은 때론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왜곡시키고 특정한 범주적 시각을 통해 바라보게 하는 폭력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민족에 따른 선입견이나 부모가 없는 아이나 결손가족 출신의 아이에 대한 편견 등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사회적 정체를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정체성이 무시와 편견의 이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 <한 남자>는 바로 이러한 정체를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그들과 관계된 혼란스러운 문제를 제기한다.
2. 영화는 낯선 외지 남자가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오고 그곳에서 한 이혼한 여자와 만나 생활하지만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에서 시작된다. 부인은 남자의 장례를 위해 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남자의 이름이 거짓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남자의 실체를 찾기 위해 변호사에게 의뢰하고 변호사는 남자의 정체를 추적한다. 결국 밝혀진 남자의 정체는 살인자의 아들이었던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신분세탁을 하였고 바뀐 이름으로 살았던 것이다. 영화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사회적 시선이 그에게 가했던 무게와 고통을 힘든 삶의 여정을 통해 보여준다. 결국 남자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지역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특정한 시선에 벗어난 새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3. ‘정체성의 부정’이라는 문제는 사망한 남자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남자를 추적하던 변호사 또한 심각한 정체성의 문제를 갖고 있다. 영화는 일본 사회의 중요한 갈등 중의 하나인 한국인 ‘재일교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재일교포 3세인 변호사는 한국인임을 굳이 알리고자 하지 않으며 가능하다면 부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변호사인 그의 현재의 사회적 지위와는 관계없이 재일교포라는 시선이 그에게 부당한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왜곡된 사회의 폭력을 감당한 남자처럼, 변호사 또한 재일교포라는 낙인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4. ‘사회심리학’에서 인간은 인지적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 미리 알고 있는 지식이나 범주를 통해 외부의 대상을 판단한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개별적인 다양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먼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인종, 성별, 지역, 학력, 직업, 외모 등과 같이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기준에 의존하고 단정함으로써 인지적 혼란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러한 게으름이 때론 그 사람에 대한 편견과 왜곡을 결정짓는 것이다. 특히 그 사회에서 비난받는 ‘결손’의 특징을 지녔다면 그 사람의 실질적인 개성과는 관계없이 ‘결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5. 우리는 얼마나 많은 허상의 관점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가? 인간은 그가 갖고 있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말을 통해 평가되고 특별한 한계를 침범하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수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특정한 기준을 선정하여 차별과 배제의 도구로 활용했다. 중세의 서구사회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활용했다면, 근대사회는 민족주의, 이념, 부와 지위를 통해서 인간을 구분하고 위계를 나눠 차별했던 것이다. 때론 단순한 차별과 배제를 넘어,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분류하여 잔인하게 학살하기도 했다.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차이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하게 한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6. 영화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전체적이고 파시즘적인 시선을 경계한다.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특정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은 그 시선에 붙잡힌 존재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어떤 범주로만 파악하는 태도는 게으를 뿐만 아니라 폭력적인 행위이다. 어떤 이념의 틀로서 사회를 하나의 관점으로 몰아가려 태도 또한 절대적인 음모이자 자유의 파괴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사람을 그저 인간이자 시민으로서만 바라보는 단순한 시각의 회복일지 모른다. 그러한 기준을 통해 인간다운 인간, 시민다운 시민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사회를 분열시키고 파괴시키는 혐오와 배제의 목소리는 약해질 수 있다. 나치는 ‘반유대주의’라는 구호를 통해 특정한 집단을 배제하고 파괴하며 그들의 단일성을 강화시켰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들리고 있는 ‘공산주의, 반국가주의’의 목소리 또한 인간의 가치를 파괴하는 파시즘적인 선동에 지나지 않다. ‘선동’이 무력화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인간이나 시민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적인 태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선동에 휩쓸리지 않는 소박하지만 건강한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첫댓글 -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인간 관계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