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송나라 때의 소동파는 유불선 삼도에 무불통지?한 훌륭한 학자였습니다. 이 소동파가 자기에 대해 생각해 보니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걸림이 없어. 그러고 보니 그 이치에 대해서 누군가와 그 진리에 대해서거량을 해 보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상대가 없어. 어느날 자기 계획대로 동림사의 상총선사를 찾아갔어. 찾아가서,
“스님의 이름이 무엇이요?” 하고 물었어.
“아무개올시다.”
그 스님이 자기 성명을 대 줘.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남의 이름만 물어 보고 자기 성명은 대지를 않거든. 그러니까 상총스님이 소동파의 이름을 물었어.
“당신 성명은 뭐요?”
“예, 나는 칭거사올시다.”
“그래 무슨 칭자요?”
“저울대 ‘칭자올시다.”
“하고 많은 문자를 다 두고서 어째 저울대 ‘칭’자를 쓰시오?”
“천하 도인들을 저울질하고 다니는 처사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울대 ‘칭’자를 놨소이다.”
이렇게 말을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스님이 느닷없이 ‘악!’ 하고 소리를 냅다 한 번 지르고서,
“이 소리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달아 봐라.”
거기서 꽉 막혀 버렸어. 고승이 아니라 고승대덕 할아버지라도 한번 해 볼자신을 가지고 갔는데 그 한 마디에 그냥 꽉 막혀버렸어.
그러나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소동파가 아니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 하고는 휑하니 나갔어. 자존심을 꺾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거기서 완전히 죽어 버렸어.
가면서 생각해 보니까 그런 봉변이 없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정신없이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꼬비를 당기지 않으니 제가 가고 싶은 대로 가다가
말이 물이 먹고 싶어서 쏴하고 떨어지는 폭포 앞에 와서 물을 먹고는
꼬비를 당기지 않으니 그대로 서 있을 수 밖에...
정신 잃은 소동파가 쏴 하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고서 그만 깨달았어.
물소리를 듣고.. ‘한 번 소리지른 무게를 달아 보라’는 말의 이치를 알았어.
그러고는 오도송을 지었어.
계성변시광장설 산색기비청정신
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야래팔만사천갈 타일여하거사인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폭포 물소리 부처님의 다함없는 법문이요
산 빛이 그대로 부처의 몸일세.
어젯밤 깨달은 팔만사천 가르침을
어떻게 그대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게송을 지어 놓고 보니까 참 근사하거든. ‘야, 이것 가지고 가서 또 한 번 적을 해 봐야 되겠다’ 하면서 가다가 다시 돌아왔어. 다시 와서는
“내가 이 게송을 지었으니 한 번 감정해 보시오.” 하며 내놨어.
그러나 스님은 그냥 치워 버려. 쓸데없는 도깨비짓 하지 말라는 거야.
근사하게 오도송을 지었는데 또 쫓겨났어. 집으로 돌아가서 밤잠을 안 자고 공부를 했어.
그 때 터져 나온 오도송이 이거야. 참 견성구지.
여산연우절강호 미도천반한부소
廬山煙雨浙江潮 未倒千般恨不消
도득환래무별사 여산연우절강호
到得還來無別事 廬山煙雨浙江潮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이르지 못했을 땐 천가지 한이었네.
이르고 보니 별다른 것이 아니라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네.
이 게송을 가지고 또 상총스님한테 갔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끄덕 했어.
그렇게 소동파가 두 번 오도를 했는데, 이 게송이 두 번째의 오도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