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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 꼭 필요한 때가 있다. 상수도가 없던 시절, 우리 가정에서는 마당에 펌프를 설치하였다. 집에서 꽤 떨어진 동네 우물을 긷는 수고로움을 덜었다. 그러나 지하수가 부족한 펌프의 물은 땅속으로 딸려 들어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지하로 딸려 들어간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하다. 이 물이 바로 마중물이다. ‘새해를 맞이하다’, ‘님을 마중가다’는 구절이 아름다운 것은 그 이미지 때문이다. 해맞이를 하거나 님마중의 이미지가 자못 싱그럽기 때문이다. 2008년 1월 1일 해맞이 산행에 나섰다. 올해의 해맞이 산행은 경상남도 통영의 미륵도 미륵산이다 통영은 조선시대 수군 통제영을 이곳 한산섬에 두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남도 통영은 쪽빛 바다, 아늑한 섬, 고기잡이 배, 출항, 파닥이는 생선, 붉은 동백, 푸른 호랑가시나무 등이 주는 느낌이 싱싱한 고장이다. 10시 30분경, 산행버스를 기다리자니 도로에 부는 겨울바람이 맵다. 두 대의 버스로 수원을 출발한 시각은 저녁 11시 경이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영하 8℃의 날씨이기에 그렇게 느껴진 듯하다. 설악산, 토함산, 태백산 해맞이 산행을 떠나는 버스가 있는가 하면, 거제도 노자산, 해금강으로 떠나는 버스도 눈에 띈다. 토함산의 일출을 보고 불국사와 남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산행도 제법 멋진 코스가 될 것이다. 내년에는 경주 토함산 일출과 남산 산행을 준비해야겠다. 원거리 산행에 익숙한 산꾼들이 버스의 뒷좌석에 몰려 있다. 청아님과 바우님이 내주는 자리에 앉았다. 지루한 시간을 잊자고 고량주 두 잔을 마셨다. 고량주 특유의 향기와 맛이 칼칼하다. 마치 겨울바람처럼 맵고 화끈하다. 고량주 향내를 개선할 수는 없는 걸까? 해외로 수출하자면 아무래도 고량주의 특유의 향기를 다스려야 한다. 고량주 두 잔에 기분이 흥겨워졌다. 도드람 바우님이 진돗개 씨리즈를 펼쳤다. 세 명의 대통령이 각기 개를 한 마리 샀는데 도둑을 지켜야 할 진돗개가 짖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진돗개에게 그 사연을 물으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전 재산이 26만원 밖에 없는데 도둑이 들 이유가 없고, 좀도둑이 아닌 큰 도둑이 집안에 있으니 짖을 수 없고, 개보다 더 잘 짖는 주인이 있는데 굳이 짖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 고 대답하더란다. 돌, 뻥, 황으로 치부되는 대통령에 이어 국민을 잘 섬기겠다는 이 대통령 당선인의 어눌한 말 한 마디에 어쩐지 신뢰가 간다. 새벽 4시경, 아침 식사를 했다. 무청을 넣어 끓인 구수한 된장국에 밥 한술을 말아 먹었다. 어둔 새벽에 미륵산 용화사를 둘러보았다. 용화사에 이르는 숲길에 들어찬 굵은 해송이 듬직하다. 용화사 입구에는 산신제를 지내던 돌무지가 있다. 바닷가 마을에 위치한 일종의 서낭당이자 해신당이다. 새벽 6시경, 미륵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해맞이 산행에 나선 사람들로 가파르고 좁은 산길은 붐빈다. 7시경, 미륵산 정상에 올라서니 통영시의 야경이 아직도 화려하다. 항만에 물류를 선적하고 하역하는 부두시설과 화물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큰망산으로도 불리는 미륵산에는 케이블카도 놓여 있다. 통영시와 한산섬을 한 눈에 굽어보기에는 미륵산이 안성맞춤이다. 그러기에 미륵산의 본래 이름은 큰망산이다. 큰망산에는 봉수대의 흔적도 남아있다. 돌로 봉화대를 쌓았던 흔적이 뚜렷하다. 미륵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한산섬이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큰 섬 거제도가 들어온다. 아직 어둑한 한산섬 앞바다를 고기잡이 어선들이 철새처럼 대형을 갖추어 나아간다. 7시 40분경, 2008년 새해를 알리는 노을이 수평선에 깔린 구름 너머로 붉게 퍼진다. 붉게 솟아오르던 해는 잠시 구름에 가려 멈칫거린다. 밖으로 나오기 전, 주변을 살피는 새앙쥐의 조심스런 몸짓과 흡사하다. 새해 첫날을 축하하며 매란방님이 붉은 포도주 한잔을 건넨다. 보름에 마시는 귀밝이술이 아니라 새해에 마시는 눈밝이술이다. 고맙게 받아 달게 마셨다. 미륵산 정상에는 제물을 준비하여 온 사람들도 있다. 과일과 시루떡은 물론 돼지 머리도 제상에 올렸다. 통영산악회의 산신제다. 산행의 안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례 의식이다. 바위 암봉에 불어드는 바람이 매우 차갑다. 손가락이 시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가 어렵다. 2008년 새해 일출을 보고 곧바로 산봉우리를 내려와 현금산으로 향했다. 8시 20분경, 해발 335m의 작은 망에 올랐다. 아침 햇살이 나자 통영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논밭으로 알고 살아가는 어민들의 대문은 언제나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해발 341m의 전망대 비탈길을 내려오는 나이 든 아주머니의 걸음이 힘에 겨워 보인다. 부지깽이만한 나무토막을 주워 지팡이를 삼고 비탈길을 힘겹게 내려온다. 배낭에 매단 스틱을 꺼내어 그녀에게 빌려 주었다. 9시경 해발 330m의 현금산 봉우리에 다다랐다. 봉우리에서 조망하는 경관이 시원하다. 미륵도를 육지로 연결하는 통영대교, 충무교도 보이고 미륵산-전망대-현금산이 반원을 그리는 아늑한 터전에는 다랭이 논이 물결을 이룬다. 9시 20분경, 해발 330의 암봉에 이르렀다. 암봉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수려하다. 파란 바다에 하얀 점으로 빛나는 것은 굴양식장이다. 암봉에는 산신제를 지내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있다. 둥글게 돌담을 쌓은 유적이 있다. 석성이라기에는 너무 작아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는데 마을 주민은 제사터라고 설명한다.
10시 10분경, 마을로 내려서니 산양중학교가 먼저 눈에 띈다. 산양중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마을을 빙 둘러싼 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미륵산, 전망대, 현금산 봉우리가 산양중학교 운동장으로 떨어져 내린다. 참 좋은 터에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나란히 섰다. 산양중학교의 정원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웠다. 아열대 식물 소철이 가로수처럼 줄지어 늘어서고, 그 사이를 늘 푸른 동백나무가 메우고 있다. 마당 곳곳에는 억센 바닷바람을 상징하는 해송이 느티나무 대신 나무 그늘을 만든다. 마을을 둘러보았다. 미륵도의 풍경은 대도시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미륵도 주민들은 마당에 어김없이 아열대 식물을 정원수로 가꾼다. 동백, 소철, 호랑가시나무, 유자나무 몇 그루는 기본이다. 남해안에 위치한 바닷가여서 영하의 날씨지만 춥지 않다. 또한 바닷가 마을의 주택은 작고 아담하다. 지붕과 처마가 높지 않아 담장과 엇비슷하다. 남도 바닷가에 부는 거센 바람의 영향이리라. 11시경, 떡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12시경, 일행은 어시장 골목으로 몰려가서 생선 횟감을 골랐다. 바구니에 생선을 올려 담는 경상도 아지매의 손놀림이 능란하다. 농어, 방어, 광어, 도미, 숭어 다섯 마리에 개불 몇 마리를 덤으로 올려 담고 5만원을 달라 한다. 생선을 다루는 아지매의 손길 또한 날렵하다. 농어, 방어, 광어, 도미의 아가미 부위를 단칼에 썩 베어 줄지어 늘어놓는다. 칼을 맞은 생선은 차례로 꼬리지느러미를 활처럼 들어 바르르 떨다가 가만히 내려놓는다. 익숙한 칼날은 거푸 두 번을 베지 않는다. 단칼에 숨을 끊고 단번에 살을 도려낸다. 왜구의 목을 베던 이충무공의 칼날도 저리 빛났으리라. 생선회를 먹을 채소를 준비하고 매운탕을 끓여주는 간이식당에 눌러 앉았다. 청아, 늘빛 그리고 바우님과 그의 친구들이 합석하였다. 먼저 좌상인 청아님의 덕담이 있었다. ‘벼락을 맞아라.’ ‘돈벼락을 맞아라!’ 청아님의 파격적인 덕담이 건배로 이어졌다. 주말 산행으로 건강은 이미 찾았으니 금년에는 돈벼락을 맞으라는 주문이다. 경제가 어려운 이즈음에 부담 없는 술좌석에 걸 맞는 덕담이다. 소주 몇 순배가 돌자 명창 늘빛님의 권주가로 ‘신고산 타령’이 이어졌다. 명창의 노래에 흥이 올라 저절로 어깨춤이 나왔다. 다른 팀은 생선회 접시를 비우고 이미 차에 올랐는데 우리 팀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늘어졌다. |
첫댓글 2008년 새해맞이산행 님 덕분에 즐거웠답니다. 올해는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일출도 보고 어시장들러 다시마랑 여러가지 장을 보려하다 올겨울 드러 제일 춥다는 말에 안갔더니만안면도에 아진 기름이 재주 추자도 까지 갔데네요 ,일출도 보고 좋은 덕담도 들으셨으니 시작이 좋은 쥐띠해가 되세요
2008년에도 가내 두루 화평하시고 계획하신 일 반드시 이루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