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났다고 어느새 이모라고 불러도 자연스러운 동성교회 집사님들과 큰샘물님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회원들은 조별로 나뉘어 심방을 가게 되었다. 대장님의 집합 명령에 얼떨결에 모이게 된 이 목사님과, 잠님과, 제이비님과, 내가 못 오신 분들을 위해 도시락을 하나 더 챙겨 가시는 할머님을 따라 가게 되었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시력을 잃으신 할머님과 시력과 청력이 몹시 안 좋으신 할아버님 두 분이 사시는 집이었다. 방금 전 식사를 끝내셨는지 방 가운데 찬 없는 상이 놓여져 있고, 방안에 밥알과 물이 많이 흘려져 있어서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려 함께 기도 후, 방을 대충 치우고 상을 들고 다 찢어진 모기장으로 만들어진 출입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 바닥에는 장판이 깔려져 있고, 바닥 높이보다 조금 낮은 수도 시설이 보인다. 여기저기 흘려진 물 때문에 양말이 금방 젖는다. 방 안에서 느끼지 못한 역한 냄새가 난다. 부엌 바닥에 쏟아진 음식물이 썩어가고 있었다. 가스렌지 위에, 부엌 바닥에 쌓여 있는 냄비 속에서 음식물들이 더위에 썩어가고 있었다. 걸레로 우선 바닥부터 닦아 내고 있는데, 왈칵 오바이트가 쏟아진다. 부엌 구석에 놓여 있는 돼지먹이통에 오바이트를 쏟으면서 누가 볼까 봐 걱정을 했는데, 누가 본 것도 아닌데 스스로 부끄러워서 설거지 핑계대고 수돗물 콸콸 틀어 놓고 썩은 음식물들을 치우면서 한참을 훌쩍거리며 울었다.
보지 못 하시는 할머님이 나중에 쓰기 좋게 상과 설거지한 그릇들을 방 안에 다시 들여 놓고 걸레 빤 것을 들고 들어와, 이 목사님 인도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내가 부엌을 치우는 동안 우리들을 위해 할아버지가 기도를 해 주셨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하다. 진주에서 사셨다는 할머님……. 목사님과 얘기가 잘 통한다. 누구냐고 묻기에 양미동 집사랑 같이 온 사람들이라고 하자, 양 집사를 찾으신다.
여름에 시원한가, 겨울에 따뜻한가 물음에 수도도 부엌 안으로 들어와 있고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감사해 하신다. 방금 전까지 내가 하수구랑 바닥높이랑 비슷해서 물이 부엌바닥에 고인다고 불평했던 조건이었다.
낮에는 뭘 하시는지, 라디오는 나오는지……. 목사님이 물으시자 냉장고 위에 올려진 라디오를 가리키시며 라디오가 고장 나서 못 듣는다고 하신다. 목사님이 라디오를 내려서 주파수를 맞추자 신기하게도 방금까지 삑삑거리던 라디오에 기독교방송이 잡음하나 없이 깨끗하게 잡힌다. 채널 돌리는 다이얼을 고정시켰으면 좋겠는데, 테이프가 있으면 붙이든지 양초라도 있으면 녹여서 고정시키면 되는데 아무것도 없다. 라디오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 붙이고 그 위에 검은 고무줄을 돌려서 고정을 시키고, 먹으라고 내 주시는 과자를 들고 일어섰다.
나오는데, 평상에 최무경 할아버님이 앉아 계신다. 작년 여름에 성경책 표지에 내 이름을 쓰게 하시고, 기도 해 주시겠다고 하신 분이다. 아는 척하면서 내 이름을 말씀드리자, 성경 표지를 열면서 반가워하신다. 그 때 같이 이름을 적어 둔 몇 사람을 물으신다. 함께 못 왔다고 설명 드리고, 한 사람은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갔다고 하니까 무척 기뻐하신다.
최무경 할아버님의 얘기를 들어 주고 계시는 잠님과 제이비님……. 들으면서 지루하던 차에 나눔님이 다른 건물에서 나오고 계신 것을 보고, 방금 전에 들렀던 집 할머니가 양 집사를 보고 싶어 하신다고 전하자,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집으로 들어가신다.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나눔님의 팔을 손목밖에 남지 않은 팔로 꼭 껴안고 어린 아기처럼 애교를 부리면서 놓을 줄을 모르신다.
인사를 드리고 나와 동성교회 마당에 모여 저마다 심방에서 느낀 점을 얘기 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남들 얘기를 들으면서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고개 숙이고 있는데, 눈앞에 도마뱀이 지나간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도마뱀이었다. 신기해서 발끝으로 장난치고 있다가 꾸중도 들었다. 내 차례가 되어 소감을 말 하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말을 못 하고 울기만 하다가 바보같이 끝냈다. 창피해서 원~
먼 길을 돌아가야 하기에 짧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소록도에서 철수 할 시간이 다가온다. 눈시울 붉히시는 소록도 집사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 심방 길에 오른다. 처참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이 병실마다 채우고 있다.
그래도 말갛고 깨끗한 환자들의 옷과 얼굴들이 병원 간호사들의 노고를 말 해주고 있다.
한달에 한번씩 병원으로 할머님들의 목욕 봉사를 오신다는 엄마가 참 좋아하신다. 매트리스 아래 떨어져 있는 할아버지를 도와주시는 이 목사님과 영현님……. 환자분들을 아기 어르듯 하는 여자 회원들이 보인다. 천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낯익은 장로님 한분이 입원해 계신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만 장로님~ 하고 소리 냈다.환자분들을 돌면서 준비한 위로금을 드리고, 목사님들의 기도에 저마다 한마음이 되어, 간절한 기도를 마음속으로 드렸을 것이다.
병원에서 나와 단체 사진을 찍고, 광주에서 오셨던 임광임님이 먼저 떠나시고, 조 목사님의 차에 엄마와 함께 타고 선착장에 나오니 녹동으로 나가는 차가 즐비하다. 발 빠르신 조 목사님 덕분에 가장 먼저 녹동으로 나와 집에 들러 아버지를 잠깐 보고, 챙겨주시는 아이스크림과 마늘과 완두콩과……. 몇 가지를 싣고 다시 모여서 녹동을 벗어나는 길에 다시 차량 배치를 하게 되었다.
5호차 최영천 목사님이 익산과 청주를 들러 바로 서울로 가신다고 새 차에 김호선 강도사님과,
꽃다리님과, 형근이, 하얀이와, 진달래와, 써니와, 주기쁨을 태우고 출발하시고,
2호차 윤건주 목사님이 부천을 들러 양주로 가실 계획으로 박동훈, 장명숙님과, 제이비님,
김신자님을 모시고 출발,
3호차 솔뫼농원을 들렀다는 계획을 중간에 바꾸신 조정식 목사님과, 정용길님이 떠나시고,
4호차 이백진 목사님이 정순회님을 내려드리고 솔뫼농원으로 오시겠다고 출발,
1호차인 우리 차에는 나눔님과, 잠님과, 지영현님, 큰샘물님과, 미룡과, 세 아이들이 탔다.
아쉬운 이별들을 나누고, 돌아오는 차 안이 조용하다.
다들 잠이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