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서커스
그리움, 눈물, 사랑 그리고 행복
그리움이라 했다
기억해 내지 않아도 누군가가 눈앞을 어른대는 것이
그래서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리움이라 했다.
눈물이라 했다
누군가를 그려 보는 순간 얼굴을 타고 목으로 흘러 내리던
짠내 나는 것 눈물이라 했다.
몹쓸 병이라 했다.
사랑이란 놈은 방금 배웅하고 돌아 와서도
그를 보고프게 만드는 참을성 없는 놈이라 했다
그래서 사랑이란 놈은 그 한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드는 몹쓸 놈이라 했다.
행복이라 했다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그 이름을
불러 보고 또 눈물 짓고 설레는 것이
그래서 순간순간 누군가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행복이라 했다.
** 사랑이 가득한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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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예사
샤갈 Marc Chagall(1887~1985)
러시아의 비테프스크 출생.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에콜드파리 최대의 화가이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미술학교에 다닌 후,
1910년 파리로 나와 A.모딜리아니와 F.레제 등을 배출한 아틀리에 '라 뤼슈'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큐비즘기법을 익혔다.
1911년 앙데팡당전(展)에 첫 출품, 괴이하고 환상적이며 특이한 화풍으로 전위파화가와 시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1911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성공한 후 그해 결혼을 위해 일시 귀국하였으나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잇달아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모국에 머물면서 미술단체의 요직을 맡았다.
고향에 미술학교를 열고, 1919년 모스크바의 국립유대극장의 벽화장식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맞지 않아 1922년 베를린, 1923년에는 파리로 돌아왔다.
이때부터는 유화 외에도 화상(畵商) 폴라즈의 의뢰에 따라 많은 판화를 제작하여 에콜 드 파리의 유력한 작가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리고 환상적인 작풍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가 점차 격화되자 1941년 도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에서 지냈다.
1947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1950년부터는 남프랑스의 방스에 영주의 터전을 잡았다.
A Proximite des Poetes
첫댓글 싸늘한 날이라도 뜨거운 사랑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