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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따라 잠시 왔다 가는 삶 헛것의 세계에 연연치 마세요
부산 동래 출신의 한국인으로 중국 화산파 장문인(문파의 대를 잇는 인물)에 오른 이가 있다.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가정을 이루고도 평생 도를 닦아 여선(女仙)의 반열에 다가간 것이다.
화산파? 김용의 소설 '영웅문'을 한번쯤 꿰뚫은 대한민국 사내라면 비경 속에 펼쳐지는 절정 무림 고수들의 화려한 무공을 떠올릴 터.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는 과장된 측면이 많다. 중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전진화산파 23대 장문인' 곽종인(72·여) 대사는 내공 중심의 정통 선도(仙道) 수행자이다.
동래 수안동 출신, 어릴 때부터 남다른 영감
20년 교사생활 중에도 영적 체험 계속 돼
결국 수행자의 길 전국 명산서 정진
쉰여섯에 도교 발상지 중국으로 떠나
5대 악산 중 하나인 화산서 혹독한 수행
그는 서울 도봉산이 내려다보는 조용한 주택가에 살고 있었다. 그래도 '도인'인데 산중에서 지낼 거란 생각은 크게 빗나갔다.
지난 15일, 흔쾌히 만남을 허락한 곽 대사와 마주 앉아 찻잔을 들었다. 검은색 도복을 입고 단아하게 머리를 올렸다. 맑고 고운 피부에 온화한 어머니의 웃음을 머금었다. '절대 동안(童顔)!' 70대 나이라 믿기지 않았다. 더러 도의 원리를 설파할 때는 호랑이처럼 엄중한 스승의 눈빛도 엿보았다.
문답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장장 7시간을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런데도 척추를 곧추세운 그의 자태는 한 치 흐트러짐이 없다. 이리저리 앉은 자세를 바꿔대는 낯선 방문자와는 비할 바 아니었다.
보잘것없는 범부로선 도저히 그 도력과 경험의 깊이를 가늠할 묘책이 없으니, 그저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할 뿐이다.
■ 세상에 나선 도인
곽 대사는 지난 4월 책 '도를 닦는다는 것'(정신세계사)을 펴내면서 세상에 나섰다. 수행자로서 깨달은 세상 이치와 폭풍 같았던 삶을 숨김 없이 기록했더니 출판사가 2판 인쇄를 준비하고 있다.
득도를 했다면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눈치챈 듯 그가 말문을 뗐다. "원래 세상 속에서 견뎌내야 진정한 수행을 할 수 있지요. 지금쯤은 조용히 산에 들어가는 게 맞지만, 중생을 제도하고 제자를 키우라는 하늘의 뜻이 있었어요. 이제야 제자를 기르고 교화할 자격이 된 겁니다."
세상 편견 속에서 여성으로서 도를 닦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시원한 대답이 금방 돌아온다. "선도에서는 여자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고, 신선이 될 수 있어요. 유명한 여선(女仙)이 한둘이 아닙니다. 단지 신체적 특징 때문에 남성과 수행법에서 차이가 날 뿐이죠."
곽 대사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딱 한 끼 점심 식사를 한다. 채식은 기본. 그것도 떡 한 조각이나 밥 조금 먹는 소식이다. 화산에서는 아예 곡식을 입에 대지 않는 벽곡(벽穀)을 했다 한다.
■ 금정산 정기를 받다
곽 대사는 1940년 부산 동래구 수안동에서 태어났다. 곽재우 장군 후손인 아버지는 동래에 원예학교를 창설했다. 집안은 부유했지만 늘 베푸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보수적이었다. 아침이면 종을 쳐 식구를 깨우고 함께 등산을 가 약수를 마시게 했다. 해가 지면 외출이 금지됐다. 항상 회초리가 처마 밑에 달렸다. 자식이 잘못하면 어머니도 벌을 섰다. 곽 대사는 부산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도 늦었다고 회초리를 맞았다.
"아버님은 동학의 영향을 받아 자식들에게 찬물을 떠 놓고 배를 치며 주문을 외게 하셨어요. 욕심 없이 절약하고 성실근면하고, 항상 정도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지금 보면 가훈 자체가 도를 닦는 계율과 일치합니다."
집 근처 금정산 자락에는 '학수대'라는 동산이 있었는데, '학 기운을 받아 여자 신선이 태어난다'는 풍수가들의 이야기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동래여자중·고등학교를 다닌 곽 대사는 성당을 다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미사에 참석할 만큼 독실했다. 이때 말 못할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성당 가는 길 대나무숲에서, 집 정원에서 귀신이 보였어요. 그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공존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죠. 차츰 인간의 본질과 정신세계에 관심이 갔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몸이 허해서 그렇다며 홍삼과 한약을 먹였다. 큰아버지는 큰 대침을 정수리에 꽂기도 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곽 대사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 유력 대학을 제쳐두고, 수도여자사범대학(현재 세종대)에 진학한다. 대학에 가서도, 교사가 된 뒤에도 꿈이 곧 현실이 되는 일이 되풀이됐다.
한때 '유리 겔라'가 세상을 놀라게 한 시절이 있었다. 호기심에 물컵에 키우던 양파를 교탁에 놓고 제자들과 눈을 감았다. "양파에서 뿌리와 싹이 나오게 해 주세요." 다 같이 기도를 하자 10분 만에 양파가 쑥 자라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곽 대사는 "아이들은 신기해서 난리가 났고, 결국 교장실에 불려갔다"고 했다. 그 즈음에 우연히 천주교에서 하는 '마인드 컨트롤' 교육을 받았는데, 서서히 없던 능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나는 대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올바른 길로 가게 해 달라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를 닦게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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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곽종인 대사의 서재 책장에는 경전이 가득했다. 3층은 전체가 정갈하고 너른 수행처다. 집 전체가 선도 수련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박희만 기자 phman@ |
국경·문화장벽 넘어 40년간 선도 수행
하루 세 시간 자고 딱 한 끼 점심식사
인터넷 카페 통해 세상과도 소통
"여자로 도 닦는 일 남자와 다르지 않아요
물질에 치우친다면 도의 길 갈 수 없어
도란 진정한 나 찾는 것"
■ 도인을 만나다
그는 어느 날 서점에서도 모르는 사람한테서 '결혼하면 고생하겠소. 그리고 도를 닦겠소'라는 말을 듣는다. 종종 이런 얘기를 듣던 중에 결국 '타의반 자의반'으로 결혼을 한다. 역시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아들 둘을 낳았지만, 남편은 사업에 실패해 집에는 붉은 차압 딱지가 붙었다. 곽 대사는 잠시 놓았던 교편을 다시 잡았다.
곽 대사가 세파와 싸우고 있을 때 스님 한 분이 집 문을 두드렸다. 천주교 신자여서 불교를 미신이라 여길 때였다. 스님은 "지금은 누구도 당신을 위해 기도를 하거나 도와줄 수 없소"라며 "찬물로 머리를 감고 밥 그릇에 물을 떠놓고 매일 108배를 하며 100일 동안 하늘에 기도하라"고 일렀다.
곽 대사는 마침 옆에 계시던 은사님의 권유로 한 달만 실행해 보기로 했고, 머리카락에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겨울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성모 마리아, 요셉이여 도와주소서." 30일째가 되는 날, 곽 대사는 작은 금불상이 보이는 기이한 체험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수행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여자의 몸으로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무작정 조계사 인근으로 찾아가 불교 공부에 열중한다. 화두를 들고 매일 1시간 30분씩 참선도 하면서 법사가 되기에 이르렀고, 우주철학에 빠져 들었다. 결국 몸은 조용한 수행터를 찾아 산으로 향했다.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전국의 내로라 하는 명산을 찾아 수행을 했다.
곽 대사는 어느 날 자정이 가까운 시각, 큰스님으로부터 전라도에서 도인이 오셨으니 만나지 않겠느냐는 전갈을 받는다. 도인은 검은 고무신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문 선생'이었다. 그는 "다 된 밥이 내 앞에 왔구나"라며 크게 반겼다. 본격적인 선도 수행의 시작이었다.
"1년 동안 방에서 남편을 쫓아내기도 하면서 30대 초반에 부부 관계를 끊었어요.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적룡(월경)'도 끊어야 했습니다. 지금 세상에 없지만 남편은 저를 이해해 주는 조력자가 됐어요."
■ 화산으로 향하다
곽 대사는 1980년대 후반 경기도 화현면 운악산 작은 도장에서 도반 제자들과 수행을 한다. 이때 하늘로부터 받은 도호가 요화(曜華). 풀어보면 화산을 빛낸다는 의미다. 화산 수행이 예고된 것이다.
그 즈음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산에서 큰 바위가 지붕을 뚫고 다리 위에 떨어져 온몸이 망가지는 대사고를 당한다. 생사의 기로에 선 그는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고, 평생 불구가 될 위기에 처했다. 제자들은 모두 곁을 떠났다. 더 이상 수행자로서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경지에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회복이 가능했어요. 사고 전에 계시도 있었으니 모든 게 하늘의 뜻이었던 겁니다." 곽 대사는 아직도 남은 희미한 흉터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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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에 세워진 곽종인 대사의 '수도정미론' 비석. |
스승은 화산의 수백 개 바위 봉우리 가운데 백운봉 절벽에 있는 대상방(大上方)에서 평생 수도를 하였다. 절벽 중간에 굴을 뚫어 만든 대상방은 가파른 돌계단을 끝없이 올라야 해 화산에서 관광객이 유일하게 발길을 들일 수 없는 곳이다.
운악산 부상이 완쾌되기도 전, 장문인을 찾아 다섯 시간을 버티며 대상방에 겨우 올랐을 때 스승은 미리 물을 떠 놓고, 만두를 빚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신도가 황금용이 올라오는 꿈을 꾸고 나서 "여기 용띠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스승은 "지금 올라오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곽 대사가 경진생 용띠다.
화산은 혹독했다. 잠은 어두컴컴한 굴에서 잤고, 난방이라고는 없었다. 한겨울 화장실에 가면 북풍한설이 파고들었다. 매일 새벽 3시부터 시작되는 일과 속에 몇 시간이고 요동도 않고 경을 읽는 곽 대사를 보고, 평생 대를 이을 제자를 두지 않았던 스승은 3년 만인 1997년 곽 대사에게 장문인의 법통을 내려주었다.
■ 도를 닦는다는 것
"왜 도를 닦습니까?" "도를 닦으면 불로장생이라도 할 수 있나요?" "정말 신선이 될 수 있나요?" 곽 대사를 만난 이들이 쏟아내는 질문이라 한다. 그는 "사람들이 도를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래도 대답이 궁금했다. "도를 이루지 못해도 최소한 육신의 행복과 건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죽음을 초월하고, 삶을 건강하게 꾸려나갈 수 있지요. 다만 물질적인 것에 치우쳐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면 진리를 탐구하는 도의 길은 갈 수 없습니다. 도란 생명의 근원을 찾는 것이고, 진정한 나를 찾아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곽 대사가 가르침을 주는 이들 가운데 기독교 천주교 불교 신자까지 있다고 한다. 종교마저 아우르는 게 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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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협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곽 대사. |
■ 세상 사람들에게
곽 대사는 고통을 받으며 자살까지 하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잠깐 인연 따라 왔다 가는 세상인데, 헛것의 세계를 전부인 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마무리이자 삶의 연장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죽음은 고통의 끝이 아닙니다. 도를 얻는다는 건 물고기가 물을 얻는 것과 같은데, 사람들은 소를 타고 소를 찾고 있지요. 길은 도를 닦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스러운 명산 금정산을 품은 부산 사람들도 복을 받은 것이지요."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몸을 청정하게 하고 자신의 감정을 평온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공의 적은 불규칙한 수면과 스트레스, 과한 노동, 지나친 술, 식욕, 색욕, 재물욕과 같은 절제되지 않은 생활이라는 것이다. 이런 안타까움은 그로 하여금 주변의 도움으로 인터넷 카페(cafe.naver.com/sujintao)를 열어 세상과 소통하게 했다.
"사람은 속세에서 선근(善根·온갖 선을 낳는 근본이 되는 일)을 세워야 합니다. 바른 호흡과 바른 자세가 무병장수의 꿈을 이루게 합니다. 호흡은 무한한 힘을 얻게 하지요. 그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어느새 한밤중이 되어 집을 나서려는데, 문득 책머리에 그가 쓴 한 구절이 마음속을 울린다. "밤중에 북소리 들었는데 목숨이 바람 속 불꽃같이 홀연히 왔다 홀연히 가는구나. 누구가 꿈속에서 깨어나려는가." (박세익 기자)
(출처/naver blog ~ 간 다스리는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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