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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59강-3 (2015. 1. 5.)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九
十行品 第二十一之一
三. 功德林菩薩의 菩薩行
6. 第四 無屈撓行 精進波羅密
(1) 精進行
나. 離過
(2) 精進行의 意味
가. 饒益衆生 나. 一切佛法
(3) 重現精進行
(4) 一切衆生 得涅槃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복잡해지는 겁니다.
그 일은 너무 하찮은 일입니다. 음주운전은 너무 하찮은 일입니다.
깨놓고 이야기하건대, 도박까지도 너무 하찮은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 정도 일은 다 합니다. 그 정도 개인적인 허물은 다 있다고요. 어느 한 사람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솔직하게, 혼자서라도 자기 자신을 和盤托出(화반탁출). 다 드러내놓고 검토를 해보면, 딴 사람 없을 때 자기혼자 있을 때 어떻게 사는가? 또 남모를 때 또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런 것을 적나나하게 스스로 한번 메모를 해본다든지 검토를 해보면, 사실은 남의 이야기할 상황이 절대 아니지요. 절대 남의 이야기할 입장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정진이라는 말을 이렇게 하고, 또 여기 離過(이과). 라 해서 허물을 떠나다. 라고 하는데, 性無三毒이라고 하는 이런 말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겁니다. 우리 自性에는, 참 나ㆍ眞如自性에는 3독이 없습니다.
탐ㆍ진ㆍ치 3독이 없습니다. 그렇게 탐ㆍ진ㆍ치 3독과 아까(59-2) 뭐라고요?
憍慢(교만)과 여러 가지 覆藏(부장). 자기허물 덮어씌우고 감춰버리고 남에게 안보이게 하고 하는 것. 그것 사실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런 것들이 우리의 참 나 자리에는, 차별 없는 참 사람. 제가 가끔 예를 들지요. 차별 없는 참 사람자리에는 그런 3독이 본래 없습니다.
육조스님도 그런 이야기했지요?
선문에는 그런 이야기가 부지기수로 나옵니다. 그래서 거기에 우리가 희망을 둔다니까요. 그래서 內外明徹(내외명철) 이런 말을 합니다. 안팎이 똑 같아져버려야 됩니다. 안은 본래로 性無三毒입니다. 사실은 우리 성품에는 3독이 없습니다. 그런데 밖에도, 행동으로도 3독이 없어야 되는데 아 그것이 안 된다 말입니다. 그것이 안 돼요. 內外明徹이라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안팎이 환하게 똑 같이 그렇게 돼야 된다는 것이지요.
性無憍慢(성무교만)하며, 성품에는 교만이 없어요.
우리 본성에 무슨 憍慢같은 그런 허물이 있습니까? 여기 있네요.
性不覆藏(성불부장)하며, 자기허물 덮어씌우고 감추려고 하는 것 없어요.
본성에는 우리자성 자리에는 그런 것이 본래 없습니다.
性不慳嫉(성불간질)하며, 아끼고 질투 하고 하는 것이 성품에는 본래 없어요. 성품에는 그저 六波羅蜜ㆍ十波羅蜜입니다. 四攝法ㆍ四無量心이고
忍義禮智입니다. 우리성품에는 그것만 꽉 있습니다. 우리본성에는 그것만 있다고요. 우리본성에는 인의예지가 가득차서 흘러넘치고, 사무량심이 흘러넘치고, 사섭법이 흘러넘치고, 육바라밀,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가 꽉 차서 흘러넘치는 것이 그것이 우리본성입니다.
性無諂誑(성무첨광)하며,
우리성품에는 본래 속이고 거짓됨이 없어요. 아첨하거나 거짓됨이 없습니다. 性自慚愧(성자참괴)하야,
그래서 성품은 언제나 겸손하고 부끄러워 할 줄 알아요.
常懺愧省(상참괴성)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승려가, 얼마나 아주 좋은 이름입니까? 性自慚愧. 성품은 항상 스스로 부끄러워해서 終不爲惱一衆生故로, 한 중생도 마침내 괴롭게 하지 아니해요.
而行精進이요. 그래서 정진을 행한다.
성품에 본래 그렇게 갖춰져 있고, 그런 허물은 일체 없고, 모든 좋은 것만 가득히 있는 것. 그래서 富有萬德(부유만덕)이나 湯無纖塵(탕무섬진)이라.
왕복서에도 그런 말이 있지요. 富有萬德이나, 부유하기로 하면 만행만덕을 다 갖췄습니다. 6바라밀과 10선과 4무량심과 4섭법과 인의예지를 가득이 갖춰있습니다. 富有萬德입니다. 자성에는 만 가지 덕행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德湯無纖塵입니다. 텅텅 빈 입장으로서는 3독도 없고, 교만도 없고, 부장도 없고, 간질도 없고, 첨광도 없고, 그것이 우리 本性이라고요. 그래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이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본성에는 본래 그러한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수행 하는 것이지요.
(2) 精進行의 意味
가. 饒益衆生
但爲斷一切煩惱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拔一切惑本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除一切習氣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衆生界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衆生의 死此生彼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衆生煩惱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衆生心樂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衆生境界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衆生의 諸根勝劣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衆生心行故로 而行精進하니라
精進行의 意味. 이것은 차별 없는 참 사람을 믿고, 성품에는 3독도 없고, 교만도 없고, 자기허물을 덮어씌우려고 하는 것도, 감추려고 하는 것도, 간탐과 질투도 속임도 이런 모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굳건히 믿고, 그리고는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자. 이것이 精進行의 意味입니다.
饒益衆生이라.
但爲斷一切煩惱故로 而行精進하며,
일체 번뇌를 끊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拔一切惑本故(단위발일체혹본고)로 而行精進하며,
일체 惑本. 미혹의 근본을 빼버리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除一切習氣故로 而行精進하며,
但 일체 習氣를 제거하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한다.
우리가 무시이래로 무수한 세월동안 온갖 탐진치 3독과 8만4천 번뇌를 나의 살림살이로, 또 나의 家寶로, 집안의 보물로 떡~~ 생각하고, 8만4천 번뇌가 보물인 냥하고 그저 자나 깨나 그 탐진치 3독과 8만4천 번뇌를 가지고 생활해나가는 그것이 일체 習氣거든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한다.
但爲知一切衆生界故로 而行精進하며,
다만 일체중생계를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衆生界하면 중생세계입니다. 중생세계가 얼마나 광대무변하다. 또 얼마나 다종다양하다. 하는 것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一切衆生의 死此生彼故로 而行精進하며,
일체중생들이 여기에서 죽어가고 저기에 태어나는 것, 어떻게 죽고 어떻게 태어나고, 어디서 죽어서 이렇게 태어나왔고, 우리가 죽어서 또 어디로 가고, 이러한 사실을 알려고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一切衆生煩惱故로 而行精進하며,
일체중생의 번뇌를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한다. 중생들의 번뇌도 각양각색입니다. 오늘번뇌 다르고, 내일번뇌 또 다르고, 젊을 때 번뇌, 늙어서 번뇌, 번뇌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자성자리에는 번뇌가 없다고 알고 출발하면서 그러나 현상은 또 번뇌 투성 입니다. 번뇌 투성이...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번뇌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뭐 108번뇌니 8만4천 번뇌니 8만4천 법문이 8만4천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등등 이런 표현들이 있지 않습니까? 일체중생의 번뇌를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一切衆生心樂故로 而行精進하며,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또 중생제도를 하니까요. 좋아하는 것도 각양각색입니다. 어제는 둘이서 죽이 맞아서 같이 그것을 좋아했는데, 오늘 또 그거 하자고 만나자고하면 “아이고 어제 실컷 했다.”고하고, 좋아하는 것이 달라져버렸다고요. 그래서 그러한 상황도 다 알기 위해서, 알아야 중생을 제도하니까요. 그래서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一切衆生境界故로 而行精進하며,
이것은 차원입니다. 중생들의 차원이 각양각색입니다.
사실 52위 점차를 나눠놨지만, 520위를 나눠도 좋을 것이고, 5000단계ㆍ50000단계로 나눠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중생의 경계입니다. 중생의 차원이라고요. 정신의 차원. 그 차원도 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요. 계속 올라가기만 하고, 간혹 한번 씩 제자리걸음하다가 또 올라가고,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어쩌다가 또 뒤로 후진합니다. 뒤로 미끄러지는 경우들도 많아요. 중생의 경계를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一切衆生의 諸根勝劣故(제근승열고)로 而行精進하며,
모든 根들이 수승하고 하열한 것. 뭐는 이 사람이 아주 뛰어나는데 뭐는 또 영~ 안 돌아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한 가지 잘한다고 전체를 다 잘하는 경우도 없고, 한 가지 못한다고 전체를 다 못하는 경우도 없는 겁니다.
우리가 그것을 잘 알아야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이행정진하며,
但爲知一切衆生心行故로 而行精進하니라.
중생의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가? 心行. 어디로 마음이 흘러가는가?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니까요. 그것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느니라. 참, 그 無屈撓行에는 精進波羅密인데 내용이 아주 참 좋습니다.
나. 一切佛法
但爲知一切法界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佛法根本性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佛法平等性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三世平等性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得一切佛法智光明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證一切佛法智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佛法一實相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知一切佛法無邊際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得一切佛法廣大決定善巧智故로 而行精進하며
但爲得分別演說一切佛法句義智故로 而行精進이니라
但爲知一切法界故로 而行精進하며,
일체법계를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一切佛法根本性故로 而行精進하며,
다만 불법의 근본 성품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一切佛法平等性故로 而行精進하며,
일체불법의 평등한 성품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三世平等性故로 而行精進하며,
과거ㆍ현재ㆍ미래가 모두 평등한 성품이다. ‘시간은 공하다.’ 그렇게 보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끊임없이 시간을 가지고 생활하는데요. 사실은 그것이 ‘텅 비어서 공하다.’ 그것이 평등한 성품이거든요. 그것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得一切佛法智光明故로 而行精進하며,
일체불법의 지혜광명을 얻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한다.
但爲證一切佛法智故로 而行精進하며,
일체불법의 지혜를 증득하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知一切佛法一實相故로 而行精進하며,
일체불법이 하나의 실상이다. 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이행정진이라,
但爲知一切佛法無邊際故(단위지일체불법무변제고)로 而行精進하며,
일체불법은 邊際가 없다. 끝이 없다. 라고 하는 사실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得一切佛法廣大決定善巧智故로 而行精進하며,
다만 일체불법의 광대하고 결정하고, ‘분명하다.’이 뜻입니다. 광대하고 확실하고, 善巧智. 이것은 아주 익숙한, 능숙한 그런 지혜를 얻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며,
但爲得分別演說一切佛法句義智故로 而行精進이니라.
일체불법의 句義. 구절과, 그 구절에 담겨있는 뜻을 분별 연설하는 그런 지혜를 얻기 위한 까닭으로 정진을 행하느니라.
一切佛法의 句義. 하니까 가슴이 찔끔합니다.
‘내가 과연 이 화엄경의 구절과, 그 구절에 담겨있는 뜻을 제대로 연설 하는가?’ 제대로 연설하려면 여기에 뭐라고요? 지혜를 얻어야 되는데,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정진을 행해야 된다.’ 그 정진을 어떻게 행하느냐?
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이라. 옛말에 그렇게 했습니다. 읽어도 안 되거든 백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그랬습니다. 백번 읽어도 안 되면 백번 써요. 백번 써보면 읽는 것하고는 또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양주동 씨 옛날 글에 그런 것이 있지요. 그 문법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 사람이 영문학자인데, 영어를 공부하는데 3인칭이라는 말이 있어요. 1인칭ㆍ2인칭은 알겠는데 3인칭은 도대체 뭔지 모르겠더라고, 그 사람 글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1인칭은 나, 내가 1인칭이고, “너” 하면 2인칭이고요. 나와 너. 그것 말고 3인칭은 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아주 총명하고 천재거든요. 한문 물리는 옛날에 다 난 사람이고요.
동양에는 3인칭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영문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부터
3인칭이라는 말이 생긴 처음 보는 낱말입니다. 그 때 누구에게 설명 들은 바도 없고요. 그래서 讀書百遍에 義自見이라는 말만 믿고는, “3인칭ㆍ3인칭ㆍ3인칭ㆍ3인칭...” 하고 백번 아니라 천 번을 읽어도 물리가 안 나더래요.
천 번을 읽어도 3인칭이라는 말이 뭔 말인지 모르겠더래요. 그래가지고 그 다음에 결론이 그 겁니다. 牛溲馬勃(우수마발)이 皆三人稱也(개삼인칭야)라.
소똥 말 오줌이 전부 3인칭이더라. 하하하 그런 결론, 아주 멋진 양주동 씨 글이 있지요.
저는 그렇습니다. 여기서 讀書百遍에 義自見. 이것 믿고 그냥 밀어붙입니다. 제가 글 쓰다가나 아니면 강의할 때 몇 번 보거든요. 오늘 강의를 위해서 몇 번 보고, 또 애벌 한 번 볼 때 글자가 어렵다든지 글이 어렵다든지 그러면 체크를 해놔요. 그 다음에 두 번째 보면서 그것 또 한 번 옥편 보고 다시 확인하고, 그래서 또 한 번 새기는 것도, 제가 강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지금 60년이 가까운, 세월이 상당히 오래갔네요. 55년인가 6년쯤 됐는데, 그때 새기는 법을 1ㆍ2ㆍ3ㆍ4ㆍ이렇게 번호를 매겼어요. 번호를 매겨서 새겼거든요.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왜냐? 혼자 이해하려면 천천히 새기면 그것 상관없지만, 남에게 이야기해 주려면 더듬거리면 안 되거든요. 그렇게 표시해놓고도 지금 더듬거리는데, 많은 글을 해석하다보면 그것 누구나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것 새기기가 순서가 조금 ‘까다롭다.’ 싶은 것은 순서를 딱 딱 매겨놓습니다. 그래놓고 또 확인하고ㆍ또 확인하고요.
讀書百遍에 義自見. 저는 그것만 믿고 하는 겁니다. 사실 그래요.
여기 一切佛法의 句義를 연설하는 지혜를 얻는다. 어디서 얻어요? 많이 읽고, 심사숙고하고, 사유하고, 누워서도 그 구절가지고 생각하면서 잠들지요. 그 구절가지고 생각하면서 잠드는 겁니다. 그러다가 잠자려고 누웠다가도 그것이 딱, 터지잖아요. 그럼 일어나서 메모해 놓습니다. 메모해 놓고 누우면 잠이 어느새 도망가서 또 몇 10분 시간 가는 겁니다. 그 길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而行精進이라. 그것이 정진이 아닙니까? 而行精進한다.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의 어리석은 공부 방법을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스님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려서부터 그냥 그렇게 해왔습니다.
(3) 重現精進行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成就如是精進行已에 設有人이 言호대
汝頗能爲無數世界의 所有衆生하야 以一一衆生故로
於阿鼻地獄에 經無數劫토록 備受衆苦하야 令彼衆生으로
一一得値無數諸佛이 出興於世하고 以見佛故로 具受衆樂하며
乃至入於無餘涅槃하야사 汝乃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리니
能爾不耶아하면 答言我能이니라 設復有人이 作如是言호대
有無量阿僧祗大海어든 汝當以一毛端으로 滴之令盡하며
有無量阿僧祗世界어든 盡末爲塵하고 彼滴及塵을
一一數之하야 悉知其數하야 爲衆生故로 經爾許劫토록
於念念中에 受苦不斷이라도 菩薩이 不以聞此語故로
而生一念悔恨之心하고 但更增上歡喜踊躍하야 深自慶幸호대
得大善利로다 以我力故로 令彼衆生으로 永脫諸苦하니라
重現精進行. 거듭 정진 행을 나타낸다.
이것은 지장보살의 원력. 이것도 일종의 정진이지요. 그런 내용을 여기서 피력하고 있습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成就如是精進行已에, 이와 같은 정진 행을 성취하고 나서
設有人이 言호대, 설사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되
汝頗能爲無數世界(여파능위무수세계)의
그대가 자못 능히 무수한 세계에
所有衆生하야, 있는바 중생들을 위해서
以一一衆生故로, 낱낱 중생을 쓴 고로,
‘낱낱 중생을 위한 까닭으로’ 이런 말입니다.
於阿鼻地獄에 經無數劫토록, 아비지옥에서 무수겁을 지내도록
備受衆苦하야, 온갖 고통을 갖추어서,
하나도 빠지지 않고 갖추어서 = 受備 = 갖추어서 다 받아서
令彼衆生으로, 그 중생으로 하여금
一一得値無數諸佛이, 낱낱이 한 부처님을,
出興於世하고, 무수한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함을 得値하고 = 만나고,
그래서 부처님을 以見佛故로, 친견한 까닭으로
具受衆樂하며, 온갖 낙을 받으며, 具受 = 갖추어서 받는다는 말입니다.
乃至入於無餘涅槃하야사, 내지 무여열반에 들어가게 하고사
汝乃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리니,
그대가 능히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리니
能爾不耶아하면, 능히 그렇게 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을 다 그렇게, 그 많고 많은 중생.
無數世界所有衆生입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아비지옥에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데 그 사람들을 전부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해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래서 결국은 무여열반에 들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한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答言我能이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하나니라.
이것이 지장보살의 뭐라고요? 地獄未空 誓不成佛(지옥미공 서불성불).
지옥이 다 텅 비기 전에는 나는 성불하지 않는다. 하는 그 사상이 그대로 여기에 녹아있습니다.
設復有人이, 설사 다시 또 어떤 사람이
作如是言호대, 이러한 이야기를 하되
有無量阿僧祗大海어든, 무량 아승지 대해가 있는데, 큰 바다가 있는데
汝當以一毛端으로, 한 터럭 끝으로써
滴之令盡하며, 그 큰 바다의 물을 찍어서 그것을 다 말려서 없앤다. 이 말입니다. 하나 씩ㆍ하나 씩 저 넓은 태평양 바다 물을 털 끝 하나로써 찍어서 없앤다. 이 겁니다. 한 숟가락ㆍ한 숟가락 떠서 옮기는 것 같으면 차라리 쉽지요. 그런데 털 끝 하나로써 찍어서 말려서 없앤다. 또
有無量阿僧祗世界어든, 무량 아승지 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또
盡末爲塵하고, 末 = 가루 말자입니다. 다 가루를 만들어서,
먼지를 만든다. 이 말입니다. 가루를 해서 먼지를 만든다.
彼滴及塵을, 저 바다에 있는 물방울과 그리고 아승지 세계의 먼지를
一一數之하야, 낱낱이 헤아려서
悉知其數하야, 그 숫자를 전부 다 알아서,
爲衆生故로, 중생을 위한 까닭으로
經爾許劫토록, 그러한 세계, 그 숫자와 같은 세계를 지나도록
於念念中에, 念念가운데서
受苦不斷이라도, 고통을 받아 끊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菩薩이
不以聞此語故로, 이 법을 들음으로써, 이러한 말씀을 듣는 까닭으로써
而生一念悔恨之心하고, 한 생각도 悔恨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그것 왜 그러냐? 중생을 위한 까닭으로요. 중생을 위한 까닭으로 한 생각도 悔恨心을, 뉘우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但更增上歡喜踊躍(단갱증상환희용약)하야,
다만 다시 增上歡喜踊躍이라. 하~~ 기쁘기만 하다. 이 겁니다.
歡喜踊躍深自慶幸호대,
뛸 듯이 기쁘기만 해서 깊이 스스로 경사스럽고, 다행하게 여기되,
得大善利로다. 아~ 큰 이익을 얻었다. ‘야~ 이렇게 훌륭하고 좋은 이익이 있는가?’ 이렇게 한다. 이 말입니다. 경사스럽고, 다행하게 여기는 겁니다.
그러한 일들을 앞에서 이야기하려면 이야기가 또 끊어지니까요.
앞에서 바다 물 이야기하고, 또 세계를 미진으로 만들었을 때 그 작은 먼지숫자와 같은 세월동안 중생을 위해서 그렇게 사는데, 거기에 한 마디ㆍ한 순간의 뉘우침도 없고, 그러면서 오히려 더 기뻐하고ㆍ더 좋아하고ㆍ더 경사스럽고 다행하게 여기고, 스스로 得大善利라한다. 말입니다. 큰 선과 큰 이익을 얻었다. 진정한 이익은요? 불교에서는 善자가 붙어야 됩니다. 좋은 이익이라야 됩니다. 세상에는 악한 이익이 많거든요. 나쁜 이익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단은 이익이지만, 나쁜 이익이 얼마나 많아요? 온갖 사기협잡으로 일단은 나에게 돌아온 이익. 그것은 정말 경계해야할 나쁜 이익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늘 善利입니다. 착할 善ㆍ이익 할 利. 좋은 이익ㆍ정상적인 이익ㆍ이치에 맞는 것, 저절로 돌아오는 것, 아무리ㆍ아무리 물리치려고 해도 저절로 돌아오는 이익.
제가 그 전에 그랬지요?
큰절에 살 복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눈을 닦고 개인 토굴을 구하려고 해도 안 구해진다. 이 겁니다. 큰절에 살 복이 있는 사람에게 왜? 더 좋은 자리가 눈에 들어오겠느냐? 이 겁니다. 그래 순리적으로 이치가 전부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순리를 따를 줄 알아야 됩니다. 순리를 살피고, ‘아 이것이 순리에서...’ 제가 108자재 어에서 예문을 하나 든 것이 있잖아요.
성공의 삼박자! 진정 성공한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성공이라 하느냐?
因緣을 隨順하고, 자기가 지은 인연을 잘 수순해야 됩니다. 또
인연을 把握(파악)해야 됩니다. 하~~ 자기인연을 把握해야 됩니다. 그 인연을 把握할 줄 모르고 허둥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因緣을 隨順하고, 因緣을 把握하고, 그리고 인연을 創造(창조)해야 됩니다. 자기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 이치에 맞게 인연을 創造해 나가는 것. 그렇게 살줄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은 어떤 위치에서 살더라도, 평생 화장실 청소만 하든지 길거리 청소만 하든지 청소부가 되든지 뭘 하든지 간에, 그런 이치에 딱 영합해서 사는 사람이 그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래 성공의 삼박자!
그 구절이 있지요. 참 좋은 말 많습니다.
거기에 “병 속에서 건강을 얻는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병 속에서 건강을 얻는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제가 가만히 사유를 해봤지요. 병이 들어서 하반신이 거의 다 마비가 됐는데도, 상당히 불편하잖아요. 아프고 불편하고, 그런데 건강한 입장을 찾아보니까 건강한 것이 훨씬 더 많아요. 첫째 입이 살아 있지ㆍ눈이 살아 있지ㆍ귀가 살아 있지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또 많습니까? 우리가 지금 부족한 면을 늘 부각시켜서 ‘아~ 나는 이것이 부족하고ㆍ이것이 없고ㆍ이것이 안 되고’ 그래가지고 그것만 자꾸 생각하는데요. 자기에게 이미 있는 것. 자기 능한 것. 그런 것을 찾아보면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마든지 있어요.
밤에 도둑이 들었는데, 돈을 많이 훔쳐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주인은 안 훔쳐갔어요. 얼마나 다행입니까? 또 시자를 안 훔쳐갔어요. 또 딴 데 넣어놓은 돈은 그대로 있어요. 더 아끼는 화엄경은 하나도 안 건드렸어요. 얼마나 좋아요? 컴퓨터도 하나도 건들지 않았어요.
그 자료들. 하~~ 정말 황금보다도 더 값진 귀중한 자료들을 하나도 안 건드렸어요. 횡재했지요. 횡재한 것 아닙니까? 그런 면들이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누구에게든지 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아~ 참, 깨달을 점이 많습니다.
得大善利라. 이렇게 여긴다. 이 말입니다.
以我力故로, 내 힘을 쓴 고로
令彼衆生으로, 저 중생으로 하여금
永脫諸苦하니라. 영원히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내 힘으로써 모든 중생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
(4) 一切衆生 得涅槃
菩薩이 以此所行方便으로 於一切世界中에 令一切衆生으로
乃至究竟無餘涅槃하나니 是名菩薩摩訶薩의 第四無屈撓行이니라
菩薩이
以此所行方便으로, 이렇게 행하는바 방편으로써
於一切世界中에 令一切衆生으로,
일체 세계가운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乃至究竟無餘涅槃하나니, 끝내 가서는 무여열반.
이것은 ‘무여열반을 성취하게 하나니’그 말입니다. 究竟하는 것은 ‘무여열반을 성취하게 하나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을 성취하게 하나니,
是名菩薩摩訶薩의, 이것이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第四 無屈撓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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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內外 明徹 내외명철
안과 밖이 함께 밝아져야 한다_()()()_나무 대방 광불 화엄경
讀書百遍에 義自見..._()()()_
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 좀체 잘 되지 않습니다. 精進의 힘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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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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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無三毒...고맙습니다. _()()()_
但爲知一切佛法一實相故로 而行精進하며..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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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병 속에서 건강을 얻는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병 속에서 건강을 얻는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제가 가만히 사유를 해봤지요.
병이 들어서 하반신이 거의 다 마비가 됐는데도, 상당히 불편하잖아요.
아프고 불편하고, 그런데 건강한 입장을 찾아보니까 훨씬 더 많아요.
첫째 입이 살아 있지ㆍ눈이 살아 있지ㆍ귀가 살아 있지요. 그
렇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또 많습니까?
우리가 지금 부족한 면을 늘 부각시켜서
‘아~ 나는 이것이 부족하고ㆍ이것이 없고ㆍ이것이 안 되고’
그래가지고 그것만 자꾸 생각하는데요. 자기에게 이미 있는 것. 자기 능한 것. 그런 것 찾아보면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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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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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없는 참사람= 참나에는 性無三毒 그래서 內外明徹
·本性品에는 六波羅蜜, 十波羅蜜, 四攝法, 四無量心, 忍義禮智
·地獄未空, 誓不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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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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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삼박자! 진정 성공한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성공이라 하느냐?
因緣을 隨順하고, 자기가 지은 인연을 잘 수순해야 됩니다. 또
인연을 把握(파악)해야 됩니다. 하~~ 자기인연을 把握해야 됩니다.
그 인연을 把握할 줄 모르고 허둥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因緣을 隨順하고, 因緣을 把握하고, 그리고 인연을 創造(창조)해야 됩니다.
자기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 이치에 맞게 인연을 創造해 나가는 것.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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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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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緣을 隨順하고, 因緣을 把握하고, 그리고 인연을 創造(창조)해야 됩니다.
자기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 이치에 맞게 인연을 創造해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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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 이치에 맞게 인연을 創造해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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