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상처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둘 뿐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부러워한다. 저 사람은 행복해 보이고, 저 사람은 걱정이 없어 보이며, 저 사람은 실패를 모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연과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 우화에 등장하는 상처 입은 독수리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왕따당한 독수리, 배신당한 독수리, 시험에 떨어진 독수리, 사업에 실패한 독수리가 모여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죽음의 언덕으로 향한다.
그때 한 영웅 독수리가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몸에 남은 상처들을 보여준다. 솔가지에 찢긴 자국, 다른 독수리에게 할퀴어진 흔적, 비바람에 상한 흔적들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훨씬 더 많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친다.
"상처가 없는 새가 어디 있겠느냐? 태어나자마자 죽은 새들만 상처가 없을 것이다. 자, 일어나 다시 날자."
이 말은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상처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온 사람의 흔적이다. 넘어져 본 적이 없다는 것은 걸어 보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실패가 없다는 것은 도전이 없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상처는 인생의 훈장이 아니라 인생의 나이테이다.
나무는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나이테를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아픔, 실패의 쓰라림, 배신의 상처, 후회의 눈물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연이 깊어지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상처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렸던 요셉, 광야에서 수십 년을 방황했던 모세, 사울 왕에게 쫓기며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다윗,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육체의 가시 때문에 고통받았던 바울까지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상처를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사람들을 빚으셨고 더 깊은 믿음과 성숙함으로 이끄셨다. 요셉은 형들의 배신을 통해 용서를 배웠고,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남을 깨달았다.
우리는 상처를 없애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상처를 없애기보다 그 상처를 통해 우리를 새롭게 만드신다. 깨진 그릇을 버리지 않고 금으로 이어 붙여 더욱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 난 인생을 은혜로 덧입히신다.
서양 속담에 "너의 상처를 별로 만들어라"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상처는 'Scar'이고 별은 'Star'이다. 철자 하나 차이지만 의미는 매우 크다. 하나님을 떠난 상처는 흉터로 남지만, 하나님 손에 맡겨진 상처는 별처럼 빛날 수 있다. 내가 받은 위로가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힘이 되고, 내가 흘린 눈물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랑이 된다.
예수님도 상처 없는 분이 아니셨다. 십자가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몸에 지니신 채 부활하셨다. 주님의 상처는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구원의 증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우리가 치유를 받았다.
그러므로 상처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상처는 우리가 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빚어가고 계신다는 증거일 수 있다. 오늘 내 마음에 아픔이 남아 있다면 기억하자. 하나님은 그 상처까지도 선하게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상처를 별로 만드는 사람은 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상처가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별빛으로 빛나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