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트라 마라톤은 항상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대회다. 아마 2004년쯤 이었다. 울트라 마라톤을 준비하려고 물주머니가 달린 카멜베낭과 깜박이, 헤드렌턴, 바람막이옷, 신발 등을 사고 모아서 한참 몸을 만들기 시작할 때였다. 대회에서 달리다가 부딪힌 무릎에 결국 수술까지 하게 되며 마음을 접었었다.
마음은 벌써 몇백키로를 달릴쯔음 조금씩이나마 다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처럼 10키로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하프, 그리고 풀을 뛰면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고, 조금의 부상도 충분한 회복을 위한 보강훈련을 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경기마라톤 풀을 준비하며 나름의 LSD와 산을 달리니 몸의 컨디션은 10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려지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내 몸은 아니지만 자신감은 완전.. 울트라를 넘어서고 있었다.
수마클 울트라 팀장의 조언과 추천을 받아 대전 유성온천울트라를 준비했다. 이미 몸은 어느정도 만들어졌기 때문에(수마클 번개훈련에서 산을 뛰는 걸 보니 몸은 만들어진 것 같다고..) 특별훈련을 조금만 보강하길 추천받았다. 그래서, 특별훈련은 7산 종주였다. 울트라 준비를 위해 칠산(대모산~구룡산~청계산~우담산~바라산~백운산~광교산)을 한번쯤 뛰어준다면 지구력과 장거리주에 대한 적응에 좋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18일 새벽 4시반에 기상하여 수서역에 도착, 6시반쯤 출발하여 8시간30분 동안 달렸다(사실 울트라팀장이 울트라를 참가하는 회원을 위해 번개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이날 7명이 달렸다). 다음날은 서울신문마라톤 하프코스를 회복주로 하였다. 대회일까지 1주일 동안은 심한 훈련을 하지 않고 거의 회복주 수준으로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라는 조언이었다. 출퇴근 달리기도 속도를 떨어뜨리고, 주중 하루는 완전히 쉬었다.
대회일.. 종단을 준비하는 여자회원과 울트라팀장이 열차로 수원역에서 같이 출발했다. 대회장에 도착하여 배번을 받고, 6시 출발이니 4시쯤에 식사를 하고, 식당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베낭속에 들어가는 물주머니에 물통 두개분량의 물을 채우고, 배번호를 베낭과 가슴에 달고, 바세린과 벤드로 최소한의 쓸림방지 수준으로만 방어준비를 하고 선크림으로 곱게 화장하였다. 야간을 위해 헤드렌턴과 깜박이를 베낭에 달았다. 헤드렌턴은 처음에 봉담에서 아웃도어용으로 가장 작은 것 준비했었지만, 미리 착용해본 결과 2키로 이상 달리니 목의 근육에 피로감이..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모자챙에 달리는 핀형이 있었다. 3천원인데 배송비가 2천5백원!.. 건전지는 동전형 2개, 그래도 요게 가볍고 완소 아이템이었다.
다른 분들은 발바닥과 무릎에 테이핑하고, 고수다운 모습에 비해 난 뭔가 허전한 것 같았다. 반타이즈위에 짧은 러닝팬츠를 입으니 더울 것이라 하여 타이즈를 벗었다. 더 허전해졌어..!! 초보자 티나, 완전 허접한거 같아.. 암튼 모자위에 햇빛가리게도 얻어서 뒤집어쓰고.. 다리 한쪽이 부러진 선그라스를 쓰고(아들이 부러뜨려서 고무로 고정시켰다), 그렇게 대회장에 도착하니.. 흐야… 그렇게 많은 울트라맨들을 본적이 없었다. 왜..? 처음이므로.. 암튼 많은 울트라맨(+우먼, 500명 가까이 신청했다고 한다)들 뭔가 폼나는 유니폼과 타이즈들이 부럽기도 했다.
준비운동을 간단히 하고, 출발준비, 6시 출발…!
갑천변에 빼곡히 무리지어 빠져나간다. 같이 온 여자울트라우먼은 종단준비팀과 함께 동반주 하고, 난 울트라팀장과 동반주를 시작했다. 사실 수마클엔 나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내가 부상으로 몇 년 동안 수면아래로 숨었을 때 열심히 뛴 회원이었다.
갑천변을 벗어나고, 시내를 살짝 지나면서 10키로를 조금 넘었을 때 였을까. 어둠이 내리면서 목이 마른데 마침 적절한 지점에 누가 편의점(25시간 한다는)을 갖다놨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편의점을 이용하는데, 팀장이 사주는 사과주스 한병을 단 두번에 다 마셔버렸다. 날씨는 목마름을 부르고, 체력은 에너지가 필요한 듯…
어느덧 처음 급수지점인 21.3km지점. 계룡사거리에 도착, 떡 두개와 물 한병을 보충했다. 인적이 거의 없는 거리에 가로등은 아직 훤하게 켜져 있고, 인도에도 도로처럼 바닥에 안내등이 켜져 있는 곳을 지났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곳은 어김없이 자봉과 경찰이 차량통제를 하고 있어서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지점인지, 긴 고개를 지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뛰다가 계속 걸었다. 왜? 다들 그렇게 하더이다. 난 초보니까, 아마 체력안배를 위해 무리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등수안에 드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 고개도 뛰어갔으리라. 에이, 경사도가 장난이 아닌데..
36.3km 지점인 벌곡면사무소. 물과 방울토마토 한줌을 흡입하고, 산속 같이 깜깜한 도로를 달린다.
다음은 CP#1인 노인회관. 44.6km지점. 11시 40분 정도였던 것 같다. 팀장은 생각보다 좀 빨리 온 것 같다고, 조절할 필요가 있다. 도착하니 울트라우먼과 그의 동반주 일행은 벌써 식사를 하고 출발하며, 등목을 하면 좋다고 꼭 하라는 말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팀장과 나는 식사하고 또 물 한병을 베낭의 물주머니에 보충하였다. 등목을 했다. 몸서리치게 차가운 지하수였다. 이후 이 등목의 효과는 초기에 더워진 몸을 완전히 식혀줘서 이후 달리기에 덕을 봤다. 의료지원팀이 여기에 와 있어서 바세린을 살짝 다시 발라주었다(바세린은 어린애들 감기약 담는 조그만 플라스틱병에 넣어서 베낭에 준비해갔지만, 처음에만 사용했다). 식사는 된장국밥으로 기본은 먹고, 밥하나 추가하여 둘이서 나눠먹었다. 제공하는 식사는 가능한 다 먹고 조금 더 먹는게 좋다고 하여..ㅎㅎ, 식사 후 5~10분은 걸은 것 같다. 조금씩 뛰어서 동네개들을 잠에서 깨우고 시끄러움도 즐거움이었다. 시골의 버스정류장, 다리위 등 쉴만한 곳은 한두명씩 쉬고 드러눕고, 드러누운 사람을 깨워 보내고 그 자리에 다시 드러눕고..,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달린다면 울트라는 완주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농민주유소와 이름 모를 동네를 구비구비 지나 63.6km 지점에서 초코파이와 콜라를 먹고 물한병 보충.. 뭐 이리 물을 많이 먹게 되는 걸까?
드디어 CP#2. 75.5km 지점인 마티휴게소. 숭늉 같은 누룽지를 단무지와 맛있게 먹고, 팀장은 그릇 더 먹으려는데 모자란지 양을 조절한다. 뭐 이 지점쯤은 모두들 배고플테니 많이들 먹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 베낭의 무게가 조금씩 느껴지는지 어께가 약간 뻐근하다.
울트라마라톤, 100km라 생각하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래서 난 하프를 5번 나누어 뛴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급수와 간식이 5번 있는데 약 20키로 간격으로 있어서 매번 급수하는 지점까지 하프로 달린다면 가능 할 것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출발했다. 팀장은 풀 두번 뛰고 하프 한번 이면 된다고 한다. 뭐 풀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나로서는 하프가 더 가볍다. 암튼 앞으로는 하프거리 정도가 남았다. 마티고개,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어차피 등수안에 들려고 하는 게 아니니 체력을 아끼며 걷는 거다. 달이 얇은 구름 사이로 훤하다.. 어느 동넨지 불이 꺼졌지만 달빛 아래로 훤히 보이고 반딧불이 짝을 지어 풀숲과 무덤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주로는 매 사거리 또는 갈래길마다 바닥에 화살표가 올래길 표시처럼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봉이 한명씩 밤새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티고개 CP에 도착하기 전에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마티고개를 넘으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을 막 내달리려는 걸 참으며 천천히 달려 내려갔다. 지금까지 계속 대화를 나누며(달리며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울 정도), 아니 일방적으로 들었다는게 맞을듯, 암튼 보조를 맞추던 팀장은 바람처럼 달려 내려가 버려서 깜박이는 불빛도 안 보인다.
내려가니 동네가 나오기 시작하고, 옆에 밭에서는 이른새벽에 모종을 심는 것 같고, 동네 할머니가 지나간다. 모자를 벗어서 인사를 드리고(조용한 동네를 허락도 없이 지나가게 되어서 죄송함을 품고), 저 앞에서 팀장이 같이 가던 주자들을 보내고 걷고 있었다. 같이 달리면서 일 나가시는 동네 아저씨에게 다음지점을 물어 확인하고.. 갑자기 새벽과 함께 살아난 컨디션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누룽지와 파워젤(총 3개를 준비하여 40키로, 60키로 80키로 지점에서 사용) 때문인지 아니면 새벽기운 때문인지, 4~5키로를 하프속도로 내달렸다. 대부분의 주자들이 퍼지는 시점에서 요런 기분은, 풀코스에서도 마지막 스퍼트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무리해서 달리면 부상이 오기 쉽다는 울트라, 조절이 필요해.. 조금씩 걷다 달리다를 반복하였다.
드디어 90km 지점에 도착, 밤새워 기다렸을 자봉이 설레임을 준다(?!...아이스크림임다).
차거운 슬러시를 마시면서 걸었다. 근데 나는 한모금 마신 거린데 누가 벌써 마시고 버린 아이스크림 봉지…! 완전 단번에 흡입했다는 증거인데.. 그리고 반쯤 마셨을 거리에 대부분의 봉지가 모여 있었다. 난, 차가운게 갑자기 들어가면 속이 불편해지는 현상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입에물고 체온을 식히고 나서 데워진 다음 위로 내려 보낸다. 뭐 그러니 먹는 속도가 늦을 수밖에, 그러다 대회관계자 차량이 지나가며 팀장을 알아보고 차가운 커피 한팩을 건네준다. 난 차가운 것을 연속으로 먹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정중히 거절, 하니…. 하나밖에 없단다. ?!
드디어 시내로 들어서며 쭈욱 직진이다. 예전에 충남대 왔을 때 그리도 밀리던 도로였는데, 새벽에 그 길을 뛰어본다.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 조금 지나 바나나(역시 하프엔 바나나가 있었지..)와 물을 보충하고, 언덕은 걷고, 평지와 내리막길은 조금씩 달리기를 반복, 시내에서 다시 갑천변으로 들어왔다. 거의 다 온 듯, 마음은 편안해지고, 날아갈 것 같았다. 마지막 조금씩 힘을 아껴 골인지점까지 퍼지지 않는 모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랬다. 골인지점에서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꽃다발을 건네받고 사진도 찍어주고.. 완주증도 바로 적어준다.
13시간 33분 02초. 아침 7시 33분, 제한시간은 오전 10시(16시간), 예상시간은 8시였는데 어쨋든 30분 정도 일찍 들어왔다. 황태미역국에 밥을 말아먹고 막걸리 한잔도 시원하게.. 사우나표를 따라 냉탕을 20분 정도 하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었다. 더구나 그쪽의 쓸림, 물집과 발톱의 피멍, 그리고 무릎, 허리등 관절 이상..! 뭐 이런게 하나도 없다. 풀코스를 가볍게 뛴 상태의 몸 그대로였다. 너무 천천히 뛴건 아닌지..
사실 테이핑도 하고 싶었고, 무릎 보호대도 베낭안에 준비했었다. 그러나 테이핑 없이 출발한 것은, 어쩌면 가벼운 테이핑일지 모르지만 마음엔 하나의 커다란 위안, 또는 기대심리 때문에 흔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날 것 그대로 뛰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어디서 어떤 이상이 온지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요 대회는 산이 있어서 난이도가 좀 있다. 그래서 다른 대회는 대부분 제한시간이 15시간인데 유성온천 울트라는 16시간 이라고 한다. 그리고, 급수가 모두 7번 있어서 구간을 나누어 뛰기에 좋았다. 같은 날 다른 대회도 있었지만 아는 두명의 울트라맨에게 의논한 결과 두 분다 이 대회를 추천해주었다. 그래선지 성공했고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같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회원님은 여자 1등을 했다. 종주를 준비하며, 연습인데… ‘실전보다 더 중요한 연습은 없다’인가!!. 수원으로 돌아오는 열차안에서 1등 기념으로 고기 사준다는 여자회원님 남편의 호의를 고사하고 집으로 온 것은 식당에서 졸려서 고기물고 까물어치기 싫어서이다.
p.s. 이상은 경험담 입니다.. 그리고 경어체를 넣지 않은 것은 독백처럼 써내려가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해바라옵고. 먼저 적으신 분의 말처럼 대회를 마치면 느껴지는 감동의 도가니! 뭐 그런 것은 생각처럼 밀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여기에 올리는 것조차도 쑥스럽지만 올려 드립니다..
p.s. 지난번 서울의 유권자마라톤 대회에서 몸을 풀고 있을 때 동갑내기 섭쓰리 회원이 '목표가 뭐예요?' 라고 지나가듯이 묻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머리에 충격이 팍 오면서 현기증으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회원이 보기에도 저의 달리는 모습에서 목표가 없어보이는 것이었죠. 사실이니까요.. 그 날부터 난 왜 달리고 있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처음 달릴때의 마음을 끄집어내게 되었습니다. 시간과의 싸움도 아니었고, 다른 누군가와의 약속도 아니었습니다. 조그만 나와의 약속이었습니다.
첫댓글 울트라!! 저에겐 아직 까마득한 얘기 같네요.. 체계적인 훈련만이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완주를 축하 드립니다.
축하드리옵니다.
울트라.... 젊은 날의 꿈이었소이다. 존경하오!
어떤분은 레이스내내 고통스러워하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울음을 터트렸답니다. 그리고 잠시후 다짐을 하였답니다.
이대회 다음에 다시 참석한다고..ㅋㅋ
저도 언젠가는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ㅎㅎ
생각만큼 고통은 없었습니다., 뒤끝도 없네요.. 쓸리거나 물집도, 관절이 아파서 벽짚고 계단내리기도 없고, 사무실에 파스냄새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 부작용 하나... 식욕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대회후 사우나에서 어떤분은 6키로 빠졌다던데, 저는 겨우 2키로 감량되었네요..
완주 축하함다. 작년 강화도 갑비고차울트라가 생각나네요. 정경용샘의 따듯한 배려로 무사히 달렸죠. 그 무슨 대단한 감동이 아니라 짙은 어둠이 서서히 밝아오는 어슴프레한 새벽... 그 쯤이면 대략 90km 내외를 온 거리로 몸은 내가 마음먹은대로 편안히 움직이진 않지만, 왠지 정신만은 맑아졌죠. 날이 지날수록 자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밀려오는 잔잔한 감동을 느껴보십시오. 다시한번 축하함다.
양박사
울트라 치질이여^^ㅋ
축하하고......수고했어요
수마클 이명희씨가 1등했군요.대단한 여자
이런일이 있었군요. 양 박사님대단쓰.
축하합니다.
유시민씨가 책에서 사람은 하고 싶은걸 할때 행복하데요.
행복하겠습니다.
그렇잖아도 달리면서 유시민 책 이야기 했습니다. 달리고나니 행복한건지 한결 평안해지는 느낌입니다. 그게 그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