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이종범, 김병현, 최희섭, 박재홍… 등. 역대 프로야구 드림팀 멤버가 아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광주일고 동문이라는 점. 최근 20년 동안 호남에서는 많은 야구 꿈나무들이 '광주일고 입학'을 목표로 삼아 구슬땀을 흘려왔다. 이처럼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한 광주일고에는 한국야구의 미래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80년 전통의 명문
1923년 창단해 올해로 80년째. 광주일고 야구부는 80년 동안 전국대회에서만 14번이나 우승을 하며 '광주야구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49년 청룡기 우승으로 '전국대회 신고식'을 한 광주일고는 69년 고교야구 육성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명문팀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75년 김윤환의 3연타석 홈런을 축포로 26년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오른 광주일고는 80년대 들어 선동열, 문희수, 이종범 등을 주축으로 8차례 우승을 차지해 전성기를 이뤘다. 90년대(전국대회 4회 우승)에는 박재홍, 김병현, 최희섭 등이 '무적 광주일고'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
99년 무등기에서 우승한 뒤 광주일고는 줄곧 전국무대에서 들러리 신세였다. 2000년 무등기에서 4강에 진출한 게 최고 성적.
이에 99년 말에 부임한 심재혁 감독은 올해를 '부흥기'로 삼았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신념을 갖고 2년 동안 침체에 빠졌던 팀을 재건시키겠다는 각오로 지난해 12월부터 하루 8시간의 맹훈련 중이다.
투수에는 189㎝·90㎏에 최고구속 145㎞를 자랑하는 김대우(3년)가 돋보인다. 4번을 맡는 등 공격력까지 갖춘 김대우는 올해 기아의 고졸우선 1차지명이 예상된다. 주장 김주호는 2년 연속 전국대회 3할대의 공격력에 수비력까지 갖춘 대형 유격수다. 올해 신입생 13명이 들어와 전체 35명으로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한다.
▲왜 강한가
'명문' 광주일고는 우수한 선수자원, 주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감독·선수들의 강한 의지 등이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빛을 뿜어내고 있다. 광주지역 꿈나무들이 앞다퉈 가려는 곳이 광주일고이고, 입학 후 기대주로 키워내는 곳이 바로 광주일고다.
지난해 12월16일 재결성된 광주일고 출신 야구선수들의 모임인 일구회(회장 이상윤·기아 수석코치)는 야구진흥기금으로 3,000만원을 모았다. 이밖에 총동창회, 프로야구단 기아, 재학생 등이 야구부의 후원자를 자청하는 등 광주일고는 재정적인 면에서 다른 학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기아 이종범은 "광주일고의 감독과 선수들은 명문 이미지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야구단 분위기를 전한다. 광주일고가 '강한 힘'을 유지해 온 이유다.
광주일고는 '스타 사관학교'다.
광주일고의 스타계보는 40년대 '광주야구의 대부' 김양중에서 비롯됐다. 김양중은 1949년 팀을 청룡기 정상에 올리며 광주일고를 전국에 알렸다. 스타계보의 명맥은 70년대 중반 강만식·차영화·김윤환에 의해 26년 만에 다시 이어졌다.
78년 선동열의 입학은 광주일고 전성기의 물꼬를 열었다. 고3 때인 80년 팀을 대통령기 정상에 올린 선동열은 이후 고려대→해태→주니치를 거치면서 최고투수로 자리잡았다.
83년 전국대회 3관왕에 오르는 동안 문희수·박준태 등의 스타가 배출됐고, 84년 2관왕에 오를 때는 이강철·이호성 등이 일등공신이었다.
이종범은 성영재와 함께 88년 청룡기와 전국체전 우승으로 '바람'을 몰고 왔다. "충장중 시절 엘리트코스인 광주일고에 들어가려고 밤낮으로 훈련했다"는 이종범은 "88년 청룡기에서 우승한 뒤 광주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했을 때는 하늘을 날아가는 듯했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이종범은 "지금도 광주일고 출신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80년대까지는 주로 국내파와 일본파가 득세했다면 90년에는 메이저리거들이 출현, 학교이름을 드높였다. 93년 서재응, 94년 김병현, 95년 최희섭이 입학하면서 명문으로 거듭난 광주일고는 현재까지 해외파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