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종착역 08 (2019 사토 아이코)
08 인생의 종반, 욕망도 정념도 메말라 가는 대로.
(85세 부인공론 2009년 10월 22일호)
08-1 잃어버린 "주부의 마음가짐"
우리 집에서는 옛날부터 오래된 기모노로 이불을 만들었다. 그래서 앞면도 뒷면도 매끈하고 촉감이 좋고 화사하기도 하고 뻑뻑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가벼운 깃털 이불이 전성시대이고 축의금 답례 등으로 자주 받게 되기 때문에 헌옷으로 만든 이불은 벽장 안쪽에 넣어둔 채 잊혀지고 있다.
얼마 전 벽장 정리를 하다가 그것이 나와서 옛생각이 하며 마당에서 말리다가 생각난 것이 있다. 그것은 30여 년 전에 내 일을 도와주던 여성을 몇 년 만엔가 만났을 때의 일로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저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어요. 선생님이 헌천에서 흰 토막 실을 뽑아 그 실로 이불커버를 꿰매던 일..." 헌옷으로 만든 이불에는 기성 커버로는 치수가 맞지 않아 빨래를 할 때마다 나는 하얀 이블커버를 꿰매고 있었던 것이다. 꿰매는 실은 새로운 실이 아니라 뽑아 두었던 헌실을 사용했다.
헌옷을 딸 때 나온 실은 빈통 속에 넣어 두었다가 바느질이나 옷깃을 달 때 등 약간의 필요에 따라 거기서 끄집어내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고 쓰는 틈틈이 내가 그것을 하고 있었던 것을 그 사람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일을 손자에게 말했더니 손자는 "흠 그렇게 가난했어" 라고 말했다. 아니, 가난해서가 아니라... 라고 말하다 그만두었다. 더 이상 설명하는 것도 부질없고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현실을 거스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주부의 마음가짐"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배웠다. 아마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어머니의 어머니 또한 그 어머니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종이 한 장, 한 가닥의 실, 밥 한 알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평범한 삶의 방식이었다. 검소검약은 미덕이었고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여자의 마음가짐이었다.
욕망은 남자에게만 허용된다는 사회 통념 속에서 여자는 당연한 것처럼 욕망을 버리고 있었다. 여자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추악한 일로 여겨졌다.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남자사회에서의 망언이라고, 그들사회의 의식을 증오 하고 있는 어떤 여성이, 어조도 날카롭게 말한 적이 있다.
"영웅이란 욕망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뻔뻔하기만 한 남자로, 단지 그 욕망의 강도가 남다르다는 것 뿐이다. 정복욕, 색욕, 권세욕 등 변변치 않은 욕망에 사로잡힌 불쌍한 남자일 따름이다!" 라고.
그러자 다른 여성이 "우리 남편은 변변치 못한 주제에 바람만 피웁니다" 라고 호소하고 있었는데, "요컨대 욕망이 강한 자가 영웅이 되고 욕망의 변변찮으면 바람둥이가 된다는 거예요! 남자만 욕망으로 치닫는 것을 허락받고, 여자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라고 옆에 있던 선배가 눈을 부릅뜨고 흥분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미숙했던 저는 그런 분위기에 당황할 뿐이었지만, 그로부터 격동의 수십 년을 거쳐 여성도 남성과 별반 다르지 않게 욕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우리나라가 그 무모한 전쟁에 돌입했다가 패한 뒤 황폐해진 땅에 서서 우리가 생각한 것은 "어떻게든 이 궁핍에서 벗어나고 싶다" 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땅에 부흥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꿈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고 싶다" 는 강한 욕망이었다. 그리하여 이윽고 이 나라는 경제대국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욕망의 힘이 나라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편리, 합리적, 편안함에 대한 욕망이 문명을 진보시켰다. 헌옷으로 걸레와 이불을 만들던 일은 우리의 삶에서 없어졌다. 이제는 이것들을 가게에서 팔고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걸레를 산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져가는 걸레는 수제가 아니라 상품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것도 이제 먼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은 가정에서도 걸레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헌 수건으로 만든 걸레를 아직 사용하고 있다.
편안함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일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즐기기’ 위해서라는 것(그 즐김도 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 것이다.
한때 아버지나 남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살림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손에 쥘 수 있게 되면서 여성의 욕망은 점점 커져 남성을 능가하게 되었다.
이제 물질의 충족뿐만 아니라 젊음과 미모에까지 욕망은 부풀어 올랐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의학, 영양학, 성형이 발달했다. 그런 여자의 욕망 뒤를 요즘은 남자가 따라가고 있는 모양세다.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모두가 '늙어도 젊고 건강하고 활기차고 싶다' 라고 염원고 있다. 옛날에는 늙음의 상징은 유료바둑. 박보장기, 금전, 동네 돌보기 등이었다. 여자는 옷수선 하기 등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남자도 여자도 게이트볼을 비롯하여 조깅 등산 사교댄스 등은 물론이고 사랑도 하고 싶고 섹스도 즐기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인식되어 아무도 시비의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라는 것, 그것을 의식합시다. 이제 늙다리이니까, 라고.말하지 맙시다.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부터입니다. 이제 인생의 끝을 한껏 즐깁시다. 꿈을 가집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파이팅” 이라고 한 노인모임에서 힘차게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좋은 시대가 되었군요, 라고 옆의 여성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것을 보고, '정말로' 라고 일단 맞장구를 쳤지만, 체념과 인내를 미덕이라고 배우며 살아온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는, 뭔가 석연치 않은 생각이 가슴에 남았다.
08-2 얼마 남지 않은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까?
욕망은 진보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만족을 얻으면 다시금 ‘더욱더’ 욕심이 생긴다. 부자는 돈이 모일수록 인색해진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더 맛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세상의 진미를 찾아 헤맨다. 여색에 빠져 천 명 경험하기를 목표로 하는 남자는 '더욱더'의 전형일 것이다.
더 많은 욕망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돈벌이에 정신이 없는 사람은 (옛날에는 '돈독 오른 사람' 이라고 경멸했지만)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욕망은 끝없이 부풀어 오른다. 그것을 잊고 몸을 맡기고 있으면, 다다르는 곳에 무엇이 있는가? 그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후기 고령자' 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가 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후기든 말기든 늙다리든 뭐든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소위 말하는 '후기고령자'가 되면, 아무리 짙은 화장을 하고 젊게 보이게 하여도, 자신의 몸의 쇠약함을 싫어도 알게 되는 것이다.
앞서가는 이야기이지만 곧 86세가 되는 나는, 이 원고를 여기까지 쓰는데, 몇번을 고쳐 쓰느라 벌써 나흘이 걸렸다(전에는 이런 것은 하루 만에 썼다). 몸뿐만 아니라 머리,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현상이고 나의 현실이다. 나는 이 현실을 제대로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무리한 저항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아무리 좋은 처방을 하여도 따라가지 못한다. 가능성이 가득 펼쳐지는 미래는 이제 없는 것이다. 죽음으로 가는 한 길만을 걷고 있을 뿐이다. 그 길도 그리 길지 않다. 길지 않은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
--- 욕망을 죽이며 걸어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을 마주하며 사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욕망을 없애고 고독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도달했다.
가끔은 "욕심 없으면 모든 게 족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만사가 궁해진다." 라는 어떤 스님(良寛和尚)의 말을 발견하고 나는 그 뜻을 굳게 하고 있다.
예전에 나는 쇠고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먹고 싶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일본옷 입기를 좋아해서 기모노와 띠, 신발에 이르기까지 색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입었다.
지금도 사토 씨는 멋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지금은 멋을 생각하며 입지는 않는다. 옛날 입던 기모노가 있어서 벌레 말리는 셈 치고 입고 있을 뿐이다.
가끔은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라고 집안 사람들이 말해도 "맛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무 된장국과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이 나의 "맛있는 것"인 것이다.
그런 자신을 깨닫게 되면 "그래 그래 잘 대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아닌데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욕망이 메말라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욕망이 메말라간다는 것은 편안해 지는 일이다. 그와 함께 원망도 질투도 걱정도 허세도 승부욕도 온갖 정념이 메말라간다. 그것이 "편안한 노후" 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쓸쓸하잖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쓸쓸하다고? 당연한 일이다. 인생은 외롭고 쓸쓸하게 마련인 것있다. 외롭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85세· 부인공론 2009년 10월 22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