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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자봉의 앵(鶯)은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라 하여 꾀꼬리봉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할 때 앵자봉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옛날에는 각시봉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웃한 양자산을 신랑산으로 보고 두 산을 부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 부금술이 좋아진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앵자봉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되었고 지금은 앵자봉 일원이 천주교 성역 순례길로 지정되어 있다. 앵자봉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초기에 천주교인들이 숨어 살았을 만큼 산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심산유곡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는 산이다. |
앵자봉에서 조망 안내도를 보면
태화산(644m), 마구산(595m), 노고봉(578.2m), 발리봉(512m), 백마산(464m), 소리봉(612.2m), 무갑산(581m), 관산(555m)의
산줄기들이 펼쳐지는 능선들과
이 곳에서 분기되는 한남앵자관산무갑단맥, 한남앵자지맥의 최고봉, 666.8m의 산봉우리에 서 있었다.
양자산(710m), 자작봉 (578m)의 지나온 산과 양자산의 산줄기가
북으로 뻗은 또 하나의 산줄기 양자산과 백병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곳에서 분기되어 양평군 강하면과 강상면의 경계를
간다.
양자산의 조망안내도 옆 길을 따라 앵자봉을 내려갔다. 바위 하나가 발길을 막기라도 하듯 산릉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자리
잡고 너른 헬기장을 지나 '무갑산 7.73km, 관산 6.08km, 앵자봉 0.63km, 해협산 11.01km, 염치고개 9.29km, 양자산 3.65km'의
이정목에 양자산으로 가는 길과 해협산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낙엽이 쌓여 푹푹, 발걸음을 묶고 엉덩방아 찌으며 흰로프줄을 따라 가다 바위를 만난 반가움에 쉬어 가기고 했다. 이름모를
강상면 어느 동네 산기슭 아래 보이는 남한강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연두색 철문 한켠으로 제켜 있는 산길을 따라 눈에 띄는 노오란 색깔의 산동백 생강나무꽃이 가야할 꽃길을 잇고 있었다.
해협산으로 가는 이정목이 수시로 있어 길 잃을 염려는 묶어 걸어도 좋은 산길로 이어지는 산릉~~ 앵자봉이 점점 멀어져 갔다.
'관산 8.22km, 무갑산 9.87km, 앵자봉 2.77km의 이정목 근처에는 낙엽송이 빼곡히 들어 숲을 이루고 있고 철탑을 지나 또 철탑
을 지난다.
사람냄새가 날 것 같은 산기슭의 정겨운 풍경을 담아 '정암산,해협산, 염치고개'로 가는 이정목을 지나
퇴촌성당강하공소의 예쁜티가 나무에 붙고 천지암 순례길이란 띠도 수시로 나무에 붙어 길을 안내하는 너른 길을 따랐다.
'정암산 11.1km, 해협산 6.93km, 염치고개 5.21km'의 이정목이 있는 편한 안부를 지나 저편 자작나무숲이 쉬어가라 손짓하는 산
을 따라 통나무계단에 설치된 흰로프줄을 잡고 오름짓을 해 고도를 높혀 갔다.
저 멀리 해협산인가 보다.
철탑들이 줄지어 잇고 좋아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하늘향해 펼쳐져 어느 묘지를 지키고 있는 산릉에 서 있었다. 철탑 옆 남한
강의 모습이 흰줄처럼 잡히고 시선이 자꾸 그곳에 머물고 또 머무는 이유는 왜 일까.
삼각점 500.9봉을 사진으로 남기고파 핸드폰 사진으로 돌려 찍을 수 있었다.
진달래꽃이 피다 움추려든 아쉬움을 뒤로, 뒤로 잇고 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일까, 잣나무숲으로 이어져 갔다. '염치고개
1.54km'의 이정목과 철탑을 지나 해협산을 향해 갔다.
오르고 내리는 산의 풍경을 보여주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하늘이 보이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고요만 있을 땐 나 혼자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저 멀리 남한강 건너 양평의 이름모를 산들도 조망된다. 누군가 나무와 나무을 연결한 흰띠를 두른 산이 산길이 되고 그 길을 따
르는 산객은 낙엽이 쌓인 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다 진달래꽃피고 생강나무꽃길이 잇는 편한 산책로 같은 길이여서 여행객이 아닌가 했다. 너른 길을 걸으며 가야할 길
들이 아무런 장애물없이 또 다른 풍경의 길을 떠나는 내가 특권이 아닐런지...
흰비닐 띠 엮어 놓은 잣나무 숲을 내려서니 영동리의 표지석이 있는 염치고개였다. 염치고개
염치고개의 이정목에는 '국사봉 7.52km, 정암산 5.89km, 해협산 1.72km'의 포장도로의 절개지을 넘어 염동리 쪽 도로에서
산으로 오를 수 있었다.
묘지 앞 언덕에 앉아 있으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진행 할까, 그만 갈까 를 두고 고민하다 그냥 길을 떠나 해협산으로
작은돌탑 옆 산으로 오르는 길의 고도를 높혀갔다. '등산로 아님'의 이정목과 철탑을 지나자 비가 눈으로 바뀌어 또 다른 풍경
의 길을 걸어갔다.
산속에는 구름과 눈이 내리는 회색빛으로 물들고 파란하늘도 무채색으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피다 만 진달래꽃에도 생강나무꽃에도 눈이 쌓여가고 나무에도 흰눈이 내려 앉고 있었다. 24절기 중 청명이 엊그제 인 4월
인데 눈이 펑평 내린다.
[해협산 △531,3]의 산봉우리에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긴의자와 이정목이 있는 해협산 정상석에 내 발목도 잡혀 있었다.
해협산의 삼각점은 '이천22', 해발고도 527.7'를 표기하고 있는 삼각점 현위치판과 '해협산~정암산~금봉산~국사봉'의 등산
안대도를 뒤로 하고 해협산을 내려갔다.
겨울과 봄풍경을 함께 보여주는 멋진풍경을 남기고파 핸드폰을 꺼내고 또 꺼내어 찍었는데 사진보다 풍경이 더 멋져 보였다.
그 풍경에 취해 긴 산행길에서 느끼는 지루함을 잊고 눈 맞는 산객에서 지친 마음까지 따뜻하게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4월
8일, 눈이 내리는 산길의 최고 선물이 될 것.
'귀여1리 3.45km'의 이정목에서 눈이 비로 바뀌어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 준 오늘 산행을 뒤로 하고 귀여1리로 내려갔다. 다
음 산행을 기약하며 궂은 날씨가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내 마음도 산을 내려 놓아야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골금따라 흐르고 긴 하산길을 내려갔다. 귀여1리 마을 길을 따르며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동네의 한길
을 따라 긴 여정을 마쳐야 했다.
귀여1리 마을길에도 정암산과 해협산으로 오르는 이정목이 있으며 팔당호가 지척인 귀여1리 버스정류장에서 오늘 여정을 접었
다. 생쥐같은 내가 보였다.
옷을 갈아 입고 버스를 기다려도 언제올지 알 수 없는 기다림은 계속되고 이미 어두워진 저녁, 도로에는 차들이 씽씽 잘도 달린
다. 행여 태워줄까 주춤하다 말고 부스안으로 들어갔다 하길 몇 번 부부가 탄 승용차가 내 앞에 섰다.
광주시 남종면 팔당호를 따르다 광동교를 지나 45번 국도를 타고 서울로 편히 올 수 있었다. 태워준 고마움에 묻는 질문도 성
의 껏 답한 것 뿐인데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차는 동서울터미널앞에 날 내려놓고 떠나 갔다.
추워 저녁도 거르고 전철에 올랐다.
일주일 후
새 봄을 맞아 자율방범 대원들의 건강과 화합을 도모하고자 춘계 단합대회를 위해 '아침고요수목원'에 들러 봄꽃을 만끽하고 덕
수역으로 와 매운탕을 먹고 남종면까지 택배되어 38-2번 버스로 환승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팔당호로 내려오는 물줄기가
벚꽃과 함께 축제를 열고 있는 337번 지방도로 따라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버스의 종착역인 수청리에 내려놓고 되돌아 가
는 가 보다.
수청리 마을을 지나
여성제 묘역 및 신도비의 광주시 문화제 기념물 제8호인 안내판엣ㅓ 왼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따라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마을의 민가와 승현교회 지나 도로의 끝 산에는 벚꽃과 나무의 잎눈들이 새싹을 틔우는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때가 제일 예쁜
그림을 보면서 올랐다.
복숭아밭 사이로를 따라 산으로 사면을 따라 올랐다. 능선을 가늠하여 더듬적거리며 시간이 여유치 않아 서둘러야 했다.
[귀여1리, 수청리 마을회관]의 갈림길인 이정목에 닿았다. 지난 번 귀여1리로 하산하였던 이정목의 본릉에서 시작하는 기분
처럼 느껴졌다. 한 숨 돌리어 산릉을 뚜벅뚜벅 걸어 올랐다.
'정암산 2.56km'의 이정목을 지나
남한강이 보이는 꽃길을 걸었다. 너른길에 쌓인 낙엽이 발목을 잡고 올라야 할 꽃밭도 있고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갔다.
[x407.8봉]의 이정목
'흐드러진 산벚꽃이 또 다른 길을 떠나는 산객의 특권이겠지요'하는 혼잣말을 새김길하며 정암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산길
을 따랐다.
이정목이 있어 그 방향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면 산을 벗삼아 갈 수 있다.
서산 넘어 기울져 비친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고
'정암산'이라 쓰인 이정목을 따라 오르다 보면 .
큰 바위 하나가 길을 막고 있다. 바위와 나무 사이로를 올라 정암산의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정암산 정상!!
정상석이 있고 그 옆 (양수, 461)삼각점과 '해발 403m의 산으로 산의 정상에 큰 바위가 있어 그 바위를 중심으로 검천리와
귀여리의 경계를 이룬다 하여 정암산'이라 했다는 정상표지석 뒤면에 새긴 글을 보고야 산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산정 돌틈 사이로 솟아 난 소나무 한그루가 기울져 있고 걸어온 산줄기가 손에 잡힐 듯 하였다.
진달래꽃 피어난
저편 남한강의 풍경이 고스란히 조망되었다. 강 넘어 적갑산과 예봉산으로 내려 왔던 산길이 주마등 처럼 흐르고 북한강따라
여행했던 양수리유원지의 사진첩이 넘겨지고 있었다.
어느새 날이 흐려진 그 풍경에 구름 낀 산길을 운전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아뿔싸, 길 잘못 들었네!!, 하는 말로 귀여리가는 길따라 내려갔던 것, 그 길이 넓고 편해 나도 모르게 한바탕 귀여리로 또 내려
갈 수 있는 길을 되집어 사면을 치고 북진할 수 있었다.
x270.8봉을 지나 또 산비탈로 떨어지는 발걸음을 옮겨 갈 시간도 늦어져 배꽃이 피어나는 어느 민가의 농장 밖으로 하산하였다.
능곡마을길을 걸어 내렸다. 그런대로의 봄풍경이 여는 산을 내려온 능곡마을, 남한강이 하루의 여정을 끝내는 여행객을 맞았
다. 꽃길에 풍경의 드나들던 여행객처럼 스치는 추억을 벗삼아 시간이 가고 버스를 기다렸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버스를 기다려 남종면으로 왔고 38-24번 버스로 환승하여 경강선 광주역과 분당선 이매역, 7호선 전
철역 강남구청역, 1호선 전철역 송내역까지 수차례 버스와 전철을 환승하여 귀가 하여 한남앵자지맥의 산줄기 하나를 완성하였
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