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아프다고 누워서 비비고 뭉개다가 일어나보니 겨울이 꽁꽁 얼어붙은 채 창문 밖에서 오돌돌 떨고 섰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탁탁 두드리니 그 맵고 알싸함은 따끈따끈한 국물이 흥건한 매운 짬뽐 한 그릇과 대비되어 천정에 둥둥 떠다닌다. '맞아 짬뽕 한 그릇 배달시켜야지 ㅎㅎ 춘래원에서 말이야 긴긴 겨울동안 보초 선다고 고생할 겨울이녀석도 불러 들여 얼큰한 짬뽕 국물맛이라도 맛 보게 해 주어야 쓰것고...
당장 전화를 걸었다. "여보시오 그게가 그 유명한 춘래원이오? 나가 시방 전화한 곳은 그 뭣이냐 5.18 광주민주항쟁이 고 짬뽐 한그릇 땜시 일어났다고 착각하고 난리벅수가 난 고 춘래원이 맞냐고요?ㅎㅎ 아따 맞다고라!!! 그람 따장님도 신작로님이 맞당가요? 거시기 뭐냐 그대옴마가 고마 신작로에서 똥 누더키 '떵'하면서 낳았다는 옴마 맞아부러요? 그람 날씨도 억시기 추븐께 빨랑 짬뽕하나 해서 겁나게 빨리 날아오시오 참 탕수육 하나덤으로 낑가주시고요 멀리 거제도에서 배달시킹께 고 정도는 당근이고... 아따 참말로 배가 고파 뒤지것네 며칠동안 굶었더니 하늘이 온통 고놈의 빨강 짬뽕색으로만 보이네요 잉 ... "
, 1980년 5월 17일 저녁 , 춘래원(광주의 변두리 허름한 중국집) 손님1:: 어이 ~~ 여기 물 쪼까 주소 (신문 보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와불고, 서울에도 봄이 와 불고... 진짜로 봄이 왔는가 모르것구마이! 으미, 엊그제 서울역에 20만명이 모였다는데... 손님2; 뭔 구경났냐?(신문 보며) 어디 ...긍께 금두환이가 누구여? 손님1 :이런 무식을 마당에 쌓아서 가마솥에 찜쪄 먹을 인간아! 이건 금이 아니고 전이여 전두환이!!!
손님1: 허허 주인장 ... 나가말시 군대를 카투사 나왔잖여 , 거기서 미군아들하고 순영어로 씨불고 한 3년 살았더만 한문은 죄다 까묵어버렸어 내 말이 언...더...수터디항가?
스님: (식탁으로 가며) 자장하나 주시오 지나: 고기는 빼구요? 스님: 나무관세음보살... 작로: (달려 와 은근히) 초파일도 얼만 남지 않았응께 힘 쪼가 쓸라믄 잘 드셔야지라 제가 알아서 대령할게요잉
순이: (스님에게) 박정희는 김재규가 죽인게 아니다, 미군 부대에 있는 C I A가 죽였다 몰랐지??? 스님: (격하게) 주둥이는 ...(진정하고) 그런 말 함부로 하는게 아닙니다.
1980년 광주의 5월은 " 순이처럼" 미치지 않고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었던 잔인한 계절이었다.
신작로: 연극 짬뽕의 주인공, 1944년생 원숭이띠, 36세로 춘래원 주인 다소 쫀쫀해 보이는 남자지만 주변정세에 상관없이 열심히 일해 돈 벌어서 남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고 사는것이 꿈이다 길다방의 종업원 오미란과 결혼을 꿈 꾼다. 잔정은 얕지만 속정이 깊은...
백만식, 춘래원의 배달원으로 틈만 나면 여자 꼬시러 고고장에 가고 닥치는대로 사는 스타일이지만 춘래원 주인인 신작로의 여동생 지나가 좋아한다. 오늘만해도 배달일 빨리 끝내고 고고장으로 갈 차림으로 신이 난 만식이...
1980년 5월17일 저녁 , 바빴던 일상을 끝내고, 다음 날 소풍 갈 준비로 신이 난 춘래원 식구들 김밥도 싸고, 사이다도 준비하고...
짧 춘래원의 예쁜 지나씨, 신작로씨의 동생으로 어릴적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지만 언제나 웃는 모습이다. 가방 끈이 짧아서 단순하고 입이 거칠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백만식을 좋아하지 말란 법이라도 있나여?
배달일 끝낸 뒤 , 고고장에 가려고 깔롱 부리고 나온 만식에게 역사를 바꿀만한 환장할 배달이 기다리고 있을줄이야 ...
지나:( 걸려 오는 전화를 받으며) 춘래원입니다.배달이여라? 워메 어쩐다요? 만식:(전화를 뺏으며) 시방 영업이 끝났소 삼양라면 끓여드소! 작로:(달려 가서 전화를 뺏아) 아 여보소 ? 아 배달 되부러요 예 당연하지라 손님은 왕인디 말씀하쇼 자장하나 짬뽕둘 탕수육하나, 탕수육요 극정마쇼 겁나게 빨리 보내 드린당게요, 로야르 아파트 5동 18호요 좀만 기달리쇼 워메 탕수육이라 탕수육 ~~탕탕탕수육~~~!!!
11980년5월18일 광주 ~~~
워메 이게 무슨 난리요 광주에 빨갱이가 ? 폭도가 겁나게 날뛴다네요 우짠데여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참말로 얄궂은 시상이 온 날 순진한 춘래원 식구들은 엉뚱하게도 짬뽕 한 그릇의 잘못 된 배달땜시 광주사태가 발발했다고 생각하는 웃지 못할 블랙코메디를 출산했다.
우리들의 선량한 소시민인 춘래원 식구들이열심히 살아가던 그 해 오월은 너무도 잔인하였다.
작가의 기발힌 상상력 하나가 멋진 연극 '짬뽕'을 빨갛고 쫄깃하게 뽑아냈는데...
한국의 가장 가슴 아픈 현대사인 5,18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이 작품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룰 수 밖에 없는 무거운 내용이다.
아름다운 5월의 소풍은 끝내 피빛으로 물들었고 소시민의 작은 행복은 깨어지고 ... 춘래원의 사랑하는 가족들은 신작로만 남겨 둔 채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간 슬프디슬픈 이야기 ...
연극 , 짬뽕은 올 해로 스무살이 된 극단 예도의 앵콜공연이었다. 2009년 12월24, 25, 26일 , 3일간 무대에 올려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뜨겁게 받은 작품으로 인구 20만을 조금 넘는 지방 중소도시인 거제도는 연극의 불모지였다. 척박한 이 곳을 개척하여 문화의 섬으로 행복하게 가꾸어 온 사람들이 있다. (극단, 예도 사람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다시 무대에 올릴 멋진 다음 작품을 기대 해 본다.
***무대에 선 사람들.*** 신작로(소길호) 백만식(송대영) 신지나(이지원) 오미란(김혜민) 스님,앵커(하병호) 순이,여앵커(신수영)손님1,요원 백일병(차병배) 손님2,요원2(이 정우)
따끈한 짬뽕 국물이 무지 생각나는 날에 맛 있는 연극 "짬뽕"을 본 여운은 오래 지속 될 것 같다.
원작: 윤 정환 연출: 이 삼우 |
출처: 빨강머리앤 원문보기 글쓴이: 빨강머리앤
첫댓글 배우에 신지나(양해지), 순이/여앵커(주은희)가 빠졌습니다...글쓰신 선생님께서 첫날공연을 보셔서....빠졌나봅니다...^^
아 하병오인데 제발좀!~~~~~
이왕이면 스탭진도 이름넣어주셨으면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