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 받침대
월간에세이 11월호에
조현세/ 도시연대 부이사장. 도시계획 기술사/
K팝처럼 우리나라에서 K푸드식으로 수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을 꼽는다면 비빔밥을 내세우고 싶다. 갖은 색채의 나물과 양념에 고기류까지 활용할 수 있어 시각적인 만족감도 높다. 각각의 재료를 비볐을 때는 또 어떤가. 한 가지 맛으로 도드라지는 것이 아니라, 화음이 잘 맞는 합창처럼 어우러지는 맛이 비빔밥의 매력이다.
요즘은 비빔밥에 특별한 재료 이름을 붙여 종류를 다양화 한다. 어떤 식당에서는 담아내는 식기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어린이가 먹기 좋은 ‘새싹 비빕밥’이 있는가하면, 여름철 일꾼들의 ‘열무 비빕밥’도 개성을 살려서 좋다. 또 ‘돌솥’이나 ‘놋그릇 육회’는 물론 ‘백자기 인삼 비빔밥’은 영양에다 운치까지 더한다. 그런가하면 비빔밥이 특정지역을 대표하기도 한다. 이름하여 전주비빔밥이다.
얼마 전, 전주로 출장을 갔을 때다. 사십년간 전주비빔밥의 전통을 이어 온 식당을 찾았다. 2대째 가업으로 이어 온 유명한 집이라, 명성만큼 손님이 붐볐다. 한옥으로 잘 지어진 외관부터 메뉴판에는 음식의 그릇에 온도를 표기해서 손님을 배려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놋그릇 비빔밥 65도, 돌그릇은 150도등까지, 음식 사진에다 3개국어로 표기된 것까지 친절했다. 이 정도면 한류의 대표음식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종업원들의 서두르는 모양새는 여느 식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허겁지겁 탁자를 닦고 습관적인 말투로 주문을 받았다. 알맞은 온도의 부침개와 정갈한 밑반찬을 ‘손님께 드립니다.’ 라는 정중한 태도는 아닐지라도 살며시 놓기라도 했으면 싶었다. 식탁에 탁 내려두고는 “수저는 저쪽에 있습니다” 턱으로 가리키더니 휭 돌아서 간다.
그리고 숟가락 놓을 받침대가 없었다. 나는 이때부터 기대가 실망으로 바꿨다. 결국은 손님 스스로 식탁 세팅을 하란 말인가? 적지 않은 밥값인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걸레 같은 물수건으로 쓱 닦은 식탁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은 어디에 놓을 것인가. 나무재질의 식탁위생 상태를 어디까지 믿을까? 입에 넣었던 숟가락을 어디에 두며, 젓가락은 손바닥 안으로 감아 접어 쥐고 먹어야하나? 형광물질이 가득한 휴지를 밑받침으로 하여 상대편 손님께 놔드리지도 못하고 엉거추춤 한다. 그냥 들어서 손에 쥐어드리는 수밖에 없는 모양새가 되었고 불편함은 밥을 먹는 내내 계속되었다. 일반 밥주발이 나올 때는 그 뚜껑 위에 놓기도 해왔지만, 하는 수없이 반찬 그릇에 걸쳐놓고 먹게 되었다. 슬며시 종업원에게 수저받침대를 부탁했으나 없다는 짤막한 답뿐이었다. 색깔 고운 노란황포 묵의 반찬에 구성 재료를 물어봐도 모르쇠였다.
옛 선조들이 즐겨 드시던 그 맛을 전수하기 위하여 육수로 밥을 짓고 삼년 묵은 조선접장으로 나물을 양념한 정성이 마지막 식탁에서 빛을 잃고 말았다. 귀한 재료에다 오랜 전통의 맥을 잇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접한 밥상을 받은 가분은 쉽게 잊혀 지지 않았다.
꼭 비싸고 화려한 도자기 받침대는 아닐지라도, 놋쇠그릇에 어울리는 한지로 접은 받침판이 수저통 옆에 놓여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종이 받침대에 짧은 시 한 구절이라도 적혀 있다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내 기대가 너무 높았던가. 나는 왜 이리 사소한 것에 마음을 상하는지?
이태리에서 나포리로 가는 도중에 작은 해안변에서 해물 스파케티를 주문했다. 흰색 앞치마를 두른 젊은 웨이터는 주문을 받자마자 아주 앙증맞고 예쁜 작은 식탁보를 팔에 서너장 걸치고 나타나서 아주 정성스럽게 각자의 손님 상 앞에 각을 맞추어 놔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유심히 보는데 마지막 한 장은 그대로 가져간다. 이를테면 개별식탁보의 자기 팔뚝에 받침인 것이다. 두 개의 포크 또한 손님에 향한 마음이 가득 담긴 손놀림으로 놔준다. 환산하면 5천 원 정도의 가격이지만 팁을 놓고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대접을 잘 받은 기분은 오랫동안 남았다. /
첫댓글 아직 그정도의 여유가 없나봅니다..
이런 수필이 널리 읽혀져서 조금씩이라고 여유를 가지고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전주 한옥마을 가서 약간 실망 ㅋㅋ
우리집부터,,,