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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한 관심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가장 커졌다. 독일 정신사에서 이 시기는 대략 1790년대에서 1830년 사이에 해당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외부 세계만을 실제 세계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적 세계 역시 실제 세계라고 보았다. 이를 본성 또는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이 무의식은 각 개인의 존재를 훨씬 뛰어 넘는다. 꿈은 자신의 세계 경험을 훨씬 뛰어 넘어 자신 속의 무한한 것과 교류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은 융의 집단무의식 개념에서 다시 한번 힘을 얻는다. 집단 무의식이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기본 장비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꿈을 신으로부터 와서 그들을 하늘과 연결시켜주는 것이라고 보았다면, 이제 꿈은 심연으로부터 나온 것, 각 개인을 훨씬 뛰어 넘어 무의식과 동일시되는 어떤 것과의 연관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는 낭만주의자들이 고통스러운 꿈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26쪽)
- 그렇다. 내적 세계 역시 실제 세계이다. 이 내적세계를 체험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 길은 일단 꿈이 있을 것이다. 꿈에 드러나는 이미지와 에너지를 동시에 느껴야 한다. 그 꿈이 얼마나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지, 외부세계를 살아가는 외적인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안다면 내면 세계를 실제 세계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맨 마지막 문장이 궁금하다. 낭만주의자들은 고통스러운 꿈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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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꿈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아르테미도로스를 통해 꿈에 대한 상징학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마지막 두 권의 책에서 그는 수 백 가지 사례를 근거로 꿈꾸는 전지(全知)가 깨어있는 무지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어떤 방식과 방법과 유머를 이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흥미로운 것은 쇼펜하우어가 아르테미도로스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꿈을 "뀸꾸는 전지"로 표현하고 의식을 무지와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27쪽)
-꿈꾸는 전지란 말이 재미있다. 꿈을 올려보내주는 마음 속 우주의 선생님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마음 속 우주의 선생님과, 이 마음 밖 세계의 선생님은 하나로 통하는가.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종교적인 상징의 대상들은 바로 이 내면과 외부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그 중심에 서 있는 존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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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과 리클린은, 연상이 매끄럽지 않았던 경우에는 자극 단어가 "난처한 개인적 사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난처한 개인적 사안을 '콤플렉스'라고 명명하고, 그 뒤에는 언제나 감정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감정적인 문제들의 주제는, 콤플렉스를 불러 일으킨 단어들에게로 연상을 전개하면 밝혀진다. 이 때문에 나중에 융도 꿈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구속적인 연상'을 선호했다. (31쪽)
-자신의 콤플렉스와 대면하고 직면하는 것이 마음 공부, 꿈 공부의 본질일 것이다. 이것도 참 힘든 일이다. 콤플렉스가 무엇인지를 무의식은 느끼지만, 의식은 그걸 의식화하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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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통해 그(네프)는 꿈이 발생하려면 뇌할동 영역에 특정한 양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의식의 근원(핵의식)으로부터 일정한 자극이 오지 않는다면 사람은 꿈을 꿀 수 없다." 그러한 자극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지만, '낮의 잔여물' 따라서 여전히 우리를 상심하게 하거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로부터 나오는 것은 분명하다.(33쪽)
-낮의 잔여물이란 말도 재미있다. 한 가지에 몰두하고 탐구적인 사람들, 예민한 사람들은 당연히 낮의 잔여물들을 많이 가질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낮의 잔여물들이 꿈을 불러온다면, 그 꿈도 또한 대단히 환상적이거나 치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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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꿈이 실제 과정을 시작하는 것은 뇌의 '탐색 시스템'인 듯하다.
팬크셉은 탐색시스템을 부단히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찾는 비전문적인 동기화 시스템이라고 기술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시스템 자체는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손상되면 인간은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한다. 게다가 아무런 동기도 갖지 못하고 무엇에도 무관심해지고 무감각해진다. 이러한 탐색 시스템은 '보상 시스템'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쾌락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쾌락시스템이 작동하면, 탐색 시스템은 꺼진다.
심리치료를 위한 솔름스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동기화 시스템, 즉 탐색시스템은 오로지 개인에게 중요하고 관심있고 의미있는, 그리고 그를 감동시키는 어떤 것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가동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구에 따르자면 꿈이란 중요하고 흥미롭고 감정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35쪽)
-그렇다. 저 동기화 시스템, 탐색시스템은 자신에게 관심있고, 중요하고 의미있는 어떤 것이 발생할 때 작동을 한다는 건 이해할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을 때는 분명히 강한 에너지를 가진 선명한 꿈을 꾸게 된다. 내가 2년 동안 꿈을 기록해보니 그렇다는 걸 대충이나마 알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꿈은 '감정적으로' 의미가 있는 어떤 것이란 말이 좋다. 감정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그 무엇을 꿈은 더 정확하게 포착한다는 말인가. 의식이 억압하고 있지만, 무의식의 감성은 반응하는 그 무엇인가를 꿈은 탐색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