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자리
추석 평안하게 잘 지내셨는지요. 코로나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년에 비해서 그래도 조금 여유로운 명절이 되지 않았겠는가 생각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힌남노’라고 하는 태풍이 몰려오는데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는 방송이 계속 나왔습니다.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계속 반복합니다. 그래서 저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행여 교회에 무슨 일이 있을까봐 점검하고 둘러보고 했습니다. 특히 화분에 심어진 식물들이 쎈 바람에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해서 교육관과 교회 현관 안쪽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아이들이 타고 노는 것들도 행여 태풍에 날아갈까 부서질까 해서 그것까지 안에다 들여놓았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새벽 묵상을 하고 베란다 블라인드를 걷고 밖을 보니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래 무사하게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꼭 태풍에게 속아 넘어간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임마누엘 공동체 단체 카톡방에 그런 내용을 문자로 올렸지요. 그리고 텔레비전을 켜니 뉴스가 나오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포항, 울산, 부산 지역에 엄청난 피해가 났다는 것과 함께 포항 어느 아파트에서는 지하 주차장에 갑자기 빗물이 쳐들어와서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났다는 보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여기만 무사해서 다행으로 생각했지 다른 곳 상황까지는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이지요. 참 난감했습니다. 뭣이 그렇게 급해서 새벽부터 카톡방에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올렸을까! 내가 무사한 것이 감사한 것이 아니라 부끄럽고 죄스럽다는 생각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마음 한 쪽이 영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숨기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제발 더 이상 피해가 없기를, 그리고 잘 복구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들이 모르는 저만의 부끄러움의 파편이 하나 남았습니다.
첫댓글 난감하셨겠어요
포항분들 넘 마음이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