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메니아 이상호 형의 명복을 빌며
정 운 종
이상호 형! 이 무슨 청천병력과 같은 비보입니까.
연초부터 지병이 악화돼 전화가 불통이더니 끝내 홀연히 가시다니 인생의 무상함이 이 보다 더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같은 백세시대에 향년 84세에 유명을 달리 하시니 더욱 안타깝고 만날 때마다 산행으로 다져진 날렵한 몸매에다 언제 만나도 다정다감했던 형과의 사별은 형을 아는 많은 동료와 후진들에게 팔 한 쪽을 잃은 허망함과 비통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빌며 졸지에 상을 당하신 유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형과 나는 같은 언론인이었으면서도 분야가 달라 자주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대한언론인회 산악회와 경향OB산악회를 이끌어 오면서 함께한 세월은 생각할수록 값지고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울진의 용소골 응봉산, 인제의 방태산, 한라산, 대관령의 선자령 제왕산을 비롯한 원거리산행으로부터 휴전선 접경지역의 고대산, 통영 앞바다의 사량도 지리망산, 한북정맥 종주에다 멀리 바다건너 곤유산 등정까지 국내외 산야를 누빈 형과의 만남은 친형제 보다 가까운 우정의 진수였습니다.
어느 해인가 최전방 문화탐방을 갔을 때 휴전선 넘어 철원이 아버님 고향이어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며 향수에 젖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6·25전쟁과 보리 고개를 넘으며 고생 고생한 얘기는 바로 우리시대 우리가 겪었던 아픔이었음을 어찌 모른다 하겠습니까.
형은 일찍이 중앙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조선일보에 입사해 청운의 꿈을 불태웠고 경향신문사 교열부장과 문화일보 편집위원을 역임하는 등 신문교열 분야에서 발군의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형은 매사에 치밀하고 깔끔한 성격에다 남다른 친화력과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형이 매우 가정적이었다는 사실은 손자의 유학을 돕던 말레지아 생활에서 극명하게 들어 납니다. 그 손자가 성큼 자라 군무를 필했으니 대견한 마음으로 눈을 감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때마침
대한언론인회 산악회와 경향OB산악회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형이 남긴 산행기가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기산행과 특별산행을 합쳐 280여 차례 산행을 안내하며 형이 보여준 자상한 손길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가운데 매년 시산제때마다 진행을 도맡아 했던 형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전국의 명산대찰은 물론 소문난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는 데도 형의 자상한 안내가 주효했습니다. 그만큼 산행지리에 밝았고 형이 아는 풍부한 관광정보는 항상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밤비를 헤치고 나의 창문을 두드리며 흐는끼는 여인아 만나지 말자고 맹서한 말 잊었는가 ---(우중의 여인) 형의 노래 솜씨도 압권이었습니다.
형은 일찍이 인터넷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각 언론사 사우회중 가장 먼저 카페를 개설, 경향사우회 산하 각종 동호인 모임의 아기자기한 소식을 실어 사우 애를 두터이 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형이 아니었다면 대한언론인회 산악회와 경향OB산악회의 오늘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영화 감상으로 무료한 시간을 달랬던 일요 만남도 형의 빈자리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형과 함께 산악회를 이끌었던 대한언론인회 산악회 최귀조 회장은 그가 엮은 ‘산 따라 45년’에서 ‘하늘에도 산이 있나요’라며 타계한 회원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지용우 이정세 선배도 가시고 형마저 훌쩍 떠나시니 저도 곧 가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언제고 부르시면 정상 주(頂上酒) 싸들고 가겠습니다.
이상호 형 !
형은 이제 이승을 떠나시지만 형이 남기신 아름답고 거룩한 행적들은 후진들에게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교훈이 되고 귀감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명복을 빌며 아무쪼록 후고의 염려는 모두 털어 버리시고 번뇌도 아픔도 없는 저승에서 부디 영생극락 하시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한 세상 살다 가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거늘/ 재물, 명예 얻으려고 안간힘 쓰지 말게나/ 인생은 지극히 짧고 덧없는 것 부귀영화도 일장춘몽일세/ 바람처럼 살다 아둥 바둥 살지 말고 구름처럼 물처럼 유유히 살게나/가이 없는 사막을 걸어가노라면 그대 발자국이 남긴 하지만/ 바람 한 줄기 불면 흔적도 없다네 구름처럼 가세/ 봄이 오면 꽃 피고 가을엔 낙화 지듯 인생도 피고 지는 것이 한 평생/ 천하장사라도 가는 세월 못 막네/그러니 구름에 달 가듯이 유유히 살게나”(지용우 유고 시 인생길)
저승에서 형을 맞이할 지용우 선배의 시한수가 생각나 옮겨 봤습니다.
* 이상호 회장 영정 (사진 조명동 회우)
* 2012년 6월 12일 대한언론인회 철원지역 문화탐방시 고 이상호 회장
* 2010년 7월 3일 왕방산 깊이울계곡에서 고인을 비롯한 경향OB산악회 멤버들.
좌로부터 정운종, 이상호(작고), 지용우(작고), 강남기(경향 OB산악회 회장), 이정세(작고), 이충선 김충한
임상묵 전철수 회우
*어느날 양평 두물머리에서 좌로부터 최귀조(대한언론인회 산악회 회장) 이상호(작고) 지용우(작고) 정운종
* 일출봉 정상에서 좌로부터 이상호(작고) 지용우(작고) 정운종
*2011년 10월 중국 곤유산 트랙킹때 적산 정상에서 좌로부터 이정세(작고) 이상호(작고) 지용우(작고) 정운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