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응지론농정소(應旨論農政疏)에서 자주 인용되는 글이 있다.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1798년) 정조에게 올린 일종의 현장 농업정책에 관련된 글이다.
농업에는 다른 산업만 못한 세가지가 있으니 ‘높기로는 선비만 못하고(尊不如士), 이익으로는 장사만 못하고(利不如商), 편안하기로는 공업만 못하다(安佚不如百工)’라는 글이다. 이 글을 접할 때마다의 느낌이지만 210년 전 조선시대 때 농촌현장이 어찌 지금의 개방농정시대 우리의 농업·농촌에 비해 변한 게 없는지 참으로 기구한 운명처럼 느껴진다.
특히 ‘이불여상(利不如商)’이라는 사자성어는 우리 농업의 한계를 드러내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리 일하고 노력해도 땅에서 농사로는 돈을 벌 수 없으니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하라는 자조적인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뒤집어 곱씹어보면 ‘활기찬 농촌’ ‘살맛 나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농촌의 농업인들도 필연적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라는 격언이다. 여기서 ‘장사’는 곧 2·3차 산업으로서의 농업 육성을 의미한다.
〈순창고추장〉은 순창군민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다. 인터넷에서 ‘순창’을 쳐봤다. 역시 고추장 마을답다. 고추장에 관련된 브랜드와 언론기사 등이 줄줄이 눈에 들어온다. 순창군 인구가 3만2,000명이라고 하는데 2007년도 순창군 총 생산액 6,500억원 중에서 고추장 등 장류가 3,000억원(추정치) 정도를 차지하니까 ‘먹여 살린다’는 표현이 가히 틀리지 않을 듯싶다. 물론 〈청정원〉이라는 브랜드 의존도(2,400억원 매출규모)가 크다. 하지만 지역 주민의 2차 가공농산물 수입과 고용효과, 또 농업인이 직접 생산한 원자재 농산물 구입(고추장에 들어가는 고추·찹쌀·콩 등)이 미치는 지역경제 효과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살펴보면 각 지역마다 〈순창고추장〉과 비슷한 사례는 생각 이상이다.〈강화순무〉〈보성녹차〉〈풍기인삼〉〈무안양파〉〈이천쌀〉 등 지역성과 전통성을 잘 살려서 농업을 한차원 끌어 올리고 있다.
곤지암 하면 경기 광주의 ‘곤지암 소머리국밥’이 생각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먹어봤을만 한 음식이다. 도로변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접근성도 좋아 지금은 유명 음식 브랜드로 변신했다.
그 이웃 인접 도척면은 작은 농촌 마을이다.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인데 쌀농사와 특히 특산물로 토란이 유명하다. 전국 토란 생산량의 60% 이상을 생산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한발짝의 진전도 없다. 농사지어 단순 농산물로 서울에 내다 팔 뿐이다.
2000년대 초이던가. 필자는 이곳 지도자들에게 마을 음식점마다 ‘토란국’을 판매할 것을 주문한 적이 있다. 된장국을 끓이듯 마을 음식점마다 토란국을 끓여 메뉴화해보라는 권유였다. 이곳이 서울 근교로 골프 인구가 많고 토란이 건강식인 데다 그곳에 가면 토란국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커지다보면 언젠가 ‘곤지암 소머리국밥’ 이상으로 식객을 유혹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토란국을 끓이는 음식점은 한곳도 없다. 왜일까. 어디서 잘못된 아이디어일까. 목하 고민 중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말이다. “농촌이 1차 산업에 머물지 말고 2·3차 산업으로 가는 농업설계를 해야 한다.” 농촌의 혜안이 필요한 한해다.
신동헌 농촌정보문화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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