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었습니다. 특허무효를 둘러싼 다툼 때문에 법원에 나갔습니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상대방 대리인으로 전임 법원장이 법정에 나왔습니다. 몇 달 전까지 법원장이었던 사람이 그 법원 그 법정에 대리인으로 떡 나서니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사람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이유는 뻔했습니다. 우리 쪽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로 고심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에 걸맞는 사람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맞불을 놓자는 것으로 결론 냈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 의뢰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소송비용을 더 털렸습니다.
요즘 청문회에서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들이 법원 고위직을 마치고 나와 법무법인에서 고소득을 올린 과거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들이 공직을 떠난 뒤 법률회사에서 받은 돈이 한 달에 5천만 원에서 1억 원에 이른다니 웬만한 사람 연봉을 한 달에 받습니다. 변호사법 제1조(변호사의 사명)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변호사는 상법에서 정한 상인이 아니고 공인이라고 합니다. 이런데도 공인이라 해도 되나요?
여러 면을 살펴불 때, 법률회사가 비영리회사나 봉사단체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전관들을 저렇게 대우를 하면서 데려올 때에는 대우보다 훨씬 더 회사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 기대에 어긋나면 계속 저렇게 대우할 수 없습니다.
법원이나 검찰에서 고위직을 지낸 사람이 법률회사에 이바지할 것은, 사건을 끌어오거나, 진행 중인 사건의 판결에 영향을 주는 일입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부인할 겁니다. 법원도 전관 때문에 재판에 영향이 없다고 강변하겠죠. 우리 사회는 이 일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법률신문이 형사정책연구원 조사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보면 국민 70%는 “법은 돈, 권력 편을 든다. 분쟁을 일반 상식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법원을 상징하는 그림 ‘디케의 저울’은 당장 걷어버려야 하겠습니다.
실제 전관 입김이 작용한다면 그 영향은 심각합니다. 원래 ‘검다’고 결론 나야 할 사건이 있다고 하죠. 그대로 ‘검다’고 결론이 나올 것 같으면, 그 당사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결론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고 싶어합니다. 이를 위해 전관을 찾을 것이고, 비싼 몸값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실체를 뒤집은 이익에 비해, 전관에게 준 수임료는 얼마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전관을 찾는 이유겠지요.
그 사건의 다른 상대방 쪽에서 생각해보죠. 당연히 ‘검다’로 결론이 나와야 하는데, 전관이 개입하여 ‘희다’는 결론이 나오면 날벼락입니다. 엉뚱한 결론을 항의하면 법원은 항소절차가 있으니 다시 법으로 해결하라 합니다. 법원의 잘못을 바로잡을 책임을 당사자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에 휘둘려 엉터리 결론을 낸 시국사건을 몇 십 년이 지나 무죄로 바로 잡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동안 피해를 입은 사람의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요? 이제는 돈이 뒤에 숨어, 전관예우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실체를 뒤트는 일이 벌어집니다. 돈이 있으면 무죄이고, 돈이 없으면 유죄라는 말이 헛말이 아닙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그것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돈이나 권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전관을 대접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전관을 찾습니다. 이런 저런 인맥에 얽혀있는 우리 사회인데, 전관 대접이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현실과 거리가 멉니다. 전관이 설치는 게 현실이라면,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지요.
밑지면서 판다,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 이런 말만큼 재판에 전관의 영향이 없다는 말을 믿기 어렵습니다. 법은 공정해야 하고, 평형에 맞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러진 화살’이 계속 나올 겁니다. 부러진 화살이 나오는 숫자만큼 우리 사회는 멍이 듭니다. 공직자, 정치가들은 우리 사회를 바로 잡아야 할 지도자입니다. 전관 대우로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 사람을, 우리 사회를 바로 잡아야 할 자리에 그 사람을 앉힐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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