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
봄꽃이 지고나면 신록이 아름다운 오월이다. 이 때에 산행에 나서면 간혹 화랑처럼 아름다운 나무를 만난다. 바로 산사나무이다. 국화 잎을 닮은 산사나무 잎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배꽃 닮은 꽃도 화사해서 산꾼들의 사랑을 받는 나무다.
산사수山査樹라는 이름에서도 유추하여 볼 수 있지만 산사나무는 '산에서 자라는 아침 나무'로 통한다. 붉게 익는 열매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상징하고 하얗게 피는 꽃은 한낮에 빛나는 태양을 닮았다.
시원한 녹색에 희게 핀 산사나무를 만나면 저절로 마음이 상쾌해진다. 산사나무는 물이 있는 계곡이나 산길에서 자주 만난다. 지금도 사찰이나 향교 부근에서 많이 눈에 띈다. 스님이나 유생들이 심어 가꾸던 것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산사나무의 학명은 라지 차이니스 호오손 Large Chinese Hawthorn으로 중국산이라는 속명이 붙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 분포하여 자란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중국에서 산사나무 열매로 겪은 재미난 일화가 있다.

1780년 정조 4년, 연암 박지원은 조선 사신단 일원으로 청나라에 들어간다. 그의 삼종형이자 부마였던 금성위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따라간다. 요즈음으로 치면 축하 사절을 따라가는 신문기자의 역할이다.
연암은 성경, 북평, 열하지방을 여행하면서 중국의 산천, 풍토, 문물, 제도 등을 살펴본다. 틈틈이 조선과 중국의 문물을 비교하여 기록하였다가 저 유명한 기행문 '열하일기'를 남겼다.
조선 사신단의 목적은 청 고종의 70수를 축하하기 위한 행렬이었다. 경하사의 대표인 정사와 부사에게 조정에서 여비로 지급한 것은 은자(銀)이었으며 수행원들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간 것은 우황청심환과 부채, 인삼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먼 여행길에서 조선의 한약 우황청심환은 그 어떤 물건 보다도 요긴한 물품이었다.
연암은 우황청심환을 활용하여 멋진 여행을 하였는데 그의 짐 꾸러미에는 두 개의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그 하나는 원방 우황청심환을 담은 주머니였고 다른 하나는 변방 우황청심환을 넣은 주머니였다.
연암은 여행길에 만나 필담을 나눈 청나라 관리와 학자들에게 우황청심환을 선물하였다. 또 귀중한 서책이나 값진 물건을 구하는데 사용하였으며 때로는 주막에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매식할 때도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만큼 당시 조선의 한약 우황청심환은 지금의 녹용이나 웅담보다도 훨씬 위력이 있었다.
여행 중의 어느 날이었다. 연암이 사행 길에 산속의 절을 둘러보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때마침 사찰 뜨락에는 산사나무 열매를 따서 말리고 있었다. 연암이 중국 산사의 질이 조선 산사와 어떻게 다른가 궁금하여 한두 개 집어 들어 맛과 향을 보았다. 그때였다. 사찰 안에서 젊은 사미승이 뛰어나오더니 길길이 뛰며 연암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약재로 쓰려고 말리는 산사를 왜 당신이 훔쳐 가느냐?’는 것이다. 연암이 날뛰는 꼴상을 보고 손짓 발짓으로 해명하였으나 청나라 사미승은 막무가내였다. 연암을 도둑으로 몰아 산사나무 열매를 훔쳐 갔으니 다른 물건으로 변상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관가에 고발하겠다고 나왔다. 연암이 짐짓 청나라 사미승의 속뜻을 짐작하고 변방 우황청심환 한 알을 꺼내어 사미승에게 건네었다. 그러자 방금 전만해도 날뛰던 사미승의 태도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졌다. 이어 한 봉지의 산사나무 열매를 싸주면서 아까의 일을 사과하고 우황천심환의 선물에 감사하였다. 사문(寺門)의 승려들까지도 엉큼한 수작으로 우황청심환 한 알을 얻어내고는 좋아라 하였다.
어느 날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연암이 주변의 관제묘(관우의 사당)를 살펴보다가 늦어 사신단 일행에서 뒤쳐졌다. 멀리 뽀얀 흙먼지를 내며 앞서가는 사신단 일행을 뒤를 쫒아 말을 채찍질하여 참(站)으로 달리는데, 오이 밭에서 한 늙은이가 나와 말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서너 간 되는 초가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늙은 게 혼자 길가에서 참외를 팔아 오늘 내일 지내는데, 아까 당신네 조선 사람 4,50명이 이곳을 지나다가 잠시 쉬면서 처음엔 값을 내고 사자시더니, 떠날 때는 참외를 한 개씩 손에 쥐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아나 버렸습 니다."
연암이 그 늙은이의 말을 듣고 되물었다.
“그럼 왜 그 우두머리 어른에게 하소연하지 않았는고?”
그러자 늙은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리하였더니 그 어른이 귀먹고 벙어리인척 하시는데 나 혼 자 어찌 그 사오십 명의 힘센 장정을 당하오리까. 이제도 쫒아 가니까, 한 사 람이 길을 막으며 참외로 냅다 저의 면상을 갈기니 눈에선 별안간 번갯불이 일고 아직도 참외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기어이 청심환 한 알을 처방해 달라고 졸랐다.
연암이 어두워서야 참에 이르러 저녁을 먹은 후, 오이 밭에서 사온 참외를 내어 입가심으로 먹으며 낮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길에서 조선 사신단 일행이 참외를 빼앗았다는 이야기를 한즉 하인들이 웃으며 말했다.
"도무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 외딴집 참외 파는 늙은이가 본시 간교하기 짝이 없어, 서방님이 홀로 떨어져 오시니까 짐짓 거짓말과 가엾은 꼴상으로 청심환을 얻으려는 것이죠."
연암은 그제야 노인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 참외 사던 일을 분하게 생각하였다. 그후에도 연암은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경험하고 그 일화를 열하일기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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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 열매는 가을에 붉게 익는다. 맛과 향이 좋아 술을 담기도 하고 약재로 쓰기도 한다. 중국에는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음료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산사나무 열매로 담근 맛있는 술이 인기가 있다. 노을 빛이 감도는 '산사주’가 바로 산사나무 열매로 담근 맛 좋고 향기로운 술이다.
산사나무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두루 자생한다. 내한성은 강하나 심근성인 나무이므로 옮겨 심으면 잘 자라지 않는다. 열매는 9월에 붉게 익는다. 가을에 열매를 채취하여 4도 정도의 저온으로 보관하였다가 이 듬해 봄에 파종하면 된다. 지금은 약용식물로도 정원수로도 많이 보급되었다.
산사나무의 꽃말은 '유일한 사랑'이다. 정원에 한두 그루 심어두고 오래도록 가꾸어 볼 일이다.
첫댓글 앙증맞은 사과 모양의 열매가 보기에도 좋은 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