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단식 테니스 매니아
 
 
 
카페 게시글
■ 김석환 칼럼 ■ 스크랩 유럽여행 6
김석환 추천 0 조회 67 06.09.04 15:2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아침이 되어 우리는 벌떡 일어나 텐트를 걷고 짐을 챙겨 사무실에 가서 어제 잠을 못 자고 간 세 사람과 텐트 한 개의 비용을 돌려달라고 하니 분명 어제 밤에는 돌려준다고 한 사람들이 갑자기 오리발을 내민다.팔뚝에 문신이 있는 남편인 듯한 사람은 얼굴까지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여기가 한국이 아닌데? 사기꾼 같은 인간들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처제에게 도움을 청하니 한 참 통화 후 포기하고 오란다.


거참! 암튼 여러 가지로 첫 출발부터 이상한 일의 연속이다.

욕이라도 해 붙여주고 싶었지만 다 액땜이려니 하고 처제네로 향하는데 가르쳐 준 길대로 가건만 영 아니다. 겨우 빙빙 돌다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의 처제 네에 도착하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맛있는 아침이었다. 맨 꼭대기 층의 맞바람이 시원한 중에 먹는 된장찌개와 쇠고기 무국 각종 야채가 짐 나간 강아지가 몇 일만에 돌아오기라도 한 듯이 반갑다.


우리는 아침을 마친 후 애들은 일부는 집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시장을 보기로 했다.

우선 대형마트에 가서 가스레인지, 프라이팬, 쌀 등의 시장을 보고 집 근처의 터키가게에 들려 싸구려 비닐 백을 사기로 했다. 나는 그곳에서 돋보기를 한 개 샀다.

바야흐로 우리의 난민 생활은 그 시작부터 화려하고 분명했다.


우리는 차를 집 근처 길 가에 대고 짐을 모두 꺼내서 그것들을 싸구려 비닐 백에 담았다.

도시 한 복판의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현지인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게 만든 상태에서 남녀 여럿이 온갖 옷가지와 생활 용품을 늘어놓고 정리하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피난민의 모습 그 자체다,(아쉽게도 일에 열중이다 보니 사진 찍기를 놓침.)

나는 그 와중에 무슨 대단한 조난자들이 영화 같은 곳에서 그러하듯이 가지고 온 짐의 반을 아깝지만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 식으로 하드케이스 가방을 비닐 가방으로 교체하니 그런대로 짐이 반은 줄어서 트렁크에 짐을 채우고 발치에 조금만 까는 정도로 해서 마무리가 되었다. 비록 길에서 난리를 부리는 ‘쪽팔림’은 있었을 지라도 처제가 낸 ‘터키산 비닐 백 작전’은 정말이지 너무나 극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일거해 해결해 주는 쾌거였다.


하드 케이스 가방들을 지하에 모두 갖다 쌓아 놓고 우리는 다시 처제네 집으로 올라가 적당한 시간을 보내자니 동서가 만찬 준비에 분주하다.

덩치답게 손도 큰 동서가 숯을 반가마니는 족히 될 양을 바비큐 통에 넣고 가스토치로 불을 붙이더니 양념 고추 삼겹살을 올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저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입에 가지고 가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역할만을 담당 받았다.

이어서 떡 갈비도 나오는데 그때는 이미 작은 내 배가 다 찬 후다.


말하자면 앞으로  있을 험난한 여정을 위한 영양보충인 것이다.

마치 운동선수가 시합 나가기 전에 영양식을 먹듯이 말이다.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는 처제의 마음은 먼 길 떠나는 자식에게 그저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는 부모의 마음 그 자체였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현이 놈은 우걱우걱 잘 구겨 넣기만 한다. 다른 이들도 다들 즐거워하며 열심히 먹고 떠들고 하는 모습에 그래도 어설픈 출발에서 온 그 동안의 여러 오차가 일거에 ‘캄프라치’되는 느낌이어서 힘들게 외국 생활하는 처제한테는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말하자면 처제 덕에 나의 우매함이 덮어지는 그런 순간이다.

이래서 그래도 식구가 사는데 필요한 모양이다.


애들하고 헤어지는 것이 좀 미안했다. 부산만 떨고 애들 마음만 들뜨게 하고 떠나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고 특히 형이라고 같이 놀던 기현이와 헤어지는 것을 한빈이가 무척 싫어하는 눈치였고 원근이하고 친하게 지내던 라라도 그럴 것이다. 어려운 중에 그래도 밝게 자란 애들이 고마웠다. 돌아 올 때 다신 만날 시간을 생각하며 우리는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서 시내로 들어가지를 않고 곧장 캠핑 장 쪽으로 갔다.

시간도 늦었지만 굳이 시내까지 차를 끌고 들어가서 아직 적응도 안 된 시내 운전을 하기 싫어서다.

시내를 옆으로 지나 '넥카르‘강가의 캠핑장을 찾았다.

강가 양 옆의 마을들과 작고 폐허가 된 고성들과 강의 어우러짐은 그림 같은 풍경 그 자체였다.

빨간 지붕에 흰 벽의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에 사면으로 비추고 있는 저물어 가는 해의 그늘은 말없이 흐르는 강과 한 통속으로 우리들의 그 동안의 모든 어려움을 일거에 날려 버렸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유럽 풍경에 모두 탄성을 지르며 강병을 돌아 구석에 박힌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캠핑장은 강 건너편으로 조그만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한적한 그런 곳이다.

가끔씩 강가를 오르내리는 화물선의 고동소리나 엔진 소리만이 그런 적막을 깰 뿐이다.

사무실에서 만난 ‘짤달막한’ 직원은 그런 풍경과 합일을 이룬 그런 잔잔하고 평화롭기만 한 모습이고 또한 우리에게 친절하기만 하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자연의 삶 그 자체로 보여서 부처를 직면한들 이보다 나을까 싶다.


우리는 석양빛을 바라보며 텐트를 치고 관리인이 빌려 준 전기 코드에 밥통도 꽂고 밥을 지어 먹고 나니 각자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자리매김 되면서 이제야 비로소 그 동안의 어수선한 느낌을 벗어 던지고 팀웤이 좀 갖춰지고 정돈이 되는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역할이 고정되면서 흐른다면 여행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안도감이 든다.

자연스럽게 나와 기현이와 원근이가 같이 잠을 자게 되었다.


사실 기현이 놈하고 텐트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언제였었는지 기억에 없다.

언젠가 큰 텐트를 한 개 사서 같이 딱 한번 자본 것이 전부인 것 같다.

결국 내가 그 놈한테 줄 것이 따지고 보면 추억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싶다.

특히 작은 텐트 안에서 시간을 같이 한다는 것은 그 작은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서 더욱 밀착감이 느껴지는 것이고 그런 느낌은 한 피붙이로의 확인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란 것이 내 생각이다. 따라서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 중의 하나의 그런 공유 감을 그 녀석에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고 또한 그 것이 오늘부터 시작인 셈이다.

나중에 녀석이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해 줄지는 잘 알지 못할 노릇이지만 분명히 오래 기억은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을 가끔씩 즐거움으로 회상하면서 산다면 그것이 또한 값진 것이란 생각이다.


나는 귀마개를 하고 혹시 새벽에 깰지도 모를 일임으로 시차 적응 약을 먹은 후 또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약은 사실 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낮 동안 계속되는 운전과 신경 씀과 피곤으로 인해 새벽에 깨기는커녕 어제처럼 아침까지 늦잠을 잘 것이니까.

이상하게 이번 여행 중에는 특별히 시차적응기간이라는 것이 없다. 낮 동안 낮잠 없이 운전만 해서 그런지 어느 약사가 가르쳐 준대로 비타민 씨를 열심히 먹어서 인지 도통 중간에 깨는 일도 없고 특별히 낮 동안 피곤함이 없다. 별로 강골이 아닌 나를 생각할 때 참으로 별일이다,

내일은 체코로 날라 가야 한다.

 

독일 처제네 베란다 바베큐

캠핑장에서

 

 

 

 

 

캠핑장 사무실.

우리 텐트와 렌트카.

 

 

 

 

 

 
다음검색
댓글
  • 06.09.06 23:40

    첫댓글 다음편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저도 테니스 라켓을 매고 가는 여행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