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생각하다
丙戌 이월 스무 이레
정월, 이월 들어 비가 몇 번이나 내렸을까
비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다 나에게 비는 조금은 감상적이고 허무적인 존재다 학창시절 가을 비 내리는 하교 길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걸어 본 적이 있다
가을비 치고는 제법 많이 내렸었는데 우산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내리는 비가 좋아서 그냥 걸었다 모자챙에 낙숫물 같이 맺혀 떨어지던 그 날의 빗방울을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 올릴 수 있는 걸 보면 아마 그 날의 “빗속을 혼자서” 는 꽤 괜찮았었나 보다
또 그 날의 기억 중에 뭇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처연하게, 그런 줄 알면서도 태연하게 걸었던 걸 보면 맘속에 또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소심한 내 성격에 그 많은 시선들을 감당하기가 꽤 어려웠을 텐데 참 이상도 하다 맘속의 무엇이 비 오는 거리에서 그런 간 큰 짓을 하게 했을까
가만히 더듬어 보면 감상적인 것을 넘어 선 허무의 냄새가 배어나는 것 같다 그 나이 땐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겠지만 어쨌든 기억의 저 편에서 가끔 의식의 가장자리로 스며 나오는 것이 그리 싫지 않다
가끔 비의 종류에는 어떤 게 있을까 하고 생각 해 본적이 있다
대충 헤어보면 가랑비, 이슬비, 보슬비, 부슬비, 실비, 소낙비, 장대비 뭐 이 정도 아닐까 싶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억수같이 퍼 붓는 비는 장대비 하나의 이름 밖에 없는데(더 있는데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지) 비해 내리는 세기가 약한 비는 가랑비니 이슬비니 해서 그 이름도 정말 다양하다
장대비의 표본은 한 여름에 볼 수 있는 장마 비를 꼽을 수 있겠다 가뭄 끝에 내리는 장대비는 흙 마당에 먼지가 풀썩일 정도로 폭발적이다 지금은 없지만 60년대에 흔했던 양철지붕 아래서는 가히 공습경보 감이다 시작도 어찌 그리 공습과 흡사 한지 신기 할 정도다 후두둑 하는 예신이 끝나기가 무섭게 쑤아 하는 소리와 함께 엄습하면 ‘우다다다 타당탕탕’ 얇은 양철 판을 뚫을 듯이 부딪혀 오는 그 맹열함에 짜릿한 쾌감마저 맛 보곤 했다
그러나 장맛비는 예나 지금이나 지루하고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시작의 짜릿함이 지루함을 넘어 두려움과 고통으로 변하기 십상이고 지붕이 새고 물난리가 나면서 어디 축대나 무너지고 산사태라도 날라 치면 비에 대한 느낌은 이미 지긋지긋 하다 못해 저주의 대상이 되어있다
그럼 소낙비는 어떨까 기세는 장맛비에 결코 뒤지지 않고 시작과 끝이 길지 않아 상큼 할 정도다 소나기 내린 뒤의 하늘은 더욱 맑고 깨끗한 걸 보면 더욱 그러하다 마치 한 순간에 산화(散華) 하듯 퍼 붓고 멈추어 버리는 양이 더욱 멋져 보이기도 하다
가을비는 낙엽을 추하게 하고 남은 잎새들을 모질게 떨구어 가을의 축제를 거두고 겨울의 문턱을 밟는 것 같아 그리 반갑지 않다 겨울비는 설상가상 같은 존재로 몸과 마음을 더욱 스산하게 한다
비는 봄비가 으뜸이다
가랑가랑, 보슬보슬, 부슬부슬, 이슬비, 실비까지 봄에 내리는 비는 이름과 가짓수에 있어 거의 예술이다 살펴보면 가랑비와 실비는 사전적 풀이 에서는 같다고 한다 세우(細雨)라고도 하는데 종일 내려도 땅만 적실 뿐 빗물이 괴이거나 하지 않는다
이비 보다 약한 비가 이슬비다 그리고 이슬비 보다 가늘고 약하게 내리는 비가 는개다 마치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의 비라고 하니 상상을 초월 한다 흐르듯 떠 다니는 는개는 단연 비의 白眉라 할 수 있다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다 마음이 없으면 더욱 알 수 없고 눈을 뜨고 걸어도 잘 알 수 없다 가만히 이리저리 살펴보지 않으면 내리는지 조차 모른다 오히려 눈을 감고 마음을 모으고 걷는 다면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는개다
언젠가 는개를 본 적이 있다
집중하지 않아 미처 알지 못하는 바람에 마치 떠나는 뒷 모습을 보듯 아주잠깐 동안 이었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꿈결 같이 왔다가 가 버린 듯한 그 느낌 이 세상에 는개가 있음을 알지 못 하던 때였다 아쉬워 할 수 조차도 없는 너무나 짧은 는개와의 조우(遭遇)였다 나는 아직도 그 때의 는개를 잊지 못한다
는개는 내린다기 보다는 핀다는 게 맞다 안개 피듯 하지만 안개와는 또 다르다 언제 피었는지 언제 졌는지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
조금만 주의가 산만해도 는개는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그것은 결코 까탈스러움이 아니다 구태여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을 뿐이다 어쩌다 있음을 알아주어도 그 뿐, 적어도 는개에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는개는 그런 존재다 그래서 더욱 신비로운 것 인지도 모른다
비에 대한 소회(所懷)를 얘기 할 때면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만약 내가 비라면 어떤 비일까 하고, 가랑비? 보슬비? 부슬비? 소낙비? 아니면 실비, 장대비? 는개? 갱상도에 출몰하는 야(여)시비? 이날 이때 까지 생각해 봤지만 꼭 집어 말할 수가 없다 이상한 건지 당연한 건지 그것도 알 수 없다
어떤 비든 비 내리는 날은 왠지 기분이 좋다 우수(雨水)도 벌써 지났고 며칠 후면 경칩(驚蟄)인데 요즘처럼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면 더욱 좋다 어디쯤엔가 오고 있을 봄의 냄새가, 봄의 소리가 빗소리에 실려 온다 이 나이에 어쩌다 춘정(春情)에 잠 못 드는 밤이라도 찾아오면 영화제목 같은 뼈와 살이 타는 밤에 실비라도 내린 다면 더욱 아니 좋으리
첫댓글 허튼소리님 땜시 책은 안봐도 되지롱!! 고마버요!!
ㅎㅎ 전에 리포트 낸거 자료 좀 주시유...
??
허튼날에님! 옛적 작품 한개 산제비님 주고 술얻어묵자!!
글씨 그거이 리 머시기라 니께 헷갈리는 구만 11행 시는 있는디...
허튼님!!! 글 솜씨가 넘 좋네요. 잘 계시죠?
안주까지 사라 이시미다 숨도 잘 쑤 가민서..ㅎㅎ
산-제비가 젤 좋아하는 건/제-풀에 갈때까지/비-산 술 얻어 먹는 거라고 글 달아 봤더니//지-당하신 말씀 헤헤헤 눈치없이 누군가/리-플 달다가/개- 맞듯이 얻어 맞고/굴-신도 못 하네//허-튼소리 따라 할려거든/ 튼-실이나 하든지../날-고마 쥑이삐라 쥑이바라 바라 바라/에-이고 데이고 능선에 곡소리 나는구나--아 뜨벌
ㅎㅎㅎ
집에서 작품활동만 하지 마시고 산에 오셈!
비 중의 비는 급시우라고 하든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