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중동 이야기]
들어가는 글
서구와 이슬람은 하나의 문명이다
‘중동’이라는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페르시아 시대를 포함해 현대의 이라크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오리엔트’라 불렀다. ‘동방’이라는 뜻을 가진 오리엔트는 라티어에서 비롯되었다. 오리엔트라는 단어는 로마 제국 시대에 제국의 동쪽 영역, 더 나아가서는 막연히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그 시대를 ‘고대 오리엔트’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이 책은 ‘고대 오리엔트’의 민족과 종교의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체로 풀어내고 있다.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이 지역을 터전으로 하는 민족에 의해 발생해 오늘에 이르렀다.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주도한 미국의 무역센터 빌딩에 대한 ‘9.11 테러’는 서방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게다가 9.11테러 직후 유럽에서 이슬람교의 예언자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풍자 만화가 선보이면서, 이에 분노한 이슬람교도들이 벌인 무력시위는 마치 종교전쟁을 방불케 했다.
이 같은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립은 언제 어디서 비롯된 것일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세계 3대 유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고대 오리엔트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발전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두 문명 간 대립의 실마리는 더듭어 볼 수 있다.
내가 중동 지역의 역사와 종교,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30년 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중동의 작은 나라에서 로마 시대의 유적인 신전을 보게 된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 작은 나라의 곳곳에서 로마가 남긴 장엄한 역사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의 뜻을 실감했다.
레바논에는 로마 시대보다 더 앞선 페니키아의 유적뿐만 아니라 십자군의 요새도 많이 남아 있었다. 이전까지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비잔틴의 역사가 갑자기 구체적인 사실로 내 눈앞에 펼쳐지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레바논은 ‘종교의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종교와 종파가 공존하는 나라다. 어떤 의미에서 레바논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구약성서>를 시발로 하는 중동의 종교 이야기는 고대 오리엔트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일관된 흐름으로 풀어내기가 무척 어렵고 까다로웠다. 그러나 와세다대학교에서 ‘지역 연구-중동’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중도으이 역사와 종교, 문화를 한번 제대로 정리해보겠다는 강한 욕구가 발동했다.
나는 동서의 냉전 구도가 무너지면서 문명의 충돌과 대립이 격화되기 시작했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다른 문명권이라는 견해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같은 뿌리에서 시작해 같은 토양에서 발전을 거듭했기 때문에 하나의 문명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중동의 복잡한 역사를 해석하고 비평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그건 역사학자가 해야 할 일이다. 중동 지역에서 수십 년간 살면서 중동의 역사와 종교, 문화를 연구한 나는 중동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해주려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직접 경험한 역사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 독자들도 고대 오리엔트가 만든 퍼줄의 조각을 하나식 맞추다 보면 나중에 중동 이야기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하는 기쁨을 맛볼 것이라 확신한다.
고야마 시게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