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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열 두 번째
성경 ; 렘1:4-10, 히12:18-29, 눅13:10-17
제목 ;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지난번에, 약 한 달 동안, 아내가 영국 딸네 집에 가 있는 동안, 저로서
는 그다지 불편한 게 없었습니다. 웬만한 것은 다 처제가 해주었기 때문에,
아내가 없어서 힘든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혼자 있는 게 힘들었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늘 홀로 집에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쓸쓸하고 외로웠습니다. 물론,
항상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언제나 외롭고 쓸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넓은 곳에 나 혼자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쓸쓸함과
외로움의 물결이 밀려오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
하시고는,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도와줄 짝을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물론,
혼자 있어서 좋은 점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어쨌든 사람은 짝을 이루어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남녀가 짝을 이루어 함께 함으로써,
험하고 힘든 이 세상을 잘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
은 누구랑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까? 과연 누가 우리의 영혼과 함께 하면서,
그 영혼이 외롭고 힘들 때에 정성껏 보살펴주면서 위로해줄 수 있는 것입니
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언제나 너와 함
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니, 너는 그 누구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
지 마라.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니, 꼭 그대로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
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똑같이 말씀하시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 누구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면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함께 하시겠다고 한 것은, 그에게 예언
자의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기꺼이 감당할 때, 하나님도 그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예레
미야가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갈 경우, 과연 하나
님께서 그의 영혼을 돌봐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순간, 그런 사람은 하나
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계약이 깨지게 되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은 그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을 지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이스라엘백성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아서 형
벌을 받았다(12:25)’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얼마나 더 무서
운 형벌이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해서 형벌을 받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얼마나 더 무서운 형벌을 받겠느냐?’고 하는 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논리입
니다.
물론, 우리는 꼭 형벌이 무서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서 평
안을 누리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우리의 본분
과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요약해서 말씀드린다
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지켜 살 때, 그 말씀의 보호를 받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그 새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
다.
‘이 작은 새는 이미 저녁먹이를 먹고 난 후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그
잠자리가 참으로 편안해 보이는구나! 저 새는 내일 아침에 먹을거리에 대해
서도 걱정하지 않겠지! 그리고 내일 밤 잠자리에 대해서도 아무 걱정과 염
려를 하지 않겠지! 저 새는, 다윗처럼 전능하신 자의 보호하심에 그 몸을 맡
기고, 정말 아무 염려와 걱정도 없이, 작은 나뭇가지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만족하는구나! 저 작은 새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
지 않는가!’
그래서 루터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잠자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새를 보호하시듯이 그 사랑하
는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작은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인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산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 보호해주시리라
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예레미야를 들어 쓰시려고, 그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구별하여
‘만민을 위한 예언자’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곧바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저는 말할 줄도 모르고,
아직 너무 어린 사람입니다(1:6)”라고 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예언자가 되
기에는 합당치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한 것
은 단지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줄 몰라서 예언자의 사
명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가 죽임을 당하게 될까봐 두
려웠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예언자들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예
언자들이 해야 하는 말은,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도 아니고, 축복하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심판을 예고
하는, 한 마디로 말해서 백성들이 듣기 싫은 말만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그런 예언자를 환영하거나 반가워할 리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예언자들이 기분 나쁜 소리와 재수 없는 소리만 한다고, 그 예언
자들을 잡아다가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특히, 권력자들에게는
예언자가 눈의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예언자들이 그들의 비리와 부정을
밝히면서, 그들의 파멸과 심판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언자들이 가야 할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언자가 된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이었습
니다. 그래서 진실한 예언자들은 점점 사라지고, 언제나 거짓예언자들만 득
실거렸습니다. 거짓예언자들은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골라서 했기 때
문에,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예언자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그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구별하여 선택하셨던 것입
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예레미야가 예언자의 일을 감당할 수 없노라고 하면
서 거부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결코 한 순간도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이라도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가시면, 우
리는 한 마디 변명이나 항의도 하지 못하고, 그냥 이 세상을 하직해야만 하
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요즘 한참 무덥다고 야단들입니다. 중국에서는
지금 폭염으로 인하여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태양을 지구 가까이로 조금만 더 옮기신다면, 이 지구에 어떤 변
화가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면, 모든 인류는 한순간에 불에 타서 완전히 멸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실이 이런데도, 우리 인간이 도대체 무슨 큰소리를
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말고 겸손히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의 말씀을 거역하면 얼마나 더 무서운 형벌이 있겠는가?’하고 경고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변명이나 이유를 대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1.우선,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잘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10절 이하에는, 예수께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
달리던 여자의 병을 고쳐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는, 그 여
자의 병을 고쳐주신 다음에, 그 여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열여덟 해 동안 사
단에게 묶여 있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일 먼저 감당해야 할 사명은, 이처럼 여러 가지 종류의
사단에게 묶여서 부자유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그 모든 억압과 얽매임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자유
와 기쁨, 평안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들에게 열심히 진리의 복음을 전해서, 그 복음의 진리로 말미암아,
어둠에서 해방되어서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
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고인이 된 ‘여운계’라는 분을 잘 아실 겁니다. 이분은 명
문대학을 나와서 오랫동안 연기생활을 하다가 2009년도에 폐암으로 사망했
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죽기 전에, 그의 몸이 점점 연약해지자, 그 마음도
심히 약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무언가에 의지하려고 아주 많이
애썼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전원주 씨에게 ‘대구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고 하니, 함께 가자!’
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원천리 대구로 내려가서 점을 치니, 그 점
쟁이가 하는 말이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주 작은 미물이라
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귀하게 여기면, 돈도 생기고 몸도 낫는다.’고 했습
니다. 그 다음부터, 여운계 씨는 아주 작은 벌레만 봐도 그 벌레에게 합장을
하면서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일찌감치 그분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게 했더라면, 그가
그처럼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소
위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이가 점쟁이의 말을 믿고 그런 행동을 취했으니, 얼
마나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입니까? 아무튼, 자신의 미래가 얼마나 불투명하
고 두려웠으면, 한낱 미물에 불과한 벌레에게 합장을 하면서 절을 했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악한
사상과 점술, 그리고 미신과 우상에 얽매여서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인생
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
나님을 바로 믿고 의지함으로써,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내가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야하며,
내가 시키는 말이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전해야 한다(1:7)”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런 다음,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니, 너
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8)”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 또는 그 무엇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
려워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무조건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크신 사
랑과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주님 안에서 참평안을 누려야 합니
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대충 아무렇게나 믿음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헛된 생각을
하거나 헛된 일에 빠지지 않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받
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거나
복음 전하는 일을 등한히 할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니, 너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8)”고 하신 말씀은, 어디까
지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실하게 살려고 애쓰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
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
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2.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은,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의 모습을 그
리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늘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말해주고 있
는 것입니다.
22절의 말씀을 보면, ‘이곳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이며, 수많은 천사들이 즐겁게 모이는 곳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
고 그곳에는, ‘하늘나라 생명책에 등록된 사람들만이 갈 수 있게 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든 민족을 심판하시는 하나
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구원받고 완전해진 의인들이 살아가게 된
다(23)’고,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그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
건함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로 잘 섬겨서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28)’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다고
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
세를 통해서 경고를 받고도 순종하지 않다가 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경고하시는데, 만일 우리가 그 말씀을 듣지 않는
다면, 얼마나 더 무서운 형벌이 우리에게 내리겠는가?’
성도 여러분! 장차 우리 앞에 일어나게 될 일들은, 그때 가서 직접 경험
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가
사실이라면, 그 경고를 무시하고 산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땅을 치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경고한 것을 귀담아 잘 듣고, 하나님
께서 일러주신 대로 사명을 열심히 감당한다면, 절대로 후회할 일은 결코 일
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혹여, 히브리서 기자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전
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참으로 값있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인생을 살아가도
록 더욱 열심히 노력합시다. 그래서 멀지 않은 훗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 천국에 들어가셔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