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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흥신소] 11 - 사건파일 no11 '낙타의 등을 부러트리는 것은 결국 한 개의 지푸라기'
S#1. 프롤로그(준수의 일대기)
-간난아이사진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사진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사진
-보조바퀴를 단 자전거를 타는 아이사진
-성인용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아이의 사진
-초등학교 졸업사진
-친구들과 찍은 사진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찍은 사진
-동생과 찍은 사진
-중학교 졸업사진
-자기방에서 찍은 사진......
-목욕후 이두박근을 자랑하며 찍은 장난스런 사진(1989년 9월 2일)
시간이 흐르는것처럼, 한사람의 짧은 일대기가 부드럽게 지다가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멈춘다.
소년도,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 고등학생 남자아이의 웃는 얼굴이 너무 환해서
세상의 어떤 불행도, 사고도 그와는 관련이 없을 것 같다.
(*굳이 이 부분을 씬으로 독립시킨 것은 이 씬이 어떤 한인간의 전부라는 느낌이 들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절단된 그의 꿈, 희망, 미래의 느낌이 어느정도 애절하기를....
그러나 사진속 얼굴들은 그런 걸 모르는 채 환하게 웃고 있는...그 또한 모두 과거가 되어서 빛바랜 느낌도 어느 정도...)
S#2. 벽제 화장터 정원(낮)
목욕후 이두박근을 자랑하며 찍은 장난스런 준수의 사진을 끝으로 앨범의 사진은 끝이 난다.
그 다음은 앨범의 빈 여백.
용수의 뒤쪽에 무열, 희경, 은재가 서 있다.
무열이 희경을 툭 친다. 용수에게 말을 걸라는 듯.
그러나 희경이 무열을 더 세게 툭 쳐서 무열이 용수 옆으로 몇걸음 밀린다.
그 바람에 용수가 흘깃 쳐다본다.
무열 : (엉거주춤 다가오면서) ...뭐 보는거야?
무열과 희경, 은재가 용수에게 다가온다.
용수 : (사진의 빈 여백에 마치 사진이 있는거처럼 손가락으로 쓸어보며) 그다음에는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있을테고.
우등상 같은거 받았을 거야. 라이온즈클럽같은데서 주는거. 공부는 잘했으니까. (한장 넘긴다) 이쯤에는 대학교
입학사진. 엠티가서 한 장 찍고. 의대 간다 그랬으니까 의사 가운 입고 한방 더. 군대는 어디로 갔을까? 낙도 보건소쯤?
(빈 앨범을 넘겨가며) 연애도 한두번, 실연도 하고, 술먹고 토하기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 서른 즈음에...
아이는 두명정도... 워낙에 y염색체가 강렬한 집안이라 둘다 아들일지도 몰라. 40쯤 되면 배도 나오고, 머리고 빠지고.
바람은 폈을까? 그 주제에. (킬킬 웃는다) 50되면 성인병도 한두개. 60넘으면 은퇴하고, 70. 관절염으로 고생하다가
(마지막장이 된다) 결국은 죽었을거야? 그치?
무열 : (참고 듣다가 결국은) ...뭔소리야?
용수 : (앨범을 접는다) 어쨌든 죽었을거라구.
용수는 화장터 굴뚝의 연기를 쳐다본다. 한손에 'happybirthday'플라스틱 장식을 쥐고 있다.
용수는 슬픈걸까? 아닌걸까?
희경과 무열, 눈빛을 교환한다. 용수에게 뭔가 위로의 말을 해야할 것 같은데 모르겠다.
희경 : (소심하게 손을 든다) 저기..
용수 : (돌아본다)...
희경 : (눈치보면서) 혹시.... 울고 싶은거라면 자리를 피해줄게.
용수 : ...
희경 : 외길 눈치인생 나도 지금은 상황파악이 좀... (용수 눈치를 본다)
용수 : (슬쩍 웃으면서) 뭐 별로...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먼데를 본다) 왜 이렇게 쉽게 장난처럼 부서져버리는가 싶어서...
삶이란게...
용수가 자리를 뜨자 큰일을 치른것처럼 무열과 희경이 한숨을 쉰다.
은재 : 용수씨 부모님한텐 연락이 안됐어요?
무열 : 하긴 했는데...이렇다 저렇다 뭔 말도 없고...그거 되게 뻘쭘하대.
-----타이틀 (의뢰 NO 11. 낙타의 등을 부러트리는 것은 결국 한개의 지푸라기)-----
S#3. 황금빌딩 전경(낮)
창문으로 보이는 수선집.
수선집 여자가 목덜미에 파스를 붙이는게 중요하지 않게 보여진다.
슈퍼도, 꾸질꾸질한 황금빌딩도 예전 그대로다.
카메라 위로 빠지면 화려한 고층건물들 사이 섬처럼 작고 초라한 황금빌딩이 도드라진다.
가까운데 덕수궁도 보인다.
(은재) : 그런데 왜 하필 황금빌딩이었을까요?
S#4. 은재네 집 거실(낮)
은재, 무열, 희경이 모여 앉아 있다. 희귀한 열대과일을 먹으며 회의중이다.
은재 : 용수씨 형은 왜 하필 황금빌딩에서 살해된걸까요?
희경 : (우물거리면서) 그야...거기 살았으니까
은재 : 내 얘기는 왜 백민철 일행은 그날, 황금빌딩 옥상에 왔던 거냐는 거예요
희경과 무열...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다.
서로 눈치보며 과일만 부지런히 집어먹는다.
은재 : 그리고 왜 하필 조만기는 황금빌딩 지하실 벽속에서 죽은걸까요? 단지 우연일까요?
무열 : ....
희경 : ....
은재 : (생각에 잠긴다) 뭔지 모르지만 그 빌딩에는 중요한 뭔가가 있는 것 같해요.
소강상태...
은재는 뒤섞인 퍼즐을 맞추려는 듯 골똘히 생각에 빠지고.
무열과 희경은 머리쓰는 일에 젬병이라 은재 눈치를 본다.
그러다 보니 과일먹는것도 눈치가 보인다.
은재 :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숨을 쉰다) 용수씨는요?
S#5. 은재네 집 손님방(낮)
용수가 자고 있다.
잔뜩 웅크린채로 마치 물에 젖은 솜처럼 가라앉아있다. 잠든 그의 얼굴이 고단해보인다.
용수는 손에 그 케잌 장식용 플라스틱 조각을 쥐고 있다.
(무열) : 잠만 자. 벌써 며칠째야?
S#6. 은재네 거실(낮)
무열 : (손가락을 세어본다. 3일째) 허리도 안아픈가...
희경 : (과일을 먹는 동시에 말하는) 꼭 약발 떨어진 약쟁이 같지?
...그렇다고 뭐 그전에 뽕맞은것처럼 활기찼던 것도 아니지만...
무열 : 정신적 충격에 의해 더 게을러질수도 있나?
희경 : 아직 학계에 보고된 바는 없을걸
무열 : 용수형 게으름의 한계는 어디까질까?
희경 : 니 무식함의 한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머리쓰는 얘기가 아닌 농담따먹기가 나오자 갑자기 활기차져서 부지런히 집어먹는 무열과 희경.
은재가 빤히 쳐다보자 무안해서 입을 다문다.
은재 : (정리하듯) 희경씨는 고종이 유언을 남겼다는 이재승의 후손을 찾아보도록 해요. 황금이나 지도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요 무열씨는 1989년 당시에 조만기가 황금빌딩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해요
희경은 은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게 얼굴에 나타난다.
은재 : (희경을 보며) 다른 생각 있어요?
희경 : 아니 뭐...그런건 아닌데...은재씬 뭐할건데?
은재 : 최면치료를 다시 받아볼 생각이예요.
은재가 방으로 들어가버리자.
희경 : 저것의 재수없음도 한계가 없다. 응 그치?
무열 대답없이 마지막 과일을 집어먹는다.
S#7. 몽타쥬
-대동회(조선왕족 이씨 종친회) 사무실 앞
희경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기원
기원집 할아버지가 바둑돌을 닦고 있는데 그앞에 놓여지는 음료수 박스.
무열이 씨익 웃는다.
-최면치료실
은재가 긴 의자에 눕는다.
-은재네 집 손님방
용수가 자고 있다.
-대동회 사무실앞
희경이 사무실에서 나온다.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날려버린다. 뭔가 기분나쁜 얼굴이다.
-기원
기원집 할아버지 음료수를 시원하게 들이킨다. 기대에 차서 쳐다보는 무열에게 고개를 저어보인다.
-최면치료실
은재가 한숨을 푹 쉬며 일어난다.
-은재네 집 손님방
용수가 돌아눕는다.
S#8. 거실(밤)
은재, 희경, 무열이 회의중이다.
희경 : 이재승 이사람 나름대로 유명하던데. 광복이후에 반민특위에서 실형을 받은 유일한 친일종친이래.
그 덕분에 왕실 족보에서 빠져갖고,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자료에 없다네.
(점프)
무열 : 조만기가 황금빌딩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알수가 없어요. 지금 집주인 할아버지는 90년에 이사왔고,
그전에 있던 집주인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구요. 동네 노인들도 다 그때 일은 모른다고 그러고...
은재씨는 어떻게 됐어요?
은재가 고개를 젓는다.
무거운 분위기가 한동안.
은재 : 용수씨는요?
S#9. 손님방(밤)
용수가 자고 있다. 잠든 것이 아니라 깨어있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S#10. 거실(밤)
은재 : (일어나면서) 암튼 용수씨가 기운차릴때까지 좀만 더 노력해봐요.
무열 : (은재가 방으로 들어가면) '용수형이 없어서 아이디어가 안나온다'라고 생각하는거 같지?
희경 : 사실이잖어.
무열 : (급인정하는) 그건 그래.
희경 : (방으로 들어가며) 호적에서 파내진 인간을 어떻게 찾으란 말이야.
S#11. 손님방(밤)
무열이 들어온다.
용수는 아직도 침대에 누워있다.
무열 : 형 어디 아퍼?
용수 : (눈도 못뜬채로) 아니..
무열 : 그렇게 자고도 또 잠이 와?
용수 : ...어
무열 : (침대에 걸터앉으며) 조만기가 황금빌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용수 : ...
무열 : 혀엉!! (그대로 대꾸없자 서랍에서 물파스를 꺼낸다음 용수의 배를 깔고 앉는다)
용수 : (무기력하게) 하지마...
무열 : (물 파스 뚜껑을 열면서) 형. 눈꺼풀위에 물파스 바르면 어떤지 알지? 얼른 눈 뜨는게 좋을걸.
용수 : (귀찮다) 왜 그래?
무열 : 수사에 협조 좀 하란 말이다. 1989년 황금빌딩에 대해 알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구?
용수 : ...
무열 : (물파스를 눈 가까이 가져가며) 바른다!!
용수, 눈도 못뜬채로 침대 머리맡에서 사인펜을 집어 무열의 팔뚝에 뭔가를 쓴다.
용수 : 여기로 가봐.
S#12. 시골길-집(낮)
무열이 탄 차가 시골길을 달려 시골집 앞에 선다.
S#13. 마당(낮)
무열이 들어선다.
60대 중반의 남자가 마당에 곡식을 널다가 뒤돌아본다.
(용수) : 우리 아버지야
용수아빠 : 누구신지..?
(용수) : 내가 보냈다고 하지 마.
무열 : 전화드렸던 잡지사기잡니다. 황금빌딩의 비밀에 대해 추적중인데...
비슷한 시기에 아드님이 실종됐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무열이 용수아빠의 눈치를 본다.
용수아빠가 툭툭 털고 일어선다.
(점프)
평상에 앉은 무열, 둘러본다.
그저 시골집 가을 풍경이다. 옥수수 말린것들이 걸려있고, 곶감도 걸려있고.
(용수) : 형이 실종되던때를 전후해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 매일 매일 복기하고.
덕분에 1989년의 황금빌딩에 대해 우리 아버지보다 더 잘아는 사람은 없을거야.
안에서 용수아버지가 나오자 무열이 일어선다.
용수 아버지는 두꺼운 수첩을 여러권 들고 있다.
무열이 대충 훑어보는데...
(소리) : 손님 왔어요?
60대 깡마른 여자가 방문을 열고 내다본다. 어딘가 모르게 아파보인다.
무열이 용수 엄마를 돌아본다.
S#14. 거실(밤)
무열 : 1989년 8월 2일에 조만기가 반지하방에 세들었대요. 하고다니는걸로 봐서는 노가다나 백수필이 났다고 하는데
특별한 직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 어느날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월세가 밀려서 찾아가도 문이 잠겨있고. 나중에 억지로 열고 들어가봤더니 오래도록 사람 산 흔적이 없더라고...
짐도 원래 없었고, 세가 밀리니까 도망갔나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대요
(점프)
희경 : 이사람 저사람 묻고 물어서 겨우 알아낸건데.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고, 이재승 무덤은 겨우 알아냈어.
(메모를 내놓는다) 양주에 있는 공동묘지라는데...
(점프)
은재 : ...
희경 : 그쪽은 어떻게 됐어?
무열 : 또 안됐어요?
은재 : 내일 최면치료실에 다 같이 갔으면 하는데요.
희경 : 왜?
(인서트)
최면 치료사 : 최면유도를 쉽게 하는 방법중에 하나가 피 최면자가 신뢰하는 사람이 동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만...
-다시 거실
은재 : 그냥요. 내일 한시로 예약했거든요. (일어난다)
희경 : (은재가 방으로 들어가면) 순 지맘대로지.
S#15. 황금빌딩 바깥계단(낮-은재의 꿈)
빛이 과다하게 노출되어 환상적으로 보이는 느낌.
일곱 살 은재가 팔짝 팔짝 혼자 장닌치면서 황금빌딩 계단을 오른다.
한발씩 한발씩 깡총거리면서...헛디딜 듯, 위태롭다.
한발. 또 그렇게 한발...헛디딘 그 순간.
S#16. 은재 방(밤)
작은 신음을 내던 은재가 괴로운 듯 눈을 뜬다.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S#17. 거실(밤)
은재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다가 문득 창밖을 본다.
정원 티테이블. 용수가 앉아있다.
용수는 땅밑으로 가라앉을것처럼 축 처져있다.
손가락 들 기운도 없어보이는 용수의 뒷모습을 은재가 바라본다.
S#18. 정원(밤)
용수가 초점없는 눈으로 먼곳을 바라보고 있다.
날벌레를 유인해 태워죽이는 살충기계에서 끊임없이 딱딱 소리가 난다.
S#19. 차고앞(낮)
무열이 운전석에, 희경이 조수석에 앉아 은재를 기다리고 있다.
은재가 나와 차에 타려다가
은재 : 용수씨는요?
희경 : 안간대
은재 : ...잠깐만요.
은재가 안으로 들어가면.
희경 : 요새 쟤가 용수씨 되게 챙기지 않어?
무열 : 그런가?
희경 : 용수씨한테 마음 있나?
무열 : (말도 안된다는 듯) 헤. 헤. 헤
희경 : 그건 뭔 자신감이냐?
무열 : (비밀 이야기하듯) 이건 누나만 알고 있어. 나 알고보면 먹어주는 얼굴이거든.
희경 : (손바닥으로 무열 얼굴 밀어내며) 너 아빠가 일찍 죽은 여자애들은 나이많은 남자를 좋아하는거 모르지.
게다가 은재 쟤가 아빠를 얼마나 좋아하냐? 아직도 방마다 아빠사진인데... 용수씨한테 아빠를 느끼는거야
무열 : (잠깐 솔깃하다가) 됐다고 본다. 형 같은 아빠는 줘도 싫다 나는...
S#20. 거실(낮)
피곤에 찌든듯한 용수 만사가 귀찮다. 머리를 벅벅 긁는다.
용수 : 아...그냥...셋이 갔다와요. 나는 그냥 집에 있을게
은재 : 그러지 말고 부탁할게요
은재가 머리까지 숙이자,
용수 난감해진다.
S#21. 최면치료실 로비(낮)
용수, 무열, 희경이 뭔가에 체크하고 있다. BDI체크리스트다.
희경 : 내가 슬픈지, 안슬픈지를 왜 물어봐? (그러면서도 '슬프지않다'에 체크한다)
무열 : (작은소리로) 어느 정도 먹어야 밥맛이 좋은거야?
희경 : 너 정도 먹으면...
무열과 희경이 어쨌거나 진지하게 여러개의 우울증 체크리스트를 채워간다.
용수는 대충 대충한다.
S#22. 진료실(낮)
세명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춰진다.
(최면치료사) : 세분중 누굽니까?
최면치료사와 은재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
은재 : 왼쪽에 있는 남자요. 얼마전에 18년전에 실종됐던 형의 시체를 발견했거든요. 그후로 하루종일 누워서 지내고,
밤에는 또 잠을 못자구요. 식사량도 많이 줄었구요. 의욕이 없다고 할까...
최면치료사 : 형의 죽음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은재 : 글쎄요. 심하게 슬퍼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최면치료사 : 몇가지 테스트를 확인해보고, 직접 상다을 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마는... 본인에겐 말해보셨습니까?
은재 : 아직요.
모니터속.
세명이 적은 체크리스트를 김실장이 회수하고 있다.
S#23. 최면치료실 로비(낮)
김실장이 체크리스트를 걷는다.
희경, 지난번에 행패부린게 있어서 김실장하고 눈이 마주치자 애매하게 웃는다.
희경 : 근데 이건 왜 하는거예요? 보호자도 이런걸 하는거예요?
김실장 : 그냥 자료조사 차원에서요. 근데 세분중 누가 치료실에 들어갈건가요?
희경 : 예?
김실장 : 유은재씨한테 말씀 못들으셨어요?
무열과 희경, 뭔소린지 모른다.
김실장 : 유은재씨가 최근에 최면유도에 계속 실패해서요.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최면 암시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런 분과 같이 오라고 한건데...
이때 문이 열리고 은재가 나온다.
김실장 : (마침 잘됐다는 듯 은재에게 묻는다) 세분중 누가 치료실에 들어갈건가요?
무열이 긴장해서 은재를 본다.
희경은 호기심에 가득차서 용수와 무열을 본다. 은재가 누구를 선택할것이냐?
용수는 만사가 귀찮다.
S#24. 최면치료실(낮)
은재가 긴 의자에 누워있다.
무열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은재를 지켜본다.
(희경) : (작은소리로) 비겨놓고 뭐가 그렇게 좋아?
무열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희경과 용수
최면치료사 : (들어오면서) 자, 시작하겠습니다.
(점프)
아로마 촛불이 흔들린다.
최면치료사 : 숨을 들이쉬고. 내뱉고...들이쉬고 내뱉고...숨을 뱉을때마다 마음속의 걱정과 긴장이
혈관을 따라 손끝으로 빠져나갑니다. 발끝으로 빠져 나갑니다. 내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집니다.
긴의자에 누은 은재는 물론, 벽을 따라 나란히 앉은 무열, 용수, 희경도 동시에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최면치료사 : 파란 들판이 보입니다. 눈앞에 나무가 있습니다. 오렌지가 가득 열렸습니다. 아직 덜 익어서
오렌지는 초록색입니다. 나무에서 오렌지 하나를 따보십시오. 주먹만한 오렌지를 반으로 자릅니다.
과즙이 사방으로 튑니다. 다시 4분의 1쪽으로 잘라 보십시오. 한쪽을 입에 넣고 깨물면....
최면치료사의 낮은 목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은재가 슬며시 눈을 뜬다.
그녀는 집중할 수가 없다.
최면술사가 '또 실팬가' 작은 한숨을 쉬는데...
스스읍...침 넘기는 소리.
희경, 무열, 용수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다.
은재 : (무열등을 보다가) 집중이 안되네요.
최면치료사 : (챠트를 들여다보며)...아무래도 지난번 발작 때문에 최면에 대한 방어기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은재 : 최근에 어린시절의 꿈을 자주 꾸는데 그것하고도 관계가 있는걸까요?
최면치료사 : 꿈속에서 은재씨는 어떤데요?
은재 :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어요
최면치료사 : 지난번 최면치료중에 어쩌면 더 많은 걸 기억해 냈는데
은재씨의 무의식이 그 기억을 거부하고 차단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구요.
은재 : ...거부할 정도의 기억이란게 뭘까요?
최면치료사 : (아직도 레몬 암시에 걸려 침을 삼키는 세사람을 흘깃 보며)
어쨌든 은재씨는 최면 암시성이 급격히 떨어진 상탭니다.
S#25. 차안(낮)
무열이 운전중이고, 은재가 조수석에, 희경 용수가 뒷자리에 앉았다.
건물 외벽에 한가위 대명절 따위의 플랫카드가 펄럭인다.
무열 : 이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겠구만.
은재 : (미쳐 생각못했다) ...세분은 고향 안가요?
희경 : (혼잣말처럼) 고향은 빈손으로 가나
은재 : 카드 있잖아요
희경 : 공과 사는 구별해야지
은재 : 써도되니까 다녀와요
희경 : 됐어. (변명하듯) 내가 가봤자 좋아할 사람도 없고... 우리 올케언니가 크리스찬이거든. 내가 가면 집안공기가 싸해져.
급속냉각. 쉬잉~~!!
은재 : 무열씨는요?
무열 : 나도 됐어요
희경 : 쟤는 태권도장 한다고 아빠한테 돈꿔다 썼는데 그때 큰형하고 대판 싸웠대. 이자도 못갚고 있어서 몇 년째 고향쪽에는...
무열 : (말 끊으며) 왜 남의 얘긴 하고 그래?
희경 : (기운없이 농담하는) 우리가 남이가?
우울한 침묵이 한동안 계속된다.
무열 : (문득 변명하듯) 가봤자 벌초하느라 힘만 들구
희경 : 전 부치느라 기름냄새에 멀미 나구
무열 : 고스톱 치다가 싸움이나 나고
희경 : 재탕 삼탕 영화밖에 볼 것도 없고
무열 : 조카 녀석들 때문에 정신은 하나도 없고
희경 : 잠자리를 또 얼마나 불편한데.
무열 : 추석때 집에 못가는 사람이 우리만 있는것도 아니고.
희경 : 그래 안가는게 속 편해.
쿵짝이 맞아서 대꾸하던 무열과 희경, 그러나 기운이 나지 않는다.
무열 : 그래도 송편은 먹고 싶다. 밤 들어간거.
희경 : 나는 잡채. 우리 엄마 잡채 되게 잘하는데...
은재 : 송편................ (괜히 퉁명스럽게) 우리도 만들어볼까요?
무열과 희경이 뭔소리야 하는 얼굴로 은재를 본다.
S#26. 대형마트(낮)
용수, 은재, 무열, 희경이 들어온다.
희경은 카트를 뽑아 밀고, 귀찮아하는 용수를 무열이 잡아 끈다.
이것저것 한가위 물건들을 산다.
은재가 꼼꼼히 유통기한이나 재료취급방법등을 읽고 있으면 희경이 쓱 뺏어서 카트에 넣는다.
찹쌀가루, 송편속에 들어갈것들, 솔잎등을 구입한다.
은재가 과일을 사면
희경이 맥주 한팩을 집어넣고,
무열이 안주거리를 집어넣는다.
뒤처진 용수를 무열이 끌고 온다.
(점프)
용수가 한개의 카트를 밀고 희경과 지나가고
그뒤를 또한개의 카트를 밀면서 무열과 은재가 지나간다.
은재는 여러 사람과 쇼핑하는게 처음이라서 자기도 모르게 굉장히 즐거워하는데...
이때 등뒤에서
(아줌마) : 새댁!!
은재가 멈춰선다. 설마하는 심정으로 차마 돌아보지 못하는데...
정육점 코너의 아줌마가 국거리 고기를 들어보이며 말한다.
아줌마 : (은재의 등뒤에서) 새댁 고기는 안사. 신랑이 고기 잘먹게 생겼는데...
은재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과 동시에
무열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오른다.
S#27. 은재네 집 부엌(저녁)
은재가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지식인에 '송편만드는법'을 치는 동안
희경과 무열은 시장본 것을 정리하고 있다.
희경 : 고기는 왜 이렇게 많이 산거야?
무열 : (다시 생각해도 흐뭇하다) 고기가 좋더라구.
은재 : (말을 돌리듯 모니터를 읽어준다) 우선 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한대요.
희경 : 왜 뜨거운 물에 반죽해?
은재 : 여기 그렇게 나왔어요
희경 : 그거 초딩이 올린걸거야. 다른 것 찾아봐. (컴퓨터쪽으로 가는데)
용수 : (식탁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혼잣말처럼 불쑥) 뜨거운 물 맞어.
희경과 은재가 돌아본다.
용수 : (기운없이) 뜨거운 물에 소금 조금 타서... (하다가 무열을 밀어낸다) 에이...비켜봐.
용수가 소매를 걷고 일어난다.
S#28. 네사람의 추석 음식 만들기 몽타쥬
용수가 쌀가루를 반죽한다.
희경이 그런 용수를 본다.
무열과 은재가 다시 기운을 차린 용수가 반갑다.
무열이 뜨거운 물을 붓다가 물방울이 희경에게 튀자 깜짝 놀란다.
(점프)
희경이 전을 부친다. 후라이팬을 튕겨 뒤집는다.
용수가 전을 부친다. 후라이팬을 튕겨 뒤집는다.
무열이 전을 부친다. 후라이팬을 튕겨 뒤집는데 높이가 예술이다.
은재가 전을 부친다. 전이 찢어지고 밖으로 삐져나간다.
(점프)
잡채만들기.
잡채위에 볶은 시금치. 볶은 당근, 볶은 버섯, 볶은 고기, 볶은 고추, 참기름, 통깨가 넣어지고 무열이 쓱쓱 비빈다.
맛보려는 희경의 용수의 손을 찰싹찰싹 쳐내고, 무열이 손가락으로 잡채를 집어 은재에게 건넨다.
은재 됐다고 하는 순간, 용수가 은재의 두손을 잡고 희경이 은재의 입을 억지로 벌린다.
무열이 은재의 입에 잡채를 넣어준다.
S#29. 은재네 집 거실(밤)
네 사람이 빙 둘러앉아 뭔가에 열중해있다.
좀전과는 달리 심각하고 조용하다.
네사람. 송편을 만드는 중이다.
은재가 눈치를 보더니 자기 만든걸 숨기려 한다.
희경이 얼른 은재의 송편을 낚아채더니 푸헤헤 웃는다.
은재 : (부끄럽기도 하고) 왜요?
희경 : (놀리듯이 은재를 빤히 보며) 몰라서 묻나? 푸헤헤헤헤
은재 : 희경씨것도 뭐 대단하진 않네요.
희경 : 그래도 내건 송편이란 장르에는 속하거든. 근데 이건 뭐....푸헤헤헤...
용수 : (뜬금없이) 예술을 해라.
무열은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빗듯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용수 : 그거 먹을거냐? 전시할거냐?
무열 :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거든. 이쁜 송편을 만들어야 이쁜 마누라를 얻는다고
희경 : 이쁜 딸 아니야?
무열 : 이쁜 마누라를 얻어야 이쁜 딸도 낳지 (만든걸 은재와 비교해보며) 이정도면 될까?
은재가 무열의 송편을 손으로 꾹 누른다. 순식간에 우그러드는 송편.
무열이 비명을 지르고, 용수와 희경인 켈켈 웃는데....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용수가 전화를 받는다.
용수 : (웃음띤 얼굴 그대로) 네...네.....네........
용수가 전화하는 동안 희경, 무열, 은재는 다음 송편에 도전하며 웃고 떠는다.
(괜히 얼굴에 밀가루칠을 하는 익숙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용수가 다시 자리에 돌아와 역시 다음 송편을 만든다.
희경 : 누구?
용수 : 별거 아냐...
네사람 다시 송편을 만든다.
은재는 무열이 하는 걸 따라하는데 그래도 영 안된다.
희경 : (은재 만드는걸보고) 내가 발로 만들어도 그것보단 잘하겠다. 송편 한번도 안 만들어봤어?
은재 : 네 (고개를 떨군다)
희경 : (미안해진다) 야...왜그래? 갑자기 청순가련이면 반칙이지... 니가 그러면 나만 나쁜사람 되잖어. 어이!!
무열 : 에엣 누나는 참...누나가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거야. 사람 아픈데를... (은재에게) 은재씨
은재 : (고개를 드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왜요?
희경과 무열이 이건 뭔가 싶다.
은재 : (아무렇지도 않게) 희경씨 흉내 좀 내봤어요.
희경 : (한방 맞았지만) 어쩐지...연기가 좋더라.
켈켈거리며 웃는다. 용수도 따라 웃는다.
하지만 용수는 어딘가 딴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용수 : 나 좀 나가봐야 할 것 같아
다들, 용수를 돌아본다.
희경 : 어딜?
용수 : 시골집에 잠깐 가봐야 될 것 같해서... 은재씨 차 좀 쓸게요
은재 : 네....
간다고 얘기해놓고도 용수가 한참 그 자리에 앉아 미적대며 손가락의 반죽을 뗀다.
무열과 희경이 용수의 눈치를 본다. 실내에 가득찼던 활기가 뚝 끊긴다.
용수 :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는것처럼 엉거주춤하게) ...그럼...갔다올게
세사람 만들던 송편을 다시 만드는데...좀전같은 즐거움은 사라졌다.
S#30. 도로(밤)
추석이 가까워서 달이 환하다.
용수의 차가 늦은 밤 도로를 달린다.
S#31. 용수의 차(밤)
용수가 운전중이다. 화가 났다든가, 슬프다든가 그런 얼굴이 아니다.
다만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인다.
S#32. 병실(밤)
깡마른 60대 중반의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다. 코에다 관을 꽂고 주사가 여러대.
팔이 부족해서 (혹은 팔에 혈관이 안잡혀서) 발등까지 주사가 꽂혀있다.
아! 이여자는 용수의 엄마다.
용수가 침대맡에 서서 해골처럼 마른 엄마를 내려다본다.
아빠는 보호자 침대에서 자고 있다. 참담함...!!
용수가 깡마른 엄마 손가락 두개를 살그머니 잡아본다.
엄마 : (잠결에도) 준수니?
엄마가 눈을 뜨는것과 동시에 용수가 나쁜짓을 하다 들킨것처럼 엄마 손을 놓는다.
용수 : 저예요, 엄마!!
엄마 : (용수임을 확인하고는 순간적인 절망이...외면하듯 눈을 감아버린다) 어째서...
용수 : (울고 싶은 걸 참기위해 슬쩍 웃는다)
아빠 : (깨어나 일어나며) 언제 왔냐?
용수 :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금방요.
아빠도 용수도 할말이 없어 떨어지는 링거액만 바라본다. 침묵이 납같다.
다행히 링거액이 거의 다 되어간다.
용수 : 간호사 불러올게요. (밖으로 나간다)
S#33. 복도-현관(밤)
병실에서 나온 용수가 간호사실로 향한다.
카메라는 용수의 등을 따라간다.
간호사에게 뭐라고 말을 전한후, 복도를 빠져나간다.
현관 문들!!
용수가 문틀에 기대서서 오래도록 움직일 줄 모른다.
여섯 살쯤 꼬마아이가 들어오다가 용수를 빤히 올려다본다.
아이가 올려다보는 줄도 모르고 용수는 그저 그렇게 뒷모습을 보인채 서 있다.
엄마가 아이를 부른다. '강규야!!'
꼬마아이가 쪼르륵 엄마앞으로 다가온다.
아이 : (굉장한걸 이야기하는것처럼) 엄마. 저 아저씨 울어
아이의 엄마가 돌아봤을때 용수는 막 자리를 뜨고 있다.
S#34. 백민철 사무실 주차장(아침)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이는 주차장.
아식스, 아디다스를 비롯한 백민철의 부하들이 '추석 선물'을 들고 건물을 빠져 나온다.
추석휴가를 가는 듯, 서로에게 인사하고 갈길로 간다.
맨 마지막에 백민철과 강승호가 나온다.
강승호가 백민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강승호의 차가 출발하고, 맨 마지막에 백민철이 차를 타고 빠져나간다.
백민철의 뒤를 쫓는 차....용수다.
S#35. 용수차(낮)
용수가 백민철을 쫓고 있다.
분노에 쌓였다기보다는 우울해보인다. 조수석에 놓여있는 전기 충격기.
용수가 조용히 백민철의 뒤를 쫓는다.
(인서트)
기대에 찬 얼굴로 문을 여는 용수 엄마. 20대중반즈음의 지금과는 다른 느낌의 용수다.
용수라는걸 확인하고 용수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용수엄마 : (돌아서면서 혼잣말처럼) 어째서...
S#36. 횡단보도(낮)
용수가 앞차의 백민철을 바라본다.
(인서트)
엄마가 문앞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린다.
해가 지려한다.
누군가 걸어오자 벌떡 일어난다. 용수라는걸 확인하고는 울것같은 얼굴이 된다.
용수엄마 : (힘없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어째서...
S#37. 실버타운 주차장(낮)
'00실버타운'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백민철이 차에서 내려 어딘가로 간다.
용수가 딱히 숨으려는 노력도 없이 앉아있다.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다.
S#38. 실버타운 정원(낮)
잘 가꿔진 실버타운 정원. 이곳이 최고급 시설이라는게 곳곳에 드러난다.
백민철이 무방비한 상태로 서 있다.
용수가 백민철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인서트)
준수의 방.
반쯤 열린 문틈으로 용수 엄마가 형의 사진을 끌어안고 꺼억 꺼억 우는게 보인다.
용수엄마 : (울음을 토해내면서) 어째서.....어째서....니가...왜 니가...
-실버타운
용수 눈에 핏발이 선다.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
용수가 전기충격기를 움켜쥐고 막 나무뒤에서 나가려는 순간,
백민철 : 엄마!!
실버타운 헬퍼(여, 40대)의 도움을 받아 80대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다가온다.
용수가 다시 나무 뒤로 숨는다.
헬퍼가 백민철에게 당부하는 말들이 용수의 얼굴위로 흘러간다.
헬퍼 : 식후 30분후에 약드시는거 잊지 마시구요. 매운음식 드시면 설사하니까 주의하시구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세요.
(쭈그리고 앉아 백민철 노모와 눈을 마주친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또박 또박 큰소리로)
할머니 고향에 가게 돼서 좋으시죠? 잘 다녀오세요.
그러나 백민철 노모는 마치 휴즈가 끊어진 듯,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눈동자가 모아지지 않는다.
백민철이 헬퍼에게 봉투를 건넨다. 몇 번 사양하던 헬퍼가 봉투를 받는다.
백민철이 휠체어를 밀고 사라지자, 헬퍼가 봉투속의 돈을 꺼내 날렵하게 세기 시작한다.
마지막 지폐를 넘기고 손가락으로 툭 튕기는데 그녀의 얼굴은 좀전까지의 사람좋던 그사람인가 싶다.
S#39. 백민철의 차(낮)
차가 길게 늘어섰다.
백민철이 뒤를 돌아본다.
백민철 : 좀만 참어요. 여기만 지나면 되니까...
노무에게 백민철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지는 않다.
차가 조금 움직인다. 뒷유리창을 통해 용수의 차가 보인다.
S#40. 용수의 차(낮)
용수의 차도 앞으로 조금 이동한다.
치이익 직, 치이익 직
용수가 한쪽 손으로 전기 충격기를 눌렀다 뗐다를 반복한다.
(최면치료사) : 조기 우울증 상탭니다.
S#41. 심리치료실(낮)
은재가 최면치료사와 마주 앉아있다.
최면치료사는 용수가 작성한 '우울증 테스트' 자료를 보면서 이야기중이다.
심리치료사 : 오래도록 분노와 슬픔을 표현안하고 안으로만 쌓아놔서 폭발직전에 와 있다고 할까요. 우울증 자체는
심각한게 아닌데, 내재된 폭력성이 보이거든요. 이 폭력성이 안으로 향하면 극단적으로 자살에 이르기도 하고,
밖으로 향하면...글쎄요. 빠른 시일안에 상담을 받고 감정을 쏟아내는 걸 훈련하는게 필요합니다.
S#42. 산소앞(낮)
멀리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묘지.
백민철이 벌초하고 있다.
노모는 초점없는 시선으로 앉아있다. 노모의 손등에 무당벌레가 날라와 앉는데도 자각하지 못한다.
멀리 나무 그늘에 숨어서 용수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손에 전기 충격기를 들고서...
S#43. 은재네 집 거실(낮)
벌초하는 사람들, 성묘하는 사람들,
추석 이모저모를 다룬 뉴스화면이다.
무열이 가장 게으른 자세로 소파에 누워 뉴스를 보고 있다.
희경,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 내려놓는다.
희경 : 추석이 뭐 대단하다고 휴무야. (전단지를 보면서 다른 번호를 누르지만 역시 추석 연휴 휴무 안내멘트만 흘러나온다)
에잇...다들 고향가버리면 나는 뭐 먹고 살라고. 왜 그렇게들 자기 생각만 하시는지....
(전화기를 툭 던지고 무열옆에 앉는다) 니가 왠일로 뉴스를 다보냐?
무열 : 누나 리모콘 좀 줘봐. (리모콘은 팔을 뻗어도 안닿는다)
희경 : 게으른 자식. (리모콘을 돌리려다가) 아...
무열 : (시큰둥하게) 왜 뭔가 엄청난 아이디어가 솟구치나 봐.
희경 : 응. 지금 개나 소나 성묘가고 벌초하잖어.
무열 : ...?
희경 : 우리가 지금 이재승에 대해 알고 있는게 뭐야? 달랑 무덤 하나잖어. 만약 이재승에게 자식이 있다면...
무열 : (벌떡 일어난다)...누나 그거 은재씨한테는 내가 생각해낸걸로 하자.
희경 : 왜에?
무열 : 내 연애사업에 협조 좀 해줘.
희경 : 사업? 길거리 자판도 못차린 주제에...
무열 : 어쨌든 내가 생각해낸거야.
(은재) : 뭐가요?
현관. 은재가 신발을 벗고 있다.
S#44. 올갱이 국밥집(낮)
(*올갱이 국밥은 충북 옥천의 지방 음식이랍니다)
가을 햇살 때문에 강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인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식당.
강 뒤는 곧바로 산이다.
식당은 곳곳에 평상 형식으로 별채가 만들어져있다.
하나의 평상
백민철과 노모가 밥을 먹고 있다. 백민철이 국에 밥을 말고, 양념까지 해서 노모앞에 놓아준다.
백민철 : 드세요. 엄마 이거 좋아하잖어. (손에다 숟가락까지 쥐어준다)
노모가 기계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백민철 : (자기도 먹으면서) 옛날에는 이거 냄새도 맡기 싫었는데... 동네 사람들도 다 바뀌었더라구...하긴 아는 사람 있으면
올 생각도 안했겠지만. 수섭이네도 이사갔대. 엄마 그집 고구마캐러 맨날 일갔잖어. 생각 안나?
백민철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노모에게는 가 닿지 않는다.
S#45. 올갱이 국밥집 입구(낮)
왕복 2차선 길이 보인다.
고무줄 놀이를 하는 국밥집 딸 자매. 하나는 초등학교 5학년쯤, 하나는 3학년쯤.
고무줄 한쪽끝은 나무에 묶어놓고 한쪽끝은 자매중 하나가 잡고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앞으로 앞으로...'노래하면서 팔짝 팔짝 뛸때마다 짧은 치마가 흔들린다.
그들과 좀 떨어진곳, 차안에 용수가 앉아있다.
지치고 무력해져 피폐해진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S#46. 올갱이 국밥집 평상(낮)
백민철이 물을 따르려다가 물병이 비어있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홀로남은 노모는 여전히 식물처럼 조용한데, 어디선가 날라온 풍뎅이가 유리창에 부딪친다.
풍뎅이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 그소리가 노모의 의식을 깨운다.
노모의 시선이 처음으로 의지대로 움직여 풍뎅이를 본다. 그러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노모의 시선의 초점이 모아진다.
S#47. 올갱이 국밥집 식당-평상(낮)
백민철이 냉장고에서 직접 물을 꺼내 가져온다.
평상에 엄마가 없다.
어디가셨나? 주위를 둘러본다. 시선이 닿는곳에 어머니가 없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다.
백민철 : 엄마! 엄마!!
백민철이 사방을 둘러본다.
S#48. 올갱이 국밥집 앞(저녁)
강에 노을이 진다.
국밥집 주인 부부와 백민철이 노모를 찾는다.
웰웰소리를 내며 경찰차가 온다.
차에서 내린 경찰에게 다가가는 백민철과 국밥집 주인 부부.
경찰 : (그는 충청도 경찰인만큼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할머니를 잃어버렸다면서유
국밥집 남자주인 : 예...여기...이 손님 어머니가...
백민철 : (앞으로 나온다) 수고하십니다. 저희 어머니가 치매가 있는대요. 저녁 먹고 있는데 사라지셔서...
경찰 : (적는다) 그러니께 노망끼가 있구유.
백민철 : 그리고 머리가 하얗습니다.
경찰 : 머리가 하얗고. 아주 하얗대유?
백민철 : 예...나이는 일흔 셋인데 여든넘어로 보이구요.
경찰 : 에...그리구유
백민철 : 휠체어를 타고 다니셔서 걷지를 잘 못합니다.
여자아이 : 아닌데...
일제히 돌아본다.
좀전에 고무줄 놀이를 하던 자매중 어린아이가 빤히 올려다본다.
동생 : 할머니 걸어갔어요
백민철 : 봤어?
언니는 겁에 질려서 엄마 뒤쪽으로 숨으려 하는데 동생은 야무지다.
동생 : 예 (길쪽을 가리킨다) 아까전에요. 저쪽에서요. 머리 하얀 할머니가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홱 잡아끌었어요.
백민철 : ...
국밥집 여주인 : (언니를 보며) 진짜야?
언니 : (고개만 끄덕인다)
동생 : 진짜야... 그래서 할머니가 (흉내내면서) 이렇게 넘어질뻔했어. 근데요. 그 아저씨 그전부터 계속
할머니랑 아저씨(백민철을 가리킨다)를 보고 있었어요. 이렇게 (눈을 무섭게 뜨는 시늉을 해보인다)
백민철 : 그 아저씨...봤어? 어떻게 생겼어?
동생 : (잠깐 생각해본다) 응...키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아빠를 가리키며) 아빠만하구요. 얼굴이 지저분해요. 수염나서...
머리는 구불구불하고...
언니 : (조심스럽게) 신발도 꺽어 신었었는데...
백민철, 자매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군지 안다.
S#49. 산속(저녁)
신발 뒷꿈치를 꺽어신은 용수가 걷고 있다.
산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용수앞에 백민철의 노모가 걷는다.
오래전에는 길이었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지금은 풀이 우거진 곳을 백민철의 노모를 앞세우고 용수가 걸어간다.
툭!! 용수 주머니에서 뭔가 떨어진다. 전기 충격기다.
용수가 전기 충격기를 집어든다.
S#50. 강승호의 집 거실(저녁)
두 살쯤 된 어린 딸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강승호.
가장의 직업과는 상관없이 20평대 아파트는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생활인의 모습 그대로다.
편한 옷차림의 강승호가 손가락으로 딸의 뺨을 꾹 찌르고 실없이 웃는다.
강승호의 핸드폰이 울린다.
강승호 : (전화를 받는다) 예...형님.
S#51. 백민철의 차(저녁)
백민철이 운전하면서 통화중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던 백민철이 주체할수 없는 분노에 빠졌다.
백민철 : 놈들을 잡아와
(강승호) : 예...?
백민철 : 내가 도착할때까지 김용수, 정희경....다 잡아다 놔!!
S#52. 강승호의 집 거실(저녁)
전화받는 강승호가 긴장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저녁 준비를 하던 강승호의 아내가 내다본다.
(백민철) : 어떤 수를 써도 좋아. 내가 도착했을때 놈들이 내앞에 있어야 돼!!
강승호 : ....
(백민철) : 내말 알아들어?
강승호 : 예!
전화를 끊은 강승호가 잠깐 어린딸을 보다가 일어난다.
강승호의 아내가 뭔가 할말이 있지만 참는다.
강승호, 윗도리를 들고 나가면서 어딘가로 전화한다.
강승호 : 난데...애들한테 연락해. 지금 당장
S#53. 납골묘(저녁)
추석이라 사람들이 많다.
-은재아빠의 묘
은재가 꽃병을 올려놓는다. 은재가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속의 은재아빠와 일곱 살 은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은재아빠) : 아빠는 은재를...?
(일곱살 은재) : (큰소리로) 사랑해요
(은재아빠) : 은재는 아빠를...
(일곱살 은재) : (더 큰 소리로) 너무 사랑해.
은재 : (일곱살 은재와 동시에) 너무 사랑해.
은재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흐뭇함과 어떤 짓을 해도 되돌릴 수 없는 그 순간이 너무 그리워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S#54. 공동묘지(저녁)
어두워질 무렵의 공동묘지. 성묘객들도 모두 가버린 뒤라 사람도 없고, 무섭다.
(희경) : 빨리 좀 해.
공동묘지 무덤 중간쯤.
희경이 나무위의 무열을 보며 재촉한다.
무열은 나무위에 카메라를 매달고 있다.
무열 : (버럭) 그럼 누나가 하든가?
희경 : 애초에 내가 한다 그랬을때 들은 척도 안한게 누군데...
무열 : 누나가 방해만 안했어도 벌써 끝났어.
희경 : (혼잣말처럼) 쪼잔한 놈. 나사 하나 잃어버렸다고 몇시간째 울궈먹는 거야. 날 어둡잖아. 빨리 좀 해.
(사방이 무덤이다. 팔을 문지른다)
무열 : (꿍시렁댄다) 무슨 점쟁이가 귀신을 무서워해?
희경 : 뭐?
무열 : 아무말도 안했어.
희경이 공동묘지를 내려다본다.
희경 : (혼잣말처럼) 나도 언젠가 죽을텐데... 어떻게 내가 죽을수가 있지.
(두손을 가슴위에서 x자로 교차하며) 난 이렇게 소중한데
무열 : 시끄럽구. 그 앞에 서기나 해봐.
희경이 비석앞에 똑바로 선다.
무열이 모니터를 바라본다. 모니터속 무덤앞 희경의 모습이 정 중앙에 오도록 카메라 각도를 조절한다.
희경이 서있는곳, 비석에 '이재승지묘'라고 써 있다.
S#55. 공동묘지가 보이는 길가(밤)
무열과 희경이 공동묘지에서 내려와 차에 탄다.
S#56. 차안(밤)
무열이 운전하고, 희경은 조수석에 앉아있다.
무열 : 근데 올까?
희경 : 올거야
무열 : 어떻게 알어?
희경 : 무덤 봤지. 벌초해놓고 성묘 안오겠냐?
무열이 갑자기 한숨을 푹 쉰다.
희경 : 왜?
무열 : 요새 잠이 안와.
희경 : 낮잠을 그렇게 자니까 그렇지.
무열 : 남들은 다 사람같이 사는데 난 뭐하고 사는건가 싶어서...
희경 : (이놈이 갑자기 왜이러나 싶다)???...
무열 : 옆에 계신분은 서른 여섯 살 노처녀 정희경씹니다. 지금 하시는 일은? (손을 마이크처럼 해서 희경에게 갖다댄다)
희경 : ...
무열 : (희경이 말이 없자 자기가 대신 희경이 목소리로) '제 직업요. 황금찾긴데요' 이거 우습잖아? 우리가 열두살이면 괜찮아.
꿈이 있어 아름답지. 스물 한살이어도 뭐 괜찮아. 철이 좀 늦게 들었다 싶으니까...
희경 : (자기도 믿지 않지만)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무열 : 그치만... 야구로 따지면 나는 이제 5회쯤... 누나랑 용수형은 이제 6회말쯤 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에러하면 안되잖어. 인생의 승패가 걸려있다구.
희경 : (생각해보니 답답하다) ...에잇. 구려. 너 왜그래? 그렇잖아도 간신히 잊고 살고 있는데...
너 나뻐. 내내 헤벌레하다가 어쩌다가 심각해져갖고 사람맘 심란하게 하고.... 되는대로 사는거야. 알게 뭐야.
무열 : ...그래. 뭐. 계획하고 산다고 달라지나. 어떻게든 되겠지.
기분을 바꾸려고 무열이 음악을 튼다. 신나는 음악이 흐른다.
S#57. 골목(밤)
신나는 음악이 선행하고, 무열의 차가 골목을 꺽어들어온다.
갑자기 튀어나온 차가 앞을 막는다.
급브레이크를 밟지만 충돌한다.
아...놀란 무열과 희경. 이게 뭐야 싶다.
무열이 내리려는 순간 또하나의 차가 문을 막아서듯 바짝 붙어선다. 운전석쪽 백미러가 날라간다.
그제서야 위기의식을 느낀 무열, 차를 뒤로 빼려는데, 뒤도 막힌다.
희경이 재빨리 문을 못 열도록 버튼을 누르는데.
세대의 차에서 내린 10여명의 남자들이 배트로 운전석 유리를 강타한다.
S#58. 골목(밤)
은재의 차가 골목을 꺽어 들어온다.
바닥에 유리파편이 부서져있다.
은재, 사고가 났었나 가볍게 생각하고는 지나가버린다.
S#59. 강승호의 차(밤)
남자들 사이에 끼어 앉은 희경.
조수석에 강승호를 노려본다.
희경 : (이기죽거린다) 대한민국 치안도 큰일이야. 뻥뻥 뚫렸잖어, 나같은 소시민은 누굴 믿고 살라고...안 그래?
강승호 : ...
희경 : 여보세요, 007!! 하나만 물어봅시다. 이러는 이유가 뭔데? 잡혀온 이유는 알아야 변명이라도 생각해보지
강승호 : ...
희경 : (말하면서 놈들 모르게 핸드백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조작하려고 한다) 조폭은 추석도 안쇠나봐.
하긴 조상이 좋아라하지도 않겠지만서두. 그치만 우리에게도 사정이라는게 있는데...
아무리 나쁜일을 하더라도 남의 사정도 좀 봐줘가며 해야지. 모든일엔 때와 장소라는게 있는건데...
강승호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희경의 가방을 낚아챈다.
희경이 움찔한다.
S#60. 또다른 차(밤)
피투성이가 된 무열이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다.
무열 양쪽에 앉은 남자들이 무열을 강제로 제압하고 있다.
S#61. 도로(밤)
귀가 따가울정도로 폭주하는 차.
백민철의 차가 굉음을 내며 달린다.
'과속 감지 카메라'가 있다는 노란 표지판을 지나고 곧이어 카메라가 보이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차가 지날 때, 카메라 불빛이 파팟!
S#62. 은재네 집 거실(밤)
은재가 들어온다. 현관의 센서 불이 들어온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다.
현관 센서가 꺼지고 잠시후에 은재가 불을 켠다.
은재가 핸드폰을 꺼낸다.
S#63. 백민철의 사무실(밤)
희경의 가방에서 핸드폰이 울어댄다.
강승호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희경이 울어대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희경도 지금의 분위기가 다른때와 다르다는걸 알아챈다.
잠시후, 무열이 밀리듯 들어온다.
무열의 얼굴이 엉망이 된걸 본 희경.
희경 : 무열아!!
무열 : 누나
희경 : (안타까워서) 그 짧은 동안에 도대체 얼마나 맞은거야?
무열 : (아직도 상황파악 안됐다) 누난 안맞았어? 이자식들이 남녀 차별하고 있어, 그거 남녀 차별 금지법에 어긋나는 거거든.
최소한 사형이야 그거.
무열이 이기죽거리는데 문이 부서져라 열리고 온몸에 살기를 띤 백민철이 들어온다.
백민철의 기운만으로도 실내 공기는 얼어붙는 것 같다.
강승호, 아식스, 아디다스를 비롯 10여명의 남자들이 길을 열어준다.
백민철이 무열과 희경앞으로 다가간다.
희경도 공포에 침을 삼킨다.
백민철 : (희경을 보며) 김용수 어딨나?
무열 : (무섭지만) 궁금하면 똘마니를 보내서 잡아오든가...
백민철은 무열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희경을 똑바로 보면서 다시 묻는다.
백민철 : 김용수 어딨나?
희경 :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희경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백민철이 희경의 턱을 한손으로 움켜쥔다.
무열이 벌떡 일어나지만 아식스, 아디다스에 의해 제압당해 테이블위에 무참하게 짓눌린다.
백민철 : 네가 말해줬어? 내 가장 아픈데가 우리 어머니니까 그쪽을 노려보자구. 우리 어머니 어딨어?
강승호마저도 놀라 백민철을 본다.
희경은 숨을 쉬지 못해 괴롭다.
백민철 : (조용히 그러나 위협적이다) 우리 엄마는 평생을 하늘 한번 못 쳐다보고 살았어.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도
눈 한번 흘기지 못했어. 남편이 살인자여서...평생을 숨 한번 크게 못쉬고 살았는데...
그 불쌍한 사람을 이러면 안되지... 아무리 나같은 아들을 뒀더라도 이건 부당해. 안그래??
희경이 숨이 넘어가도록 괴로워하는데 백민철은 손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다 못한 강승호가 백민철을 제지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희경의 가방에서 반쯤 삐져나온 핸드폰이 울고 있다.
백민철이 뿌리치듯 희경을 놓는다.
공포에 질린 희경이 숨을 헐떡인다. 강승호가 핸드폰을 희경에게 건넨다.
희경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으로 잡는다.
S#64. 은재네 집 거실(밤)
은재가 초조하게 통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통화가 연결된다.
은재 : 여보세요. 희경씨. 왜 연락이 안돼요?
(희경) : (말을 제대로 못한다) 어어....어....
은재 : (긴장한다) 희경씨?... 어디예요? 무슨 일 있어요?
(희경) : ...어....
은재 : 무열씨도 같이 있어요?
S#65. 백민철의 사무실(밤)
희경이 전화를 받고 있다.
백민철은 상관없다는 듯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희경 : 어....
(은재) : 말하기 곤란한 상황이예요?
희경 : ...어....
(은재) : 용수씨도 같이 있나요?
희경 : (그말에 정신이 든다. 백민철을 곁눈질한다)...
(은재) : 경찰에 신고할까요?
희경 : ...아니...그러지마. 다시 연락할게
희경이 전화를 끊고 백민철을 쳐다본다.
백민철이 돌아선다.
백민철 : (희경을 똑바로 본다) 김용수한테 연락해.
희경이 서서히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찾는다.
용수에게 전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연다.
S#66. 차안(밤)
용수의 차안.
핸드폰이 혼자 운다.
S#67. 산속 폐가(밤)
추석전날 밤이라 달은 환하다.
산속 폐가. 언제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벽은 무너지고, 마당엔 풀이 우거져있는 폐가.
문짝은 떨어져있고, 커다란 항아리가 용하게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마루끝에 앉은 백민철의 노모가 달을 보고 있다.
용수가 그런 노모를 보다가 하~ 한숨을 쉰다.
S#68. 에필로그
화면이 세 개로 쪼개진다.
-폐가의 용수와 노모
-빌당 창밖에서 들여다본 백민철과 무열, 희경
-은재의 집 정원. 초조하게 서성이는 은재.
....모두들 달을 본다.
화면 하나로 통일되면 둥그런 추석달이 떴다.
(F.O)
S#69. 번외편(제목: 영광의 장택수)
마치 스포츠 음료 CF의 한 장면같다. 말할나위없이 고속촬영이다.
장택수의 얼굴이 화면 한가득 잡혔다. 그는 고개를 숙인채 숨을 고른다.
굵은 땀방울이 그의 얼굴을 따라 흐른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장택수) : (약간 숨찬 목소리로) 나는 이겼다. 승패에 상관없이 오늘 이 자리에 서있는것만으로 나는 승리했다.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의 나를,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택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응시하면 카메라가 서서히 뒤로 빠진다.
그 동안에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다큐멘타리'같은 장택수의 나레이션은 계속된다.
태권도복을 입은 장택수가 보이고, 양선수의 손을 잡고 가운데 선 심판이 보이고, 상대선수도 보인다.
(장택수에게만 빛이 비워져서 주변은 보이지 않는다. 겨우 이 세사람만 알아볼정도다)
세사람 다 꼼짝도 안한다. 숨을 쉬는것만으로 이것이 정지화면이 아닌 것을 알수 있을뿐...긴장감이 화면을 꽉 채운다.
태권도 경기를 끝낸 장택수가 승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장택수) : 나조차도 날 믿지 못하던 시간들. 쓰러진 것은 몇 번이고 포기했던 것은 또 몇 번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승리가 아니다. 나는 나를 뛰어넘고 싶었다. 나의 한계를, 나의 굴레를, 나의 껍질을
나는 장택수!! 나는 나를 넘어섰다!!!
그순간, 심판이 장택수의 손을 번쩍 든다.
장택수가 짐승처럼 포효한다. '으아아아악' 승리의 포효!!
그순간, 고요하던 사운드가 펑 터진 듯 주변의 소음이 들린다.
'되게 좋아하네''거기 새우젓좀 줘봐''떡 맛있네'
그제서야 주변이 밝아지는데 실내에 있는 것은 대략 10여명.
대충 박수치는 사람이 두어명, 대부분이 일회용 접시의 '누른고기'를 새우젓에 찍어먹고, 잡담하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잡기 장난중이고,
장택수는 아직도 승리의 기쁨에 젖어 두손을 들고 환호하다가 이원희처럼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데
상대선수마저도 '헤, 졌구만' 그 수준이다. 분하기는커녕 피식 웃기까지...
'2007년 종로구민 한가위 대잔치 태권도대회'라는 현수막에서 CUT TO.
*출처 : 대본과시나리오사이*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