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역(운천역)이 만들어졌다
1. 기차역은 사라지고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과거에 익숙했던 역들이 폐역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줄어들면 지역은 쇠퇴하면서 철도 운행에 만성적인 적자가 커지기 때문이다. 분명 지금도 어떤 곳에서는 역이 생기고 사람들이 역을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곳들은 대도시 주변이거나 특정한 철도라인의 선상에 있는 지역에 한정된다. 철도는 그렇게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원칙에 따라 생성과 소멸이라는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민통선 최북단에 만들어진 파주의 <운천역>은 반갑다. 임진각 주변에 <임진강역>이 있지만 이곳은 관광지에 만들어져 주변 마을과는 거리가 있는 역이다. 운천역은 마을 중심에 있다. 사람들이 걸어서 오고 갈 수 있는 소박한 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파주의 조용한 마을에 새로 역이 생겼다는 사실은 이곳이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지 모른다.
2. <운천역>은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역은 아니다. 문산역으로 가기 힘든 운천리 주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2004년 10월 31일에 신설되었다. 하지만 임시로 운행되다 돼지열병 때문에 중단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에 따라 문산역에서 도라산역까지의 구간을 전철화하고 수도권 전철 전동차를 운행하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2018년에 우선 문산역에서 임진강역까지의 구간을 착공했지만, 중간에 있는 운천역은 폐역하고 임진강역만 전철이 서게 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반발하였다. 결국 파주시가 운천역 신설에 직접 나섰고, 운천역 건립이 확정되었다. 본래 2021년 말 개통 예정이었으나 연기되어 2022년 12월에 준공되었다. 어쨌든 역이 만들어지자 주변 환경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임진각을 향해 휑하니 달리던 드라이브 길에서 무언가 들러보고 싶은 장소가 생긴 것이다. 평일에는 왕복 2회, 주말과 휴일에는 왕복 4회만 운행되고 있지만 소박한 역에 들러 조용하게 역의 정취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은 마을을 방문할 수 기회도 준다. 역과 마을, 그 정겨운 조합을 느끼면서 소박한 농촌의 기억을 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점점 사라지는 역들에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는데, 서울과 가깝다 할지라도 농촌 지역에 역이 만들어졌다는 점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3. 차를 주차하고 역을 둘러봤다. 작고 소박한 역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다만 역이 주는 떠남과 멈춤이 주는 그리움의 향수를 음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마을 쪽으로 걸어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확인하고 싶다. 민통선 안쪽에도 사람들은 살지만, 정부의 허가와 관계없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경계선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도 보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숨어있는 파주의 공간을 확인하게 된다. 10년 이상 파주의 곳곳을 둘러보면서 많은 곳을 보았지만, 역의 복원과 함께 새롭게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점에서 이 또한 장소가 파생시키고 만들어내는 특별한 혜택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이 사라지는 시대, 조용한 시골 마을에 새롭게 만들어진 역은 분명 신선하고 의미있는 광경이었다.
첫댓글 - 현대식 역사 모습이 미술관처럼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