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와 이미지 만들기
삼국지 관련 서적으로 최고의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삼국지 강의>에서 이중텐(易中天) 교수는 '역사적 사건'과 '역사 속 인물'들은 세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첫째는 정사(正史)에 기록된 얼굴이다. '역사상의 이미지'로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도 엄밀하게 얘기하면 실제 벌어졌던 일, 바로 '역사의 진상(眞相)'과는 다르다. 두 번째는 소설과 희곡을 포함한 문예작품 속의 얼굴로 바로 '문학상의 이미지'이다. 당연히 특정 인물에 대한 극적인 과장이나 폄하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일반 백성들이 주장하거나 염원하는 모습인 바로 '민간의 이미지'이다. 사람들마다 자신들의 바램이나 호오(好惡)를 담다 보니 이중텐 교수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모두들 한 권의 '족보'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위에서 얘기한 세 가지 이미지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인물은 아마 관우(關羽)일 것이다. 정사 속에서의 관우는 촉한(蜀漢)을 세운 유비(劉備)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최고의 장수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로 넘어 오면 관우는 충의(忠義)의 상징으로 독자들의 피를 끓게 하거나 한숨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를 가장 많이 보여 주는, 실질적인 주인공 역할을 한다.
어릴 적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여섯 권으로 된 <소년삼국지>로 삼국지 순례를 시작했는데, 4권에서 관우가 죽으며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고, 5권에서 제갈량(諸葛亮)이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했다(死孔明走生仲達)'의 전설을 만들며 숨을 거둔 이후는 오직 완독을 목표로만 읽다시피 했다. 관우가 죽으면서 삼국지 책을 덮고 더 이상 읽지 않았다는 사람도 많이 봤다.
<남한산성>의 소설가 김훈 선생이 작가이자 번역가이기도 했던 자신의 부친 김광주 선생을 삼국지와 관련하여 회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부친이 삼국지에서 관우의 죽음 부분을 번역하고는 한동안 시름에 잠겼다고 한다. 그 정도로 삼국지에서 관우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문학상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개인적인 관심사나 인생의 바램을 관우와 결부시키며 숱한 무당들의 수호신으로, 비밀결사의 원조로, 재물을 가져다주는 재신(財神) 등 민간의 최고 인기스타로 관우의 이미지가 완성이 된다.
역사 속의 인물들을 떠나서 제품이나 기업에도 여러 가지 이미지가 존재한다. 위에서 얘기한각각의 이미지와 연계하여 보자. 우선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이미지가 있다. 작게는 가격이나 기능 등의 물리적인 속성에서부터 시장에서의 성과, 기업으로 치면 수익이나 물리적 크기 등의 규모에 따른 이미지가 첫째이다. 둘째로는 기업이나 제품이 광고나 커뮤니케이션에서 주장하고,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이미지, 브랜드 이론상으로는 '아이덴터티(Identity)'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중이나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이론에서 바로 '이미지(Image)'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시장성과나 규모 등의 첫째 이미지는 뛰어난데, 기업이 나가고자 주장하고자 하는 바도 확실하지 않고, 활동도 미미하고, 소비자들에게 별다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B-to-B기업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B-to-B기업은 아니더라도 최근까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같은 경우는 첫째 이미지 부분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지만 기업 차원에서 심각하게 커뮤니케이션할 방향을 잡지 못했고 활동도 미미했으며, 대중적으로는 기업 중 제1의 공적(公敵)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에 시달렸다.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열심히 하며 두 번째 이미지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소비자의 반응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역풍을 맞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펩시콜라가 '아쿠아피나(Aquafina)'라는 생수를 내놓으면서 시장에 돌풍을 불러오자 코카콜라는 '다사니(Dasani)'라는 브랜드 제품으로 반격에 나섰고, 대대적인 프로모션 활동을 전개했다. 문제는 다사니가 바로 자연에서 추출한 물이 아니라 수도물을 정제한 것이란 사실이었다. 이를 코카콜라는 'Pure', 'Purified'등의 단어를 광고나 포장에서 사용하며 자연수의 이미지를 주려 했는데 이것이 영국 언론과 소비자가 의문을 제기하며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 결국 코카콜라는 다사니가 '정제한 수도물'이라는 치욕적인 고해 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시장에서도 딱히 이미지가 형성이 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알릴 노력을 하지도 않았는데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경우가 있을까?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작년말 화제가 된 MBC드라마인 <별순검>은 2005년에 시청률, 바로 시장에서의 성과가 좋지 않다고 바로 종영을 시켰으나, 팬들 바로 충성스런 소비자들의 거의 극성에 가까운 성원으로 케이블TV에서 다시 살아난 작품이다. 소비자 누구라도 하나하나가 불씨가 되어 광야를 불사를 수 있고, 제품이나 기업을 접할 수 있는 매체와 무대가 다양해진 디지털 2.0시대에는 이러한 경우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세 번째처럼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그것을 기업이 원하는 방향과 맞추어 불을 댕기고, 시장에서 불길이 치솟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변덕스럽다. 언제 대용품을 찾아서, 다른 흥미 거리를 찾아서 옮겨갈 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시류에 맞추듯이 자신을 정의하였을 때, 그 자체가 빠져 나올 수없는 덫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만들고자 하는 이미지의 꼭지점 만을 듬성듬성 점만 찍은 것처럼 뿌려 놓고, 소비자들이 알아서 점들을 연결하도록 유도하여, 자신이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시장에서의 성과에 그에 따른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쫓아온다.
글쓴이 박재항은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9년 10월부터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그는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등 저서 두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