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뉴스룸(2018.04.11)
물음표와 느낌표. 세상에서 제일 짧은 걸로 유명한 편지 왕래 내용이다.
소설 ‘레미제라블’을 발표하며 이름을 날린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나폴레옹 3세를 공공연하게 비판하다 망명길에 올랐다. 비록 망명자 신세였지만 얼마 전 넘긴 레미제라블 원고에 대한 독자 반응이 궁금했던 그는 ‘긴 편지는 보내봤자 검열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 당시 막 개발된 ‘첨단 기술’ 전보로 단 한 개의 물음표만 찍어 출판사에 보냈다. 전보를 받은 출판사의 답신은 느낌표. “엄청난 인기 몰이 중!”이란 뜻이었다. 이들이 주고받은 서신은 훗날 ‘최초 이모티콘’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메시지, ‘문자’ 넘어 ‘그림’으로
인터넷이 보급되며 달라진 것 중 특히 눈 여겨볼 만한 한 가지가 사람 간 소통 방식 변화다. 맨 처음 사람들은 직접 만나 대화를 주고받았다. 전화와 우편이 등장한 건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우편의 경우, 문자를 일일이 쓰거나 (키보드로) 쳐야 해 소상한 소통을 일상적으로 하는 덴 한계가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서, 특히 메시지 송수신 기능이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형태로 개발되면서 소통 기술은 진일보했다. 멀리 떨어져있거나 무수히 많은 사람과의 대화도, 시차를 둔 소통도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위해 일일이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일은 여전히 번거롭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이내 ‘좀 더 친밀하고 긴밀한’ 소통 방식을 찾아 나섰다. “언어 파괴”라는 기성 세대의 지탄에도 아랑곳없이 무한 증식 중인 준말이 대표적 예. 그리고 이어 등장한 게 바로 ‘이모티콘’이다.
한때 신조어였지만 어느새 일상어로 자리 잡은 이모티콘은 ‘감정’을 뜻하는 영단어 ‘이모션(emotion)’과 ‘상징물’을 뜻하는 ‘아이콘(icon)’이 합쳐진 단어다. 처음 쓰인 건 1982년. 스코트 팔먼(Scott E. Fahlman)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 컴퓨터과학부 교수가 키보드 문장부호로 ‘;-)’나 ‘:-(’ 따위 표현을 만든 후 “기분이 좋(지 않)다”는 메시지로 사용하는 학생들을 목격, 당시 경험을 글로 쓰면서 처음 알려졌다.
10년이 지나 1992년, 일본 휴대전화 메시지 송수신 앱에서 처음으로 문장부호 대신 그림을 사용한 이모티콘이 ‘이모지[1]’란 명칭으로 등장했다. 오늘날 이모티콘과 이모지는 둘 다 ‘디지털 소통에서의 비언어(non-verbal) 요소’란 의미로 통용된다. 다만 기술적활용도 측면에서 이모지가 이모티콘보다 좀 더 진화한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의 단어’ 자리까지 꿰차다
이모지는 등장하자마자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2010년대 들어선 다양한 휴대전화 운영체제(OS)에서 폭넓게 채택됐고 일부에선 이모지 인기가 특정 기기의 인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2014년 미국 언어 조사 기관 글로벌랭귀지모니터(GLM)는 ‘올해의 단어’로 ‘사랑’을 뜻하는 하트 모양 이모지(♥)를 발표했다. 그해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였다, 는 게 선정 이유였다. 이듬해인 2015년 온라인 사전 검색 서비스 옥스포드딕셔너리즈닷컴(www.oxforddictionaries.com)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 이모지<아래 참조>를 다시 ‘올해의 단어’로 꼽으며 이모지의 대중적 인기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2015년 옥스포드딕셔너리즈닷컴 선정 ‘올해의 단어’에 꼽히며 화제가 됐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 이모지
이모지 관련 정보를 취급하는 웹사이트 이모지피디아(emojipedia.org)에 따르면 2016년 6월 현재 컴퓨터 언어 표준을 정하는 ‘유니코드 스탠다드(Unicode Standard)’에 수록된 이모지는 2666개. 카카오톡이나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등 주요 인스턴트 메시지 송수신 앱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이모지나 유가(有價) 이모지는 제외된 수치다. 이모지피디아 측은 “2018년 기준으로 이 모든 이모지의 사용 건수를 더하면 하루 50억 개는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모지, 뇌 구조까지 바꾼다고?
사람들은 왜 이모지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이와 관련, 소셜 미디어 운영 플랫폼 기업 버퍼(Buffer)에서 콘텐츠 제작자(content crafter)로 근무하는 코트니 사이터(Courtney Seiter)는 ‘이모지의 심리학[2]’이란 글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사이터에 따르면 이모지는 인간 두뇌 구조를 바꾼다. 사실 이모지가 뇌 구조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서라면 알려진 연구 결과가 꽤 있다. 실물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진이나 그림으로라도 웃는 얼굴 모양을 접한 인간 뇌는 쾌감 호르몬을 분비하고, 그에 따라 감정 상태와 행동 방식이 달라진단 얘기다.
사이터는 “이모지가 인류의 소통 방식도 바꾼다”고 말한다.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는 비언어적 소통 요소인 만큼 시각에 의해 처리되므로 말할 때의 몸짓이나 얼굴 표정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보기 좋게 디자인된 ‘웃는 얼굴’ 이모지는 실제 친근하고 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접할 때와 동일한 효과를 지니며,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며 언어 문화 자체를 바꾸고 있단 것. 그는 그 증거로 2015년 인스타그램 자체 조사 결과<아래 그래프 참조>를 제시한다.
(출처: TNW 웹사이트)
위 그래프는 소셜 미디어에서 이모지가 활발하게 사용되며 “인터넷 비속어가 조만간 인간 언어 체계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란 한때의 우려가 한낱 기우에 그치고 있단 사실을 보여준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종종 인용되는 ‘메라비언의 법칙[3]’에 따르면 사람 간 소통에서 가장 중요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말할 때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 등 시각적 요소(55%)다. 그 뒤를 잇는 건 음색,말투,억양 등 청각적 요소(38%). 정말 말하는 내용 자체는 7%에 지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메신저 앱에 골라 넣은 이모지 하나가 어렵사리 키보드를 두드려 써 넣은 내용보다 8배 가까운 영향력을 낼 수 있단 얘기다.
소통 방식, 기술 덕에 온기 품다
이쯤 해서 질문 하나.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왜 지금 와서야 각광 받기 시작하는 걸까?
하지만 이 질문은 전제부터 틀렸다. 소통에서의 시청각 요소는 오래전부터 강조돼왔기 때문. 아닌 게 아니라 대화 과정에서의 공손한 태도와 부드러운 어조는 예부터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덕목이었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일반화된 ‘키보드 소통’은 초창기 적잖은 우려를 낳았다. ‘시청각 요소가 배제된 상태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수박 겉 핥기’ 식 소통에 그칠 수 있다’는 게 걱정의 요지였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경우에든 해결책을 찾아왔다. 디지털 소통 방식에서도 마찬가지. 비인간적일 수 있는 매개(자판)를 활용,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자신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모티콘)을 찾아내며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했다. 실제로 이모지가 등장하고 그 형태도 점차 더 정교하고 보기 좋게 진화하며 디지털 소통은 뜻밖에도 ‘인간적이며 즐거운 놀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면엔 (다양하고 정교한 그림을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텍스팅 디스플레이 기술이 있다.
따지고 보면 예전에도 몇몇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글자 사이로 재밌는 그림을 그려 넣어 받는 이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그런 재주를 누구나 가진 것도 아닐뿐더러 기회가 왔을 때 순식간에 작업을 마치기도 어렵다. 하지만 요즘은 문제 없다. 모바일 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그림을 자유자재로 전송할 수 있다. 자판을 두드리는 이벤트에 반응해 그림으로 구현해내는 컴퓨터 코딩 기술, 그리고 그 사용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를테면 유니코드)이 발달한 덕분이다.
‘내 얼굴’로 이모지를 만든다니…!
이모지는 이래저래 ‘기술이 디지털 소통을 보다 즐겁고 원활하게 해준’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최근엔 관련 기술이 점차 발전하며 기기별로 특징적인 이모지 기능이 탑재되기도 한다.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 9(+)에 탑재된 AR 이모지 기능이 대표적이다.
이모지 영역에서 ‘최첨단’으로 꼽히는 이 기능이 다른 이모지와 차별화되는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사용자 개개인’만’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단 사실이다. 이제껏 선보인 이모지는 기기 내에 미리 탑재된 알고리즘을 적용, 특정 코드가 특정 이미지로 변환되도록 하는 구조를 따랐다. 이미 다양한 이모지가 개발돼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은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옷으로 치면 어쩔 수 없이 ‘기성복’이었다. 그에 반해 AR 이모지는 자신의 감성이나 드레스 코드에 맞춰 뚝딱, 금방 만들어 입는 ‘맞춤복’에 비유할 수 있다.
‘내 얼굴을 이모지로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초상화, 특히 자신의 모습을 담은 초상에 대한 사람들의 오랜 로망에 정확히 부합한다. 사진 기술이 태동하기 전의 먼 옛날, 사람들은 부(富)와 권력을 갖게 되면 가장 먼저 유명 화가를 불러 들여 자신의 초상화부터 그리게 했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나 프리다 칼로, 파블로 피카소 등 내로라하는 화가 중에도 자신의 초상을 즐겨 그린 이가 꽤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꺼질 줄 모르는 ‘셀피 열풍’ 역시 그 배경엔 자신의 초상에 애착 갖는 현대인의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꼭 자기 초상에만 특별한 감정을 갖는 건 아니다. 실제로 2014년 조지아테크놀로지 연구소와 야후랩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스타그램 게재 사진 중 ‘사람 얼굴’이 있는 사진엔 그렇지 않은 사진보다 38%가량 더 많은 ‘좋아요’가 붙었다. 댓글도 약 32% 더 많이 달렸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군가의 ‘얼굴’이 등장하는 사진을 본능적으로 좋아한단 사실을 방증한다. 이와 관련, 미국 저명 사회학자들의 칼럼을 모아놓은 블로그 ‘에브리데이 소시올로지(Everyday Sociology, 일상의 사회학)’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당당하거나 섹시하거나 탐구적이거나 재미있거나…. 자신의 이미지 중 어떤 부분을 특별히 부각시키는 사진을 타인에게 많이 보여줄수록 타인에게서 그런 이미지를 인정 받게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AR 이모지’ 출현이 반가운 이유
이제껏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수 차례 확인했지만 IT기술 발달은 세상을 나날이 바꿔놓고 있다. 때론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사람들에게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기기도 한다. 이를테면 디지털 공간 내 언어가 짧아지고 비언어적 요소로 대체되는 추세, 젊은이들이 셀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은 명백한 우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중 일부에선 의외로 긍정적 측면이 드러났다. 때로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국면 전환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모티콘(혹은 이모지)의 사용이 날로 확대되는 가운데 AR 이모지처럼 한층 진화한 형태의 비언어적 소통 수단이 속속 등장하는 요즘은, 그래서 반갑다.
[1] emoji. ‘그림 문자’란 뜻의 일본어로 이모티콘의 일본식 표현이다
[2] 원제 ‘The psychology of emojis’. 2015년 6월 24일(현지 시각) ‘더넥스트웹(TNW)’ 웹사이트 기고. 원문 바로 가기 링크는 여기 참조
[3] The Law of Mehrabian.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심리학과 교수가 자신의 책 ‘침묵의 메시지(Silent message)’에서 처음 쓴 용어다
https://news.samsung.com/kr/%ed%95%98%eb%a3%a8-%ec%82%ac%ec%9a%a9-%ea%b1%b4%ec%88%98-50%ec%96%b5-%ea%b0%9c-%eb%8b%b9%ec%8b%a0%eb%8f%84-%ec%9d%b4%eb%aa%a8%ec%a7%80-%ec%bb%a4%eb%ae%a4%eb%8b%88%ec%bc%80%ec%9d%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