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터 나이가 들어서까지 고우영 화백의 만화를 엄청 많이 읽었다. <고우영 수호지> <일지매> <임꺽정> <삼국지> <초한지> <십팔사략> <서유기>등등을 읽었고 지금도 그 만화들은 집의 책장에 꽂혀있다.
고우영 화백의 만화 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것은 <수호지>였다. 형들이 산 <수호지>를 국민학교 때였는지, 중학교 때인지는 잘 기억은 안나는데 그때 부터 수없이 읽었다. 만화 <수호지>가 다 헐어서 몇번이나 다시 사곤 했었다. 나중에 소설로 <수호전>을 읽었지만 <고우영 수호지> 만큼 재미가 없고 내용 전개도 매끄럽지 못한 것 같았다.
<고우영 수호지>는 중간 부분에서 중단되어서 아쉽고 그 다음 내용이 정말 궁금했었다. <고우영 수호지>는 1972년 일간스포츠에 연재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108명의 호걸들이 양산박에 모여 반란을 획책하는 내용이라고 박정희 정권이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연재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고우영 화백이 2000년에 <수호지>를 다시 처음 부터 연재하면서 꼭 완성시키겠다고 했지만, 2002년에 대장암이 발병해서 원래의 <수호지>분량 쯤에서 역시 중단되고 말았다. 이 나중에 나온 <고우영 수호지>도 읽었고 집에도 있다. 나는 처음에 나온 <고우영 수호지>가 더 재미있고 그림체도 정돈되어 있어서 더 좋아한다.
<고우영 수호지>에서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온 몸에 꽃문신을 해서 화화상(花和尙)으로 불리는 노지심이 활약하는 부분과 조개, 오용, 공손승등 7명의 의형제들이 북경의 부윤 양중서가 자기 장인인 재상 채경에게 보내는 뇌물 10만관을 기가막힌 속임수로 탈취하는 이야기와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 죽여 타호(打虎)로 불리는 무송이 형인 쪼다 무대의 복수를 위하여 반금련과 서문경을 죽이는 장면과 나진인이라는 도사 밑에서 도술을 닦은 청도인(淸道人) 공손승이 축구 실력으로 송 휘종의 눈에 들어 벼락출세한 간신 전수부 태위(현재의 국방장관 격)인 고구의 떨거지 조카 고당주 병마사 고렴과 요술로 대결하는 장면이다.
양산박에 모이는 호걸 중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이 최고 두령으로 추대되는 <송강>이다. 송강은 힘이 센 것도 아니고, 무슨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문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지방관청의 평범한 말단 관리일 뿐인데도 한가닥 하는 모든 호걸들이 송강만 보면 고개를 숙이고 형님으로 모신다. 물론 그의 별명이 급시우(及時雨)인 것 처럼 때맞춰 내리는 비같이 사람들을 많이 도와 주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선행으로 중국에 흩어져 있던 방약무인한 무뢰한들인 호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중국의 장강(양자강)은 곳곳에 동정호나 파양호 같은 거대한 호수를 만들면서 바다로 들어가지만, 황하는 큰 호수나 습지를 만들지 않고 바다에 도착한다. 그렇지만 송나라 때는 황하에도 큰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산동성 양산 주위에 남쪽으로는 회수와 연결되고 북쪽으로 발해만 까지 물길이 닿는 남북 300리 동서 400리의 큰 호수를 양산박이라고 했다. 이 양산박에 도적들이 모여 은거하게 되었고 결국 108명의 호걸이 모이는 근거지가 된 것이다.
<수호전>은 <70회본>, <100회본>,<120회본>의 3종의 판본이 있다. <70회본>은 송강을 비롯한 108명의 호걸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우여곡절 끝에 양산박으로 모이는 이야기이다. <100회본>은 양산박에 모인 송강을 비롯한 108명의 호걸들이 송나라 조정에 귀순하여 요나라를 정벌하고 강남에서 일어난 <방랍의 난>을 토벌하는 큰 공을 세우지만 간신배의 흉계에 빠져 송강을 비롯한 많은 호걸들이 독살당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120회본>은 <100회본>의 요나라 정벌과 방랍의 난 토벌 사이에 전호의 난과 왕경의 난이라는 두번의 난을 더 토벌하는 어설픈 이야기가 들어가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3개의 판본 중에서 최초로 나온 판본은 <100회본>이라고 한다. 그러나 명말 청초의 저명한 문예평론가인 김성탄은 100회본 중에서 70회본 만이 시내암의 원작이고 나머지 30회는 명나라의 나관중이 제 분수도 모르고 쓴 위작이라고 판정하고 <70회본>을 따로 떼어내어 간행했다. 사실 송나라 조정의 전횡과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맞서 싸우다가 양산박에 들어왔고, 그동안 관군과 몇번의 전투까지 했었던 양산박의 호걸들이 갑자기 송나라 조정에 귀순하여 요나라를 정벌하고, 농민들이 봉기한 <방랍의 난>을 토벌하여 송나라에 공을 세운다는 내용이 아무래도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현대 중국에서도 농민봉기인 <방랍의 난>을 토벌하는 송강의 행위를 규탄하여 송강을 반동분자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책 <중국사의 大家, 수호전을 歷史로 읽다>에 의하면 수호전은 원래 <100회본>이 정본이고, 처음의 70회와 나머지 30회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한사람이 쓴 작품이 맞을 거라고 한다. <수호전>은 허구로 이루어진 소설이 아니고 <삼국지 연의>와 같은 역사 소설이라고 한다. <송사>에 송강이 36명의 부하와 함께 난을 일으켰다가 관군에 항복한 내용이 나오고, <방랍의 난>은 송나라가 거의 무너질 정도의 큰 난리였는데, 만약에 송나라가 금나라와 연합하여 요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수도 부근에 집결한 군대가 요나라 정벌을 위해 이미 떠났다면 명나라의 <이자성의 난> 때 처럼 방랍에 의해 송나라도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방랍의 난>을 진압한 장수 중에도 송강이 있어서 도적 송강이 항복한 후에 <방랍의 난>을 진압했다는 수호전의 줄거리가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에 의하면 <방랍의 난>을 진압한 후에 도적 송강이 항복했다고 한다. 따라서 송강이 항복한 후에 관군의 장수가 되어 <방랍의 난>을 진압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우연하게도 동명이인인 도적 송강과 장군 송강이 각각 있었는데 민중들이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여 <수호전>의 줄거리 처럼 만들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