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콘트롤(mind control)
빅톨 프랭클은 히틀러의 수용소에서 무시무시한 고문을 당했다. 프랭클은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 “간수들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가할 것인가를 통제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고문하고 내게 음식을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생각을 결코 통제할 수 없었다.”
프랭클은 석방되었다. 수용소 간수들은 평생 그보다 더 행복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소름 끼치는 고문을 수없이 받은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니, 그 비결이 무엇인가?
그것은 행복은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대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왜 나를 이렇게 학대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당신들은 나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어’라는 생각으로 바꾸면 행복할 수 있다. 생각만 통제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성서는 “육신에 둔 생각은 사망이요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고 말하고 있다. 생각을 육신에 두면 죽어 있는 느낌이 들고, 생각을 영에 두면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죽어 있는 사망의 느낌은 학대 받고 있다, 불안하다, 죽고 싶다, 공허하다 등이고, 살아 있는 생명의 느낌은 사랑받고 있다, 평안하다, 기쁘다. 행복하다 등이다. 영적인 삶을 사느냐 육신적인 삶을 사느냐는 결국 생각에 의해 좌우된다. 육신적인 삶의 시작과 결국도 영적인 삶의 시작과 결국도 생각이 그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정신 수련의 방법 중에 마인드 콘트롤(mind control)이 있다. 마인드 컨트롤은 자기 자신의 정신 상태를 관리·제어하는 일이나 종교적인 방법 등에 의해 다른 사람을 정신적으로 관리·지배하는 일이다. 마인드 콘트롤의 핵심이 바로 생각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일, 곧 생각 바꿈이다. 생각을 바꾸는 일을 성서는 회개라고 한다. 회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로 메타(meta)는 바꾸다(change)를 노우스(nous)는 생각(mind)을 뜻하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회개는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성서는 회개가 ‘돌이킴’과 ‘새롭게 됨’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21)라고 말하고 있다. 생각을 바꾸면 삶의 돌이킴, 즉 방향 전환이 있게 되고, 삶의 돌이킴, 즉 방향 전환이 있으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이 구절의 새롭게 됨이란 단어는 그 뜻이 시원하게 됨, 되살아 남, 고통에서 해방됨의 뜻이 있다. 따라서 새롭게 되는 날이란 모든 것이 되살아나 회복됨으로 고통에서 해방되어 기쁨과 안식이 있는 시기를 의미한다.
생각을 바꾸면 삶의 방향을 돌이키게 되고 삶의 방향을 돌이키면 모든 것이 되살아나 회복되어 새롭게 됨으로 고통에서 해방되어 기쁨과 안식이 있게 된다. 어느 관공서에 가니 “생각을 바꾸니 미래가 보인다‘는 문구가 있다. 생각을 바꾸니 결국 미래가 보인다. 생각을 바꾸어 돌이키는 삶을 살면 우리의 미래의 삶이 결정된다. 미래의 삶은 얼마 후의 삶과 영원의 삶이 있다. 생각을 바꾸어 돌이키는 삶을 살면 얼마 후의 삶이 바뀔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의 삶도 바뀐다. 영원의 삶은 사망과 영원한 생명뿐이다. 사망의 종착지는 불못, 즉 지옥이고 영원한 생명의 종착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새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의 얼마 후의 삶이 고통스러우냐, 기쁨과 안식이 있느냐, 우리가 영원한 미래에 사망의 장소인 불못에서 사느냐, 영원한 생명의 장소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사느냐는, 지금 여기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우리의 삶을 돌이키느냐 돌이키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마인드 콘트롤이 그만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