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투성이 골목에도 문학은 꽃피고
대구 중구 향촌동 일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근현대 문학이 꽃핀 장(場)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전국의 피난민들이 대구로 몰려왔다. 대구는 전쟁 중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가 되기도 했다. 피난민 중에는 문학예술인이 많았는데,그들은 대구의 번화가였던 향촌동에 모여들었다. 문학인들은이 일대 골목의 다방과 바, 막걸릿집에서 교류하며 시대의 아픔과 절망, 낭만과 희망을 갈무리해 시를 쓰고 책을 펴냈다. 인쇄소와 출판사, 음악 감상실, 극장 등도 성업을 이뤘다. 잿빛 현실 속에서도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던 그들은 세월이 흐르며 사라졌지만, 그 시절 그 골목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대구문학관은 그 흔적을 발굴하고 꿰어서 대구문학로드를 만들었다. 대구문학로드를 걸으며 근대문학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든다.
[옛날 교복 입고 1950년대로]
대구 근대문학 기행은 향촌동 대구문학관에서 시작한다. 같은건물 1~2층은 향촌문화관, 지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 3~4층이 문학관이다. 문학에 관한 전시는 주로 3층에 있지만 문학관 전체를 살뜰히 살펴보는 것이 대구 근대문학이 탄생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향촌문화관에서 근대 향촌동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본다. 입구에서 세일러칼라가 달린 옛날 교복을 빌려 입으니 마음은 어느새 여고생이다. 전시관에는 대구 상업의 중심지인 중앙로와 북성로 공구골목이 재현돼 있다. 대구역 미디어아트 전시도 눈길을 끈다. 진짜 같은 막걸릿집·극장 등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다방에 들어서자 입구에 놓인 다이얼전화기에서 벨이 울린다. “출판기념회에 늦지 말라”는 수화기속의 목소리에 잠깐 당대 문인들 틈에 끼어든 것만 같다.
3층으로 올라가면 문학관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죽순’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맞이한다. 대지를 뚫고 나오는 대나무의 힘과, 해방직후 대구에서 발행된 동인지 <竹筍(죽순)>의 제목에서 착안한작품이다. 척박한 시절 솟아난 문학의 결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문학관에는 대구 근대문학의 전성기를 이끈 작가들의 활동 이력과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상설 전시실로 들어서자 작가들의 사진과 이력이 연대별로 걸려 있어 대구 문학의 역사를 한눈에 훑을 수 있다. 이육사·박목월·유치환·김동리·구상 등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띈다. 명예의 전당에는 대구 출신 작가 이장희·이상화·현진건에 관한 이야기와 작품들이 따로 모여 있다. 세 사람은 친구이자 문학적 동료였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 세계는 판이했다. 이장희의 대표작 ‘봄은 고양이로다’를 읽어본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불길이 흐르도다’
1924년 5월 <금성> 3호에 발표된 시다. 봄볕 아래에서 한가롭게뒹굴고 있는 고양이가 이내 떠오른다. 이런 섬세한 언어를 쓰는사람이 어떻게 일제강점기, 야만의 시절을 견뎠을까. 그래서인지 이장희는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음독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몇 걸음 더 옮기면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시들을 감상하는 네 개의 부스가 마련돼 있다. 내키는 곳에 들어가 원하는 시 제목을 누르면 음악과 함께 시가 흘러나온다. ‘애(哀)’ 칸에 들어가 박목월의 ‘만술아비의 축문’ 버튼을 눌렀다.
‘아베요 아베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베도 알지러요. (중략) 간고등어 한 손이믄 아베 소원 풀어드리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묵고 가이소.’
손 닿는 대로 선택한 시이건만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이 먹먹해진다. 문학은 이처럼 단숨에 영혼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문화해설사와 함께 걷는 문학로드]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니 문학 감수성이 가득해진 기분이다. 밖으로 나와 전시관에서 본 향촌동 일대를 걸었다. 문학관에 비치된 지도와 안내 책자의 도움을 받아 혼자 다닐 수도 있지만, 장소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 문화해설사와 동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구문학관은 ‘대구문학로드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운영하고 있는데, 10인 이상의 단체는 상시로(최소 2주 전까지신청), 개별 투어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참가할 수 있다. 신청은 대구문학관 홈페이지(www.modl.or.kr)에서 하면 된다.
대구문학관은 ‘일곱 갈래 또는 하나의 길’이란 이름으로 7개의 테마길을 제안한다. 주제에 따라 연결한 꽃자리 길, 향수 길, 수밀도 길, 구상과 이중섭 길, 독립과 사상의 길, 교과서 속 작가 길, 다방 길이다. 루트를 따라 걸어도 좋고, 원하는 곳만 골라 나만의 문학로드를 만들어도 괜찮다.
이날은 김주현 문화해설사가 동행했다. 김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구문학관을 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문성당출판사로 간다. 문성당출판사는 1950년대 우리나라 출판·인쇄 업계의 중심에 있던 출판사인데, 오래전에 사라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옷가게가 들어섰다. 당시 흔적은 건물 외벽에 남겨진 황소 모자이크뿐이다. 1960년대에 설치된 서석규 화백의 작품이다. 이중섭이 제주에서 돌아와 잠시 묵었다는 경복여관을 지나 꽃자리다방으로 향한다. 꽃자리다방에서는 구상의 시집 <초토의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시집의 표지 그림은 그와 친분이 깊던 이중섭이 그렸다. 꽃자리다방 이름도 구상의 시 ‘꽃자리’에서 따왔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
피난지, 결코 꽃자리라 할 수 없는 그곳에서도 시인은 삶의 기쁨을 찾아낸 것일까? 구상의 행적은 대구문학로드 곳곳에서 발견
되는데, 그의 마음 씀씀이는 그의 시처럼 넉넉하다. 부유했던 그는 가난한 문인들을 많이 돌봤다. 그가 골목에 나타나면 그날은 문인들이 실컷 술을 마시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고. 꽃자리다방은 얼마 전까지 커피숍으로 운영됐는데, 지금은 문을 닫아 빈 건물로 남아 있다.
맞은편 골목 입구에는 ‘예술인의 옛 거리 향촌동·북성로’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김 해설사는 흑백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준다. 같은 자리에서 찍은 옛날 사진이다. 사진 속엔 희미하지만 여관·대폿집 등의 간판이 보인다. 이 좁은 골목길에 모나미다방·백록다방·대지바·화월여관 등 문인들이 활발히 교류하던 곳들이 줄지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벽면에 붙은 표지판에서만 옛 이름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화월여관 자리를 끼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가 있던 곳이 나온다. 르네상스는 1951년 문을 열었다. 호남 부자의 아들인 박용찬이 피난을 오는 와중에도 4000여 장의 레코드를 싣고 와 꾸렸다고 한다. 미국 음악 전문지에도 소개될 정도로 그 규모가 대단했다고. 김동리·천상병·조지훈 등을 비롯해 음악가 나운영·김동진, 화가 김환기 등 많은 예술가가 드나들었다.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식당 간판을 내걸었는데, 그마저 문을 닫은 듯 보인다.어쩐지 아쉬워 괜스레 골목을 몇 번 더 왔다 갔다 해본다. 이 좁고 굽은 골목 어귀에서 시와 소설이, 노래와 그림이 탄생했다는데, 눈으로 옛 영광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해설사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한다면 어느새 저편에서 구상이, 현진건이 뚜벅뚜벅 걸어 올는지 모른다.
[기억한다면 사라지지 않아]
골목을 벗어나서 경상감영공원을 지나 내처 무영당까지 걷는다. 무영당은 당시 최고 번화가에 세워진 대구 최초의 민족자본 백화점(1937년 건립)이다. 창업주 이근무는 시인 이상화, 화가 이인성, 작곡가 박태준 등을 후원했다. 2층에서 윤복진이 작사하고 박태준이 곡을 쓰고 이인성이 표지 그림을 그린 동요곡보집 <물새 발자국>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곳 역시 지금은 비어 있다. 화려한 명성을 잃어버린 무영당 건물 뒤로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문득 돌아보니 문학로드를 둘러싸고 이곳저곳에서 아파트가 지어지는 중이다. 근대문학의 발자취는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코스인 이상화 생가터로 간다.이곳은 잊혔다가 근래에 다시 소환된 독특한 이력을 지닌 곳이다. 이상화 생가터에는 현재 카페 라일락뜨락1956이 있는데, 카페 대표 권도훈 씨의 노력으로 이곳이 이상화 생가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민족시인 이상화를 기억하기 위해 이상화 전시를 열고 문학회를 개최하는 등 카페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이곳의 이상화 그림도 디자이너인 그가 직접 그렸다. 권도훈 대표는 마당 가운데에 있는 백 살 넘은 라일락 나무를 가리키며 “이상화도 이 나무를 보며 살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권 대표의 마음속에서, 그의 카페에서, 이상화는 다시 살고 있다. 그렇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었던 것이 아니듯, 기억한다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대구문학로드 주요 코스]
대구문학관▶문성당출판사(現 천지삐깔) ▶경복여관 ▶꽃자리다방 ▶모나미다방(現 자매매운탕) ▶백록다방(現 브라운도트호텔) ▶대지바(現 대화장) ▶화월여관(現 판코리아성인텍) ▶호수다방(現 선산식당) ▶르네상스(現 판코리아식당) ▶경상감영공원 ▶무영당 ▶이상화 생가터(現 라일락뜨락1956)
<대구문학관>
주소 대구 중구 중앙대로 449, 3~4층 문의 053-421-1231
운영 9~19시(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휴관)
관람료 무료
<향촌문화관>
주소 대구 중구 중앙대로 449, 1~2층 문의 053-219-4555
운영 9~19시(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휴관)
관람료 성인 1000원
첫댓글 문학로드가 죄 여관과 다방. ㅋㅋㅋ
저중에서 이상화 생가터만 가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