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도 마지막 페리어드를 찍는 날이다.
세월을 누가 이끄는가? 개인적인 약속된 날이나 국가적인 각종 행사들이 뒤를 밀며 앞에서 끌며 세월은 꾸역꾸역 다가온다. 내일이 지방선거-. 오월을 보내고 첫발을 딛는 한달의 첫날이 내일이다. 오늘을 돌아본다. 참으로 기이한 하루를 보냈다. 전혀 예견할 수 없는 하루를 헤엄쳤다.
우연이라고는 하기에 너무 필연이 다가온 하루였다. 우연은 필연의 그림자란 말을 실감한 날이다. 며칠 전, 우연히 이계진 아나운서가 정년을 하고 원주로 귀농해 숨가쁘게 농사를 지으며 취재한 이야기 중 끽다끽반(喫茶喫飯)이란 말이 참으로 생소했다. 다행히 바쁜 중에서도 손잡히는 곳에 사각 휴지통 몸뚱이에 써갈긴 메모가 오늘 빛을 발할 줄이야!
끽다끽반(喫茶喫飯)-. 얼핏 들으면 담배를 많이 피어 생기는 반대급부 같은 선입견이 나도 모르게 떠올라 뒤로 미루다가 조사해 보았더니 아뿔싸! 고약한 내용이 아닌 반대 급부인 고상한 교훈이 보석처럼 숨어 빛나는 불교 선어로 그 의미가 심오했다.
당나라때 조수선사는 102세까지 살다 열반했다. 그가 80에서야 후진을 가르친 겸허한 스님으로 끽다거(喫茶去) 를 선문 선답한데서 유래했는지도 모른다. 한글로 보면 끽다거는 거칠고 별 심오한 뜻이 내포된 것 같지 않지만, 한문으로 써놓고 보면 참으로 심오하다.
-차 한 잔 마시고 가시게!! 왜 달마대사가 동쪽에서 왔느냐고 어느 중생이 겸허히 물어도 그저 끽다거(喫茶去)-. 두번째 산사를 찾아와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불신자에게도 역시 끽다거(喫茶去). 곁에서 왜 스님은 끽다거만 하시냐고 채근을 하는 스님께도 끽다거(喫茶去)-. 참으로 그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한가지에만 집중하라는 뜻이리라.
일을 할 때 그 생각만 하라는 교훈인데 전혀 모르던 나는 오랜만에 터득한 사자성어를 몇몇 지인께 보냈더니 처음 접했다고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다가올 미래로 조바심하지 마라, 오직 현 오늘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내가 그간 저장한 핸드폰에 지인(至人)들께 모처럼 아낌없이 모두 날렸다. 끽다끽반-.
오늘 아침 아내에게도 당나라 조수선사의 가르침을 전해 사자성어를 내면화하였다. 오늘은 아내가 머리하는 날이다. 공지천 삼천동까지 차로 바래다 주고 , 한 시간도 못되어 마친 아내와 동승해 삼천동 쪽으로 향했다. 모처럼 함께 나온 길이니 한시간쯤 걷다가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며 차를 몰았다.
삼악산 케이블카 앞을 달릴 즈음이었다. 멈칫하더니 갑자기 케이블 주차장으로 가잔다. 춘천에 살면서 친구들이 전화가 와 물어보면 타보질 않아 제대로 답을 못했다고 하면서 -. 갑자기 선회한 아내의 태도에 나 역시 즉흥적으로 따라주었다. 개업하고 얼마 후, 작가들하고 곤돌라를 타고 오른 적이 있었지만, 아내는 한번도 못탔으니 새로왔겠지-. 평일이라 입장료를 사면 곧 탈 수 있을 만큼 한산했다. 즉석에서 춘천, 경로우대로 240000원의 절반 할인으로 케이블카에 올랐다.
한번 우왕좌왕 타본 나의 경우, 여유와 실속이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삼악산 케이블카는 기다림없이 곧바로 승차해 가파른 삼악산을 오르며 눈아래 물의 도시를 한껏 만끽하게 했다.
아내는 설왕설래하며 두려움으로 중무장하고 두런두런 사방을 돌아보며 신기한 표정이다.
참 얼겹결에 부부동반으로 삼악산을 오른 셈이다. 모처럼 곤돌라에 몸을 싣고 한껏 여름으로 치닫는 물의 도시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아내의 치밀한 계획성이, 발길 닿는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며, 틀에서 벗어나려는 내 몸부림에 여봐란 듯 패하고, 나는 제로섬 게임처럼 쾌재를 부른 셈이다ㆍ진정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게 인생이다.
처음 문을 열 때 공사 중이던 삼악산 뒤 등산로가 지그재그로 말끔히 완공되어 정상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나 역시 새로웠다. 골에서 부는 바람이 나를 껴안는다. 골짜기로 불며 참나무 잎을 마냥 흔들어대니 순백의 초록 공기가 전신을 휘감는다. 마스크도 벗어들고 오른다. 완만한 갈지( 之)자로 오른다. 뒷산오름이 또하나의 영락없는 볼거리다. 여름이 살아 숨쉬는 삼악산 등산이다.
모처럼 남편따라 오른 곤돌라의 행렬을 길게 바라보며 아내는 내심 즐거운 모양이다. 좋다고 곧 겉으로 표출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의 눈길과 모처럼 길게 내쉬는 안도의 숨소리에서 참 잘 선택한 하루 행사임이 분명했다.
소녀처럼 사진 찍는 것을 즐기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묵언으로 집안을 잘 지켜가며 파랑새를 키우는 속내가 고맙다.
뜻하지 않게 보낸 하루-.무계획적으로 타본 곤돌라-정말 사는게 모두 단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새벽에 배운 끽다끽반처럼 행동하며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야말로 행복을 부르는 첩경이리라. 종일 만끽(滿喫)한 하루였다. 끝
<물의 도시를 굽어보는 무촌의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