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서울 강북지역에 특수목적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짓는 방안이 담긴 부동산종합대책을 오는 29일 내놓으려 하자 교육인적자원부와 서울시교육청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시도 강북 뉴타운 계획을 22일 발표하면서 강북지역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이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관련 부처들 간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인종(劉仁鍾)서울시 교육감은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평준화를 깨는 학교 설립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劉교육감은 이르면 2005년 말까지 강북지역에 특목고.자립형 사립고 유치를 내용으로 하는 재정경제부나 서울시의 계획에 대해 "부동산 대책을 교육제도와 연계하는 것은 효과도 거의 없으며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그는 "정부가 학교 설립 비용(7백억~8백억원)을 모두 대더라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교육감이 특목고 지정, 자립형 사립고 추천 권한을 가지고 있어 劉교육감이 반대하면 서울시에 이들 학교를 세울 수 없다.
윤덕홍(尹德弘)교육부총리도 최근 劉교육감을 만나 서울 강북에 특목고를 설립하는 방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도 평준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특목고.자립형 사립고 등 다양한 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서울 강북지역에 세우는 데는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이날 오후 열린 전국 시.도 부교육감회의에서 "사회 일각에서 고교 평준화 제도에 대해 이견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 제도의 유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진표(金振杓)경제부총리와 이명박(李明博)서울시장은 최근 만나 강북 뉴타운 내 특목고 설립 추진에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부 관계자는 "강북과 강남지역의 가장 큰 격차는 교육환경에서 비롯된다"면서 "강북지역에 보다 많은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세워 교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강북지역에 학교를 세우더라도 학원 등 교육 인프라가 잘 돼있는 강남지역 학생들이 진학할 경우 해당 지역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혜택은 줄어든다"면서 "학교가 설립되는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일정 비율 이상 뽑거나 가점을 주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부동산 종합대책에 "강북지역 교육환경 개선방안"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도 이날 강북 뉴타운 개발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르면 오는 2005년 말까지 성북구 길음동 뉴타운 내에 자립형 사립고를 유치하고, 역세권에는 사설학원 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또 2008년까지 은평구 진관내.외동에 세워지는 은평구 뉴타운에도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유치키로 했다.(찬성-재정경제부, 서울시)"강북 교육환경 개선을" "강남에 쏠린 교육수요 분산 특단의 대책 빨리 마련해야" 정부가 오는 29일께 발표 예정인 부동산 종합대책에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설립방안을 포함시키기로 한 것은 교육환경이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물론 재정경제부도 강북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를 몇 개 더 세운다고 집값이 잡힐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환경을 개선시킬 경우 강남지역으로 몰리는 투기적 가수요를 부분적으로라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강남 거주 학부모 네명 가운데 한명 꼴로 판교.파주.김포 등 앞으로 건설될 수도권 신도시에 교육여건이 잘 갖춰지면 이사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정부의 이 같은 생각에 힘을 실어줬다.
정부는 또 지난 9월 5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서 판교신도시에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를 세우는 방안을 발표한 뒤 자신을 얻었다. 학원단지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 때문에 교육인적자원부와 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큰 마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진표 부총리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서울 강북 은평.길음.왕십리 등 세곳에 조성 중인 뉴타운에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세우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해당 지역 거주 학생들에게 입학우선권을 주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金부총리와 李서울시장은 최근 교육환경 개선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교육부나 서울시교육청의 반발이 약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조직적인 반발에 나서자 재경부는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설립인가권을 가지고 있는 교육부와 교육감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경제부총리나 서울시장 뜻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시행이 불가능하다. 결국 교육감을 자립형 사립고나 특목고 설립에 찬성하는 사람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지만 교육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의 통제 밖에 있다.
교육감은 중앙에서 교육자치를 위한 재정지원을 받지만 예산 지출이나 학교 설립.교원인사 등에 있어서는 거의 절대적인 힘을 행사한다. 재경부는 교육감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돼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운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재경부 관계자는 "교육감을 주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하고 교육재정과 지방재정을 하나로 합치는 것만이 이 같은 난맥상을 풀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말했다.(반대-서울시교육청, 교육부)"또다른 입시전쟁 불러""외고·과학고 입시기관 변질…차라리 골프고교 만들어라" 유인종(劉仁鍾)서울시교육감은 22일 서울시내 자립형 사립고 등의 설립에 반대하는 근거로 "평준화 붕괴론"을 거론했다.
"초등학교부터 입시지옥으로 만들 거냐"는 불만도 경제부처 등을 상대로 쏟아냈다. 그리고 윤덕홍(尹德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 이틀 전 만나 협의한 사실을 들며 "(평준화 체제 유지에) 총대를 메겠다"고도 했다.
부임 이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 등으로 기우뚱거려온 尹부총리를 대신해 경제부처 등을 상대로 할 얘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劉교육감은 "그 사람들(경제부처.서울시)은 외국어고.과학고만 특목고인 줄 안다"며 "입시기관처럼 변질된 외고.과학고 말고 차라리 골프 고교를 만들겠다고 하면 환영하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정부가 29일 발표할 예정인) 부동산 종합대책에 특목고.자립형 사립고 설립 얘기가 나와도 나는 안 한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을 잡기 위해 교육 대책을 내놓더라도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劉교육감이 이처럼 강하게 "자립형 사립고 불가론"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현행 외국어고나 과학고 등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그는 이날 "(외국어고에서) 영어 테스트를 하라고 했더니 수학 시험을 보더라"며 "서울시내 특수목적고교가 생겨나면 전국에서 이곳으로 오기 위해 치열한 입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생 선발, 교과과정 운영, 등록금 책정이 자유로운 자립형 사립고도 입시전쟁을 유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劉교육감의 소신이다. 대신 그는 평준화의 보완책으로 "필수과목 50% 이상 축소""학년제 폐지.학점제 실시" 등을 내놨다.
학생들은 최소 단위의 교과목을 이수하게 하고, 우수한 학생들은 학점을 더 많이, 더 빨리 따 학년에 상관없이 빨리 졸업시키고 부족한 학생은 남게 하면 하향 평준화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劉교육감은 "특목고.자립형 사립고만 현행 평준화 체제의 대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내년 8월 임기가 끝나는 선출직 교육감이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면 정부 부처들이 어떤 대책을 내놔도 실현될 수 없다.
시.도교육감은 현재 학교 설립.지정.추천 권한을 모두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도 교육과 관련해서는 교육감과 협의할 뿐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교육부도 劉교육감의 말에 내심 동조하고 있다. 교육 관련 부처가 한 데 엉켜 "저항"하는 한 교육 분야에서 제도적 틀을 바꾸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미 특목고가 있는 강원도와 전라북도는 특목고 추가 설치를 원하는 반면 경기도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