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은행초등학교에 유명한 괴짜 교장선생님이 계셨어요.
작년에 퇴임을 하신 이상선 선생님.
교장단 회의에 가서는 전교조 편을 든다고 은근히 왕따를 당하고...
또 젊은 전교조 선생님 사이에서는 미주알 고주알 시어머니같다고 은근한 왕따를 당하고...이쪽저쪽에서 왕따를 당했지만 교육적인 소신만큼은 쇠뚝이보다 더 올곧았던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랬기에 더욱더 이번 보성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자살사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했어요. 이상선 선생님의 말입니다.
"돌아가신 선생님...심성이 착한 분 같습디다. 잘못한거 시인하고 사과까지 하고...내가 만일 전교조였다면, 사과를 받은 마당에 각서까지는 차마 요구하지 못했을것 같아요. 마음이 약해서인가 모르겠는데...인격적으로도 큰 부담이잖아요?"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교장선생님...
그런데 우연하게도...선생님이 괴짜라고 소문난 것은 이번에 문제가 돼고 있는 차시중 문제와 관련된 행동이었습니다.
지금부터 13년전...선생님이 평교사를 거쳐 초등학교 교감으로 부임할 무렵, 그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여교사들이 차시중을 드는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당시엔 학교에 행정부서가 따로 없어서 손님이 오실 경우 마땅히 차를 대접할 사람이 없었고.. 때문에 수업준비를 하던 여교사들이 차를 타오는게 관행처럼 이뤄졌죠.
그런데 이상선 선생님이 교감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이런 문화는 달라졌습니다.
"인터폰으로 여기 교장실로 차두잔...이러면 수업준비하던 여선생들이 차를 타오는거예요. 근데..차마 내입으로 우리 선생님들한테 차를 타라고 말하기 뭐했어요. 그래서 교장선생님 손님이 오면 교감인 내가 직접 차를 탔죠. 내가 직접 타고, 또 2교시 끝나면 선생님들끼리 티타임이 있었어요. 그때 내가 미리 차를 탁 타서 선생님들한테 드렸죠. 수고하셨다고..."
자기손님뿐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손님의 차까지 손수 타서 대접하던 괴짜선생님.
그런 그가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했을땐...차를 누가 탔을까요?
"내가 직접 탔어요. 내방에 커피포트 갖다놓고 손님오면 내가 직접 탔죠. 그러니까 행정실에서 난리가 난거예요. 자기들이 차를 타온다고..그러지마! 행정이 행정봐야지 차나 타서 돼? 이랬죠. 그러니까 행정실에서, 다른 손님은 몰라도 교육청 손님오면 자기들이 타겠다는거예요. 차를 안타면 교육청한테 찍힌다나요? 이 사람들이...내가 다 막을 테니까 타지마. 노! 이랬죠"
이렇게 고집불통으로 차를 직접 타던 괴짜 교장선생님.
이런 행동 하나하나는 당시 교직사회에서는 파격, 튀는 행동이라고 눈총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그러면 우리 학교에서도 그래야되지 않겠느냐?'
'우리는 뭐 좋아서 여교사들한테 차를 타게 시키겠느냐? 여건이 어쩔수없지않느냐' 등등 주위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죠.
하지만 고집불통 교장선생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괴짜선생님에게는 꼭 자기자신이 차를 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여자니까 차를 타야지...남자가 왜 그래? 여자가 왜 그래? 이거 다 성차별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성차별 교육이 이어져온거예요. 지금 초등학교 교과목에선 교과서에도, 수업시간에도 아이들한테 성차별 항목을 하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아이들한테도 성차별을 없애자고하는걸 우리가 하면 안돼죠." (이상선 전 은행초교 교장)
지금 보성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죽음을 둘러싸고 어른들사이의 책임공방이 치열합니다.
누구 때문에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셨느냐? 누가 잘못을 했느냐?
사과를 해야하느냐?
하지만 이런 책임공방에 묻혀,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우리자신의 문화가 무심코 스쳐지나가게 됩니다.
학교에서...회사 사무실에서...공사현장에서...손님들에게 대접되고 있는 수많은 차들...
이 차를 과연 누가 타야할것인가?
여기엔 '가부장적 중심의 수직적인 문화'와 '역할분담 중심의 수평적인 문화'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교장이 차를 타야돼? 교사가 차를 타야해?
이런 문화는 어쩌면 20세기의 군상일지도 몰라요.
혹시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자기자신이 아끼는 차를,
자신의 손으로 정성껏 대접하는 문화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이거 내가 동남아 여행갔을때 사온 차인데 한번 향좀 맡아보슈'
'이거 결명자 차인데 눈에 좋다고 하니까 먹어봅시다'
이렇게 차를 내놓는 순간,
손님과 주인 사이의 간격은
차의 온기만큼이나 가깝게 따뜻하게 용해되지 않을까요?
차 한잔에 담겨있는 수평적 문화...수평적 리더십..
괴짜 교장선생님 이상선 선생님이 몸으로 보여준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