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전설
정의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서 그리고 우주관이 담긴 꽃과 나무에 얽힌 이야기.
내용
최초의 나무 이야기는 신단수(神檀樹)를 중심으로 한 <단군신화>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숭앙의 대상이 되었던 나무 가운데 연대기적으로 최초의 것은 단군 시절의 신단수(神檀樹)이다. 단수(檀樹)는 소도(蘇塗)나 서낭당에서 ‘무당의 대(臺)(샤먼의 나무·우주의 대·cosmic tree)’ 기능을 한다. 단군은 ‘단나무’의 아들이라 그 이름이 단군(檀君)이 되었다. 조선 이씨왕조는 오얏나무의 아들[목자득국(木子得國)]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전설 역시 한국인의 수목숭배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꽃과 연관된 이야기인 <모란과 선덕 여왕>,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 <철쭉꽃과 수로 부인>, <작약과 제국 공주>, <연꽃과 충선왕> 등이 우리나라 최초의 꽃전설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 선덕 여왕의 공주 시절 일화가 전한다.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을 보고 선덕 여왕이 “꽃은 비록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此花絶艶 而圖畵無蜂蝶 是必無香花).”라고 하였다. 씨앗을 심어 보니 과연 향기가 없었다. 이에 선덕 여왕의 영민함에 모두가 탄복하였다 한다.
신라 신문왕이 설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부탁하자 석총은 화왕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좋은 봄날 현란하게 꽃핀 화중왕(花中王) 모란이 수많은 꽃 위에 군림하니, 천홍만자(千紅萬紫) 꽃들이 화왕의 향궁(香宮)에 입조할 때 요염한 절세미인 장미가 화왕에게 “첩이 일찍 왕의 염덕을 듣고 흠모하는 마음으로 찾아왔으니 행여 버리지 마옵시고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하옵소서.”라고 간하였다. 이때 포의한사(布衣寒士,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가난한 선비)로 노방(路傍)에 있던 할미꽃도 구부리고 와서 화왕 곁에 있으면서 일하기를 원하며 충언직언을 하여 요염한 여자에게 현혹되지 말기를 간하였다. 그러나 화왕은 벌써 요염한 장미에게 빠져서 할미꽃의 충언을 알면서도 그것을 듣지 않았다. 이것을 본 할미꽃은 분연히 왕에게 “신이 처음에는 왕께서 총민하시어 의리를 깨달으리라 믿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렇지 못합니다. 요염한 여인과 가까이함은 패망을 자초하는 길일 것입니다.”라고 아뢰며 왕에게서 떠나려 하자, 왕이 그때서야 잘못을 깨닫고 충직한 할미꽃에게 사과하였다. 이 이야기를 설총이 신문왕에게 들려주자 왕은 “뜻이 깊은 이야기로서 왕자의 계(戒)가 될 만하니 곧 글로 만들어 오라.”라고 하였다 한다. 철쭉류 자생국인 우리나라는 철쭉꽃에 연관된 꽃 전설과 시가 많이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수로 부인> 조에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 수로(水路)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純貞公)을 따라 강릉으로 갈 때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한 노인이 꽃을 꺾어다 주면서 지어 바쳤다는 <헌화가(獻花歌)>는 철쭉꽃 설화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숨겨 있는 향가(鄕歌)이다. 고려시대 꽃전설로는 꽃의 재상이라고 하는 작약과 연꽃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꽃 모양이 함지박처럼 크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작약을 함지박이라고 한다. 고려 때 충렬왕은 원나라 세조(世祖)의 외딸 제국 공주를 왕비로 맞았다.
왕비가 된 공주는 어느 날 수녕궁(壽寧宮) 향각(香閣)의 어원(御苑, 궁궐 안에 있던 동산이나 후원)을 산책하다가 작약이 탐스럽게 피었으므로 시녀에게 명하여 한 가지 꺾어 오게 하였다. 공주는 작약 한 가지를 한참 소중히 잡아 들고 있더니 그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로부터 병이 들어 얼마 뒤에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제국 공주가 향각에서 소요하였던 송경(松京)의 궁에는 작약이 만개하였는데, 제국 공주는 아름답게 핀 작약을 보고 생명의 무상함을 잠재의식 속에서 직관하면서 슬피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연꽃 이야기는 이렇다.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 서울 연경에 있을 때 궁궐 안의 한 여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뒤 고려로 돌아오게 되어 두 사람은 슬픈 이별을 하게 되었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궐녀에게 정표로 연꽃을 선사하니 그녀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충선왕에게 바쳤다 한다. “떠나시던 그날에 꺾어 준 연꽃 한 송이 처음엔 빨갛더니 얼마 안 되어 떨어지고 이제는 시드는 빛이 사람과 같사오이다(贈送蓮花片初來灼灼紅 辭枝今幾日 憔悴與人).” 이 밖에도 계화·고양이머리꽃·국화·금은화·나리꽃·나팔꽃·난초꽃·달리아·달맞이꽃·도라지꽃·동백꽃·두건꽃·등꽃·매화꽃·며느리밥풀꽃·모란꽃·목단꽃·물망초·민들레꽃·박꽃·백일홍·봉선화·붓꽃·패랭이꽃·실걸이꽃·양귀비꽃·연꽃·영춘화·월계화·옥잠화·인삼꽃·접시꽃·장미꽃·진달래꽃·초롱꽃·코스모스·할미꽃·해당화·해바라기·호잇꽃 전설 등이 오늘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널리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 민간에 구전되고 있는 꽃전설로는 개나리라는 가난한 처녀와 그 식솔이 죽어서 개나리꽃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색다른 변이담도 전한다.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개 좆도 없다.”라고 하자 스님은 상자 하나를 준다. 상자를 열어 보니 개 좆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개 좆들을 울타리 주변에 묻었더니 개나리꽃이 피었다는 전설이다. 일종의 학승설화(虐僧說話)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연으로 개나리꽃은 천한 꽃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게 되었다. 원래 도라지꽃은 도라지라는 처녀가 산신과 한 약속을 어겨 그 벌 때문에 변해 버린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사또의 명을 거역해 억울하게 맞아 죽은 처녀의 영혼이 다시 태어난 꽃이라는 변이담도 구전되고 있다. 이들 외에 동백꽃·나팔꽃·만병초·매화꽃·며느리밥풀꽃·백일홍·봉선화·불로초·연꽃·인삼꽃·진달래꽃·할미꽃·해바라기 등도 이담이설(異說)을 지니고 있다.
의의
일찍이 육당(六堂)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속편』에서 고소설의 형성 발달을 『삼국사기』의 <온달전>이나 『삼국유사』의 <조신낙산몽(調信洛山夢)>, 설총의 <화왕계(花王戒)>, 김대문(金大問)의 『잡전(雜傳)』,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 및 『신라고사(新羅古史)』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만큼 꽃·나무전설이 고소설의 소재나 주제로 많이 이용되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무전설보다는 꽃전설이 많은 편이고, 꽃전설의 경우 주인공이 남성보다는 여성이 훨씬 많다. 또 대부분 꽃전설의 수사법은 ‘꽃 즉 여성’이라는 은유적 원리와 관련되어 있고, 의인화 수법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은 심청이가 부활한 장소이기도 하며, 화신(花神)의 은둔처이기도 하고, 그들이 노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무전설은 ‘죽어서도 단종을 옹위하고 있는 엄나무’의 엄흥도(嚴興道)나 <단군신화> 속의 단나무의 아들 단군처럼 남성 상징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대부분 꽃·나무전설류는 의인화의 법칙과 구상(具象)의 법칙에 의해 화소(話素)의 변이가 초래되고 있다.
집필:김선풍(金善豊)/중앙대학교
참고문헌
꽃전설 이야기(김선풍·리룡득 공편저, 집문당 1995년)
민족문화대백과사전-꽃(이정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년)
조선상식문답 속편(최남선, 동명사, 1947년)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년 ∼ 1988년)
한국구비전설의 연구(최래옥, 일조각, 1981년)
한국의 신화(김열규, 일조각, 1976년)
출처:(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024-05-26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