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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場 열어 17명 제자의 눈을 뜨게 하신 관징 법사
홍롄(宏蓮, 光弼, 중국 仙遊縣 西方寺 住持)
1) 3개월 불법 단기코스 ‘道場’
나는 20대에 처음으로 관징 스승을 만났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고 출가하게 된 것은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관징 스님께서 산휘사 주지로 계시면서 크게 이적을 보이실 때였다. 그 뒤 나는 마을에 작은 토굴을 짓고 계속해서 관징 법사님의 지도를 받았다. 내가 출가자로서 생활을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1993년 톈마사에 관징 스승께서 제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道場’을 열었을 때이다. 내가 관징 법사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이 道場이 생각나기 때문에 이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 하겠다.
1993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道場은 천마사에 설치되었다. 당시 참가자들은 이미 푸졘성 푸티엔시와 췐저우시의 여러 절에서 문화대혁명 때 사라진 절들을 부흥하고 있는 관징 스승의 제자들이었다. 모두 17명이었는데, 지금 기억하고 있는 참가자는 우리 절에서 나와 홍셴, 그리고 톈마사 주지, 샹산사 주지 런셴이 참석하였고, 쥐셴산 링쥬옌사에서도 왔다.
3개월간 집중강의였는데 경을 염하고 경을 외는 것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속성으로 배웠다. 당시 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3시 반: 기상
4시: 아침예불(이때 반드시 능엄신주를 외웠다)
6시: 아침예불 끝나면 아침밥(죽)
7~11시 반: 오전 학습
11시 반: 낮밥
1시~5시: 오후 학습
5시에 아미타경을 읽고 일과를 마친다.
5시: 날씨에 따라 저녘 예불 이전이나 이후에 죽을 먹는다.
9시까지 학습하고 휴식한다.
새벽부터 저녘까지 빡빡한 일정을 쉴 틈 없이 진행하였는데, 그때 배운 과목들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능엄경, 지장경, 법화경, 약사경, 같은 경전
대비주 능엄신주 같은 주문
수참, 미타참, 금강참 같은 참회의식
바라춤, 법기사용법
염구 몽산시식 초도 같은 법회의식.
이때 먹고 자고 공부하는 모든 비용을 관징 스님이 다 댔으며, 당시 80살인 꾸산사의 노화상 정궈 법사를 초청하여 가르치게 하였고, 관징 스님은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많이 나가 있었다. 때때로 관징 스님이 직접 가르치신 것도 많은데, 강습할 때는 굉장히 엄하게 했기 때문에 지금도 경전 한 줄 외울 때도 틀리지 않으려고 아주 정신을 집중한다.
3개월 뒤에는 모든 졸업생들은 스스로 자기 절에서 법회나 여러 가지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한 뒤 나도 천마사에서 법회가 있을 때 관징 스승이 부르면 가서 함께 참여했다.
당시 관징 스승은 17명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공짜로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배운 것은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중생들을 위해서 활용해야 하고, 새롭게 불교를 부흥하는 밑천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내가 활동하는데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때는 모두 함께 힘을 합해 그 일을 도와야 한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도 관징 법사님처럼 불교 부흥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징 법사가 불교 재건을 위해 힘을 쓸 때 필요하면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2) 관징 스승의 뜻을 받들어 시팡사 창건
우리는 스스로의 절을 짓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관징 스님을 돕기 위해 힘이 닿는 대로 톈마사에 가서 관징 스님을 도와 직접 일을 했다. 관징 스님도 함께 일했지만 자금 확보나 자재구입을 위해서 외출을 많이 했다.
나는 이미 道場에 참석하기 이전부터 우리 마을 가까운 곳에 시팡사라는 작은 불당을 짓고 기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 이 절을 세울 때 절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30가지 이름을 뽑아 놓고 기도를 통해서 결정하였다. 각각 이름 하나를 놓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것을 선택하고, 다시 그것을 가지고 기도를 하여 3법까지 응답하신 것을 마지막으로 뽑았는데 그것이 바로 시팡사이다.
1993년 道場에 참석하여 공부를 하고, 또 일을 도와드리면서 절의 형태와 체계를 배우게 되었고, 관징 스승의 뜻을 가장 잘 받드는 것은 바로 우리도 관징 스승처럼 불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1994년 시팡사의 대웅보전 불사를 시작하였다.
먼저 시팡사 창건 이사회를 구성하였는데 덩웨성을 비롯한 32명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 이사회의 활동에 따라 100명이 넘는 단원들이 작게는 100위엔에서 크게는 2,700위엔까지 불사금을 내서 현재의 서팡사 대전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1년 다시 시팡사 기초건설 및 개안 발기인을 구성하여 불사를 완성하고 현재의 시팡사가 완공되어 점안식을 가졌다. 발기인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방터우, 후양, 여우양, 싱산, 란스 같은 셴여우현 각 지역에서 200명에 가까운 보시자들을 모아 불사를 이룰 수 있었다.
당시 관징 스승은 톈마사를 비롯하여 여러 절을 세우거나 수리하시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도움을 청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스스로 추진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관징 스승이 중수하는 절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해서 조금이라도 스승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은혜에 보답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점은 관징 스승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께서 미국에서 귀국하시면 반드시 전화하여 만나서 미국 이야기도 해 주시고, 자료도 주시고, 우리 절이 돌아가는 형편도 듣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셨다. 귀국하시면 늘 바쁘시기 때문에 우리 절에는 자주 오시지 못하고 딱 한 번 오셨다.
한 번은 미국 반야수덕선당에서 펴낸 사면불에 관한 자료를 복사해서 주셨다. 그래서 그 책에 나온 것을 불상 제작하는 곳에 가져다주고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절 마당에 사면불을 모셨다.
이처럼 관징 스승은 내가 출가하여 절을 세우고 절 안의 체계를 갖추는 모든 것을 직접 자상하게 가르쳐 주신 유일한 스승이시고 온 마을 사람들이 붇다에 관한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게 만들어 주신 보살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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