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분 / 한글자막>
=== 영상물 정보 ===
- 블루레이로 새롭게 리마스터링된 기념비적인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45주년 기념판
- 알프스 초원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주옥 같은 노래와 잔잔한 감동의 스토리
- 제38회 아카데미 5개 부문(작품, 감독, 음향, 편집, 편곡) 수상
- 23회 골든 글로브 작품상, 여우주연상 수상
- 로버트 와이즈 감독 / 줄리 앤드류스 / 크리스토퍼 플러머
- 브로드웨이의 걸작 뮤지컬을 만들어낸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헤머슈타인 2세의 작품
----------------------------------------------------------------------------------------------------------------------
=== 작품해설 === <2012년 1월 18일 네이버캐스트 / 김영주 글>
음악에 관한 사랑스런 헌사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 오브 뮤직]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뮤지컬도 아니고, 가장 많은 토니상 트로피를 휩쓴 뮤지컬도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뮤지컬이나 가장 많은 곡을 히트시킨 뮤지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가장 먼저 이름이 언급될만한 작품이다.
걸작의 기원
1949년, 오스트리아 이민자 출신의 중년 여성 마리아 아우구스타 폰 트랩은 자기 가족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회고록을 썼다. 여섯 살에 고아가 되었고, 자라면서 수녀가 되기를 꿈꾸었고, 실제로 견습수녀가 되었지만 기이한 인연으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라 일곱 아이들의 새어머니이자 퇴역한 대령의 아내가 된 오스트리아 여인의 삶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오스트리아의 전쟁영웅과 그의 젊은 아내, 그리고 사랑스러운 일곱 아이들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건너와서 가족 합창단으로 투어공연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2차 대전 직후의 미국인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많았다.
[폰 트랩 가족 중창단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1956년 독일의 한 영화사에 판권이 팔려서 [Die Trapp Famillie]로 처음 영화화 되었다. 할리우드에서도 이 좋은 소재에 당연히 관심을 보였는데, 1957년에는 파라마운트 사가 오드리 헵번을 주인공으로 극영화를 기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아와 폰 트랩 가족의 이야기를 위해 준비된 운명은 따로 있었으니, 같은 해 브로드웨이의 공연 프로듀서 리처드 홀리데이가 이 작품의 판권을 구입했다. 처음 기획대로라면 이 작품은 좋은 노래 몇 곡이 곁들여진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곡의 음악을 위탁 받았던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콤비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마침내 폰 트랩 가족 중창단의 이야기는 연극보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더 적합하다는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연극이었다면 극작가와 연출가의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뮤지컬은 역시 작곡가와 작사가의 예술이고, 어떤 역량의 작곡-작사 팀이 참여했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운이 좋았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마지막 걸작
브로드웨이 황금기를 이끈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20세기 중반 미국 공연계의 제왕 같은 존재였다. 당대 관객들은 그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딴 R&H로고가 인쇄된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 그 작품과 사랑에 빠질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극작가 페렌츠 몰나르가 자신의 대표작 [릴리움]을 음악극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푸치니와 거쉰의 요청을 모두 거절하고 오직 리처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에게만 각색을 허락을 했다는 사실에서 이 전설적인 콤비의 위상을 짐작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You’ll never walk alone’으로 유명한 [회전목마]이다.
매카시 광풍이 지나간 후, 현실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미국에서 상식을 기반으로 한 건전한 비판정신을 잃지 않으면서 선량한 영혼을 가진 주인공들이 우여곡절을 겪지만 따뜻한 인간애를 통해서 행복을 찾게 되는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의 착한 뮤지컬들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기에 적합했다. 두 사람은 현실과 완전히 괴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만 충실하지도 않은 적절한 선에서 극을 조율했고, 매력적인 주인공이 해머스타인의 진솔한 노랫말로 로저스의 과장 없이 아름답고 품위 있는 곡을 노래할 때 관객들은 극의 세계에 홀렸다.
환상적인 협력 작업의 결과물로 [왕과 나], [남태평양], [오클라호마] 등 전성기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많은 명작들을 내놓았던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가장 큰 성공작은 두 말할 것 없이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을 한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60년 8월 23일 해머스타인 2세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타임스퀘어는 1분간 불을 껐고, 웨스트엔드의 모든 극장이 불빛을 줄이는 것으로 거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해머스타인 2세의 죽음으로 그의 파트너 리처드 로저스도 작곡가로서 전성기를 막을 내리게 된다. 리처드 로저스에게 있어서 해머스타인 2세의 죽음은 단순히 마음이 편한 파트너를 떠나 보낸 것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감각을 잃은 것과 같은 일이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의 전성기가 끝나자 브로드웨이 황금기도 막을 내렸다. 진정한 한 시대의 종말이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성공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공연 예술인 뮤지컬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세계적으로 시대의 벽을 넘어 사랑받게 된 데는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동명 영화의 덕이 컸다. 제작 과정에서 유력한 감독 후보로 [로마의 휴일]과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가 거론되었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로 뮤지컬을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옮기는 일에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한 로버트 와이즈가 최종 낙점을 받았다. 윌리엄 와일러에 비해 여성캐릭터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고 평가받은 그가 진두지휘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5년 개봉 당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가 26년간 지키고 있던 역대 흥행 기록 1위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출한 로버트 와이즈는 후대의 영화감독들이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면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와 달리, 이미 증명된 걸작에 자신의 개성을 새롭게 가미해서 전혀 다른 매력과 미덕을 보여주겠다는 과욕을 삼갔다. 영화판 [사운드 오브 뮤직]과 원작은 음악은 물론이고 서사나 극중 캐릭터까지 거의 다른 점이 없는데, 굳이 차이를 찾자면 폰 트랩 대령을 놓고 마리아와 삼각구도를 형성하는 부유하고 오만한 쉬레더 남작부인이 뮤지컬에서는 좀 더 부드럽고 친절한 귀부인으로 등장한다.
영화 연기에 능숙한 배우 중심으로 꾸려지다 보니 목소리 더빙을 통해 부족한 가창력을 커버한 경우도 있었다. 마리아를 진심으로 아끼는 원장 수녀의 위엄 있으면서도 따뜻한 소프라노 음색이나 폰 트랩 대령의 소박한 노래 ‘에델바이스’는 후에 고스트 싱어가 후시 녹음을 한 것이다. 진중한 이미지의 명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성우가 자기 연기 위에 목소리를 입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줄리 앤드루스와의 목소리 궁합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제작진의 뜻을 따랐다. 로버트 와이즈는 브로드웨이 무대 위 대도구 속에 있던 뮤지컬을 우아한 고도 잘츠부르크에 풀어놓으면서 뮤지컬의 매력을 훼손하지 않고 영화문법으로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무대와 영화라는 두 매체가 아직까지는 비교적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60년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뮤지컬이 대중화되었다고는 하나, 현장성과 동시성의 제약을 받는 공연장과 무한복제를 통한 시장 확대가 가능한 영화관은 애초에 수용할 수 있는 관객의 규모에서 차원이 다르다. 당대의 스타성으로는 줄리 앤드루스에게 밀릴 것도 없었던 브로드웨이 스타 메리 마틴이 마리아 역의 오리지널 캐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이름을 남기지 못한 것 역시, 본인으로서는 서운할지 몰라도 당연한 일이다. 두 배우의 캐릭터 해석에도 차이가 있어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으로 남아있는 메리 마틴의 마리아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앨범의 줄리 앤드루스의 마리아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마리아 아우구스타 폰 트랩 vs 우리가 사랑한 마리아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줄리 앤드루스의 마리아는 실존 인물인 마리아 아우구스타 폰 트랩에 대한 가족들의 회고와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마리아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족을 끔찍이 아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실존인물 마리아 폰 트랩은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엄격하고 생활력과 리더십이 강한 성격이었고, 극중에서 완고하고 냉철한 군인으로 묘사된 폰 트랩 대령은 오히려 당시 기준으로 신기할 정도로 부드러운 남자였다고 한다. 트랩 가의 셋째 딸은 아버지가 젊은 해군장교 시절 보았던 마르키즈 제도에 모든 가족을 데려가는 것이 소원이고 밤마다 환상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군대령으로 1919년에 퇴역할 때까지 최고의 영예인 마리아 테레지아 십자훈장을 비롯한 13개의 훈장을 수여 받았던 폰 트랩 대령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사실인 것은 호루라기 호출법인데, 거친 파다 소리를 뚫고 부하들을 부를 때 쓰던 것이기는 하지만 자녀를 군대식으로 훈육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거대한 저택에서 아이들을 쉽게 찾기 위한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폰 트랩 가의 자녀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 대해서 ‘그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듯이 생전의 마리아 폰 트랩 역시 ‘괜찮은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는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리처드 로저스가 곡을 쓰고 해머스타인이 가사를 붙인 ‘에델바이스’가 오스트리아 민요로 통용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정서에 얼마나 진실하게 와 닿을 수 있도록 호소하냐는 것이다.
오늘의 [사운드 오브 뮤직]
오늘날에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먹여 살리는 관광상품이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고는 하지만, 폰 트랩 가족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관객들이 사랑한 것은 실존인물들과 그들이 살았던 진짜 오스트리아의 유서 깊은 도시가 아니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추억하고 싶어 하는 것은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이 창조해낸 음악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와 노래를 통해 표현하는 가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 인생의 다양한 갈등과 성장, 관계에 대한 통찰력과 따뜻한 시선이다. 음악으로 삶과 환상을 표현하는 것이 뮤지컬이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음악 그 자체와 삶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서로에 대해 더할 것 없이 적합한 찬사를 보내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작품에서 내내 느껴지는 그 어른스럽고 포용력 있는 시선은 아마도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거장 해머스타인과 로저스의 영향일 것이다.
지금도 [사운드 오브 뮤직]은 꾸준히 무대에 올라가고 있다. 2006년에는 웨스트엔드에서 마이더스의 손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제작자로 참여한 리바이벌 버전이 공개되었다. 이 공연에서 마리아 역을 연기할 신인을 찾기 위해 BBC는 주말 황금시간 대에 리얼리티 프로그램 ‘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Maria?’를 파격적으로 편성했다. 좀처럼 규율을 지키지 못하는 말괄량이 견습수녀 마리아 때문에 걱정인 수녀들이 모여서 ‘마리아 같은 골치거리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라고 한탄하던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이 TV쇼는 그 자체로도 성공적이었지만 우승자인 전화교환원 출신의 신데렐라 코니 피셔에 대한 관심은 웨스트엔드 리바이벌 공연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브로드웨이와 함께 뮤지컬계의 두 본산 중 하나인 웨스트엔드 극장가에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이 다시 한번 신선한 에너지를 보여주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은 곧바로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 필리핀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이 클래식 뮤지컬을 리바이벌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놉시스
호기심 많고 낙천적인 성격의 견습수녀 마리아는 원장 수녀의 추천을 받아 어머니 없이 퇴역 장교인 가장과 어린 7남매가 함께 살고 있는 폰 트랩 가의 입주 가정교사가 된다. 장난이 심해서 가정교사들을 쫓아내기로 유명한 악동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진심을 다하는 마리아와 금방 친구가 된다. 하지만 아이들을 엄격하게 훈육해왔던 아버지 폰 트랩 대령은 7남매가 또래의 개구쟁이들처럼 변한 모습을 보고 마리아를 해고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마리아에게 배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자, 아내의 죽음 이후 꽁꽁 얼어있었던 그의 마음이 풀린다. 폰 트랩 대령과 마리아는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지지만 마리아는 견습수녀로서 자신의 직분에 어긋나는 감정을 가졌다는 죄책감에 도망치듯 저택을 빠져나와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원장수녀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감정에 진실해지기로 하고 다시 폰 트랩 가를 찾게 된다. 폰 트랩 대령 역시 마리아에 대한 자신을 사랑을 인정하면서 결혼을 약속했던 남작부인과 결별한다. 일곱 아이들의 축복 속에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행복한 시간이 찾아오지만, 나치 세력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불안한 그림자가 가족을 덮쳐온다. 히틀러에 반대하는 폰 트랩 대령은 군대에 복귀할 것을 강요당하자 망명을 결심한다. 폰 트랩 가족 합창단으로 축제의 무대에 서는 것을 핑계로 감시의 눈길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탈출을 감행하고, 수녀원에서 잠시 숨어서 추적을 따돌린 후 알프스를 넘어 마침내 중립국 스위스로의 망명에 성공한다.
공연 내역
1959년 11월 16일 브로드웨이 렌드폰테인 극장
최초 수상 내역
1960년 최우수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무대디자인상, 음향상, 음악감독상
창작자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dgers)
뉴욕 출생의 미국 작곡가. 초기에는 대학에서 만난 로렌스 하트와 함께 콤비를 이루어 많은 작품을 썼다. 1943년 이후에는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와 파트너십을 이어가며 [오클라호마](1943), [남태평양](1949), [왕과 나](1951), [사운드 오브 뮤직](1959) 등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1960년 해머스타인 2세 사후에는 처음으로 작사 작업까지 직접 한 [노 스트링스](1962)를 내놓았다. [오클라호마]와 [남태평양]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Oscar Greeley Clendenning Hammerstein II)
리처드 로저스와 마찬가지로 뉴욕에서 태어나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했다. 191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사와 대본을 쓰기 시작하는데, 북뮤지컬의 효시로 손꼽히는 [쇼보트](1927)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노랫말과 캐릭터의 감정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작사가로 유명하다.
캐릭터 소개
마리아
음악을 사랑하고 모험을 즐기는 쾌활한 견습수녀. 폰 트랩 가의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이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몸짓이라는 것을 알고 다정하게 감싸 안으면서 진정한 친구가 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솔직함과 포용력을 갖고 있는 여주인공.
폰 트랩 대령
퇴역한 해군 장교로 첫 아내와 사별한 후 슬픔과 공허한 마음을 잊기 위해 밖으로 떠돌면서 아이들과도 거리를 갖게 된 아버지. 애국심이 강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진실한 인물이다.
쉬레더 부인
폰 트랩 대령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부유한 여인. 아이들과 가까워지기에는 너무 기품 있는 귀부인이다.
리즐
사춘기에 접어든 폰 트랩 가의 장녀. 우편배달을 하는 소년 롤프와 사랑에 빠졌다. 롤프와 함께 달콤한 첫사랑에 대한 노래 ‘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부른다.
막스
폰 트랩 가의 오랜 친구. 아이들이 음악에 재능이 있는 것을 간파하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부추긴다. 결과적으로 폰 트랩 가가 오스트리아 밖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글 김영주
월간 <더 뮤지컬> 기자
뮤지컬의 ‘그것은 무엇’이라고 잘라 말 할 수 없는 점을 사랑하고, 그 열린 가능성을 지지하는 글을 쓰고 싶은 기자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5.29 10:5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5.29 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