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제국 600년 역사, 그중 500년이 골덴바움의 역사이며 나머지 100년은 로엔그람의 역사이다. 로엔그람은 확실히 골덴바움보다 오래 제위를 유지하지 못했다. 38대 490년의 골덴바움과 달리 공동 황제까지 더해도 겨우 6명에 94년의 로엔그람의 역사는 전자가 보기에는 근본없는 짧은 역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사의 승리자는 로엔그람이었다. 골덴바움은 500년간 독점한 제위를 잃은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미 제위를 잃기 전부터 라인하르트라는 강렬한 항성에 빛을 잃어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었고 라인하르트가 즉위한 후에는 역사에서 그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골덴바움 왕조의 몰락 후 그 황실의 피를 이은 이들은 적어도 한 세대 동안 어렵게 살아가야 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특권은 박탈되었고 황제는 신이요 황족은 신의 자손이나 다름없었기에 손가락 까딱 안해도 불편함이 없었던 삶은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그래도 제정신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새 시대에 적응하기 쉬웠다. 그들은 제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특권이 아쉽지 않거나 아쉬워도 미련을 가지지 않았고 제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특권 없이도 살 길을 이미 열어두었거나 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악몽같은 삶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은 2세대, 3세대는 어떤 이들은 현실을 깨달았고 어떤 이는 현실을 깨달았지만 선대들만 원망하고 어떤 이들은 끝까지 현실을 깨닫지 못했다. 당연히도 전자일수록 나은 삶으로 갈 수 있었고 두번째와 세번째는 대부분 힘이 센 로엔그람 황실을 원망하는 것보단 힘없는 부모를 원망하였다.
그나마 카타린 케트헨 1세 일가는 골덴바움 일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라인하르트가 써준 각본에 충실하게 연기하였고 무대에서 내려온 뒤로도 군말없이 관객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따라서 로엔그람 황실도 이들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먼저 페크니츠 공작은 요절한 라인하르트와는 달리 알렉산더 1세처럼 천수를 누리고 사망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유일한 취미인 상아세공 수집을 즐기며 살다 갔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섭정 시절의 일에 대해서 한 마디 말도, 정치에 대해서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우주력 851년에 사망했다.
카타린 케트헨 1세 역시도 조용히 (본인이 느끼기에는) 요람부터 무덤까지 손가락 까딱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다 갔고 그 후손들도 특별히 보장받은 것은 없지만 은하제국의 주요 국가행사에 초대받는 등의 우대를 받았으며 웃프게도 그들의 조상인 루돌프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전제군주정을 세웠다면 카타린 케트헨 1세의 손녀 중 하나가 제1 은하 공화국의 내각서기관장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욥 트뤼니히트의 손자가 라인하르트 2세의 독주를 타도하기 위한 1억 총시위의 주모자라는 것과 함께 역사의 아이러니로 손꼽힌다.
그러나 공화국 건국과 함께 골덴바움은 그 정체성을 상실한다. 로엔그람 왕조 시대보다도 골덴바움 시대는 더 비판받았고 그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골덴바움 왕조의 치부가 드러나며 이전까지 골덴바움 황가의 후예라는 것에 그래도 500년간 은하계에 군림해온 가문이었다는 것으로 자부심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 모두가 부끄러워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미약하게나마 구심점이 되어주던 요소들도 카타린 케트헨 1세가 죽자마자 의미가 없는 수준만 남게 되더니 공화국 시대에는 아얘 없어짐에 따라 어쩌다가 이들 중 성공한 이들이 골덴바움 왕조의 후손으로 드러나 잠깐 이슈를 끄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의를 가지지 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골덴바움은 역사속에 사라지고 만다. 그 많던 골덴바움 황실의 사유재산도 시간이 지나며 분할 상속되며 사라진다.
반면 로엔그람은 달랐다. 그들은 공화국 시대에도 주목받았고 의미있는 자리에 오르며 족적을 크게 남겼으며 라인하르트가 로엔그람 가문에 들어갈 때 로엔그람 백작가 대대로 물려받은 영지와 재산, 거기다가 출세하면서 더해진 재산에 문벌귀족 가문 마린도르프 가문과의 혼인으로 그 가문의 재산 그리고 이후로 이런저런 이유로 불어난 막대한 황실재산을 그대로 인정받아 부유했을 뿐 아니라 가문은 가문의 황제를 중심으로 흩어지지 않은 채 농담 격으로 공화국이 말이 공화국이지 사실상 입헌군주국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이 이름을 올린 것은 단순히 로엔그람 왕조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후광을 아얘 안 입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로엔그람은 골덴바움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했으므로 로엔그람 왕조에서는 황제가 되든 되지 못하든 모든 황족들에게 황제에 준하는 모범과 의무가 주어졌다.
가령 골덴바움 왕조 시절에 황족이 평민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신민은 더 큰 피해를 두려워해서라도 쥐죽은 듯이 있어야 했고 그래도 인격이 정상인 사람은 적절한 보상을 해주고 그나마 인격이 좀 있는 사람은 작더라도 보상은 줄 것이나 많은 경우 보상은 커녕 더 큰 패악질을 부려도 이상할게 없다. 멀리 갈 것 없이 시조인 라인하르트 1세부터가 그 피해자가 아니던가. 그리고 황족은 황제와 더불어 법 위의 존재이므로 자잘한 죄는 그냥 넘어가지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한 죄라면 전례성에서 은밀히 처리될 뿐이다.
그러나 로엔그람 왕조 시절에 황족이 평민에게 입힌다면 그는 일개 신민과 같은 자격으로 법정에 설 뿐이다. 물론 황실 일원이니 그 많은 돈으로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 처벌을 낮게 받을 순 있겠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고 황족 나으리께서 법정에 서고 골치아픈 법정 싸움을 한다는 것은 이전 시대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로엔그람 황실의 일원들이 누리는 특권은 어디까지나 황족이라는 타이틀, 황족으로 태어난 덕에 평생 먹고 살 걱정 없다는 점, 그것을 바탕으로 남들보다 성공의 길이 쉽다는 것 뿐으로 그 외에는 자기 알아서 해야 했다. 오히려 황실의 일은 은밀히 감춰지던 이전과는 달리 언론과 매스컴에 어느정도 노출되어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하기에 어떤 이들은 아얘 황족 자격을 반납하고 평민의 삶을 택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로엔그람 왕조는 황실 일원들이 놀고먹는 것을 싫어했다. 특권의식에 푹 젖은 채 할줄 아는건 사치, 허영, 정치질, 갑질 뿐이던 많은 골덴바움 황족들의 모습을 본받고 싶지 않아한 로엔그람 왕조는 황실 일원들이 설령 무언가를 짓고 그것을 부수고 다시 짓는 무의미한 일일이지라도 놀고먹지만 말고 무언가를 할 줄 알기를 원했다. 정 할줄 아는 일이 없어서 자립이 힘들겠거든 뢰벤브룬의 정원 관리나 화장실 청소라도 맡겼다.
이러니 황실 일원들의 평균적인 능력은 로엔그람이 더 우수했다. 이미 왕조가 멸망하기 전부터 알렉산더 1세의 손자, 증손자 세대는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 있었고 공화국으로 체제가 전환된 것은 그들에게는 큰 이슈거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권력을 쥐고 싶던 이들에게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상 대대로 익힌 특권이 아닌 실력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그들은 유능한 후손을 두기 위해 애썼다.
물론 로엔그람이 골덴바움보다 평이 더 좋은 것은 이것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그들 스스로의 성공의 사유일 뿐이지 사회 전반적으로 존경받고 우대받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능력과 인간성이 같이 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성공할지언정 존경은 받기 힘들것이니까.
대다수의 민중이 로엔그람을 더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들은 적절하게 통치하고 적절하게 물러났기 때문이다. 로엔그람은 왕조 자체에까지 전면적인 민심이반을 겪은 일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통치를 펼쳤다. 후대에 무위제라는 비야냥을 듣는 라인하르트 2세조차도 골덴바움의 웬만한 황제들과 비교하면 명군 수준의 통치를 했다.
그러면서도 늘 골덴바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라인하르트의 뜻을 지켜 라인하르트를 존경하면서도 우상화하지는 않는 선을 지키며 끝내는 라인하르트 2세라는 그런 위험성이 높은 사례가 나오며 자신들이 골덴바움처럼 폭주하기 전에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용단을 내리며 박수 속에서 있었고 박수 칠 때 떠나 평가가 나쁠레야 나쁠 수가 없었다.
물론 공화국 시기에 라인하르트가 마냥 깨끗한 방법으로 우주를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긴 했지만 그 당시에도 알만한 사람, 관심있는 사람은 알음알음 알게되는 사실이었고 그래도 공이 과보다 아주 크다고 여겼기에 다들 그것을 라인하르트의 과오로 여길 뿐 전반적인 평을 뒤집지는 않았다.
그러나 골덴바움은 달랐다. 그들의 시조 루돌프가 절대권력을 추구하려 한 것은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는 절대권력을 쥔 독재자를 원했고 루돌프는 그들의 소망을 따랐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절대권력을 쥔 것은 그 하나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과 시대 자체를 모두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독재자를 원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 절대권력으로 사회를 구원하고자 위함이었지 개똥철학에 근거한 폭정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루돌프는 처음에는 그들의 소망을 따르는 듯 했지만 곧 자신만의 개똥철학에 근거한 폭정을 펼쳐 천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골덴바움의 천명은 이미 루돌프 때부터 끝장난 셈이었다.
그러나 루돌프는 수십억명을 죽여가며 억지로 골덴바움을 따르게 만들었고 그 후손들도 조상들의 행적을 이어받았다. 로엔그람이 진심어린 박수를 받았다면 골덴바움은 박수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죽이니까 박수를 받았을 뿐이었고 결국 그런 억지 박수를 받다가 마지막에는 비웃음조차 받지 못한 채 초라하게 떠난 셈이었다.
따라서 골덴바움이 제위를 잃은 후 민중이 그들을 경외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나마 여기에서도 명군 취급을 받는 황제들이나 좋은 의미로 기억해줄 뿐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에 한정될 뿐이었다. 그것이 골덴바움의 후예들이 짊어진 선조의 멍에이자 선조들이 부당하게 권력을 쥔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